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1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13)
짜악!
돌연 홀시딘이 두 손을 올려 자신의 두 뺨을 두들겼다.
꽤 큰 소리가 났고, 은근히 발갛게 변한 것이 조금 있으면 부을 듯하다.
“좋아. 이미 저질러진 일에 계속 미련을 둘 필요는 없지!”
그다음에 호탕하게 목소리도 높이는 상아탑의 마도사, 마스터 홀시딘이었지만 투란과 네 남매는 잠시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과감한 행동, 꺼내 놓은 소리는 실로 대담했지만…….
‘미, 미련 둔 표정인데?’
바라보는 사람 모두가 동시에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하고 있잖은가!
특히나 말속에 살짝 이를 뿌득거리며 가는 미묘한 소리도 섞여 있었으니, 이건 정말 미련을 잔뜩 둔 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한 걸음 물러섰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왕창 갚아 버리겠다는 결의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투란도, 네 남매도 홀시딘이 지금 풍겨 내는 분위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았다. 마법사가 이를 바득거리며 갈고 있는데, 그 속내를 짚어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홀시딘은 후욱, 다시 한 번 숨을 세차게 들이쉬어 애써 진정하면서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로열 가든에서 튀어 나가면 곤란해, 투란. 의논해야 할 일이 쌓였다고! 너희 신분을 적당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부터, 숨겨야 할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 루케인과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면, 상아탑에서 황금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잖아? 자, 그러니까…… 그냥 저 금괴를 숨기고 몰래 편안하게 살려고 했던 건가? 아니면 반드시 정체를 감춰야 할 일이 있는 건가? 구체적으로 자신의 과거 중 어느 부분까지 숨겨야 하고, 어느 정도를 드러내도 좋은가…… 기본적으로 세상에 내보낼 시나리오를 정해야 해. 지금 그 기준을 마련해 놓고 하나씩 처리해도 며칠 걸릴 일이라고.”
조금 격한 낌새로 시작되기는 했지만, 어느새 차분하게 한 가지씩 더듬고 짚는 말투로 나오는 설명이었다. 그 때문에 투란은 ‘어?’ 하면서 당장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조금 아쉬워했고, 시알라와 세 형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홀시딘은 모두 동의하는 모습에 편안한 표정을 짓고, 시알라를 향해 묻는다.
“불을 피워 올리면서 하려던 말이 있었지?”
“예, 우리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았으니까요. 루케인은 황금매만 봤고, 그다음에는 이 계약을 자신이 완성할 수 없다고 연기했거든요.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우릴 여기로 데려왔지요.”
다시 살짝 내민 손 위에 불꽃을 띄우면서 시알라가 대답했고, 홀시딘은 그 불꽃이 빙글거리면서 작은 조각으로 나눠졌다가 합쳐졌다 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스터 홀시딘, 이 불꽃이 어떤 마법인가 알아보시겠어요?”
“응? 엘레멘탈 링이잖아? 그 마법은 금색의 마도사에게서 유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꽤 널리 알려져 있지. 상아탑 출신 중에서도 꽤 여럿이 그 마법을 애용하기도 하고, 여러 학파는 물론이고 로그 메이지 중에서도 쓸 줄 아는 녀석이 있을걸.”
홀시딘은 갑자기 물어 온 말에 바로 설명하듯이 대답했다.
투란과 세 형제는 이 대답에 어깨를 살짝 늘어뜨리면서 ‘과연.’ ‘으, 유래.’ ‘역시.’ 하는 소리를 작게 한마디씩 뱉어냈다.
홀시딘이 그런 모습에 눈가를 살짝 꿈틀했지만, 시알라가 다시 묻는 소리가 이어지며 상아탑 마스터의 관심을 끌어낸다.
“이제 어떤가요? 다시 봐주세요.”
“응? 다시?”
홀시딘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시알라의 청을 받아들인 듯이 불꽃이 변화하는 모습에 주의를 기울였고…….
“어…… 어라?”
곧바로 색다른 점을 알아본 듯했다.
시알라가 바로 확인하겠다는 듯이 짚어 묻는다.
“아시겠어요?”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홀시딘의 눈동자가 살짝 푸르스름한 막을 씌운 것처럼 빛났다. 자신이 아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검토하면서 잠깐 더 깊이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이거 설마…… 정령?”
단순히 조각났다 뭉쳤다 하는 것과 다르게, 시알라의 손바닥 위에서 불꽃은 온갖 묘기를 자랑하듯 혹은 재롱이라도 피우는 듯, 회오리처럼 치솟았다가 불 구름이 되어 소용돌이처럼 가라앉다가 하며 그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한데 시알라는 가만히 그 모양을 지켜보면서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홀시딘은 확실히 시알라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이 이 불꽃에 간섭하지 않는 것까지 확인했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었다. 이 불꽃은 지금 자기만의 의지로서 앙탈 부리며 재롱 피우는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이게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엘레멘탈 링으로부터 형성된 불꽃은 철저하게 마법사의 의지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고, 변화한다. 이런 식으로 피워 올렸다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정령처럼 움직이는 모양은…… 그런 고유의 의지가 서린 상태를 보일 리가 없었다.
