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2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24)
“후아!”
투란이 크게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 숨결이 아래로 길게, 넓게 펼쳐진 새로운 계단으로 흘러내려 가면서 하얀 구름이 엉킨 물결 너머까지 흘러가는가를 지켜보듯…… 투란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보이는 알드바인의 풍경을 둘러봤다.
‘위에서 볼 때랑 이렇게 다른가.’
새삼 놀라움이, 즐거운 기분이 투란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상아탑의 상층부, 그 틈새로 내려다볼 때 느꼈던 기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거리의 풍경 속에서 저절로 스며 나와 가슴에 파고든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때와 내려다본 자리에 서 있을 때의 시점 때문에 벌어진 차이가 아니었다.
라비엔의 거리에서 투란은 샤오콴 마을의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나게 커진 샤오콴 마을, 라비엔이 주는 인상(印象)은 그렇게 투란에게 새겨져 있었다. 그 크고 거대한 바위 탑이 즐비한 도시의 모습은 샤오콴 마을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한 나무를 곧바로 떠올리게도 해 줬고…… 어떤 면에서든 라비엔은 투란에게 익숙한 분위기를 되새기게 해 줬다.
하지만 알드바인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가장 먼저 그 색다른 풍경의 한 부분을 찾으려면, 멀리 볼 필요가 없었다.
‘옷도 신기하고…….’
당장 가게에서 입고 나온 자신의 차림새를 다시 살펴보면서 투란은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과 비교해 봤다. 머리 한구석에서는 알드바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인 듯 느껴지게 한 가게 주인이 한 말이 징징 울린다.
“에? 예? 아니, 그런 대형 단검을 왜 찾아요? 들어오는 길이라면서요?”
“헐? 칼 한 자루 없으면 불안하다니! 무슨 뒷골목 불량소년 같은 소리를!”
“에잇, 이 정도로 만족하라고! 이 거리에 그런 대형 단검을 차고 다닐 생각하지 마!”
‘후우, 다행이야. 제란드가 먼저 단검 챙기려고 해서.’
투란은 살짝 한숨을 내쉬면서 흘깃 뒤를 돌아봤다.
어디에 가든 기본적인 단검 한 자루는 챙긴다, 이것이 투란이 아는 상식이었다.
라비엔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던 샤오콴 마을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 알드바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드라고니아조차 ‘대형…… 단검? 뭔 앞뒤 안 맞는 소리야?’라며 어이없어했지만, 팔뚝 크기의 단검만으로도 알드바인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위협당하는 기분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고작해야 손끝에서 팔꿈치에 닿을 정도인, 칼자루까지 포함해서 그 정도에 불과한 단검을 놓고 위협받는 기분이라니! 대체 어떻게 그러냐고 투란은 의아해했지만, 네 남매는 ‘아, 그랬지?’라는 기묘한 감상을 토해 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란드는 단검 한 자루 정도는 챙기고 싶어 했고, 가게 주인은 친절한 얼굴에서 험악한 얼굴을 하면서 도시에 적응하라고 쪼그마한 나이프 하나를 대신 끼워 줬다.
‘플립 나이프라…….’
투란은 벨트 고리에 매달린 주머니를 열고 네모난 사슬 한 조각이 달랑거리며 매달린, 둥근 고리가 박힌 칼자루뿐인 걸로 보이는 플립 나이프를 다시 꺼내 봤다. 검지를 끼워 넣을 정도로 넉넉한 지름의 고리를 중심으로 칼자루에 박혀 있는 칼등뿐인 모양, 칼날이 칼자루 깊숙이 숨어 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칼등 옆쪽에 미묘하게 파인 홈을 이용해 칼날을 꺼내고 젖혀 펼치면 온전한 칼, 아주 작은 나이프의 모양으로 돌아간다.
‘과일칼인데 말이지.’
