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09)
“우리가 그렇게 꼴 보기 싫었나?”
투란이 갸웃하면서 침묵을 깨는 소리를, 아주 낮지만 사방이 막힌 벽이었기 때문에 잘 들릴 수밖에 없는 소리를 웅얼거렸다.
이는 바로 루케인을 살짝 움찔하게 했고, 시알라가 그 미묘한 움직임을 바로 파악했다는 듯이 말한다.
“투란이 알드바인 성벽을 쌓은 벽돌을 보고 투덜거린 소리가 그렇게 거슬렸어요?”
움찔, 다시 한 번 루케인이 어깨를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이번에는 세 형제랑 투란도 그 미묘함을 알아차렸다.
곧장 멜란드가 다른 곳을 향해 눈을 돌리는 척하면서 입을 연다.
“앞에서 문명인이 어쩌고 하는 것 말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그게 농담이 아니었다니…….”
제란드 역시 위를 올려다보는 척하면서 중얼거린다.
“그래도 며칠을 함께 왔는데 마법사라 냉정한 건가…….”
페란드도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한다.
“그래도 기억까지 지우는 거는 좀…….”
루케인이 결국 눈꼬리를 치켜뜨며 눈가에 핏대를 세우고 확 돌아서서 외친다.
“야! 누가 냉정하고 누구 꼴을 보기 싫어서 그런다는 거야! 지우는 게 아니고, 조작한다고! 너네 일 중에서 적당히 통할 이야기를 남겨 두는 거라고! 젠장, 자세한 거는 조금 있다가 알게 되겠지만…… 마법사에 대한 멍청한 얘기 따위는…… 아, 이 녀석들이! 지금 농담하면서 날 놀려 먹고 있었냐!”
히죽거리며 웃는 세 형제와 한숨을 쉬는 누나, 키득거리는 투란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결국 루케인은 전혀 다른 쪽으로 다시 발끈하고 말았다. 하지만 더 뭐라 떠들기 전에 위로 치솟던 포석이 멈췄고, 벽 한쪽이 부드럽게 뒤로 물러서는 듯하면서 단정한 복도가 드러났다.
루케인은 그 복도를 향해 홱 돌아서면서 짧게 나오려던 말을 매듭지었다.
“가자. 마스터 홀시딘 앞에서는 조금 말과 행동을…… 주의해.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분이니까…….”
“마스터…… 홀시딘?”
투란은 갸웃하면서 네 남매를 둘러봤다.
네 남매 역시도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상아탑에서 마스터라 불리는 마법사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없이 대꾸하는 모습이었다.
루케인이 그런 눈치를 알아차린 듯, 짧게 한숨을 쉬고 걸어 나가면서 투란과 네 남매에게 들리도록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알드바인에 온 적이 없으니까, 알드바인에서 거의 나가지 않는 분이라 모를 거야. 뭐, 그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알드바인에 산다고 해서 상아탑의 마법사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 음, 하지만 자네들 경우에는 조금 알아 둬야겠지. 이제부터…… 자네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테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연금술사 녀석들이 버릇없이 하는 말이 아마 알아듣기 쉽겠지? 그래, 그쪽 분야에서 간단하게 하는 말로 마스터 홀시딘에 대해 말하자면, 폭염술사(暴炎術使)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분이야. 조금 더 쉬운 말로 하면, 불꽃의 마법사라고 불리시지. 불을 다루는 마법에 능통해서 말이야…….”
“폭염술사……? 설마 라비엔까지 도망쳐 온 로그 메이지들이 떠드는 광기(狂氣)의 폭염(暴炎)? 그게 홀시딘이란 분 얘기였어요?”
“에, 시알라? 그건 어디서 들었어?”
“루비네에 가끔 들락거리는 로그 메이지들이 떠들 때 나온 이름이라고요. 이름까지는 말하지도 않고, 그냥 미친…….”