홀시딘에게는 아주 낯선 광경이었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알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그 묻는 눈길에 대꾸한다.
“로열 가든이잖아. 우리 비밀을 절대로 지켜 줄 마법사님이시고. 괜찮아, 말해 준다고 해서 어디 가서 신기한 거 봤다고 떠들 리도 없는 마법사님이거든!”
미묘하게 ‘딴 데 가서 말하면 나쁜 놈!’이라는 낌새가 서린 듯한 말투라서 홀시딘은 끙 하는 소리부터 냈지만, 고개는 팍팍 끄덕이면서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금 어이없는 낯빛을, 아주 살짝 띠었지만 시알라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듯이 홀시딘이 묻는 말에 대답한다.
“황금매와 함께 우리는 천 가지 정도 되는 방대한 마법 주문을 물려받았어요. 그 대부분은 아마 금색의 마도사가 활동하면서 널려 알려진 경우겠지요, 이 엘레멘탈 링처럼요. 하지만 이건 조금 달라졌어요. 투란에게서 변화시키는 법을 배웠거든요.”
“투란에게서?”
홀시딘이 못 참겠다는 듯이 불쑥 한마디 하고 말았다.
어딜 봐도 마법사로 보이지 않는 녀석일 뿐이잖냐는 듯한 눈길로 살짝 투란을 흘겨보기도 하는 홀시딘이었다. 투란도 당연하다는 듯이 혀를 날름하면서 절대로 난 마법사가 아니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알라가 살짝 눈가에 힘을 주고 투란을 노려봐 준 다음에 다시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로열 가든…… 로열 클래스에 대해서도 우리는 전혀 몰랐어요. 우리가 마법에 대해 아는 거라면, 모두 이 황금매와 함께…… 세란드 오빠에게서 물려받은 게 전부라고 해야겠지요. 하지만 투란은…… 세란드 오빠에게서 우리에게 완성된 황금매의 문장을 전해 주는 역할도 했지만, 다른 것도 많이 알고 있거든요. 엘레멘탈 링의 불꽃에 의지를 불어넣고, 정령처럼 키우는 것도 투란에게 들은 거예요.”
“넌 어디서 그런 걸 들었지?”
홀시딘은 곧바로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거침없이, 돌려 묻는 것도 머뭇거리는 것도 없는 모습인 채!
투란은 너무 당당한 홀시딘을 보며 ‘쳇.’ 하는 소리부터 냈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대답은 한다.
“로열 클래스에 대해 얘기해 준 사람이 불꽃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았거든요.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음, 내가 지켜야 할 비밀이니까 더 말해 줄 수 없어요.”
“로열 클래스에 대해서 알고, 마법의 불꽃을 정령화하는 것도 할 줄 아는 사람?”
홀시딘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하지만 잠깐 그 찌푸린 인상으로 아는 바를 모두 더듬었어도 모르겠다는 듯, 홀시딘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짐작도 안 가는군. 어차피 비밀이라면…… 그렇다 치고. 엘레멘탈 링은 사대 속성을 모두 발휘하는 마법이야. 거기서 피워 낸 불꽃으로 이럴 수 있다는 건…… 설마?”
돌연 떠오른 생각을 부정하듯 홀시딘이 시알라를 바라봤고, 그 소리 없는 물음에 시알라는 곧 다른 한 손을 펼쳐 올렸다. 곧바로 말 없는 대답이 시알라의 손 위에서 춤을 추며 나타났다.
서리가 손 위에서 엉키기 시작했고, 파삭거리면서 맴도는 고리가 되어 둥실거리며 시알라의 손 위에 떠올랐다. 다른 한 손의 불꽃과 겨루는 듯, 그 고리 모양이 오그라들었다 펼쳐졌다 하고 기우뚱거리면서!
“허? 그럼, 흙과 바람도……?”
홀시딘이 어이없다는 듯이 시알라의 두 손을 오가는 눈길을 던지다가 물었다. 말끝에 살짝 투란을 흘겨봤고 ‘뭐가 불꽃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야! 정령에 대해 아주 잘 아는 마법사구먼!’이라는 소리도 낮게 쏟아 내는데…….
