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0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04)
―여기가 어느 지역인가 알 것 같다.
파란 하늘 위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투란이 마차의 질주하는 소음을 이겨 내고 겨우 잠이 들 듯 말 듯 한 순간에 드라고니아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갑작스러웠고, 말투 속에 담긴 기분이 오랜 추억을 더듬는 듯한 느낌이 너무 기묘한 탓에 투란은 잠결이라도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인데?’
―갈기 산맥. 우리는 그렇게 부르는 곳이다. 스쳐 간 인간들이 말한 하이랜드, 갈기 산맥의 곁에 붙어 있는 고원(高原) 평야(平野) 지역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어. 어쩌면…… 클라우드 레이크를 볼 수 있겠어.
‘클라우드……?’
―구름 호수. 호수 위로 자욱한 안개가 구름이 뭉클거리는 것 같다고 해서…… 호수 위에 비치는 하늘과 어우러지면 진짜 구름이 하늘 위에서 맴도는 광경처럼 보이거든.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은, 아주 크고 넓은 호수다. 우리 일족 중에서는 그걸 보려고 이 산맥 가까이까지 여행 오는 녀석들도 있을 정도지.
‘그래? 대단한 곳인가 보네. 나중에 좀 자세히 얘기해 줘.’
잠에 빠져들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대꾸했다.
드라고니아가 곧 쓴웃음 짓는 듯한 기척을 전하면서 말한다.
―보면 굳이 얘기 따위는 듣지 않아도 될 거다. 그런데 그 인간들에게 붙여 놓은 프로브는 유지할 건가?
‘어…… 한 사흘 정도만…… 구경하고 싶어. 부탁해.’
완전히 잠에 몰입해 가면서도 투란은 오른손을 꽉 쥐면서 윌 라이트의 마력을 통해 유지되는 프로브에 의지를 전했다.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는지, 스쳐 갔던 세마인과 레쓰, 그 일행을 지켜보라고…….
하지만 하루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루케인은 거의 다 왔다면서 마차를 쉬지 않고 달렸고, 세마인 쪽은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고블린의 흔적을 찾으며 헤매일 뿐이었다. 시알라는 루케인 곁에서 반쯤 조는 모습이었고, 세 형제는 여전히 마차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아 경계하고 쉬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루쓰 일행은 세마인을 중심으로 달리는 진형을 계속해서 바꾸면서 빠르거나 느리게 주변을 샅샅이 뒤져 가는 모습으로 투란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간혹 스쳐 가는 짐승들의 경계하는 모습을 구경만 했을 뿐이고, 고블린이든 빅울프든…… 위협적인 몬스터나 짐승 따위는 만나지 못한 채였다.
이 상황은 달리는 마차 지붕에서 소음을 이겨 내고 잠들었다가 깨어난 투란에게 조금 멀뚱하니 샤오콴 마을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기게 했다.
“사냥은 말이야, 지루함과 싸우는 거지. 험악하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일은 정말 순간적으로 스쳐 가거든. 그 전까지 뒤지고 헤매면서 긴장을 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그게 엄청나게 지겹고 지루하거든. 그 지겹고 지루할 때에 긴장 풀고 있다가 뒈지는 거, 그게 바로 초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지!”
‘초보는 아닌 모양이네. 말 타는 것도 그렇고 저런 장비를 풀어 놓지 않고 입은 채로 저렇게 싸돌아다닐 수 있는 걸 보니 말이야.’
주변을 둘러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프로브의 기록을 검토하면서 투란은 레쓰 일행에 대해 가늠해 봤다.
