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2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20)
“어허! 위험을 피해서 고독을 견뎌야 하는 시련을 주는 것뿐이라고!”
홀시딘이 아예 배짱을 튕기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딴 데 못 가게 잡아 가둬 놓는 게 뭔 시련이야, 시련은! 마법사랑 엮이면 좋은 일 없다더니…….”
투란은 바로 반박을 했고, 질 수 없다는 듯한 홀시딘의 대꾸가 이어졌다.
“좋은 일이지! 할라트처럼 위험한 종자가 로열 가든에서 혼자 자기 좋을 대로 하면서 사는 건데, 세상에도 좋고 자기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좋긴 뭐가 좋아! 그렇게 아무 데도 못 가게 가둬 놓으면, 금덩이가 있어도 무슨 소용이냐고!”
“보기만 해도 즐겁잖아? 닳지도 않고 써서 줄어들 일도 없는 금덩이 사이에서 편히 사는 건데? 아, 필요한 거라면 로열 가든으로 시크릿 키퍼가 전부 사다 준다니까? 그런 경우에는 금이 좀 줄어들려나?”
“우와아! 치사하잖아요옷! 자기가 못 쓰고 남이 쓰는 꼴만 봐야 한다니!”
“그 또한 시련이라 할 수 있잖겠나? 흐흠, 할라트는 아니더라도 할라트처럼 재앙을 일으키고 싶은가, 투란?”
“우워어! 누명 씌우지 마요! 헛소리하지 마요! 그런 게 뭔 시련이야! 감금이잖아, 감금! 로열 가든이 감옥이라니! 누가 그딴 맹약을 맺는다고!”
“그거 안됐군, 자네는 이미 맹약을 맺었잖나! 투란, 이 맹약은 파기되지 않는다네. 그러니 포기해!”
“뭘 포기해, 포기하긴! 이 엉터리 마도사! 할라트도 아닌데, 날 가둘 궁리를 하는 겁니까? 응, 그런 거야? 우와, 이런 사악한 마법사! 진짜 상아탑 마스터 맞아요? 혹시 로그 메이지인데 상아탑에 숨어든 거 아니고?”
“떼엑! 상아탑 마스터를 보고 로그 메이지라니! 그런 망상을 멈출 때까지 로열 가든에서 푹 쉬어 보는 거는 어떤가? 응, 그래. 그것 참 좋은 일이로군! 어렵지도 않은 시련이 될 테고 말이야!”
“그렇게 맘대로 정하는 시련이면 무기 가게 가서 흔한 단검 한 자루 사 오는 걸로 끝내는 게 어때요? 우와, 참 좋은 시련이다! 그렇잖아요?”
“누가 그렇게 제멋대로 시련을 정해! 로열 가든의 맹약에 따라서 그 능력을 가늠하고 적절한 형태의 시련을 찾아 부여한다고!”
“아, 그래요?”
돌연 투란의 우악거리던 외침이 사라졌고, 얌전한 목소리와 함께 방긋 웃는 얼굴이 홀시딘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홀시딘은 이런 순간적인 변화에 흠칫했고 조금 전에 자신이 한 말을 재빠르게 되짚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깨우침은 금세 마법사의 뇌리에 찾아들었다.
신나게 나오는 대로 떠들 때는 당장 가둬도 되는 것처럼 얘기했는데 막판에 시련에 관해 떠들다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 사실을 짚어 내자마자 투란은 여유롭고 태연자약해진 것이고!
“젠장.”
“흐흥, 멋대로 맘대로 상관없는 일로 사람을 가두면 안 됩니다? 아시죠?”
“쳇.”
“아니, 그런데! 대체 로열 클래스가 되었는데 잡아 가둘 수 있다는 소리는 뭐예요? 어떻게 그런 일이 되는 거죠?”
보호가 격리라면서 감금과 구속의 형태로 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투란에게 굉장히 뜻밖의 일이었다. 그 때문에 묻는 말인데, 홀시딘은 혀를 차면서 한숨과 함께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을 한다.
“어떻게는 뭐가 어떻게야. 세상에는 미치고 싶지 않지만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 몬스터 로드가 되어서 광란에 빠져드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어쩌겠어? 그 때문에 자신이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을 때려 부수고 소중한 뭔가가 파괴될 것 같다면? 자신을 어딘가에 가두고 싶지 않을 것 같나?”
“아.”
투란은 입을 벙긋하면서 뭐라 반박할 말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홀시딘은 씁쓸한 표정을 더하면서 말을 보태 잇는다.
“굳이 몬스터 로드가 아니더라도, 풀 수 없는 저주를 뒤집어썼다든가…… 주변에 전염되는데 치유되지 못한 질병에 걸린 경우, 그 질병을 세상에 퍼뜨리지 않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세상에서 격리된 어딘가가 필요할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런 일도 있었어요?”
