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12)
투란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 시늉을 하면서, 너무 꽉 박히고 단단해서 머리카락이 뽑혀 나오지 않을 뿐이라는 것처럼 손등에 힘줄까지 세운 꼴로 웅얼거리는 소리를 낮고 길게 토해 낸다.
“대체 왜! 아주 시원하게 싹 다 정리되고 이제 금덩이 끌어안고 자면서 편안하게 살 줄 알았는데…… 왜 이러냐고! 이게 뭐냐고! 무슨 시련이야, 시련은! 오느라 겪은 일로 시련 따위는 다 겪은 줄 알았는데! 어흐흑!”
네 남매는 이런 투란의 모습에 미묘하게 한숨을 쉬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홀시딘은 상아탑의 마도사로서, 빠득 이를 가는 소리를 내면서 반박한다.
“무슨 일을 겪었든! 다른 핑계로 의무를 내팽개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시알라는 문득 홀시딘이 투란의 억울해하는 사정보다는 ‘편안하게’라는 한마디에 더 미묘하게 짙은 반응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뭔가 정리되지 않고 복잡한 삶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이 금덩이 끌어안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그렇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향해 묘하게 질투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상아탑에서 마스터 소리까지 듣는 마도사가 그럴 리가……?
슬그머니 시알라가 한마디 던져 본다.
“시련이라고 불릴 정도의 의무니까 쉽지는 않겠지요?”
이번에는 홀시딘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렇지. 의무라고 해도 시련이라 불릴 정도까지 되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 그저 좀 귀찮은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
역시나 남의 일을 얘기한다기보다는 자기 일을 토해 내는 듯하잖나!
투란이 이 소리에 귀가 솔깃한 듯이 얼른 묻는다.
“그냥 소소하고 살짝 귀찮은 일로 바꿔 주면 안 되나요?”
“안 돼!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금으로 대충 때워 넘길 일은 조건에서 아예 배제되니까.”
도리도리, 홀시딘이 은발 세 가닥을 휘날리면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투란이 으르렁거리는 표정을 지었고, 시알라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틈새로 불쑥 페란드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조건이라면, 그거 이미 정해진 일이 아니고 조건을 갖춘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투란은 부탁이라고 들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상아탑에서 부여하는 어떤 조건을 갖춘 의뢰를 세 번 받아서 처리하는 일인가요?”
잠깐 홀시딘이 눈을 깜박거렸고, 투란도 비슷한 표정으로 페란드를 보며 조금 전에 나온 소리를 곱씹는 듯했다. 시알라는 ‘어?’ 하는 소리를 내면서 바로 보태듯이 묻는다.
“그런 거예요?”
홀시딘이 고개를 조금 삐딱하게 누이면서 대꾸하는데…….
“거의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단지 거절할 수 없는,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뢰인 거니까…… 시련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느 정도 난도가 있는 의뢰라고나 할까?”
어느 정도 페란드의 말을 긍정하면서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 하고 있잖은가!
시알라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란에게 말한다.
“어려운 일감을 세 가지 준다는 거네, 결국…… 어쨌든 로열 가든의 보호가 필요하잖아? 만약 여기서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상아탑에서 쫓기는 꼴이 될 수도 있고 말이야. 투란, 세 가지 의뢰를 조건으로 상아탑이 우리를 쫓는 대신에 보호해 준다는 거니까…….”
“음, 맞아. 이런 걸 보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하는 건가.”
투란은 머리를 긁적였고, 미묘하게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나를 생각하는 시늉을 잠깐 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음을 굳혔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알았어요. 어쨌든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거네……. 그렇다면, 왕의 율법과 상아탑의 서원에 따라…… 우리는 세 가지 시련을 받아들이기로 하죠. 딱, 시련이라 불릴 의무가 되는 의뢰는 세 가지예요! 네 가지도, 다섯 가지도 아닌 딱 세 가지!”
담담하게 약속된 ‘형식’을 갖추며 말하다가 불쑥 징징대는 소리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손가락 셋을 들어 올리면서 아주 억울한 표정까지 보태 말하는 투란을 보면서 홀시딘이 눈가를 실룩이며 대답을 한다.
“셋 이상의 시련은 부여하지 않아. 공짜로 부려먹으려고 하는 의뢰가 아니라고! 의뢰랑 비슷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지! 젠장, 아무튼…… 상아탑의 마도사 홀시딘은 시크릿 키퍼로서, 로열 가든의 맹약을 증명하고 완성한다.”
투란의 징징거림에 먼저 답을 해 주면서도 ‘형식’을 갖춘 대답으로 말이 맺어졌다.