말까지 무장을 시킨 채였지만, 레쓰 일행은 아주 가볍고 빠른 동작을 보여 줬다. 입고 있는 무장이 전혀 부담이 가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말 또한 사람과 무장을 한꺼번에 싣고 달리지만, 오래 달리고 걷는 중에 쌓인 피로만 있는 듯 그 무게에 대해서는 별 부담이 없는 듯했다. 그런 모습에서 예외는 마법사 세마인, 레쓰 일행 중에서 가장 가벼운 차림새였지만 세마인은 말을 타고 장시간 질주하는 일에 꽤 지친 기색을 보였다. 그렇다고 세마인이 다른 여섯 명의 기병의 질주에 쳐져서 나뒹굴거나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그 여섯 동료와 비교해서 많이 지치고 힘겨워 보일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라서 투란이 맨 처음 검토한 부분은 일행의 장비가 생각 이상으로 가벼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는데, 무장의 강도(强度)를 자랑하듯 중량이 생각보다 컸다. 페란드의 갑옷보다 거의 두 배는 될 듯한 중량이었다. 잘 만들어졌지만, 마법의 낌새가 전혀 없는 탓이라 그런 듯했다. 다만 세마인의 장비가 그 일행 중에서 가장 가벼운데, 그게 거의 페란드의 갑옷과 비슷한 무게였다. 즉, 세마인 또한 힘겨워하는 꼴과 다르게 대단한 체력을 과시하는 마법사란 상황이었다.
이를 뭉뚱그려 말하면, 저 일행이 저렇게 내달리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고 초보가 아니란 말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투란에게는 조금 의아한 면이 있었다.
‘이 지방 사람들은…… 망아지까지 다들 힘이 저렇게 좋은가?’
페란드의 갑옷은 상당히 많은 궁리 끝에 필요한 강도를 갖추기 위해 두께를 더하면서도 나름대로 다듬어 무게를 꽤 줄여 놓은 것이었다. 마법으로 척척 지어낸 옷이기는 하지만, 그 갑옷을 구상하느라고 페란드는 꽤 고생했다. 그러나 그 구상은 결국 페란드가 아는 바에 의지한 탓에 레쓰 일행이 갑옷보다 신기하기는 해도 정교하고 높은 수준의 기술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결국은 페란드의 체력에 의지해서 버틸 수 있는 중량 안에서 갑옷를 맞춘 셈이었다.
한데 레쓰 일행은 필요한 장비를 우격다짐이라도 하듯이 챙겨 입었고, 심지어 마법사인 세마인까지 그렇게 챙겨 입은 채로 질주하고 있으니…… 투란에게는 사람도 말도 엄청나게 뛰어난 체력을 지닌 것인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응? 그 이유를 모른다고?
‘엥? 저렇게 힘 좋은 이유가 따로 있어?’
―하이랜드잖나. 너, 하이랜드에 사는 사람이나 짐승의 특성에 대해 들어 본 적 없나?
‘없어. 하이랜드는 아주 낯설다고.’
―그래? 흠, 뭐 간단히 설명하자면 저들은 강화술(强化術)을 익히고 있다. 마법사조차도 어느 정도 강화술로 몸을 키워 놓은 상태지. 이 고원의 평야에서 산다면 어쩔 수 없이 짐승조차도 자신의 호흡을 잘 다뤄야 하고, 인간이라면 자신들이 쌓아 올린 기술과 문명을 기반으로 대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강화술의 훈련이 되…….
‘뭔 소리야, 그게? 강화술이라니! 그거 오러 윌더가 쓰는 기술 아니었어?’
―오러 윌더가 주로 쓰고, 오러 윌더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 그러나 강화술은 애초에 오러 윌더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야. 그건 연금술사가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연구하고, 그 연계 구조를 규명하면서 생명이 지닌 힘을 보다 효율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다 도달한 ‘기술’이다. 강화술에서 오러 윌더가 태어나기는 했지만, 마법의 각인을 받은 오러 윌더가 반드시 강화술을 아는 거는 아니라고 해야 할 거야.
투란은 길어지는 설명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키린에게서 들었던 강화술, 무투법에 대해서 몸이 기억을 하는 듯하잖은가!
드라고니아와는 다르게, 매우 실용적이고 실질적으로 전해 줬던 키린의 이야기…… 잽싸게 마음 한구석으로 치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음, 복잡한 얘기는 치우고! 아무튼 저 레쓰 일행은 그런 강화술로 힘이 좋아진 거란 말이지? 마법사까지도 말이야.’