“짐작하시는 대로예요. 네 가지…… 사대 속성의 형질을 이끌어 내서 정령과 같은 성질과 형태를 갖게 하는 할 수 있었어요. 엘레멘탈 링을 기반으로 한 마법에서 출발해서, 전혀 색다른 형태를 자아낸 셈이죠. 마스터 홀시딘, 우린 황금매와 함께 건네온 주문을…… 그중에서 우리가 자주 잘 쓰는 마법을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변화시키고 수정했어요. 왜냐하면…… 언제 다시 우리가 황금매를 각인한 마법사와 다시 만나 싸워야 할지 모르니까요.”
시알라가 차분하게 가다듬은 목소리로 말했고, 시범으로 보이던 불꽃과 서리의 형상을 지웠다.
홀시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깊이 생각에 잠긴 듯한 상아탑의 마도사를 투란과 네 남매는 잠시 지켜봤다.
금방 생각이 정리된 듯, 혹은 기억해 낸 듯이 홀시딘이 다시 말문을 연다.
“루케인에게 했던 이야기의 연장이로군. 그러니까 자네들에게 새겨진 황금매를 쫓아 또다시 금색의 마도사가…… 그 이상한 마법사가 찾아올 경우에 대비해서 과거를 감추고 정보를 은폐해서 신변을 보호한다, 그러려고 로열 클래스가 돼야 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싸워야 할 때를 대비해서 전혀 다른 능력도 익혀야 하고 말이야…… 그런 이야기지?”
시알라가 바로 대답한다.
“예. 그리고…… 살아야 하니까요. 사람답게…….”
이 소리에 홀시딘은 조금 쓴웃음부터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그런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 거로군. 황금매에 대해서도, 그걸 쫓고 있을지 모를 정체가 이상한 마법사에 대해서도…… 지금 지닌 능력에 대해서도, 저 황금에 대해서도…… 과연 이건 정말 로열 클래스 정도는 돼야 제대로 감춰 둘 수 있겠군. 하아…….”
하나씩 짚으면서 정리해 가는 듯한 말은 결국 한숨으로 매듭지어졌다.
곧이어 홀시딘은 다시 침묵에 빠지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고, 투란과 네 남매는 입을 다문 채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생각에 빠져든 마법사를 괜히 건드리는 것 아니라는 듯!
이번에는 조금 침묵이 길었고, 투란과 세 형제가 슬그머니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그 지루함을 표현할 정도가 되었을 때야 홀시딘의 입이 다시 열리고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루케인이 몇 가지 짜 놓은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대책도 갖춘 거였어. 자네들을 여기로 끌고 오는 과정까지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시나리오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는 편이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무난하겠지. 하지만 그 전에……확실히 해둘 부분이 있군. 시알라,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했지? 투란, 넌 로열 가든의 시련을 혼자 감당하겠다고 했고…… 어쨌든 이런저런 상황을 모두 뭉뚱그려서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투란, 앞으로 뭘 할 거지? 시알라, 어떻게 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자네들 모두, 그걸 분명히 해야 할 거야.”
투란은 시알라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든 먼저 말하라는 몸짓이었고, 시알라는 잠시 아련해진 기분으로 천천히 입을 열어야 했다.
“저는…… 나는 여관을 경영하고 싶었어요. 여관 주인, 아마 그게 내가 아는 가장 사람답게 사는 사람일 거예요. 물론 동생들은 조금씩 다르지만요.”
“어떻게 다른가? 모두 이야기해 봐.”
홀시딘은 세 형제를 향해서 재촉했다.
제란드와 멜란드가 페란드를 바라봤다.
누나 다음부터, 차례대로 말하자는 듯한 그 눈빛에 페란드가 입을 연다.
“저는 대장장이가 되고 싶었지요. 쇠를 다루는…… 망치질을 하면서 땀 흘리며 화로를 지키고 온갖 도구를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어 제란드가 짧게 말한다.
“난 사냥꾼.”
다른 설명은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제란드의 입은 닫혔고, 멜란드를 향해 ‘네 차례.’라는 듯한 턱짓이 이어졌다. 멜란드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조금 망설이다가 누나와 형들의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였다.
“에…… 난, 몬스터 로드. 아니, 위험한 모험을 즐기고 싶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고! 난 그냥 세란드 형처럼 되고 싶었다니까! 그뿐이라고!”
입을 열자마자 누나와 형들이 날카롭게 쏘아 보내는 눈빛에 곧바로 멜란드의 입에서는 변명하듯이 보태는 말이 쏟아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변명이 통한 듯,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뭐라 구박하는 소리는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네 남매의 다음이라는 듯, 홀시딘이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팔짱부터 끼면서…….
“맛있는 거 잔뜩 먹고, 비바람 막아 주는 튼튼한 지붕이랑 벽이 있는 집에서 뒹굴면서 편안히 사는 것!”
당당하게 큰소리를 냈다.
상아탑의 마도사, 마스터 홀시딘의 눈꼬리가 바로 바싹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