“어험! 험! 거기까지 가서 그런 소리 하는 녀석들의 말이잖아? 너무 깊이 담아 두지 말라고. 그냥 여기서 불꽃에 좀 놀랐다고 거기 가서 징징대는 것뿐일 테니까.”
이야기를 하다가 시알라가 불쑥 끼어든 소리에 루케인은 조금 힘겹게 말을 고르면서 부정하는 척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알라의 눈매가 가늘어지면서 ‘대체 뭐라는 거예요?’라고 의심 가득한 빛을 띨 때, 페란드가 불쑥 끼어들어 한마디 한다.
“라비엔까지 징징거리고 오는 경우가 있을 리가요. 꽤 유명한 분이겠군요?”
제란드도 바로 여기에 한마디 보탠다.
“하지만 홀시딘이란 이름은 전혀 들은 적이 없잖아? 연금술사 사이에서 오가는 별명보다 더 유명한 별명이 따로 있는 거 아니에요?”
“에…… 뭐…….”
얼버무리는 소리를 입술 사이에 걸면서 루케인이 빠르게 발을 움직여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 꼴을 보다가 멜란드가 투란에게 슬쩍 중얼거린다.
“아까 말이야, 루케인도 마스터 홀시딘이 아닌 다른 마스터를 찾았잖아?”
곧바로 투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아, 그랬지!”
짧은 대꾸와 함께 발걸음을 재촉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루케인의 뒤를 추적하듯이 움직였다.
잠시 복도에는 도망치는 듯한 루케인의 잰걸음과 쫓는 듯한 투란의 걸음, 뒤에서 나름대로 따라붙는 듯한 네 남매의 발소리만 울렸다. 조금 길게 느껴지는 복도는 곧 좌우로 직각을 만들며 새로운 통로를 드러내며 갈라졌다.
루케인은 그 앞에서 잠깐 좌우로 고갯짓을 하며 갸웃거렸고, 투란이 곁에서 묻는다.
“왜요? 길을 잃었어요? 여기 와 본 적 없어요?”
“여긴 가끔 내부 형태가 바뀌는 곳이야. 통로가 재배치되고는 하지. 뭐, 알드바인 상아탑 전체 구조가 그렇게 이뤄졌다고 해도 맞는 말이겠군. 쉽게 말해서 이 복도가 전에 있던 복도가 아니거든.”
“그게 무슨?”
투란이 위아래, 좌우의 단단한 암벽이 아주 반듯하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채로 이뤄진 통로를 둘러보면서 어이없어했다. 루케인은 이에 대해 간략하게 대꾸하며 왼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마법이야.”
“에…….”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 뒤를 따라고, 바로 따라붙은 시알라가 앞서가는 루케인을 살짝 흘겨보면서 대신 설명한다.
“상아탑의 마법사들은 다들 한 성질 한다는 소문이 있어. 마법도 거칠게 사용하고 해서, 상아탑 내부는 늘 새 단장을 하고 다시 짓는다는 얘기도 있거든. 그러니까…….”
“으엑, 마법으로 때려 부수고 다시 지어서 전에 와 봤어도 모른다는 소리야? 으아…… 여기 엄청 위험한 곳이잖아?”
투란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슬쩍 루케인을 향해, 열심히 달아나려는 듯한 그 뒤통수를 향해 투덜거렸다. 하지만 루케인은 조금 거리를 벌리면서 재빠르게 가려던 걸음을 금방 멈췄고, 뒷걸음을 치며 손짓하고 외치고 있었으니…….
“무, 물러서!”
무슨 말인가 생각하기도 전에 그러는 까닭을 밝혀 주겠다는 듯한 광경이 앞쪽 복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화아아!
한쪽 벽이 느닷없이 불길을 뿜어내면서 통로를 시뻘겋게 밝혀 버렸으니…… 루케인이 왜 저러는가 금방 알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몰아닥친 뜨거운 바람은 더욱 일행을 뒤로 물러서게 했고, 루케인이 악에 받친 듯한 소리를 지르게 했다.