투란이 흠칫해서 빠르게 되물었다.
홀시딘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몰라. 다만 로열 가든의 맹약과 함께, 그 기능이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가 하는 예시의 한 가지로…… 시크릿 키퍼가 되는 순간에 내게 기억되어 있지. 그런 일도 가능하다고 말이야.”
투란에게는 마치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이고, 전할 수 없는 사연이라고 알려 주는 듯하잖나. 상아탑의 마법사에게조차 이를테면 그럴 수도 있다는 막연하고 모호한 일로 전해진…….
“하지만 할라트처럼 재앙의 어쩌구 하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 그런 일을 해 달라고 했을 것 같지는 않네요.”
뾰로통하니, 불쑥 투란이 꺼낸 소리에는 미묘한 반발심이 담긴 채였다.
홀시딘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렇겠지. 하지만 진짜 할라트였다면…… 정신착란과 불안한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라고 강제로 격리 보호할 수 있어.”
“에? 진짜 할라트면, 그냥 밀어붙이려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거, 마법사에게도 위험한 짓 아니에요? 무슨 마법의 맹약을 그렇게 멋대로…….”
“진짜로 미친놈이었으니까.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였거든. 우리가 아는 할라트의 마지막은 그런 모습이었어. 자기 의지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이 사실은 그냥 미친 것 때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게 할라트에 대해 상아탑이 내린 최종 결론이야. 할라트가 저지른 일이 사실은 그런 붕괴된 정신의 불안정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로열 가든의 맹약에 따라 격리해서 보호하고, 회복될 때까지 돌볼 수 있다는 거지.”
“할라트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군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투란이 중얼중얼 대꾸했다.
홀시딘은 그런 투란을 향해 심술궂은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덧붙인다.
“그러니까 미쳐 날뛰지 말라고. 나도 시크릿 키퍼가 되어서 맹약자를 잡아 가두는 짓 따위는 하기 싫거든.”
“이상한 시련 따위를 의뢰하지 말라고요! 아, 시련! 대체 뭘 해야 하는 거예요?”
으르렁거리면서 대꾸하다가 투란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시련이라고 해 놓고서 감금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이없는데, 대체 시련이란 핑계로 무슨 짓을 시키려는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는 듯!
“어? 어…….”
그런데 홀시딘이 갑자기 흠칫하면서 눈을 깜박거리고 말을 더듬는 시늉을 하잖는가?
곧바로 찌푸렸던 투란의 표정 위로 음침한 그늘이 내려앉는 듯한 반응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가라앉아서 음울하게 꾸미는 목소리로 투란이 바로 묻는다.
“아하, 진짜로 특별히 정해진 것 없어요? 그러면…… 누가 그러던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놀면서 할 수 있는 소소한 걸로 하죠? 금 좀 떼 드릴까요?”
홀시딘은 어처구니가 사라진 듯한 표정을 잠깐 지었고, 곧 나이 든 사람의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한다.
“야! 어린놈이 앞날을 생각해야지! 벌써 뇌물로 요령 피우려고 하냐? 맹약에는 그딴 거 소용없어! 어디까지나 네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내 수준이 딱 소소한 부탁을 받을 정도라고 치고! 그냥 그렇게 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마법사님?”
“네 수준은 나한테 얼핏 봐도 재앙의 왕자를 떠올리게 했잖아!”
“그쪽은 무슨 정신이 어쩌구 하는 능력이었다면서요? 난 그런 거 하나도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착각 그만하고, 그냥 몸으로 때우는 간단한 일로 좀!”
“음? 어, 그건 일리가 있군. 넌 아무리 봐도 잔꾀는 있어도 제대로 머리 쓰는 쪽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니까…… 흠…… 그렇다면 간단히 시험을 좀 해 볼까? 역병의 수해를 헤집고 다니고, 버닝 베인을 지닌 몬스터 로드가 어떤가…… 궁금하군!”
“시험? 아니, 갑자기 무슨……?”
화아앗!
* * *
콰앙!
벼락 치는 소리가 알드바인을 내려다보는 높은 탑, 절벽과 맞물린 원통형의 탑에서 터졌다. 벼락이 치는 풍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고, 그저 탑의 꼭대기 부근에서 폭음이 거세게 터지며 잠시 불길이 뿜어 나오는 듯했다.
하지만 알드바인의 상아탑은 곧 그 불길과 파괴의 흔적을 감췄다.
탑을 보호하는 마법이 즉각 파괴된 흔적을 환영으로 두르고 감췄으며, 파괴의 여파가 알드바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봉쇄했기 때문이었다.
알드바인의 사람들 중 몇몇은 폭음과 함께 잠시 상아탑을 올려다봤지만, 눈길을 돌렸을 때는 달라진 점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몇몇의 입에서는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가 분명히 나왔다.
“또 마스터가 뭔 짓을 했나…… 쯧. 이제 나이도 있으신 분이…… 적당히 좀 하시지.”