샤오콴 마을에 이 작은 칼을 가져왔던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나무 손질하거나 어디서 구해 왔나 의아했던 과일 껍질 벗기는 데 주로 쓰고, 절대로 마수나 몬스터와 전투에는 쓸 수 없다고 했던 작은 칼이었다. 주머니에 담아 두면 되고 딱히 칼집을 정비하지 않아도 되니까, 딱 소소한 용도에 걸맞은 칼이었지만 샤오콴 마을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도구였다. 왜냐하면 그런 용도의 조그만 칼 따위는 샤오콴 사람들은 만들지를 않으니까!
단검으로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는 칼을, 굳이 조그맣게 만들어서 접었다 폈다 하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 다들 허리춤에 여차하면 짐승 멱을 딸 정도의 칼 한 자루는 차고 다니는 게 당연하니까!
괜히 이 조그만 칼로 짐승이랑 툭탁대다가 접혀서 자기 손가락 잘라 먹을 수도 있잖은가?
‘이 네모 사슬이 그걸 막는 용도라…….’
투란은 플립 나이프의 자루 위에서 달랑거리는 네모난 사슬 모양 고리를 바라봤다. 칼자루에 박힌 둥근 고리가 손가락을 끼워 손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으면서 보호하는 역할이라면 그 반대편에서 달랑거리는 사슬은 칼을 펼쳤을 때, 위쪽에서 걸어 칼날이 멋대로 다시 접히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칼이 바로 이 플립 나이프란 뜻이었다.
이 도시 알드바인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가게 주인이 권하는 소리에 투란은 ‘대놓고 사기를 치는 건가!’라고 의아해했지만, 네 남매는 ‘어, 그랬지.’ ‘그렇겠지?’ 하는 맹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투란은 의아함을 소리 내지 않았다!
거기서 소리 내면 왠지 이상한 놈 취급받을까 봐 슬쩍 뒤로 물러서서 열심히 구경하며 눈치만 봤다.
덕분에 가게 주인의 온갖 잔소리는, 오랜만에 알드바인에 돌아온 탕아 같은 몬스터 헌터 파티를 자주 대한 탓에 익숙하게 뿜어 나오는 잔소리는 몽땅 제란드와 멜란드가 뒤집어썼다.
―잘도 얌체 짓을 했지.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생각을 짚듯이 투덜거렸다.
‘앙? 뭐가 얌체 짓이야? 전술적인 관찰이었다고!’
투란은 바로 대꾸했다.
―그렇게 써먹으라고 키린이 새겨 준 말이 아니잖아!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행동마다 자연스럽게 배어나도록 하라고 했는걸. 흐흥!’
투란은 바로 콧방귀를 뀌면서, 플립 나이프를 폈다 접어 다시 벨트 주머니에 넣었다. 이런 투란 곁으로 지친 한숨을 쉬면서 멜란드가 와서 섰다. 곧바로 멜란드는 낮게 징징 우는 소리를 토해 냈다.
“어흐흐…… 옷 정도는 마음대로 입게 두라고…… 왜 나만…….”
투란의 입가가 절로 실룩이면서 웃음이 매달리고 말았다.
멜란드의 차림새는 스스로 선택한 것에다가 이것저것이 더해져 있었다.
처음 멜란드가 고른 맨몸에 걸친 재킷―소매 없이 배와 가슴팍, 팔이 어깨까지 훤히 드러난―의 안쪽에는 단단하고 부드러운 셔츠가 있었고 헐렁하니 발목이 훤히 드러난 채였던 샌들 위에는 정강이까지 덮는 발목 토시가 씌워진 채였다. 발가락과 발 이곳저곳이 노출되는 신발, 샌들은 멜란드가 발의 형상이 바뀔 때를 대비해서 고른 것이라 그냥 그대로였지만 무릎 아래가 훤히 드러난 바지는 저 토시 형태의 보호구를 하나 더 채워 버린 셈이었다.
