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2)
토톡!
물방울은 튀어서 흩어졌고, 제멋대로 흘러갈 뿐이었다.
일단 세상으로 뛰쳐나갔으니 그다음부터는 각자 따로 살아 보자 하는 꼴이었다. 낳아 준 은혜 따위는 괴물이니까 당연히 제낀다는 듯, 투란을 향해 비웃는 듯한 물방울 소리가 발아래에서 요란했다.
그 덕분에 투란의 발등과 발바닥에서 넓게 펼쳐진 실그물이 재빠르게 떨어져 내린 물방울을 다시 잡아채서 몸속으로 흡수했지만, 손목이 슬그머니 늘어지면서 뼈 없는 꼴이 뭔가 보여 주는 상황이었다.
손목에 걸어 놓은 실, 샤벨투스와 이어진 실 가닥이 넝쿨과는 다른 종류인 것을 제대로 느껴지기도 했다. 뼈와 피, 살점이 녹아 물방울이 되어 빈자리에 겨우 손목 뼈대를 대신하는 덩굴줄기가 굵게 꼬이며 자리 잡았다. 샤벨투스를 잇는 실 가닥은 그 넝쿨을 모아 묶는 꼴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투란은 속이 훤히 보이는 이 팔뚝의 상황을 빨리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고, 이 마음에 호응한 듯이 살갗이 다시 덮이고 핏줄이 다시 자리 잡았다.
푸슛!
그러던 어느 순간, 샤벨투스의 이빨이 피를 머금고 손아귀를 찢으며 튀어나왔다.
“꾸에!”
억눌려 잠긴 듯한 목소리가 저절로 투란의 입에서 나왔다.
너무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놀란 것이다.
이렇게 놀란 탓에 오른손을 덮어 잡고 있던 왼손을 화들짝 떼니, 뼈대 없는 손목이 바로 푹 처지면서 그 끝에 달린 손이 아래로 늘어져 대롱거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거기서 튀어나와 흔들거리는 샤벨투스의 이빨은 피를 얼마나 처먹었는지 꽤 큰 단도의 형상으로 흔들거리며 닿는 투란의 살갗을 쿡쿡 찌르고 베었다.
엉망진창이었다.
투란의 골수 깊이 이 사태에 대한 당혹, 분노, 실망이 뒤엉긴 채로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정신 좀 차려!’
가슴속에서 차분하게, 투란 자신을 향한 냉정한 외침이 피어올랐다.
그 냉정함 속에 먼저 투란의 눈길은 왼손을 향했다.
갑작스럽게 피를 머금고 튀어나온 샤벨투스의 이빨에 베이기는 했지만, 그 자리는 이미 악마의 심장이 촘촘하게 뿜어낸 넝쿨 실그물로 채워져 상처 난 흔적까지 지워지는 중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대체 뭔가?
보다 냉철하게 투란의 눈동자가 오른손을 향했고, 악마의 심장이 부여하는 감각이 손목과 손을 정교하게 훑는다.
‘아, 이런!’
투란은 자기 입술을 살짝 깨물며 분한 기분을 누르고, 좀 더 침착하라고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샤벨투스의 이빨이 피를 머금은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물방울이 되어 흘러나와 버린 자리를 채우기 위해, 투란의 급한 마음에 호응해서 자란 덩굴줄기가 핏줄로 변해 갔고, 그 탓에 샤벨투스의 이빨 속으로 이어진 미세한 넝쿨마저 피를 머금으면서 잠시 핏줄 형태가 된 탓이다.
뭔가 급히 손을 움직이려다가 옆에 놓인 물건을 건드려 밀쳐 버린 듯한 그런 경우였다. 투란의 급한 마음이 제대로 변이를 제어하지 못해 벌어진 상황이었다.
“몬스터 로드라면 언제나 냉정하게 자신을 주시하란 말이 있지!”
거들먹거리고 뻐겨대는 뜨내기 몬스터 로드들이 아는 척하면서 종종 꺼내던 소리였다. 그 소리가 새삼스럽게 지금의 투란에게 깊이 다가온다.
조금만 더 냉정하게 생각을 했다면, 팔뚝을 통째로 물방울 괴물로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위의 살점, 살갗에 집중해서 상태를 봤을 수도 있는데 멍청하게 뼛속까지 변하게 해서 이 난리라니!
‘한심하다!’
투란은 자신을 향해 이렇게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봐도 대롱거리는 오른손, 뼈를 대신한 넝쿨로 인해 떨어져 나가지 않았지만 축 늘어져 흔들대는 꼴이 변명할 여지가 없이 한심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투란의 마음이 차갑게 현재 상황을 더듬기 시작했다.
우선 주변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이 자리에 투명하고 작은 돌이 자리 잡으면서 이 주변을 싹 쓸어 내 버린 듯한 분위기가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그 바람에 먹을 것도, 새로 구할 양분이 될 뭣도 없다!
‘물은……?’
저 멀리 흘러가려고 통통 튀며 조금 멀어진 물결이 보였다.