어떤 이는 상아탑의 마도사, 마스터에 대해서 핀잔을 주는 소리를 꺼냈다.
“허, 아주 철저하군? 사고 쳐 놓고 그걸 순식간에 덮는 거야? 과연 상아탑의 빌어먹을 마법사로군!”
어떤 이는 상아탑의 마법사가 자신들의 일을 감춘다는 점을 거론하며 불만을 잔뜩 토해 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마법사가 저 탑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말든 그것이 자신들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에 바쁜 모습이었다.
“이게 뭔 짓이야! 홀시딘, 정도껏이란 말 모르셔요? 그러셔요? 누굴 죽이겠다는 거야, 아니면 여길 다 때려 부수겠다는 거야! 아오, 진짜…… 아니, 근데 대체 왜 이렇게 쪼글쪼글해진 거예요?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폭음이 터지고 환영이 장막을 드리운 상아탑의 높은 곳에서는, 투란이 마스터 홀시딘이 가슴팍 옷깃을 잡아 치켜올린 채로 거침없이 타박을 하고 있었다. 그 손은 검은 광택을 뿜어내는 부드러운 암석이 살갗을 대신하고 있었고, 핏줄과 힘줄이 있어야 할 부분은 갈라진 채로 뜨겁게 이글거리는 용암의 붉은 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형상은 단지 손에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투란의 얼굴, 목덜미 전부를 용암의 붉은 줄기를 핏줄과 힘줄로 두른 듯한 검은 암석이 얇은 막처럼 차지한 채로 주변에서 이글거리고 너울거리며 달려드는 불꽃을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붙들린 마스터 홀시딘, 상아탑의 마도사 또한 그 모습이 많이 변해 있었으니, 세 가닥으로 곱게, 곧게 갈라진 은발이 헝클어진 채로 조금 전의 스타일을 잃어버린 것처럼…… 살갗 곳곳에 주름이 차지한, 그야말로 단숨에 십몇 년을 늙어 버린 듯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런 홀시딘의 옷깃을 쥐어 올린 채로, 투란은 진심으로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검게 물든 얼굴 곳곳에 살짝 열린 듯이 드러난 사람의 살갗이 잔뜩 구겨진 표정을 드러낸 꼴로!
하지만 홀시딘은 웃고 있었다.
“용암왕(鎔巖王)…… 마그마의 제왕(帝王)……이지?”
“앙? 뭔 소리예요?”
목이 쉰 듯한, 겨우 새어 나오는 소리로 묻는 말에 투란이 어이없어 되묻고 말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대체 뭘 확인하려 하는 것인가?
홀시딘은 대책 없이 위험한 불꽃을 뿜어냈고, 투란은 뇌리에 드라고니아가 기겁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을 들으면서 곧바로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끌어내야 했다. 어설프게 헬 임프프의 몸으로 맞서려다가는 불길에 삼켜지는 불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판단하기 전에 이미 몸이 느끼고 있었으므로!
“너의 몬스터…… 지금 이 손, 그 살갗……! 이거…… 마그마를 지배하는 마물(魔物)…… 용암을 다스리고 군림하는…… 게으른 재앙, 마그마의 제왕…… 용암왕이잖아. 크흘흘…… 투란, 넌…… 할라트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재앙의 왕(王)…… 캘러미티 로드(Calamity Lord)야. 그렇지?”
홀시딘이 쥐어짜 내는 소리는 투란의 말문이 막히게 했다.
아무래도 마그마 로드를 아는 모습이라 놀란 것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홀시딘이 하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인가, 투란에게는 너무 낯선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서 드라고니아는 아는가, 투란으로서는 소리 없이 묻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의 물음에 거칠고 사납게 대꾸하고 있었으니…….
―이 망할 인간 마법사! 도대체 헬 플레임을 몇 단계로 꼬아 놓은 거야! 이런 불길이면 인페르노라고 해도 작으면 바로 잡아먹을 정도라고!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시험이랍시고 바로 들이대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야, 넌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투란은 상아탑의 마도사가 내뱉는 소리 못지않게 자기만의 생각을 읊어 대는 드라고니아에게 어이없어할 수밖에 없었다.
투란의 눈앞에서, 투란의 문장 깊은 곳에서…… 마법에 대해 아주 잘 아는 둘이 멋대로 떠들어 대는데, 둘 다 투란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신난다고 떠들고 있다니! 이럴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확 찬물이라도 끼얹어서 정신 차리게 해야 하나?’
문득 주변을 돌아보면서 물병 비슷한 것이라도 없는가 찾으려는 투란이었다.
이는 곧바로 몸 깊은 곳에서 휘드라곤이 물 내음을 찾게 했고, 바로 뚫린 벽 너머에 거대한 물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어……?”
그 물결 가득한 풍경이 순식간에 투란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