뭔가 멜란드는 노출이 제법 심하고 가벼운 차림새를 원했는데, 곁에서 그 꼴을 보던 페란드와 제란드가 셔츠를 하나 더 입히고, 손목 발목을 모조리 토시를 두르게 강요한 결과였다.
아무리 알드바인이 안전한 도시라 하더라도, 손목 발목이 보호는 어디에서나 필요한 기본이라고 잔소리하던 제란드가 큰 단검을 챙기다가 가게 주인에게 역습당하듯이 잔소리를 들은 것이 금방 나온 가게에서 있던 일이었다.
“뭐, 제란드도 마음대로 칼을 고르지는 못했잖아.”
투란은 슬쩍 위로하는 것처럼 멜란드에게 말할 수 있었다.
멜란드가 투란을 보며 입술을 삐죽이며 대꾸한다.
“그거랑 다르지! 제란드 형은 무슨 마수 상대라도 할 것처럼 칼을 골랐잖아! 난 정말 가볍게 도시를 거닐 수 있는 차림새였다고! 게다가…….”
슬쩍 낮춰진 목소리로 멜란드는 셔츠에 가려진 가슴팍을 쿡쿡 쑤시며 말을 잇는다.
“이것도 눈에 띄지 않게 잘 감췄는데! 왜 이런 걸 한 겹 더 입히냐고! 여기 춥지도 않구먼! 게다가, 페란드 형은 여기다 방호 처리까지 했어! 아니, 왜?”
투란은 킥킥거리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멜란드가 몬스터 엠블럼, 황금매의 문장을 매의 문장으로 위조해 놓은 것을 다시 덮어씌운 위장 문신 위로 셔츠를 입혀 놓고 가죽 갑옷 수준으로 살짝 변환시켜 놓은 버린 페란드의 배려인데, 확실히 조금 지나쳐서 막내에게 잔뜩 간섭한 꼴이기는 했다.
모처럼 불끈불끈한 맨살을 드러내고 거리를 쏘다니면서 가벼운 기분을 만끽하려고 한 멜란드에게는 옷차림이 바뀌기만 했지, 딱히 도시 안이라는 기분이 전혀 나질 않게 하는 상황인 셈이었다.
물론 그렇게 막냇동생에게 이런저런 간섭을 한 페란드는 자신의 든든한 갑주를 벗는 것을 불편해했고, 지금도 조금 어색한 듯이 정리해서 싸맨 갑주를 담은 배낭을 등에 꽉 붙이려는 듯이 단단하게 당겨 잡은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위아래 노출 없이 소매가 단단히 달라붙은 차림새였고, 갑옷 형태는 없지만 잘 조여진 채로 빈틈이 없어 보이는 페란드의 모습이었다.
그 곁에는 제란드가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위쪽은 멜란드랑 비슷한 차림새지만 아래쪽은 단단한 가죽신과 두껍고 긴 바지를 입은 채로 함께 걷고 있었다. 왼쪽 팔뚝에 고리가 잔뜩 끼워진 두툼한 가죽끈을 감아 둔 듯한 토시가 아니었다면 딱히 도드라진 구석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세 형제의 모습을 보면서 투란은 슬쩍 다시 자신의 차림새를 점검했다.
전술적인 관찰이니 뭐니 했지만, 계속해서 얌체처럼 세 형제랑 가게 주인이 함께 어울려 툭탁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열심히 한구석을 뒤져서 챙긴 옷가지였다. 바지 쪽은 속옷 삼은 얇게 저민 그림모스의 가죽을 덮는 역할로서 적당히 두꺼운 천으로 된 것을 골랐다. 웃옷 쪽으로는 투란 역시 멜란드처럼 적당한 형태의 문신으로 가슴팍을 위장했지만, 역시 두꺼운 천으로 이뤄진 셔츠를 입은 채였다. 이 셔츠는 팔꿈치까지 덮는 가벼운 소매를 달고 있었고, 맨살이 드러나야 할 팔뚝에는 적당한 토시를 감아 뒀다. 아무래도 투란 역시 대책 없이 맨살을 드러내고 다니는 멜란드 쪽보다는 페란드와 제란드처럼 어느 정도 방어를 하는 편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금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래도 투란과 페란드, 제란드보다는 멜란드의 차림새가 더 당연한 느낌이었다. 어쩐지 멜란드만이 이 도시에서 살던 사람 같고, 셋은 멀리서 막 도착한 낌새가 역력하다고나 할까? 물론 멜란드도 처음 고른 차림새였다면, 좀 지나치게 헐렁해서 주변과 어울리지 않았을 터였다.
