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2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21)
Chapter 85. 운호(雲浩)의 도시
휘이잉!
시원하고 맑은 물 냄새가 가득 담긴 바람이 파괴된 벽 너머에서 뜨거운 것을 찾는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하얗게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호수의 광활한 풍경은 투란의 마음을 순식간에 강탈했다.
투란은 손에 잡아 올렸던 마법사를 옆으로 던지듯이 내려놓고 호수와 도시, 알드바인의 풍경을 바라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넓어.’
단지 호수가 넓은 것만이 아니었다.
알드바인에 들어설 때, 성벽을 관통해서 어둡고 긴 통로를 지나온 탓에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도시도 넓었다. 라비엔보다 높은 곳이라고는 상아탑이 박힌 이 뾰족한 산봉우리뿐이겠지만, 그 라비엔을 몇 개나 떨궈 놔도 될 정도로 알드바인은 넓었다. 그저 평평하게 넓지도 않았고, 거대한 계단처럼 펼쳐진 채로 넓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탓에 겨우 그 계단의 굴곡이 보였고, 계단의 맨 아래쪽은 호수와 맞물린 채로 굵고 긴 이빨 같은 건축물을 쭉쭉 내뻗고 있었다.
―부두라는 거다. 제대로 항구를 갖췄군.
‘부두? 항구?’
투란은 낯선 말에 의아해했다.
―배를 대는 곳이고, 배가 들락거리는 곳이란 뜻이다. 물가에 처음 와 보냐?
‘어…….’
핀잔을 주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지만 투란의 대꾸는 단순한 긍정이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넓은 호수에…… 저렇게 많은 배가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 배들이 들락이기 위해 준비된 부두의 모습은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으니까.
호수와 맞물린 풍경의 한쪽으로는 거칠게 치고 올라가는 산맥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 반대편으로는 자욱한 안개가 얽힌 밀림이 머나먼 곳까지 융단처럼 펼쳐져 있었다. 호수는 알드바인을 향해 볼록하게 파고드는 듯했고, 알드바인은 오목하게 품을 펼쳐 호수의 한구석을 끌어안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호수의 풍경은 그 너머로 펼쳐진 물의 평원의 귀퉁이였고,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짙고 두꺼운 안개가 수면(水面) 위로 수풀처럼, 작은 언덕처럼 흩뿌려진 채로 자리 잡은 호수의 아득하게 먼 저쪽은 거의 하늘과 맞닿은 듯이 보였다.
―정말로 부두니 항구니 하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어?
조금 어이없어하면서도 의아한 듯, 드라고니아가 다시 물었다.
투란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고, 희미하게 바다에 대해 뭐라고 누가 떠들 때 얼핏 들었던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말은 아무런 의미도 투란에게 남기지 못했다. 이런 풍경에 대해서는…… 들었다 해도 허풍으로 여기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대체 뭐라 말해야 하는가?
투란은 우선 곁을 돌아봤다.
어느새 반듯하게 돌바닥에 앉은 홀시딘의 모습은 저절로 투란의 입을 열어 한 번 더 묻게 한다.
“왜 쪼글쪼글해진 거예요?”
“어? 쪼글쪼…… 아, 이건 마력 소모가 과한 탓에 몸에 심한 부담이 걸려서 이런 거야. 마도사의 마력은 몸과 마음에 동시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받기도 하니까. 뭐 마법사와 마도사를 가르는 차이점이라고 해도 좋겠지? 마력이 회복되면 다시 젊은 할배로 돌아갈 테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아니, 걱정한 거는 아닌데…….”
“걱정해라, 응! 걱정하라고!”
투덜대는 홀시딘을 향해 투란이 잠깐 가느다란 눈길을 쏘아 보냈다.
마치 내가 왜 당신 걱정을 해야 하냐고 따지기라도 하는 듯!
조금 전의 일을 홀랑 까먹었냐고 쏘아붙이듯!
하지만 홀시딘은 투란의 눈길 따위는 무슨 의미인가 전혀 알 바 아니란 듯, 숨을 고르고 투덜대면서도 키득거리는 괴상한 웃음을 띠고 있잖은가! 그런 상아탑의 마도사를 향해 투란은 어이가 없어 또 한 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예요?”
“응? 아, 당연한 생각.”
홀시딘이 조금 더 짙어진 웃음과 함께 대답했고, 투란은 완전히 어이가 산산조각 난 듯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당연하게 했기에 이렇게 두꺼운 벽을 뻥 뚫어 버릴 정도의 화염을 일으킨단 말인가! 이미 열린 저쪽도 아닌, 막혀 있던 벽조차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가게 해 놓고 대체 뭐가 그리 당연한 생각이었단 소리인가!
이런 투란의 기분을 훤히 아는 듯하면서도 홀시딘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키득거리는 웃음을 좀 더 또렷하고 크게 울려 낼 뿐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실컷 궁금해하면서 약 올리는 모습처럼!
