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1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08)
“이게 뭐야? 아니, 이러면 환영에 속지 않는 경우에는…….”
제란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페란드와 멜란드도 ‘어?’ 하는 소리를 내면서 제란드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투란은 바로 마부석으로 머리를 떨구면서 묻는다.
“이래 놔도 되는 거예요? 이런 가짜를 보여 주는 마법으로는 뭐가 침입하는…….”
“팬텀 월(Phantom Wall)이야! 가짜 아니야! 서약의 의무를 다하는 지금 같은 경우에나 열 수 있는 마법이라고! 평소에는 그냥 암반…… 진짜 바위가 뿌리내린 것처럼 자리 잡은 벽일 뿐이라고! 거기에 이번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팬텀 웰이 작용해서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임시로 만드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이제 묻지 말고 닥쳐! 다들 조용히 하라고! 내가 집중하지 못하면…….”
“우앗! 바위가 좁혀 들고 있어! 길이 사라……!”
“그냥 바위 속에 갇히니까, 조용히 하라고!”
루케인은 떠드는 투란과 곁에서 놀란 소리를 삼키는 시알라를 향해 왼손을 들어 올리면서 말을 맺었다. 그 왼손에는 다섯 개의 금빛 고리가 반짝였고, 꾸물거리던 어두운 통로 안을 밝혔다. 조여들던 암벽 속의 통로가 다시 마차의 질주를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넓혀지면서 단단해졌다.
촤르르! 타닥, 다다닥.
바퀴 축이 부드럽게 돌고, 모형마의 발굽 소리가 적당한 리듬을 형성하면서 통로 안을 길게 울려 퍼졌다.
지나치는 풍경이 온몸에 미묘하게 전해 오는 압박을 느끼면서 투란은 오른손을 꽉 쥐었다.
순간, 드라고니아가 아주 희미한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새겨 넣는다.
―팬텀 웰은 이질적인 존재를 거부한다. 허용되지 않은 마법 또한 방해하지. 윌 라이트의 힘도 약해질 수밖에 없어…… 이 환영의 암벽 길에서 벗어나면 곧 정상이 되니까, 조금 참고 기다려라.
바싹 긴장하려는 몸을 느슨하게 하면서 투란은 조금 더 주변의 풍경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문득 손가락 사이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확인했고, 그 속에서 맥동하며 흘러나오는 로열 가든의 마법을 느낄 수 있었다. 팬텀 웰과 기묘하게 호응하면서 투란은 물론이고, 네 남매와 루케인까지 휘감는 듯한 마법이었다.
이를 통해 투란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실체를 지닌 암반에 마법이 걸려 있고, 이 마법은 허락되지 않은 자를 지나치게 그냥 둘 리가 없다. 그러니까 처음에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다! 지나칠 수 있는 통로가 환영으로 감춰진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단단하고 두껍고 넓은 성벽 아래의 뿌리 같은 암반에 마법으로 지나칠 수 있는 길을 잠시 만들 뿐이다!
그 길의 풍경은 어스름한 채로 저편의 출구가 던지는 희미한 빛을 향해 있고, 질주하는 마차의 앞뒤로 어느 정도 범위만이 또렷하게 포석이 깔린 도로와 닮아 있었다. 곧게 뻗은 것인지, 구불거리며 꼬여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궤도를 달려 마차는 결국 팬텀 웰의 출구에 도달했고…….
두 사람이 앞뒤로 선 채였고, 앞에 선 이가 든 지팡이에서 출구를 밝히는 듯한 빛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루케인이 빛나는 지팡이를 마주하듯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다섯 개의 빛고리가 감긴 손은 소매 안에 감춘 채로 마차의 조종을 맡은 막대에 올려놓고서 빈손을 올리는 모습이었고, 시알라는 곁에서 갸웃하다가 마차가 느려지면서 멈추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부석 지붕에서 투란이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뭐야, 왜 똑같이 달리고 있는데 속도가 줄었지?”
시알라도 그 기분에 금세 동감할 수 있었다.
모형마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러나 출구에 가까워지면서 속도가 줄었고, 아예 멈추고 있었다.
마차 뒤편에서 세 형제도 이 상황에 다소 얼떨떨한 말투로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된 것인가를 따지는 듯한데, 루케인이 그 모든 소리를 덮듯이 앞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외치고 있었다.
“상아탑의 서약에 따라, 임무를 수행 중이다! 문을 열어 주겠나?”
치켜올린 채로 빛나는 지팡이가 느슨하게 내려졌고, 대꾸가 나온다.
“서약의 임무를 다하는 자에게, 문을 열라!”
마법의 파동이 곧 출구를 중심으로 퍼졌고, 마차와 모형마가 순식간에 동작을 멈췄다. 그러나 곧 질주가 아닌 느린 걸음으로 모형마가 걷기 시작했고, 마차는 사람이 걷는 듯한 속도로 느긋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출구를 통과했다.
빛을 뿜던 지팡이는 잠시 빛의 무늬를 반짝이다가 그 빛을 완전히 지운 채가 되었다. 가슴 언저리까지 오는 지팡이를 단정히 쥔 사람이 묻는다.
