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2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22)
“손끝을 살짝 대면 됩니다. 쥐어뜯지 않아도 돼요! 아, 무서운 마법 같은 거 없어요! 바르르 떨면서 노려보지 마시죠?”
조그마한 창구(窓口) 너머에서 젊은 마법사가 답답해하다가 황당해하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너 명째 이런 꼴을 보이는 것이 몹시 마땅치 않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투란은 자신이 서너 명째이고, 누군가와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왜 이러는 거야?’ 하는 의아함으로 마법사의 상태에 대해서 저쪽으로 멀찌감치 물러서 있는 네 남매를 바라봤다. 한데 시알라부터 시작해서 멜란드까지, 넷이 모두 슬그머니 딴 곳을 쳐다보는 시늉을 한다?
상아탑의 하층부 한구석에 자리 잡은 창구 주변은 한산했고, 노골적으로 위에서 내려온 특별한 경우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일부러 마련된 곳이라고 드러내고 있었다. 창구에 자리하고 있는 마법사의 등 뒤로는 넓은 벽에 네모난 구멍이 숭숭 뚫린 모양으로 온갖 서류(書類), 가죽 묶음이 꽂혀 있었다. 마법사는 보통 때 이곳에서 사람을 상대하기보다는 저 서류와 가죽 묶음을 상대하는 것이 일이었고, 가끔 상아탑의 의뢰를 끝내고 이곳에서 마무리하는 사람을 맡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 상대로 뭘 설명하는 짓에 조금 날카롭게 반응한다고 훤히 드러내 보였다.
투란이 길잡이 화살표를 따라 오는 동안에 이럴 것이라고 이미 예고를 듣기도 했으니, 그 예고와 딱 일치하는 젊은 마법사에게 뭐라 따지겠는가? 게다가 이미 이 마법사에게 네 남매가 이러쿵저러쿵 잔뜩 따져서 지치게 만든 듯한데!
그 때문에 투란은 창구 너머의 마법사에게 방긋 웃어 보이면서 살살 달래는 소리를 내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처음이라 그러거든요? 이렇게…… 음, 에…… 상아탑에 들어와서 카운트? 어카운트? 이런 거 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에요!”
낯선 곳, 첫 경험을 강조하는 말에 젊은 마법사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역시, 이런 꼴을 한두 번 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을 넘어서 지겨워서 참기 힘들다는 모습 아닌가!
그런 마법사를 향해 투란이 다시 한 번 방긋 웃어 보였다.
설마 웃는 얼굴로 부탁하는데 거절하시려고요, 하는 듯했다.
확 거절하고 싶다는 표정이 곧바로 마법사의 얼굴에서 꿈틀대는 듯했지만, 으스스하니 힘이 들어간 입술을 달싹이면서 마법사는 투란을 향해 설명한다.
“어카운트, 달리 계정이라고도 하는 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러분이 상아탑에 실물(實物)로서 금이나 은, 보석 따위를 맡기신 다음에 남기는 기록 같은 것이죠. 여기 전표(錢票)는 그 맡긴 금, 은, 보석을 동전(銅錢)과 은전(銀錢), 금전(金錢)으로 환산한 기록 같은 겁니다. 보세요, 전표 한쪽은 여러분이 가져가지만 한쪽은 상아탑에 남겨지는 거 아시겠죠? 가져가신 전표는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거기 적힌 분량만큼의 은전이나 동전을 지급한다는 징표가 되어서 상아탑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 전표를 누군가 가져와서 상아탑에 실물을 달라고 하면, 그 전표에 적힌 만큼 내주는 거죠. 쉽게 말해서, 여러분 주머니에 금은보석을 갖고 다니면서 그 무게에 시달리고 잃어버릴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겁니다. 금은보석의 실물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찾아서 주인이란 걸 증명하기 어렵겠지만, 이 전표는 잃어버렸을 경우 즉각 상아탑의 창구로 와서 분실을 알리신 다음에 새로 받아 가실 수 있어요. 여기까지 아시겠어요?”