그래서 투란은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여기, 대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 거예요?”
“응? 많이?”
“사람 말이에요, 사람! 와글와글하는데, 대체 얼마나 많이 사는 거예요? 이 정도면 거의 한 나라의 사람들이 다 모인 거 아니에요?”
“엥? 아니, 그렇게 많지는 않지. 생각보다 커지기는 했지만, 알드바인은 그저 도시일 뿐이야. 음, 지금은 대강 한 이십만…….”
“만? 이십, 만? 지, 지금 사람 숫자 얘기하는 거 맞아요?”
투란이 질린 표정으로 홀시딘을 바라봤고, 홀시딘은 ‘왜 놀라?’ 하며 의아해하며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어버버한 표정을 드러낸 채로 ‘그게 당연해!’라는 듯이 홀시딘을 쳐다봤고, 홀시딘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묻는다.
“산맥 깊은 곳을 드나들기는 했지만 이런 도시가 있는 곳에는 가 본 적이 없어? 그렇다면…… 라비엔이 지금까지 본 도시 중에 제일 큰 거였어? 흐흠, 그러면…… 조금 놀랄 만도 하군.”
“조금? 이게 조금 놀랄 일이에요?”
힘이 쭉 빠진 표정을 지으면서 투란이 웅얼거렸다.
홀시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사람이 많아서 놀란 거는 아니군? 왜?”
투란은 직접 물은 것은 사람 수였지만, 내려다보는 눈길 속에는 ‘왜 저러고 다니지?’ 하는 낌새가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점차 사람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왜 저런 꼴’인가를 궁금해하는 모습이었다.
투란도 홀시딘의 의문을 느낀 듯, 잠깐 생각하다가 말을 골라 대답한다.
“라비엔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저렇게 아무렇게나 걸치고 다니지는 않았다고요. 여기 사람들은 왜 저런 차림새로 다니는 거죠? 저렇게 미친 벽을 쌓아 올렸다고 해도 날아다니는 것도 있잖아요. 이렇게 훤히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저렇게 대책 없는 차림으로 느긋하게 걷고 있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렇군. 샤오 마을에서 자랐다면, 그런 생각이 들겠어.”
홀시딘이 훗 하는 미묘한 웃음을 흘리면서…… 조금 전의 뭔가 혼자 기분 좋아 키득대던 것과는 다른 느낌의 쓴웃음이었고, 투란의 말을 완전히 납득하기 때문에 미소할 수밖에 없다는 말투로 대꾸하며 곧장 말을 잇는다.
“투란, 이곳은 알드바인이고 경계 도시 밖이야. 라비엔은 경계 도시보다 안쪽이었고, 많은 부분에서 샤오 마을과 닮았겠지. 하지만 그건 사람이 사는 세상이 보여 주는 극단적인 방향의 풍경에 불과하지. 이 알드바인은 사람이 사는 곳에 더 가까워. 사람이 자리 잡고 살면서 아이를 키우려 하는 도시라면, 이 알드바인과 닮은 곳이 더 많아. 뭐, 그런 곳에서 살던 사람이 알드바인에 온다면 이 도시의 풍경이나 분위기가 아주 낯설 테지만…… 더 간단히 말하자면 투란, 세상에는 샤오 마을 같은 곳은 서너 곳 정도에 불과하다고. 거기 익숙한 사람보다는 거길 낯설어하는 사람이 더 많지. 그러니까 투란, 알드바인을 둘러보고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 거야.”
투란은 홀시딘이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쪼글쪼글 일그러졌던 살갗, 확 늙어 버렸던 모습이 다시 탱탱해지면서 젊은 할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더불어 뚫렸던 벽도 조금씩 티끌이 쌓여 가면서, 느리지만 분명히 복구되고 있기도 했다.
그 때문에 투란의 다음 물음은 재빠르게 나와야 했다.
“저쪽에 나란히 서 있는 나무는 왜 나란히 서 있어요? 그 근처에 풀밭도 나란히 자란 것 같은데, 어떻게 저렇게 줄 맞춘 것처럼 나란히 나무랑 풀이 자랐대요?”
막혀 가는 벽 너머를 가리키며 묻는 소리에 홀시딘은 살짝 큰 웃음부터 지었다.
“과수원이란 거야. 풀밭이 아니고, 밭이다. 과일을 얻기 위해 나무를 모아서 심었고, 곡식을 얻기 위해 일군 밭이지. 알드바인은…… 음, 그래 적당한 안내를 붙여 줄 테니까, 둘러보고 있어. 시련은 깔끔하고 빠르게 해치우는 게 좋지? 하루 정도 둘러보고 있으면 내가 금방 찾아 줄 테니까. 흐흣, 걱정하지 마! 자네에게는 정말 소소한 부탁 정도에 불과할 거야, 그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흐흐흣.”