곧바로 로열 가든의 풍경 속에 금빛의 아지랑이와 가느다란 실 가닥이 뒤엉키며 피어올랐고, 마도사 홀시딘과 네 남매, 투란 사이를 오가며 넓고 큰 그물처럼 휘감는 바람결처럼 찰랑거렸다. 금빛의 아지랑이는 아련하게 사라졌고, 실 가닥은 넓게 춤을 추다가 홀시딘의 손목과 투란 일행의 손가락 사이에 고리처럼 감기고 살갗 깊이 가라앉듯이 사라졌다.
“아…….”
시알라가 흠칫 놀란 소리를 냈고, 뒤이어 세 형제도 ‘음?’ ‘어, 느껴지네?’ ‘그렇군.’이라면서 이에 호응했다. 투란도 투덜거림을 살짝 치워 놓은 듯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로열 클래스의 징표.”
홀시딘이 자신의 손목을 들어 올려 바라보면서 대꾸한다.
“맞아. 이렇게 되는 거로군. 과연…….”
말로만 듣던 대마법을 바라보는 마법사의 눈에는 흥미로움과 함께 깊은 감탄이 배어 있었다. 이야기가 맺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서로의 의지가 확고하게 확인된 다음에야 맺어지는 약속의 징표…… 은밀하게 전승된 지식 속에서 그토록 대단하다고 칭송하던 까닭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빛의 여린 가닥이 살갗에 파고드는 순간, 또렷하게 서로 간의 약속을 느낄 수 있었고 이제부터 서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또한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르잖는가.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기분까지 느껴진다!
거기에 보태서 비밀을 지키는 자로서 홀시딘은 이제까지 루케인이 함께해 온 여행의 일마저 고스란히 자신의 경험처럼 기억할 수가 있었다. 단순히 지식으로서 남의 경험을 들은 것과는 다른 방식의 기억…… 그러면서도 또렷하게 이 기억이 자신이 아닌 루케인의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기묘함, 상아탑의 마도사로서 홀시딘의 감탄은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이 대마법의 바닥까지 파헤쳐 보고 싶다는 갈망이 슬그머니 마음속에 퍼져 나가지 않는가!
그런데…….
“음, 앞으로 뭘 할지는 정말 의논해서 정하게 되어 있네? 시련은 우리가 정할 수 없지만…… 그러면, 시알라…… 다들 알드바인이 어떤가 살펴보면서 결정하는 게 좋겠지? 일단 이 시련은 나 혼자 맡는 걸로 할게. 가능하면 혼자 해결 볼 테니까, 다들 알드바인이 듣던 거랑 비슷한지 다른지 둘러봐 줘. 아, 약속이 맺어졌으니까 우리 금도 상아탑의 전표로 어느 정도는 환산되는 거죠?”
투란이 잽싸게, 정말 결정된 일이니까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듯이 떠들고 있는 말 중에 몇 마디가 홀시딘의 감격 속을 푹푹 쑤셔 대고 있었다. 이건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
“잠깐, 혼자 맡는다니? 무슨 소리야? 맹약에 따라 맹약을 맺은 사람에게 세 가지 시련의 의무가 부여되는…….”
홀시딘은 바로 투란과 네 남매를 둘러보면서 손을 폈다 접었다 하며 빠르게 소박한 곱셈의 결과를 말한다.
“이 일행이면 모두 열다섯 가지 시련, 의뢰를 받는 거라고!”
곧바로 투란이 손가락 셋을 활짝 펼치면서 홀시딘에게 얼굴을 들이대는 모습으로 대꾸한다!
“우리! 우리랑 맹약을 맺었고, 우리의 비밀을 지켜 주기로 했고, 우리에게 세 가지 시련이 의뢰처럼 주어진다고 했잖아요옷! 그러니까 우리가 그걸 어떻게 처리하든, 처리만 하면 되잖아앗! 뭐가 갑자기 한 사람에 셋이야! 분명히 우리에게 세 가지였는데! 나 혼자 하든 말든! 그건 뭐라고 할 수 없잖아요! 우와, 이것 봐! 내 말이 맞다고 로열 가든의 마법도 가만히 있구먼!”
“어! 어어? 이게 무슨…….”
홀시딘은 당황했다.
하지만 당황한 상황에서도 홀시딘은 마음속으로는 맹렬하게 생각을 굴렸고, 로열 가든의 맹약을 검토하면서 조금 전에 오간 ‘언어’를 재검토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서 투란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너, 너어! 사, 사기를!”
“무슨 사기요? 원래 의뢰라는 거, 파티나 팀 단위로 받기도 하는데! 의뢰 중에 파티나 팀 멤버가 몇 사람이 활동하든, 그건 파티와 팀에서 결정할 일이 맞잖아요! 그 대신 돌아오는 보상도 머릿수대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에게 세 가지 시련을 주겠다고 했고, 우리가 그걸 해 버리면 되는 거잖아요? 당연하구먼!”
“너 이 자식! 마법사를 상대로 한마디 바꿔치기하는 사기를…….”