‘시알라는 어떻지?’
갸웃하면서 투란은 페란드와 제란드 너머를 바라봤다.
시알라는 느긋하게 걸어오면서 주변을 차분히 둘러보는 모습이었다.
원래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한 탓에 갖췄던 차림새 그대로, 시알라는 여전히 후드 달린 로브로 감싼 듯했지만 로브 아래 옷가지는 갑주로 보이는 부분을 모두 걷어낸 채였다. 위아래, 당연한 듯이 편안한 차림이었지만 지금 펼쳐진 로브 속에 보이는 허리춤으로는 스커트 타입의 망토가 한 겹 더 보였다. 노골적인 갑주 형태를 바지에서 떼어 낸 대신, 시알라는 넓은 담요로 쓸 수 있는 망토를 스커트 형태로 둘러 버린 것이다. 그 스커트 안쪽에는 주렁주렁 주머니를 끼워 넣고 바지를 입은 채였지만, 그럭저럭 주변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헤에, 멜란드랑은 또 다르게 도시에 어울리네? 역시…….’
속 알맹이를 따지자면 시알라는 페란드나 제란드처럼 챙겼지만, 겉으로는 딱 멜란드처럼 보이는 셈이었다. 투란처럼 눈치 보지 않고 챙겨입은 시알라였지만, 저런 상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벅벅,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투란은 다시 계단 아래로 펼쳐진 알드바인을, 계단을 중심으로 알드바인이 한껏 펼쳐 내는 풍경을 둘러봤다. 강력한 장비도 없이, 최소한이라고 여겨지는 칼 한 자루 없이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의 낯선 모습을…….
“아래쪽의 여관이 장기 숙박에 유리하다고 했지?”
문득 제란드가 말문을 열었다.
이 소리에 투란이 ‘아, 그랬지?’ 하는 대꾸를 했고, 멜란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페란드가 계단으로 발을 디디며 말한다.
“내려가서 둘러봐야지.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찾아봐야지. 거기까지는 추천을 안 해 줬잖아.”
살짝 한 손을 흔들면서 하는 소리였고, 은근히 로열 가든의 징표를 짚으면서 마스터 홀시딘을 향해 한마디 하는 말이었다. 대강 큰 틀은 잡아 주지만, 더 세세한 부분으로는 알아서 하라는 것이 바로 마법사가 인도하는 방법이었다. 덕분에 소소한 부분이 자잘하게 귀찮아지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알드바인에 대해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듯도 했지만!
“흠, 저 물가…… 항구 근처에도 여관이 있을까?”
투란이 냉큼 페란드를 앞질러 내려가면서 소리쳤다.
멜란드가 재빨리 투란처럼 내달리면서 말한다.
“거긴 너무 멀잖아? 길도 복잡해 보이고!”
둘의 깡충거리는 모습을 보던 페란드는 배낭끈을 조금 더 당겨 잡으면서 발걸음을 서두르며 외친다.
“머물 곳부터 찾은 다음에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잖아! 처음 본 여관에 바로 들어갈 거 아니라고! 천천히 가!”
제란드는 시알라가 곁에 온 다음에야 느긋하게 앞선 일행의 뒤를 쫓듯이 한 걸음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