―그래. 하이랜드에 적응하면서 살기 위해 저절로 익혔을 가능성이 커.
‘살기 위해서?’
―여긴 고원지대야. 들판처럼 보인다고 해도 어지간한 산보다 높다고. 그 때문에 바람이 옅고 희박하다. 사람이나 짐승이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는 아니지만, 힘이 더 들어가고 어렵다. 이런 곳에서 살다가 낮은 평원으로 가게 되면 탁하고 짙은 숨을 들이쉬느라 애먹기도 하지. 하지만 강화술은 그 격차를 다른 방식으로 환원시킨다. 희박한 바람결 속에서 숨쉬기를 단련하고, 그 단련된 숨쉬기 능력을 지닌 채로 고원에서 벗어나면 아주 강력한 힘을 보다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게 되지. 거기에 오러 사인이 추가되면…….
역시나 되살아나려는 기억에 투란은 냅다 말을 자르며 끼어든다.
‘야, 중간부터 뭔 얘긴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여기 사람들은 강화술을 몸에 익혔고, 오러 윌더가 되기 쉽다? 그래서 힘이 좋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간략해진 것 같지만, 대강 그런 의미다.
이제서야 투란의 기분을 조금 알아차린 듯, 한편으로는 설명을 포기한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대꾸했다.
‘그럼, 우리도 힘을 너무 낮춰 놓으면 안 되겠네?’
―너나 저 세 형제의 경우는 그렇지. 시알라는 애초에 마법사로 꾸민 채니까 별 상관 없을 거다. 세마인이나 루케인의 경우를 보면 알겠지만, 시알라의 체력은 그들보다 살짝 높은 정도에 맞춰져 있으니까 오히려 자연스럽겠지.
‘흐흠, 그렇다면…….’
투란은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마차는 덜컹대는 바퀴 소리에도 여전히 평온하게 달리고 있었고, 드라고니아가 갈기 산맥이라 지칭한 산악 지대가 한쪽 곁에서 마차와 함께 달리는 듯한 풍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반대쪽에는 끝없이 굽이치며 저 멀리 흘러가는 듯한 평원처럼 보이는 탓에 산악 지대의 울퉁불퉁하고 꼿꼿한 산 모양이 더욱 특이해 보였다.
마차가 나아가는 방향으로는 유난히 꼿꼿하고 삐죽해서 높은 산이 언덕 한 줄기를 끼고 있는 듯한 묘한 광경이 멀리 보였다. 지나온 길은 마치 그 높은 산을 향해 아주 얕은 경사를 이루며 펼쳐진 듯한 모양이었다.
주변 풍경을 잠시 둘러보다가 투란은 냉큼 마차 뒤편으로 얼굴을 들이대면서 입을 연다.
“있잖아, 그 말 타고 간 일행 말이야.”
이 소리에 가장 먼저 멜란드가 반응하는데…….
마차 뒤로 머리를 거꾸로 떨구듯이 뒤편의 낮은 격벽을 이룬 칸막이에 등을 기대고 머리를 젖혀 얹어 놓았지만 심심해하다가 투란의 말에 바로 발딱 고개를 바로 하며 입을 여는 멜란드였다.
“고블린 백 마리짜리 팩은 그냥 몰살시킬 것 같았지?”
잠시 투란이 눈을 끔벅거렸다.
프로브를 통해 엿들은 바로는, 전혀 그럴 낌새가 없었다.
과연 이럴 때는 뭐라 대답해야 하는가?
투란으로서는 조금 곤란한 물음이었다.
제란드가 바로 핀잔을 주는 말투로, 자신이 바라보던 풍경에서 눈길을 돌리는 모습으로 대꾸한다.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이던데? 그리고 호드의 고블린이라고 했잖아. 호드를 이룬 고블린은 보통 때보다 강해진 채라고 했다. 거기서 나온 무리니까, 만만치 않을걸?”