“아니라니까! 대체 우리 중에 누가 한 명씩 따로 받는 시련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해요! 시알라,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 이 시련이라는 거, 따로 받을 생각했어?”
투란이 바로 휙휙 손을 내저으면서 격분해서 세 가닥 은발이 파르르 떨리면서 빳빳해진 꼴인 마법사 앞에서 맹한 표정을 짓는 네 남매에게 말을 던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자, 이제 어서들 내 편을 들어 봐!’라고 하는 태도잖은가!
하지만 그런 태도와 무관하게 멜란드부터 머리를 긁적이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따로 받을 시련…… 의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형들은? 누나는?”
곧바로 제란드가 대꾸했다.
“나도 그래. 이제 와서 따로 의뢰를 받네 어쩌네 하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는걸.”
페란드도 공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마스터 홀시딘, 정말 따로 내려지는 시련이었나요? 전혀 그런 말씀은 낌새도 없었잖습니까?”
슬쩍 찔러 오는 물음에 홀시딘이 흠칫했다.
로열 가든의 마법은 여전히 유효했고,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상아탑의 마도사 홀시딘에게 분명히 알려 오고 있었다. 즉, 맹약은 제대로 성립된 것이다. 투란의 말에는 잘못된 부분이 없다!
“이게 어떻게…….”
페란드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홀시딘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금빛의 흔적조차 전혀 남지 않은 징표를 마음으로 느끼면서, 상아탑에 전승되어 오는 지식을 빠르게 검토했다.
과연 이런 경우가 있는가?
그 대답은 금세 홀시딘의 기억 너머에서 튀어나왔다.
곧바로 홀시딘은 신음하듯 이 상황의 바탕에 깔려 있는, 자신을 착각하게 했던 것이 일을 뱉어 내고 말았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맺은 적이 없어.”
투란이 귀를 쫑긋하는 시늉과 함께 히힛 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하, 그러니까…… 로열 클래스가 되고 싶다고 와서 파티나 팀으로서 로열 가든에 들어온 사람이 없었다, 이 소리네요? 그래서 마법사님께서 착각을 하신 거군요! 뭐,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맘대로 시련의 수를 늘리거나 하는 거는 안 돼요! 힘들다고!”
막판에 살짝 힘들게 살아왔으니 좀 봐 달라는 듯이 애처로운 척까지 하고 있었지만, 홀시딘은 투란의 눈가가 휘면서 실실 처웃는 꼴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처웃는 꼴의 한구석에서 네 남매가 조금 묘하게 투란을 의심하는 눈길을 보내는 모습도!
‘이 자식! 알고 했어! 로열 가든의 맹약을 아는 만큼, 이게 개인적으로 맺는 경우만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어! 그래서 언약 중에 한마디를 바꾼 거야! 이런 망할!’
홀시딘은 투란을 보며 빠득 이를 가는 소리를 잠깐 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홀시딘은 새삼 깨닫고 있기도 했다.
여럿이 와서 로열 클래스의 자격을 부여받으려 한 적이 없는 까닭은 간단했다.
금전을 대량으로 소모하는 마법, 그냥 이 로열 가든의 풍경을 구경하려는 것만으로도 금전이 괄괄 새는 경우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여럿이 와서 금전을 흩뿌리면서 로열 가든을 열고 로열 클래스가 되겠다는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
설혹 왕가의 후손일지라도, 이 마법에 소모되는 금괴는 가볍게 여길 수가 없다!
흘깃, 홀시딘은 로열 가든의 중심처럼 놓인 몇 톤의 금괴를 바라봤다.
순도 백이십 퍼센티지를 자랑하는 믿을 수 없는 금괴!
로열 가든의 마법을 통해서 루케인이 이렇게 보관해서 넘겨주기는 했는데, 과연 이게 무슨 조약돌 옮기듯이 할 수 있는 일이던가? 루케인이 넘긴 기억을 통해 투란이 이렇게 했다는 것은 알겠지만, 몬스터 로드로서 어떤 몬스터의 몰상식한 능력을 사용한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아하, 수수께끼를 밝혀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미 저 금괴를 흔적도 없이 옮길 수 있다는 것부터 불가사의한 영역에 도달해 있는 셈이었다.
투란은, 이미 금괴를 통해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로열 가든의 대마법에 버금가는 재간을 보인 것이다!
‘이건 거의 대마도사의 마법 주머니를 지녔다는 거잖아!’
덤벙대고 징징대던 모습을 보이다가 한마디를 슬쩍 바꿔치기함으로써 일행이 겪어야 할, 치러야 할 시련의 숫자도 왕창 줄여 놨다!
그 능력에다 이런 잔머리라니!
새삼스럽게 홀시딘은 조금 깊은 눈빛을 머금은 채로 투란을 노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