“음, 그러니까 나 대신에 보관하고 있다가 내준다는 거네요? 내가 갖고 있다가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투란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와, 이 마법사 말 진짜 빠르다!’라는 표정을 짓다가 흠칫한 태도로 빠르게 대답했다. 마치 마법사의 빠른 말에 빠르게 답해야 하는 의무를 느낀 것처럼.
젊은 마법사가 살짝 안도한 듯한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말을 잇는다.
“예. 기본적으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상아탑의 자치도시인 이곳, 알드바인에서는 이 전표를 돈으로 쓸 수 있다는 뜻이죠. 굳이 동전, 은전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고 말이죠. 그리고 이 전표는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아요. 이건 마법에 반응하기만 할 뿐인 연금술의 기술로 만들어진 거예요. 여기서 어카운트, 계정의 주인이 전표를 가져갈 때 끝이 잘리면서 전표마다 고유의 기록이 남아요. 그 고유 기록은 전표가 다시 상아탑의 창구로 돌아올 때야 마법을 통해 확인되죠. 그러니까 이거 위조 안 됩니다! 똑같은 전표가 두 장이지도 않으니까, 무슨 재주로 복제해도 소용없어요!”
투란이 살짝 음흉한 척하는 미소를 띠는 순간, 창구 너머에서 마법사가 으르렁대면서 경고하는 소리를 쏘아 냈다. 아무래도 전표를 위조하거나 복제해서 가져온 경우는 지겹게 봤으니 하지 말라는 듯한데, 투란은 그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는 듯이 미소를 짙게 하면서 묻는다.
“전표를 써서 뭘 산 다음에 잽싸게 돌아와서 잃어버렸다고 하고 새로 받아 가거나 하면요?”
“그런 사기를 치고 무사할 리가 있겠어요? 뭐, 굳이 해 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만 관두라고 미리 권하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 전표에는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아요. 대신 특별한 마법에 특별하게 반응하는 연금술로 만들어졌어요. 쉽게 말해 드리면, 전표는 자신이 거쳐 온 손길을 기억합니다. 잃어버린 전표를 누군가 주워 쓴 것인지, 제대로 거래에 사용된 것인지 상아탑의 창구에 도착하는 순간에 전표는 그 과정을 낱낱이 밝히죠. 한두 명을 거쳤든 백 명을 거쳤든, 상관없이 전표는 자신이 거쳐 온 손길을 모두 기억합니다.”
“만 명이나 십만 명을 거쳐도요?”
투란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면서, 네 남매 쪽을 흘깃하며 심술궂게 물었다.
마법사가 ‘아니, 이놈까지!’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이없어했고, 저쪽에서 네 남매는 찔끔한 표정으로 다시 눈길을 딴 데로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창구 너머는 인내심을 강요하고 증폭시켜 주는 마법이라도 있는 듯, 마법사는 참을성이 물씬 배어 나오는 표정과 함께 대답을 한다.
“예. 원한다면 백만 명의 손을 거친 전표라도 가져와 보세요. 천만 명의 손을 거쳤다 해도 전표는 자신이 지나온 경로를 기억해 보일 테니까요.”
“헐?”
투란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이건 좀 과장이 심하지 않는가?
이에 마법사가 입술을 다시 막 달싹이려 할 때,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가 번개처럼 꽂아 넣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는 거야. 이 상아탑의 전표 기술은…… 연금술을 기반으로 한 마법 중에서 꽤 흥미로운 경우야. 애초에 왜 이런 기억하는 전표를 만들었는가부터 시작해서, 이런 걸 만들어 놓고 이름은 전혀 남기지 않은 대마법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하는 소소한 부분까지 말이지.
‘이걸 대마법사가?’
투란은 너무나도 사소해 보이는 이런 것에 웬 대마법사가 끼어들었나 놀랐고, 그사이에 달싹거리는 마법사의 입술에서 대답 같은 소리가 나온다.
