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2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19)
상아탑의 마도사, 마스터 홀시딘은 입을 다문 채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할라트보다 더한 놈 아냐?’
이런 의심을 가득 품은 채로!
조금 전에 투란이 격정을 드러내면서 보였던 그 ‘힘’의 압도적(壓倒的)인 자극(刺戟), 마도사로서 지닌 홀시진의 직감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새겨지는 위협이었다. 아무리 악의(惡意)가 없다고 해도, 아무리 주변을 배려한다 해도……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본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세상을 뒤틀어 버릴 듯한 ‘힘’이잖은가!
재앙의 왕자라고 불리던 할라트는 본인의 의지가 강력했고, 자신의 힘을 적극적으로 발휘했다.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자에게 거침없이 힘을 사용했고, 날뛰었던 것이 바로 할라트…… 그래서 재앙을 불렀고, 그 때문에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투란은 그냥 그 품고 있는 ‘힘’만으로도, 그 ‘힘’을 느낀 것만으로도 상위 마도사의 정신(精神)과 감각(感覺)에 압도적인 위협을 새겨 넣고 말았다.
상아탑의 마도사에게 전승된 기록, 그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기록을 통해 겪은 할라트의 힘도 조금 전에 투란이 무심결에 드러낸 격정 속에 담겨 있던 ‘힘’만큼 홀시딘을 자극하지 못했다. 단순히 위협의 수준으로만 따진다면, 홀시딘에게는 할라트보다 투란이 더 재앙(災殃)에 가까운 존재인 셈이었다.
‘할라트의 능력은 대부분 정신과 심리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지? 몬스터의 능력으로 인간을, 나라를 상대할 작정을 하고 그런 식으로 끌어모았잖아? 하지만 이 녀석 투란은 순수하게 강해. 인간만을 상대로 할 의도로 끌어모은 능력과는 완연히 달라. 확실히 느낄 수 있어.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깊어지는 생각 속에 홀시딘은 자신을 향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투란이 당장 무슨 사고를 쳤는가?
‘망할, 기회론의 예증 실험을 내가 해야 하는 거야!’
오래된 이론까지 떠올리면서, 그 때문에 억지로 한숨을 삼키면서 홀시딘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아탑에 전승되어 온 수많은 학문, 지식, 전승 중에 있는 기회론.
그 시작은 간단했다. 열 장의 카드를 놓고, 그 안에 여러 가지를 적어 놓는다. 그리고 그중 한 장을 뽑아서 거기 쓰인 그대로 실현이 된다면…… 그 속에 자살이라든가, 자해라든가 하는 위험한 것도 쓰여 있지만 자신의 소원을 이뤄질 내용도 함께할 경우라면 과연 그 위험을 감수하고 카드를 뽑아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가지를 치고 갈래를 만들면서 가능성이란 실현된 것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아닌가를 놓고 끝없는 논쟁을 일으키게 한 기회론의 시작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육면체 주사위 한 면에 불행이라고 적혀 있고, 나머지 다섯 면이 행운이라면 이 주사위를 굴려서 그대로 실현될 경우에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등등…….
그런 기회론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홀시딘은 앞으로 투란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놓고 도박을 해야 할 판이었다. 과연 할라트처럼 재앙을 일으키며 세상을 휘저을 것인가, 혹은 그 강력한 몬스터 로드로서 할라트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자가 될 것인가?
홀시딘이 고를 카드는 대체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
투란이란 주사위는 재앙과 불행, 축복과 행운의 어떤 면을 골라 보여 줄 것인가?
찌릿.
점차 깊어지고 복잡해지려는 홀시딘의 생각이 멈췄다.
팔뚝에 감긴 형상을 갖춘 로열 가든의 징표가 자극한 때문이었다.
‘시크릿 키퍼.’
홀시딘은 새삼 자신의 입장을 느꼈고, 깨달았다.
냉정하게 짚어 보면, 투란은 할라트가 아니었다.
할라트처럼 상아탑을 향해 자신을 따르라고 협박하고, 그 협박을 실현한 재앙의 왕자가 아니었다. 할라트가 과거에 저질렀던 어떤 짓에도 투란은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 그저 황금매를 품고 나타났을 뿐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자신을 감춰 달라고 맹약을 요구했다.
투란은 상아탑에 전혀 다른 새로운 기회로서 다가왔다!
‘맹약이 주는 지혜인가.’
홀시딘은 자신이 느꼈던 위협, 그래서 생겨난 갈등을 다독이듯이 생각의 방향을 뒤틀고 바라보는 관점을 뒤바꿔 주는 마법을 느끼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그저 돌아보지 않던 곳을 향해 갑자기 눈길을 돌리게 해 줬을 뿐인데, 그 깊어져 가던 생각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다니!