“왜 이러세요! 아래에서 올라온다고 연락 넣었을 텐데요!”
“엉뚱한 곳으로 가려고 했잖아.”
아련한 메아리 같은 대답은 마치 벽이 우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불길이 메워 버린 복도의 가까운 쪽 벽이 움직이며 열렸다.
루케인은 갑자기 옆에 새로 생긴 통로를 보면서 다시 버럭버럭 큰 소리로 외친다.
“이게 뭡니까? 왜 예정에 없던…….”
“오늘 새로 고쳤어. 시연 좀 하다가 몇 곳 부숴 먹어서 말이야.”
역시나 아련한 메아리처럼 벽이 대답을 했고, 새로운 갈림길은 한쪽이 이글거리는 불길로 채워져서 한쪽만이 확실하다고 훤히 밝히며 주장하는 듯했다.
루케인이 어깨를 툭 떨궜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투란과 네 남매를 둘러보며 어색한 웃음을 띤 채로 말한다.
“오랜만에 와서 말이야. 나도 길 안내를 받아야 하나 봐.”
투란과 세 형제는 곧바로 눈을 가늘게 하며 마법사를 바라봤다.
어디서 바로 구워 내온 따끈한 거짓말이냐고 따지는 눈빛을 번뜩이며!
루케인은 재빠르게 그 눈길을 피하듯이 고개를 돌리면서 반쯤 뛰는 꼴로 복도를 걸어 나갔다.
시알라가 혀를 차는 소리부터 내고 조금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마법으로 벽에 여러 가지 표식을 해 놨는데, 소용이 없어진 모양이군요. 여기 계신 마스터가 오늘 내부 통로를 고치고 아직 표식을 바꾸지 않으신 모양이에요?”
앞에 가면서도 이 소리를 들은 듯, 루케인이 아주 빨리 대답한다.
“맞아, 그 말 그대로야!”
투란과 세 형제는 한층 더 눈을 가늘게 했고, 시알라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볼 때까지 루케인에 대해 거침없이 불신감을 뿜어냈다. 그 때문에 걸음을 빨리하며 시알라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자고, 얼른!”
그렇게 해서 길게 이어진 통로는 몇 번을 더 구불거렸고,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한쪽이 불길에 막힌 모양이 되어 외길처럼 한곳을 향해 걷게 해 줬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곳에서는…….
휘이이, 시잉!
맨 처음 눈에 확 들어온 광경은 벽이 둥글게 둘러쳐진 듯한 풍경의 한쪽이 완전히 허공을 향해 열려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 더 둘러보면 아주 넓고 큰 둥근 광장처럼 보이는 곳이었고, 뜨거운 바람이 가득 채워진 채로 달아날 곳을 찾듯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거의 사분의 일 정도로 열린 듯한 한쪽은 멀리 보이는 풍경을 드러낸 채로 열린 것을 과시하듯, 시원한 바람을 받아들여 원형이 광장에 섞어 넣고 있었다.
루케인은 거의 지름이 칠, 팔십 미터는 될 듯한 광장…… 실내임에도 아주 널찍한 공간에도 전혀 놀라지 않은 채로, 단지 뜨겁고 시원한 바람이 뒤섞여 맴도는 것이 조금 귀찮다는 듯한 모습으로 한구석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투란 일행은 그런 루케인이 향해 가는 광장의 한구석, 중심에서 조금 치우쳐진 곳에 한 사람이 있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수십 미터의 거리가 있어서 꽤 작아 보이는 듯했지만, 웅크린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켜는 듯한 모습이 원래 작은 사람이란 것을 금방 가늠할 수 있었다.