“이 전표에 사용된 연금술과 마법은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대마법사께서 고안해 내신 겁니다. 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매일 기록하는 걸 굉장히 지루해하고 귀찮아하셨거든요. 그래서 다니는 곳의 풍경, 스쳐 간 사람들의 인상을 자연스럽게 마법의 기척 없이 기록할 수 있는 일기장을 고안해 내셨죠. 일기장의 한 귀퉁이를 뜯어서 살짝 손에 감아 놓으면 저절로 기억되는 형태로 말이죠. 뭐, 그게 이렇게 쓰일 거라는 생각까지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상아탑과 헌터 길드에는 매우 고맙고 유용한 유산으로 남겨진 겁니다. 자, 이제 좀 안심이 되세요?”
“음, 조금 더 궁금한데…… 그럼, 헌터 길드에 전표를 가져가도 되는 거예요?”
“헌터 길드의 계정, 그쪽에서는 카운트라든가 계좌(計座)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는데 그 계정과 상아탑의 계정을 연계해 놨다면 똑같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쪽에서도 바로 전표를 확인해 줄 수 있으니까요.”
“오옷! 그렇다면 양쪽 다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네요?”
“그렇죠.”
“그럼, 여기서 헌터 길드 계정…… 그 계좌로 상금이 들어와 있나도 확인할 수 있는 거예요?”
“예, 연계되어 있으면 말이지요.”
“음, 우린 상아탑의 마법사가…… 길드에 파견된 마법사가 계정을 만들어 줬는데, 연계되어 있지 않을까요?”
갸웃하면서 투란이 창구에 바싹 얼굴을 들이대면서 물었고, 젊은 마법사는 슬쩍 뒤로 몸을 누여 거리를 두는 자세로 대답한다.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군요. 여기, 이쪽 수정판에 손을 올려놔 보세요.”
서류에 덮여 있던 푸른 수정에 덮인 듯한 작은 판이 창구에 올려졌다.
투란은 잽싸게 그 수정판에 손을 올렸고, 네 남매는 우르르 몰려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지켜보려는 듯이 눈을 부릅떠 보였다! 아무래도 시알라 남매는 이 수정판까지는 보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사기를.
곧 드라고니아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투란의 뇌리에 울렸다.
왜냐하면 투란이 내민 손을 물들이는 듯이 수정판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올라왔을 때, 거기에 먼저 반응한 것은 홀시딘이 남겨 준 로열 가든의 징표였기 때문이었다. 로열 클래스의 증표는 곧바로 수정판 속에 조작을 가했고 수정판은 그 결과를 토해 내는데, 창구의 마법사는 그런 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 미묘한 과정이 네 남매에게는 또렷하게 드러난 듯했다.
“흐흠, 이렇게 되는 거네?”
시알라가 납득했다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마치 수정판의 마법을 겨우 납득한 것처럼, 사실은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납득한 것을 고스란히 밝히는 소리였다.
젊은 마법사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울린다.
“연계되어 있군요. 자동연계로 그쪽에서 계정을 만드셨네요. 음, 램피지 알파 현상금 지급이 조금 전에 된 모양이군요. 그래서 이쪽에서 전표 발행(發行)이 가능했군요.”
“어? 이 전표가 그 현상금에서 나온 전표라고요?”
투란이 갸웃하는 소리를 냈다.
마치 상아탑에서 지급할 돈을 전표로 주려던 게 아니냐는 듯한 말투였고, 젊은 마법사가 창구 너머에서 뭐라 하기 전에 일행의 뒤편에서 대답이 튀어나온다.
“내가 아직 승인을 못 했거든. 바빠서.”
투란과 네 남매가 돌아보니 루케인이 터덜거리면서 힘든 표정을 잔뜩 지은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루케인은 일행 사이를 가르듯이 창구에 붙었고, 품속에서 꺼낸 두루마리 하나를 수정판 위로 올려놓았다.
“라비엔의 계좌 기록이야. 기록 전송에서 빠진 거랑, 여기 와서 처리했어야 할 부분들이지. 이 친구들한테 줄 보수도 여기 기록되어 있어.”