“쳇, 페란드 형보다 좋은 장비였잖아. 페란드 형은 어떻게 생각해?”
멜란드가 입술을 삐죽대면서 페란드에게 도움을 청하듯이 물었다.
하지만 페란드 역시 멜란드보다는 제란드에게 동의한다는 듯한 대답을 꺼내 놓으니…….
“드레드 울프 가죽을 보고 많이 놀란 눈치였잖아. 만약 호드의 고블린이 강해진 채라면, 소문대로 침팬지 몇 마리를 찢어 놓을 정도로 고블린 한 마리가 힘을 발휘할 정도가 되었다면…… 이 드레드 울프 사냥이 힘겹다 느낄 수준이라면 위험할 거야. 피하는 게 좋겠지.”
투란이 바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돕는 말이잖나!
“맞아. 그 말도 힘세고, 사람도 힘세고…… 마법사까지 말을 그렇게 잘 타기는 하지만, 왠지 자신이 없어 보이더라고. 뭔가 겁주고 쫓아 보낼 정도만 할 것 같았어. 아, 그런데…… 정말 힘세 보이지 않았어?”
제란드가 투란의 말을 가늠해 보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그랬지. 그 갑옷, 마법의 기척은 전혀 없었어. 그러니까 보이는 그대로의 중량이라면…… 사람보다 말이 더 대단하다고 해야겠지. 그 갑옷에 사람까지 더해졌는데 그렇게 달리는 거니까. 물론 그걸 다 챙겨 입고 말 위에서 버티는 쪽도 대단했어.”
페란드는 조금 갸웃거리면서 다른 생각을 말한다.
“보이는 그대로의 중량은 아닐 거야. 마법으로 가볍게 하지 않았더라도…… 소재라든가 짜인 구조를 통해서 가벼운 갑옷이 무거운 갑옷 못지않은 기능을 발휘하게 할 수도 있거든. 표층과 내층에 틈을 놓고, 처리하면…….”
“으아, 형! 난 대장간 차릴 생각 없다고! 제란드 형도 그렇지?”
멜란드가 신중하게 갑옷의 제작법에 대해서 말하려는 페란드의 말을 자르면서 지루하기 싫다는 듯이 외침을 터뜨렸다. 이는 페란드의 표정을 살짝 구겨지게 했고, 제란드를 웃게 했다.
“그건 그렇지. 아무튼, 형 말은 갑옷이 보기와 다르게 가벼울 수 있다는 거지? 정말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 기술이겠지. 알드바인에서 볼 수 있을 테니까, 기대되겠는걸?”
슬슬 부추기는 끝말이 페란드를 웃게 했다.
멜란드에게는 지루한 얘기가 페란드에게는 호기심을 가득 채워 주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제란드는 페란드에게 레쓰 일행이 입고 온 갑옷이 알드바인에서 제작되었을 수 있다고 그 호기심을 건드려 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갑옷을 제작하는 대장간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하라고 압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투란은 오가는 얘기를 들으면서 빙긋 웃었다.
세 형제는 고요하게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은 투란이 프로브로 열심히 지켜보면서 염탐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스쳐 간 일행을 놓고, 찾아가야 할 곳…… 알드바인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하며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 미리 대처할 궁리를 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투란이 말하고자 한 것을 말하는 것이 매우 편안해진다.
“대장간 기술은 그렇다 치고, 힘이 좋아 보이잖아. 일단…… 그러니까 우리도 한 단계 팔 힘을 높여 놔도 되지 않을까?”
말과 함께 세 형제를 향해 투란은 두 손가락을 펼친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제란드가 그 손가락 표시에 ‘흐흠.’ 하는 소리부터 냈고, 페란드는 ‘그런가.’라며 조금 더 궁리해 보자는 듯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멜란드는 ‘어?’ 하는 소리부터 냈고…….
“그래도 되려나?”
조금 의아한 한마디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