관점에 따라 사물은 완전히 다른 성질로 보일 수 있다는 흔한 말을 마음 깊이 실감하게 해 주고 있잖은가.
그리고 투란이 거기에 보태듯이 왁왁 해 대려는 낌새로 떠드는 소리가 홀시딘의 귓가에 닿고 있으니…….
“없죠? 문제없잖아요?”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디다 파묻어 없애 버릴 듯하잖나!
“없어, 그렇지만…… 조금 따져 볼 일이 있었을 뿐이야. 감춰 주려고 해도 결국 너 자신도 자신의 신분에 대해 모른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루케인이 이미 말했던 것처럼, 감추려고 하다가 잘못해서 오히려 너도 모르는 네 비밀을 홀랑 까고 다니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조금 전에 자신의 뇌리에 오간 온갖 생각을 밀어내듯, 홀시딘은 재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투란이 두 손을 파닥대면서, 어느새 샤벨투스의 이빨은 다시 거둬 감춘 채로 빈손을 꼬물거리고 흔들어 대면서 말한다.
“에이! 그게 뭔 문제예요? 그냥 흔한 걸로 하면 되잖아요! 어딜 가든 있는 투란이란 이름처럼, 복잡한 과거 같은 거 없이 그냥 그렇고 그런 얘기로 대강 꾸며 놓고 여기저기 떠도는 정도로 해 두면 되잖아요! 누가 그런 떠돌이의 일을 캐묻고 다니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떨떠름하게 홀시딘은 대꾸해야 했다.
정말로 흔한 떠돌이 몬스터 헌터 정도로 꾸며 놓으면 굳이 그 과거를 캐묻고 따지려는 작자가 없기는 했다. 자기한테는 아주 중요한 지난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누군가 이미 겪은 일을 자기가 겪었다고 으스대는 소리가 되기 쉬우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네 능력을 온전히 발휘해서는 안 된다고. 그건 알고 있겠지? 괜히 격이 다른 힘을 보인다거나…… 노는 수준이 완전히 다른 꼴을 보이면 누가 봐도 캐묻고 다니지 않을 수 없는 놈이 될 테니까.”
경고 또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홀시딘은 말 꺼내 놓자마자 곧바로 ‘아, 이 녀석 그러고 다니는 중이었잖아?’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뭔가 말을 해 놓고 나니 졸졸 꽁무니만 쫓는 듯해서 기분이 슬슬 가라앉은 듯하다. 그 때문에 이건 어떻게 봐도 괜한 잔소리를 하는 듯해서 언짢은 반응을 바로 부를 듯하잖나!
그런데 투란이 히죽 웃는 괴상한 반응을 보인다?
“에이, 그런 거야…… 당연히 알아서 덮어 줘야죠!”
“응? 덮어?”
“로열 클래스잖아요. 조금 이상한 소문이 돌거나 하면 그게 딴 사람 이야기인 것처럼 꾸며서 감춰 준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로열 클래스가 되면 이상한 일에 휘말려 꼬이는 경우도 잘 빠져나갈 수 있다면서요!”
“누구냐! 대체 누가 그딴 소리를…….”
탱탱하게 눈가로 혈압이 치솟는 것을 느낀 홀시딘이 울컥해서 소리치고 말았다.
역시나 투란에게 로열 가든에 대해서, 로열 클래스에 대해서 떠든 놈이 누군가 한번 만나서 따져 보고 싶어지잖는가! 어떻게 감히 상아탑의 대마법을 무슨 사고 친 말썽꾸러기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하찮은 요술처럼 떠들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투란 이놈, 가만 보니 큰 사고는 칠 마음이 없더라도 자잘한 사고는 계속 칠 계획이라도 짜 놓기라도 한 것처럼 떠든다!
발끈한 홀시딘은 두어 마디 더 외치려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에 입술을 꽉 깨물기부터 해야 했다.
‘반역의 패왕! 망할 에테온 임금님이잖아, 이딴 소리 했던 거는! 로열 클래스이면서 나불거리고 다니면서 뒤처리는 상아탑이 알아서 해 줄 거라고 떠드는 바람에 애들이 그게 뭐냐고 묻게 한 원흉!’
원래 로열 가든의 맹약은 철저하고 은밀한 일이었다.
로열 클래스가 된 자도, 그 비밀을 지키는 마법사도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입에 담지 않은 채로 맹약을 수행한다!
하지만 반역왕이라고 일컬어진 키드릭은 로열 클래스의 자격을 획득하고는 자신의 과거 행적을 공공연하게 지우려 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였다. ‘나에게 비밀이 있는데, 이제부터 그 비밀을 지우련다.’라고 잔뜩 소문내고 지워 달라고 상아탑을 들쑤셔 댔으니!