뭔가 음흉한 웃음이 말을 맺어 가고 있었고, 투란은 벽이 다시 복구되는 것과 함께 ‘이 마법사 미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다시 불끈거리면서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이대로 알드바인에서 시련인가 뭔가 하는 괴상한 일을 맡아도 좋은 것인가? 그냥 다른 곳의 상아탑으로 냅다 도망간다면…….
―로열 클래스의 시크릿 키퍼니까, 쫓아오겠지.
드라고니아가 차갑게 투란의 생각을 뚝 잘랐다.
‘느, 늦은 건가!’
조금은 멀쩡하고 정상적인 마법사에게 맡아 달라고 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팍팍 치솟았지만 투란은 이미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이 반쯤 미친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마스터 홀시딘이 다른 마법사에게 그 의무, 권리를 양보할 리가 없어 보이니까!
“끄응! 읏차! 자, 어서 가서 알드바인을 구경해 보라고! 첫날 본 것이 가장 잊히지 않을 테니까. 내려가서 시알라랑 동생들한테 합류해 있어!”
몸이 거의 회복되었다는 듯, 홀시딘은 기운차게 일어서면서 투란의 등짝을 탁탁 두드리는 시늉까지 하며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투란의 등에는 그 손이 닿을락 말락 했을 뿐이지만, 그 기분만큼은 참으로 또렷하게 전해져서 투란은 등골 깊이 처맞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으아…… 대체 어쩌다 이렇게…….’
―키린 때문이지, 키린이 아니었다면 상아탑에 이렇게 밀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거잖아. 너의 문장을 조금 더 쉽고 은밀하게 감출 방법을 찾으려 했을 테고, 조금 더 치밀한 위장을 했을 테지. 대마법이라고 꼬드긴 키린 때문에 앞뒤 안 가리고 쳐들어왔으니까 이 꼴인 거다!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쏟아붓고 있었다.
투란은 골 한구석이 징징 울리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대체 누구 탓일까?
히죽거리며 키득거리는 낯짝으로 이미 뭔가 아주 흉악한 음모를 꾸민다는 낌새가 역력한 상아탑의 마도사 탓일까? 새삼스럽게 키린에 대해서 떠올리게 해 줬으니, 모든 것은 키린 탓이라고 외쳐 대는 드라고니아의 심술궂은 말대로인가?
드라고니아는 물론, 홀시딘 또한 이런 투란의 골 아픈 상황을 알 바 아니란 듯했다.
“그럼, 가 봐. 아, 그렇지! 이건 지금 건네는 게 좋겠군. 시알라 쪽으로도 전달이 될 거야. 하지만 직접 받는 편이 깔끔하니까.”
홀시딘이 소매를 걷어 올린 한 손을 내밀었고, 그 팔뚝에서 가볍게 빛나는 고리는 투란의 한쪽 손가락에서도 똑같이 빛나는 작은 반짇고리를 나타나게 했다. 그 반짝이는 빛과 함께 투란은 뇌리 한구석에 자연스럽게 스며 오는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그 ‘이야기’에 투덜대던 드라고니아가 말을 잠시 멈췄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드라고니아는 한마디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떠든다.
―과연 그럴듯하군. 인간의 거짓말은 참으로 놀라운 수준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군. 이렇게 사실을 왜곡해 놓으면 루케인이 나중에 뭔가 의아한 부분을 떠올린다고 해도 혼자서 그에 어울리는 설명을 찾아 조각난 기억을 메꾸겠구먼!
‘욕이야, 칭찬이야?’
어이없어하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홀시딘이 넘겨준 또 다른 빛의 조각, 화살표 모양을 손 위에 받으면서 묻는 투란이었다.
“이건?”
“나가는 길을 알려 줄 거야. 잠깐 부서지고 새로 지어진 부분 때문에 들어올 때의 길을 기억했어도 소용이 없으니까.”
“아, 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홀시딘에게서 눈길을 떼어 내면서 투란은 새삼 상아탑의 상층부가 자주 박살 난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데도 그 파괴를 일으킨 홀시딘이나 다른 누구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아해했다.
아무리 마법으로 고쳐진다고 해도 소모되는 마력이 상당할 터였다.
―마력을 강제로 순환시켜야 하니까, 어느 정도의 소모는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여기 구조는 그렇게 되어 있어. 물론 과도한 소모는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마력이 축적되게 둬도 곤란해.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 꽤 애매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잘 관리하는 모양이다. 뭐, 춤추는 산맥의 영향을 받는 곳이니까 쓸 일도 많고 채워지기 쉽기도 하겠지.
‘몰라, 뭔 소리야 그게? 에잇, 그만해! 알고 싶지 않다고! 그냥 나가서 알드바인 구경이나 할래!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랑 직접 걷는 거랑 아주 다를 거야! 재밌을 거야!’
투란은 손을 올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반쯤 뛰듯이 냉큼 걸어 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만, 등 뒤에서 흐흣 하는 홀시딘의 웃음이 아주 오싹하다는 것은 정말 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