“도울 일은?”
루케인은 바로 마부석에서 몸을 일으켰고, 마부석 지붕은 이런 움직임에 맞춰지듯이 마차 뒤편을 향해 밀려들어 갔다. 투란이 ‘우에?’ 하는 소리를 내면서 뒤로 기는 시늉을 하는 사이에 루케인이 물음에 답한다.
“두 가지 있어. 우선 한 가지는…… 오는 길에 강도단을 만났다. 이런 형태의 낙인을 찍었고, 만난 곳에서 제압해 묶어 놨지. 장비품은 회수해서 가져왔으니, 처분해서 돈으로 바꿔 주고…… 제압한 강도단의 뒤처리까지 부탁하지.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금 만날 수 있는 상급 마도사의 행방을 당장 알려 줬으면 하는 거야.”
말과 함께 루케인의 오른손은 허공에서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시알라는 굳이 마력을 감지하지 않더라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빛의 무늬를 확인하며 살짝 의아해했다. 멜란드가 남기고 온 낙인을 루케인이 어떻게 이리 명확하게 아는가? 그리고 마차 주변으로 살며시 퍼져 나가는 마력은 대체 뭔가?
팬텀 웰의 출구에 서 있던 마법사는 아무 의문도 품지 않은 듯, 루케인을 향해 마주 손짓을 하면서 들은 것을 되풀이하듯 말하고 있었다.
“강도단의 처분을 자세히 알려 줘야 하나? 장비품의 보상금, 걸린 현상금이 있다면 그것까지 챙겨 주면 되는 거야? 알겠어. 그럼 그 일은 이쪽에서 깨끗하게 처리하지. 그리고 상급 마도사라면…… 마스터 홀시딘께서 시간 여유가…….”
“잠깐! 마스터 홀시딘 말고는? 마스터 케이라는 자리에 없으신가?”
“느긋하게 할 일이라면, 보름 정도 뒤에 돌아오시는 분들이 계시지. 하지만 당장 여유가 되는 분은 마스터 홀시딘뿐이야. 마스터 홀시딘 말고는…… 다들 바쁘시네.”
“어, 어쩔 수 없는 건가. 알았어.”
대화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시알라는 루케인이 마스터 홀시딘이란 이름을 놓고 미묘하게 한숨과 함께 거부감을 드러내는 꼴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대답해 주고 있는 빛이 꺼진 지팡이를 든 마법사 역시 루케인의 이런 모습을 이해하는 듯, ‘기다릴 수 있으면 기다리든가.’ 하는 태도로 다른 상급 마도사의 상황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었다.
물론 루케인은 기다릴 생각이 없는 듯, 바로 포기하고…… 살짝 체념한 모습으로 묻는 중이었다.
“어디 계시나? 여전히 상층부에?”
“상층부, 시연장(試演場)으로 가 보게. 여덟 번째 승강장을 이용하면 바로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그럼…….”
대답이 나오자마자 루케인은 마치 뒤를 향해 크게 손짓했고…….
“우악! 누가 내 전리품을…….”
멜란드가 외치는 소리가 터졌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적들에게서 빼앗아 온 장비 묶은 짐이 튀어올라 마차 밖으로 내던져진 때문이었다.
시알라가 혀를 차면서 바로 뒤를 향해 외친다.
“안 들었니? 처분해 준다고 했잖아! 손 떼!”
“못 들었어. 아, 잘 부탁드려요!”
멜란드가 투덜거렸고, 모형마는 다시 달가닥대는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걷기 시작했다. 암벽을 통과해 들어선 지하 광장은 높고 넓으면서도 그 중심에 거대한 원형의 기둥이 자리 잡은 풍경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밝지만 광원(光源)이 어디인가 알 수 없었고, 그림자가 없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텅 빈 듯하면서도 거대한 지하 창고와 같은 묘한 분위기가 맴도는 곳이기도 했다.
마차는 그 풍경 속에서 중심의 기둥을 둥글게 감는 듯한 궤적을 남기며 움직였고, 잠시 뒤에 기둥 곳곳에 뚫린 네모난 구멍 중 하나 앞에서 멈췄다.
“내리자. 여기서부터는 마차를 쓸 수 없으니까. 저리로 들어가면 돼.”
앞서 내리면서 루케인이 문턱 같은 네모진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고, 투란은 바로 지붕에서 뛰쳐나가듯이 그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리고 곧바로 어이없다는 듯이 외치는 투란이었다.
“이게 뭐야? 꼭 막혔고, 텅 비었는데?”
마차가 그냥 들어와도 될 정도로 넓은 곳이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어디론가 뚫린 길은 없었고 그저 넓고 네모난 포석이 그림처럼 바닥에 자리 잡은 텅 빈 방에 불과했다. 유난히 네모진 모양으로 꾸며진 채로 포석조차 네모난 것이 특이할 뿐이다.
“저쪽, 포석 위로 올라가. 금 밟지 말고. 넓으니까, 다들 어서.”
뚱하니 루케인이 설명 없이 재촉했다.