쪼르르 하는 발걸음으로 투란이 루케인의 뒤를 따르고, 네 남매는 실내에 어울리지 않는 이 원형 광장의 모습에 위아래 높낮이, 좌우의 폭을 가늠하면서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리고 은발(銀髮)의 하얀 머리카락이 세 갈래로 갈라진 뾰족한 꼴로 머리를 덮어 누르는 듯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확인하는 순간, 투란이 먼저 놀란 소리를 냈다.
“으와, 삼지창 머리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삼지창 머리카락이야!”
루케인이 막 입을 열려다가 이 소리에 입술을 뒤틀고 말았다.
마스터 홀시딘은 이마와 양쪽 귓가를 향해 삐죽한 머리카락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모양이 이마 위에서 뒤로 머리 절반 정도는 머리털 없이 벗겨진 듯한 탓에 투란이 말한 것처럼 은색의 삼지창을 털로 만들어 머리를 덮은 꼴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누가 감히 상아탑의 마스터를 놓고 그 헤어스타일을 따지랴!
“좋다고 처웃냐?”
루케인을 향한 홀시딘의 목소리는 벽이 울리며 나온 소리와 비슷했다. 마치 아까 들은 소리는 벽이 홀시딘의 말투와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그 안에 담긴 핀잔은 꽤 매섭게 다가서는 느낌이다.
루케인이 헛기침을 하면서 웃음을 참느라 뒤틀리는 입매를 바로잡고, 또박또박 말을 한다.
“마법 시연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저한테 화풀이하려 하시면 안 됩니다.”
“화풀이는 무슨…… 그런데, 너…… 분명히 라비엔에 갔던 녀석이잖아? 무슨 급한 일인데 자리 비우고 돌아온 거냐?”
잠깐 루케인을 조금 더 노려보는 듯하면서, ‘이게 누구더라?’ 하는 듯이 눈을 껌벅이다가 홀시딘이 묻고 있었다.
루케인은 곧바로 어처구니없어하면서 살짝 으르렁거리는 말투로 대꾸한다.
“제 이름 홀랑 잊고 계셨어요? 너무하시네요, 진짜! 헬 플레임으로 꼬드기기까지 하셔 놓고, 그렇게 잊으십니까!”
“쳇. 너 올 때가 되면 기억하려고 잠깐 치워 놓은 것뿐이야.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보자마자 말이 나올 정도로 기억하다가는 집중력이 떨어져서…… 아, 이게 아니지. 무슨 일이냐고!”
꿍얼대는 말투로 대꾸하면서 홀시딘은 허공으로 둥실거리며 떠오르고 있었다. 금세 바람에 날려가는 깃털처럼, 어느새 두둥실 하는 꼴로 일행을 내려다보는 모습인 채로 홀시딘의 눈길이 투명하게 빛났다.
마치 대답을 기다리기 지루해서 직접 관찰해서 알아내겠다는 듯한 홀시딘의 태도는 루케인을 바로 기겁하게 했다.
“말씀드릴 거라고요! 그렇게 간파(看破)하려 하지 않으셔도…….”
서둘러 떠드는 루케인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홀시딘이 빠르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뜨겁고 시원한 바람결 사이를 헤집듯이 울려 나온다.
“어디 보자, 마법을 좀 둘렀고…… 응? 이거 위장 마법? 헤에…… 중급 수준으로는 꿰뚫어 보기 힘들겠는걸? 호오, 대단해. 그런데 대체 뭘 숨기려고? 어라, 가짜 문신을 씌워 놓은 진짜는…… 어? 반짝반짝? 아니, 이거 어디서 듣던…… 아우룸 아쿨리아! 이런 망할!”
화르르, 불길이 홀시딘의 주변에 짙고 붉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 꼴을 보자마자 루케인은 눈가에 촉촉한 눈물을 맺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 손을 들어 올리고 버럭 소리 지른다.
“로열 가든!”
투란과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에서 멜란드까지 한꺼번에 덮치려던 불꽃 구름이 황금빛 광채 속에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