“우에, 게으름뱅이! 루케인은 게으름뱅이!”
투란이 놀리는 소리를 딴전 피우듯이 흘려 냈다.
곧바로 루케인이 발끈해서 대꾸한다.
“시끄러워! 이게 누구 탓인데! 몇 년간 등록도 않고 사냥해 놓고 한꺼번에 몰아서 가져와 놓고 누구 탓을 해! 야, 이놈들 악질이니까 낯짝 잘 기억해 둬! 자기네 바쁘다고 길드에 들르는 것도 귀찮다면서 사냥 기록은 꼬박꼬박 해 놓은 다음에 한꺼번에 들고 온다? 누굴 괴롭히려는 건지, 진짜! 아오오오, 은퇴한다는 소리만 아니었어도 나도 몇 년 있다가 처리해 줬을걸! 은퇴할 때 찾아오라고 말이야! 아, 이 악질들 그걸 예상하고 아예 은퇴한답시고 여기까지 들러붙었나? 젠장, 은퇴 안 하기만 해 봐! 그냥 안 둘 거야!”
투란이 빙긋거리며 웃었고, 시알라와 페란드는 조금 미안한 듯한 쓴웃음을, 페란드와 멜란드는 딴 데 보면서 ‘몰라요, 그런 소리.’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창구 너머의 젊은 마법사는 ‘아! 그래서…….’ 하는 소리를 내며 이제야 겨우 납득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루케인이 그런 동료 마법사를 향해 연이어 투덜대는 소리를 터뜨린다.
“착실하게 한 건씩 처리해 왔으면 아래 창구에서 줄 서서 기다리다 처리해도 될 것을, 날 여기로 호위해 준 걸 핑계로 여기서 잽싸게 처리해 달라는 얌체 짓도 하는 중이거든! 잘 기억해 두라고, 이 악질들! 마법사에게 일감을 몰아서 쏟아붓는 나쁜 놈들이야! 선배 말 새겨들어! 히죽거리지 말고!”
“아하하…… 그냥 좀 심술궂은 분들이라고 기억하겠습니다.”
강요하는 듯한 루케인의 말에 젊은 마법사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수정판과 두루마리 사이를 오가던 빛이 사라졌다.
루케인이 그 빛의 강도를 잠시 가늠하는 듯이 눈을 가늘게 했다가 불쑥 말한다.
“이제 필요한 만큼 전표를 신나게 끊을 수 있을 거야. 한끼 두끼 정도만큼만 대강 끊어갈 생각 말고, 은퇴하려면 며칠 제대로 머물면서 계획도 세워야잖아? 옷도 새로 좀 장만하고…….”
“옷을요?”
시알라가 의아함을 바로 드러냈다.
순간, 루케인은 낯을 구겼고 창구 너머의 마법사는 ‘아, 이런!’ 하는 소리를 대놓고 토해 냈다. 무슨 일인가 한층 더 시알라와 투란, 세 형제가 어리둥절해하니 루케인이 으르렁대는 소리로 설명한다.
“야! 지금 그 차림으로 알드바인을 돌아다니려고? 여긴 마법사가 안전을 확보하고 지키는 도시라고! 그렇게 언제 어디서 몬스터든 짐승이든 나오면 맞서 주겠다는 차림새로 돌아다니면, 너네 데려온 내 꼴이 뭐가 되냐! 이상한 놈들이 중무장하고 다니는데, 루케인이랑 왔다던걸 하면! 너네한테 알드바인이 마법사의 수상한 도시라고 잔뜩 불어넣은 얼간이가 내가 되잖아!”
“아하하, 아핫. 그렇구나.”
투란이 얼버무리는 웃음을 흘렸다.
네 남매도 비슷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주 어색하게 웃는 시늉을 했다.
루케인과 창구 너머의 마법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투란과 네 남매에게 로열 클래스 마법이 어떤 결과를 끌어내고 있는가는 분명히 느껴지고 있었다. 매우 미세하게 가공된 거짓 속에서,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과거가 가다듬어지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