바로 투란은 포석 위로 올라서면서, 그저 바닥에 금을 그어 놓은 정도로 나눠진 포석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가를 살피겠다는 듯이 킁킁거리고 갸웃거렸다. 뒤이어 네 남매가 올라섰고, 루케인은 다들 금을 밟지 않고 네모 안에 들어선 것을 확인하며 자신도 올라선 다음에 손짓하며 중얼거린다.
“시연의 장으로.”
단단한 천장이었던 위쪽의 암벽에 네모난 금이 그어지면서 구멍이 뚫렸다.
올라선 포석이 소리 없이, 아주 부드럽게 위로 치솟기 시작했고…… 곧 네모난 기둥 위에 선 꼴이 되어 네모나게 위로 뻥 뚫린 구멍으로 일행이 밀려 올라가는 꼴이 되었다.
“어, 이게?”
사방은 모두 단단한 벽처럼 막힌 꼴이었고, 그 벽에 딱 달라붙은 바닥이 위로 치솟는 상황에 투란이 어이없어하는 소리를 냈다.
“승강장이라고. 오면서 봤잖아. 우린 지금 상아탑의 안쪽에 와 있고, 거의 꼭대기 층을 향해 올라가는 중이라고.”
루케인이 위를 보면서, 멈춰야 할 곳을 가늠하는 듯한 모습으로 대꾸했다.
잠시 투란과 네 남매는 마법사의 상아탑 안쪽에 대해 둘러보는 시늉을 하려는 듯했지만, 막힌 벽과 위로 까마득하니 뚫린 풍경 말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바로 포기하고 말았다.
포석의 상승은 조금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느릿했고, 조금 멀게 느껴졌다.
그 지루함을 떨쳐 내려는 듯이 시알라가 묻는다.
“아까…… 손짓으로 강도가 있는 곳이랑 멜란드가 남긴 낙인 모양을 알려 준 거죠? 그런데…… 멜라드의 낙인 모양은 어떻게 알았어요?”
준비된 것이 아니라 멜란드가 즉흥적으로 만든 낙인이었다.
그저 쇠붙이에 멋대로 무늬를 그려 넣고 달궈 버린 것에 불과했는데, 루케인은 마차를 재촉하면서 그 무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알려 준 것이다.
“응? 그야 보고 있었으니까. 이거 말이야, 이거.”
루케인이 가볍게 소매 속에 감췄던 손을 살짝 드러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다섯 가닥의 반지를 보여 줬다. 시알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다가 다시 묻는다.
“앞으로 계속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볼 수 있는 건가요?”
“그런 짓을 왜 해? 그런 마법이 아니라고. 뭐……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를 해 주는 마법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묻지 마.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범위는 좁은 데다가, 내가 맡을 일도 아니니까. 아마…… 음, 난 이 일에 대해서 잊게 될 거야.”
“에? 잊다니요?”
투란이 루케인 앞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루케인은 피식 웃음 짓고 대답한다.
“비밀을 지키는 일을 맡은 단 한 명의 마도사만이 자네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알게 되는 거라고.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까, 이 임무를 맡은 한 명 말고는 당연히 잊어야지.”
“모르는 척한다는 소리가 아닌 것 같군요?”
시알라가 갸웃거리는 투란의 의문에 보태듯이 물었다.
루케인은 위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을 꺼낸다.
“이번 일에 대한 내 기억을 억제할 거야. 보통은 깔끔하게 지우는 쪽으로 하겠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조작이 좀 필요하기도 하니까. 여기까지 온 과정이라든가, 라비엔에서 있던 일에 대해서 어느 선까지 내가 아는 범위가 제한되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기억하게 되는 거지.”
“기억을……?”
시알라는 흠칫했고, 세 형제도 누나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투란 역시 ‘엥?’ 하는 소리를 내면서 눈을 깜박이며 루케인을 바라봤다.
살짝 한숨을 쉬면서 루케인이 투란을 흘깃하며 말을 잇는다.
“그건 몰랐어? 하긴…… 뭐, 복잡한 얘기 걷어치우고 말하자면, 비밀이란 그런 거라고. 이건 비밀인데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하나씩 아는 사람 늘리는 바보 같은 짓을 상아탑의 마법사가 할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덜떨어진 로그 메이지처럼 목격자를 죽인다, 아는 사람을 죽여서 입을 막는다 따위의 짓을 해서도 안 되니까. 깔끔하게 비밀을 관리할 한 명의 마법사만 알고 나머지는 기억을 억제하고 최대한 둘러대는 방향으로 조작해 두는 거야. 자네들 경우에는…… 잊고 있는 편이 내게도 더 편안할 테니까, 오히려 다행이지.”
“다행인가요?”
시알라가 투란을 흘깃하며 중얼거렸다.
머리를 긁적이고, 표정을 구긴 채로 투란은 ‘그런 걸 줄은 몰랐네.’ 하는 중이었다.
세 형제도 기억을 억제한다는 부분에서 많이 놀란 듯, 루케인을 보며 괜찮을까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루케인은 말을 보태야 했다.
“정말 다행인 거라고. 자네들 일은…… 솔직히 내가 감당하기 버겁다니까.”
잠깐 미묘한 침묵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