덕분에 반역의 패왕 키드릭을 맡았던 시크릿 키퍼가 누군지 아무도 몰랐지만, 다들 불쌍히 여기면서 키드릭의 일을 거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너무 유명한 탓에 뭔가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일이 잔뜩이라서 헛수고가 아닌가 하는 말이 먼저 돌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게 효과가 크긴 컸지.’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 그 일의 영향력을 면밀히 분석한 마법사들의 결론은 그 당시에 그 일을 겪어야 했던 마법사들과 완전히 다르게 내려졌다.
워낙 크게, 대놓고 그런 일을 저질러 놓으니 온갖 소문이 돌았고 그 때문에 키드릭의 행적이란 것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군가 지어낸 헛소문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뭔가 직접 그 소문의 한복판에서 휩쓸린 마법사들로서는 억울하고 짜증 나는 일이었겠지만, 지나고 난 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키드릭이 원한 대로 일이 척척 흘러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지금 나도는 반역왕, 괴물 왕자 이야기는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채였다. 더불어 괴물왕이라 일컬어진 구엔까지 섞이고 꼬인 이야기까지 전부 엉망진창이 된 채라 에테온 왕가에 대한 소문은 누가 들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흘려 넘기는 지경이 되었다. 그야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선택해서 들으면 되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방금 투란이 말한 것처럼, 잘 꾸며진 채로 진실은 덮어졌다!
심지어 오로지 진실에만 헌신(獻身)한다는 트루세이어조차도 그 진실을 입 밖에 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지 않던가.
“진실을 말하면 미친놈 취급 받을 테지만, 적당히 꾸며서 말하면 상식이 넘쳐나는 훌륭한 사람으로 대접받을 이야기. 그게 반역왕의 진실이니까, 닥치고 있는 게 좋지. 트루세이어라도 가끔은 침묵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진실이라고나 할까?”
공공연하게 에테온을 오가는 트루세이어 입에서 이딴 소리가 나올 정도가 되었으니, 반역의 패왕에 대한 이야기에서 진실을 찾는 마법사는 상아탑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신 ‘그 못된 마왕!’이라면서 치를 떨게 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잠깐 홀시딘이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문 사이, 투란의 징징대는 목소리는 쉬지 않고 있었다.
“덮어 줘요! 크게 사고 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냥 소소한 거라면 뭔가 시비가 붙어서 말썽이 날 수도 있지만, 절대로 큰 사고는 안 친다니까요! 한번 믿어 보라고요! 아, 원래 덮어 주는 거 맞잖아요? 로열 클래스니까, 사실은 내가 할라트인가 뭔가였다고 해도 덮어…… 어? 가만? 로열 가든의 맹약이 맺어졌으니까, 내가 진짜 그 할라트인가 뭔가였다고 해도 알아서 숨겨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와아! 그런데 어떻게 할 것처럼……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진짜 할라트였다면?”
앵앵거리는 듯한 말은 어느새 조금 진지하고 심각하게 묻는 소리로 변해 있었다. 그나마 떼쟁이 애 같은 소리를 더 내지 않아 줘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홀시딘이었지만, 그 마지막 물음에는 슬쩍 눈길을 돌려야 했다.
투란은 눈을 껌벅대면서 돌아간 홀시딘의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대면서, 두 눈을 마주치는 각을 잡으면서 다시 묻는다.
“진짜 할라트였으면, 로열 가든의 맹약이 맺어졌든 말았든 어떻게 할 거였어요?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예요?”
홀시딘은 슬슬 눈알을 굴리면서 조금 어정쩡하니 대꾸한다.
“보호했겠지.”
“보호? 잠깐, 홀시딘! 마법사님? 지금 앞에 뭔가 잘라먹고 말하는 거 같은데? 제대로 말해 줘요!”
“격리…… 할라트에게는 세상이 위험하다고. 그러니까 격리해서 보호를…… 어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슬그머니 숨기려던 한마디를 토해 내면서 홀시딘은 말을 흐리는 헛기침을 했다. 투란은 그런 홀시딘을 보면서 들은 말을 정리라도 하는 듯이 되뇌었다.
“격리? 보호? 격리 보호? 그게 무슨……?”
―가둬 둔단 소리잖아. 세상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감금(監禁)해 버린다고.
혀를 차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소리가 투란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곧바로 그 소리는 투란의 입으로 나온다.
“감금? 그거 설마…… 잡아 가둔다고요!”
“가두는 게 아니야! 로열 가든 속에서 편안히 살게 해 주는 거지! 세상에 내놓았다가 정체가 들통나서 험한 꼴 당하지 않게, 세상으로부터 격리해서 친절하게 남은 생을 무사히 보내도록 보호해 준다는 거라고!”
돌연 당당하게, 심하게 뻔뻔한 태도로 홀시딘이 먼 곳을 올려다보는 듯한 자세로 외치고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투란은 저절로 튀어 나가는 소리를 멈출 수가 없잖은가.
“아니, 그 무슨…… 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