아무래도 일단 작은 돌에서 뿜어져 나오면 제멋대로 돼 버리는 탓일까?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적절한 양분을 챙기면 팔을 다시 키울 수 있는 것을 되새겨 봤다. 지금 당장 팔을 다시 키울 수는 없는 것만 분명해졌다. 그렇다고 이렇게 축 늘어져 대롱대는 꼴로 다닐까!
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투란은 생각했다.
‘넝쿨을 뼈로 바꾸는 게 될까?’
뼈를 대신해서 늘어진 손목을 채우고 손이 떨어져 나가게 붙잡고 있었다. 원래는 살갗, 핏줄, 힘줄을 이루고 있던 덩굴줄기였다. 이것을 본래대로 되돌리면 물이 되어 흘러 나간 팔뚝 뼈 자리만 비는 것이 아닌가?
몬스터 로드의 신체변이는 늘 제자리를 찾게 되어 있다고, 투란은 그렇게 들었다. 그리고 그런 변이능력, 변신을 하기 때문에 일단 사람의 몸에서 변형될 수 있는 몬스터의 형체라면 팔다리나 몸의 한 부분부터 변한다고 했다.
그런 탓에 새처럼 생긴 몬스터의 날개를 얻었다고 등짝에 날개가 돋지 않는다고 했다. 새에게는 팔이 없고 사람의 팔에 해당되는 것이 날개이므로, 팔이 날개로 변할 뿐이라 했다.
그러니까 팔다리 놔두고 날개가 돋은 형상을 원한다면, 그리핀처럼 네 발 다 갖춘 상태에서 날개가 따로 돋는 몬스터를 먼저 사냥해서 삼켜야 한다 했다. 그러면 사람에게 없는 날개 부위를 만들기 위해서 ‘생성’에 의한 변이가 이뤄진다고, 쉽게 말해 팔다리 놔둔 채로 날개가 돋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일단 날개를 생성할 수 있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그 생성되는 날개를 기반으로 해서 다른 몬스터의 날개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는, 나름대로 중요한 이야기였다.
‘어?’
투란의 머릿속에 희미한 생각이 스쳐 갔다.
이 순간에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은 듯한 생각이란 느낌, 투란은 그 생각을 잡기 위해 애써야 했다. 보통은 이런 생각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며 대체 그게 뭐였든가 낑낑대게 하지만, 돌연 심장이 두어 번 울렸고 머리 한구석이 시원하면서 차가워진 느낌과 함께 그 희미함이 사라지고 생각이 뚜렷해졌다.
마치 악마의 심장이 그 생각을 함께해 준 듯!
하지만 지금 투란에게는 그 생각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날개, 없는 것은 안 되지만 있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고…… 그래, 그렇게 될지도 몰라!’
투란은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오른쪽 손목, 팔뚝에 필요한 것은 일단 뼈대였다.
하지만 그 뼈대를 이루기 위한 단단함이 넝쿨에는 없다.
넝쿨을 단단하게 한다면, 이를 뼈대로 되돌리는 것이 더 쉬울 수 있잖을까? 없던 성질을 부여함으로써, 생성된 날개처럼 없는 자리에 채워 넣을 수 있잖을까?
“망할 새끼가 그리핀을 처먹었어! 앞다리를 뜯어 놨더니, 팔 병신이 안 되려고 날개를 팔로 바꾸더라고! 아, 그럴 줄 몰랐는데…… 어? 잠깐 이거 비전인가!”
술에 취해 떠들던 몬스터 헌터의 이야기였다.
그리핀의 몬스터 로드와 무슨 사연인지 서로 죽이려고 싸우다가 겪은 일이라면서, 결국 그때 자신이 본 것을 다른 몬스터 로드에게 지껄이며 술 몇 병을 뜯어 마셨다.
애들이 오락가락하는 길바닥에서 술병 깔고 파는 샤오콴 마을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던 애였던 투란도 그 술주정 부리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지나가던 몬스터 로드 중에서도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술 한 병의 값은 있다고 했다.
“팔을 대신하는 여러 개의 촉수를 가진 몬스터의 경우에는 그게 되는 거 확실해. 하지만 날개가 따로 돋는 경우에도 되는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새로운 발상이라고 느껴지니까, 그래 술 한 병 값은 내주지. 야, 두 병은 안 된다!”
어린 투란에게는 그저 희한하고 이상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투란에게 그 이야기 속에 담긴 발상은 꽤나 중요했다.
‘돌, 단단함은 뼈대로…… 돌이라는 형상은 몸의 어디에서든 변이가 되니까…… 그 돌로부터 바로 뼈를 이루는 것도…… 어쩌면…….’
약간 터무니없다는 느낌도 물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축 늘어진 손목을 보니 도전할 만한 일이잖은가!
어차피 새로 손목의 뼈를 키울 상황이라면 해 볼 만도 했다.
성공하면 애써 팔뚝 뼈를 새로 키울 필요가 없고, 실패하면 어차피 키울 것이니 뭐 어떤가!
슬그머니 낙천적인 생각을 덧붙이면서 투란은 문장 속의 돌에 집중했다.
눈으로 내려다보이는 늘어진 손목, 그 안에 뼈를 대신하는 덩굴줄기 위로 돌을 덧씌우는 심상이 이뤄졌다.
부르르.
팔이 떨렸다.
손과 어깨도 덩달아 떨렸다.
손과 팔꿈치 사이로 듬직한 돌막대가 자리 잡은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과 함께 투란은 부들부들 온몸을 떨고 있었다.
팔뼈 자리를 차지했지만 모양이나 구조가 어디를 봐도 그냥 막대기인 돌덩이가 이해할 수 없는 힘을 뿜어내며 투란을 쥐고 흔드는 진동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팔의 살갗, 새로 넝쿨이 열심히 짜 둔 실그물에 구멍을 내는 가는 물줄기가 튀어나왔다. 팔을 휘감아 가는 폭포처럼 터져 나올 듯한 낌새로 돌출되는 물줄기를 보는 순간, 투란은 깨달았다.
‘아, 또 실수를!’
그 작고 투명했던 돌은 물결을 뿜어내며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뭐든 삼켜서 희석시키듯이 말려 버리는 물결을 뿜어내는 것, 그게 바로 투란이 삼킨 작은 돌이 아니던가! 오롯하게 자신만을 보호하려 드는 물결을 일으키는 돌이잖은가!
팔뚝 뼈를 대신해 거기 박혀 드는 순간, 그 본성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대로라면 피를 말리고, 살점을 담구고 녹여 흩어 버릴 것이다.
고무쇠를 가죽만 남긴 것처럼.
‘한 몸이야, 한 몸!’
순간 피어난 투란의 의지가 그대로 돌막대 뼈대를 향해 뿜어졌다.
동시에 투란은 냉정하게 생각한 바를 덧붙이며 의지를 강화했다.
‘튀고 흩어지는 물결은 안 돼!’
그 때문에 팔뚝이 흐느적거리며 덜렁대는 손목 꼴이 났다.
다스릴 수 있는 부분이라면 바로 다스려야 했다.
막대처럼 뭉툭하니 자리 잡은 돌 뼈, 도저히 작은 바위 위에 놓여 있던 투명하고 작은 돌과는 모양이 같다 할 수 없는 돌 뼈는 제대로 투란의 의지에 호응했다.
먼저 뼛속으로 돌의 힘이 스며들었고, 그 힘은 뼈를 통해 투란의 살과 피를 투과하며 흘렀다.
‘으와, 무거!’
둔하고 무겁게, 꽉꽉 채우며 흔들림 없는 힘이었다.
이 느낌을 투란은 금세 기억했다.
작은 돌이 가슴팍에 닿는 순간, 투란을 엎어지게 했던 그 무거움이잖은가!
그 무거운 힘이 투란의 온몸을, 머리카락 끝에서 발끝까지 싹 덮는 순간부터 투란은 촉촉함과 함께 거세게 살갗을 비비적대며 맴도는 물결을 느낄 수 있었다. 팔뚝 안에서 살갗을 뚫고 나오던 물줄기도 이 새로운 물결에 합류했다.
보글보글.
잠깐 뒤에 투란은 자신이 웬 물로 된 물통 속에 담가진 채로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아니, 이게 대체…….’
숨을 쉬지 못해 곤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악마의 심장은 이미 물속에서 투란이 끄떡없이 버틸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도대체 왜 자신의 팔뚝 속에 자리 잡은 돌 뼈 때문에 물에 잠긴 꼴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곤란하지 않지만, 이 돌이 물결 대신에 불길이라도 뿜는 놈이었다면 어쩔 뻔했는가!
‘또 실수인가.’
부주의한 자신을 느끼면서 투란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보글보글.
코와 입에서 새 나간 거품이 물결 속에서 사그라지는 것이 보였다.
‘야, 어떻게 제대로 숨 쉴 틈이라도 좀…….’
투란은 다시 의지를 휘둘러서 물결을 직접 움직여 보려 했다.
‘음…….’
아무 느낌도 없다.
팔 속이 돌 뼈는 여전히 뭉쳐서 흩어지지 않는 물결을 토해 내는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토해 낸 물결은 그 힘과 무관했다. 그저 처음에 담긴 의지를 따르듯, 흩어져 흐르지 않는 채로 돌 뼈를 중심으로 삼아 투란을 휘감고 지켰다.
‘아!’
갑작스럽게 투란은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희미했던 몬스터의 정수, 고무쇠를 말려 죽인 물방울의 이상한 성질.
그 물방울의 흐름, 물살을 따라와서 발견한 작은 돌.
지금 투란의 팔뚝에서 단단한 막대기 같은 꼴로 돌 뼈가 된 녀석은 한번 토해 낸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고 단절된 관계였다.
삼켜진 물방울과 투명한 돌, 투란의 문장 속에서 둘은 완전히 분리된 채였다.
그 의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