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31)
Chapter 87. 금기 마법, 파나틱 플레임
‘뭘 하고 있는 거냐, 투란?’
홀시딘은 입을 꽉 다물고, 자신에게 묻듯이 생각해야 했다.
왼팔에 감긴 로열 가든의 징표로부터 오는 신호가 명확하기 알려주고 있기는 했다.
이틀째, 투란이 저 너머에 살아있으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하지만 그뿐이었다.
로열 클래스의 증거는 그 이상의 다른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홀시딘의 마법으로 저 건너편을 탐지하려 해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저 에어레스를 기반으로 둘러쳐진 마법의 울타리, 몰튼노트의 확산을 막고 가두기 위한 저 장벽 마법은 상아탑의 마스터라도 혼자서 그 내막을 파헤치고 해체하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혹여나 로그메이지 중에서 상아탑 마법사에 견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지닌 자가 나타나 멋대로 해체해서 세상에 재앙을 풀어놓는 짓이라도 생길 수 있으니까, 아예 상아탑의 마도사조차도 손댈 수 없게 짜놓은 마법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장시간에 걸쳐 저 장벽의 안팎을 연구할 수도 없게, 마법의 탐지조차 방해하고 막아선다!
그런 장벽의 경계를 넘어서 투란이 ‘살아’ 있고,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전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새삼스럽게 로열 가든, 로열 클래스의 마법에 감탄은 하게 되지만 이 또한 시크릿 키퍼에게 모든 것을 전부 알려주는 마법은 아니었다. 로열 클래스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아니다 싶으면, 로열 클래스에 속하게 된 자가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려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수호자 노릇을 하는 마법사에게조차 비밀은 비밀로 덮어두는 마법이었다.
그런 까닭에 홀시딘은 자신이 세워놓은 망루에 앉아, 투명한 벽 너머로 멀리 보이는 저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투란, 거기서 대체 뭘 하는 거야?’
벌써 하루가 훌쩍 지난 이틀째이기 때문에, 담대하고 뻔뻔한 태도로 푹 쉬고 일어난 홀시딘이었지만 슬그머니 염려가 시작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딱히 투란이 죽는다든가 크게 다쳤다든가 하는 상태가 아니란 점은 훤히 알고 있었지만,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저 건너로 날려볼 때 이미 대응책도 갖춰놨기는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니 홀시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살그머니 피어나는 셈이었다. 미리 세워둔 대책이 소용없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으므로.
만약 투란이 지금 저기서 몬스터 로드의 광란에 빠졌다면?
몬스터 엠블럼이란 예상할 수도 없고, 예측 범위에서도 벗어난, 마법을 초월했다 싶은 마법의 결정체란 것을 아는 상아탑의 마도사이기 때문에 홀시딘은 이제 슬슬 ‘캘러미티 로드’에 대해 걱정을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차하면 로열 가든으로 보호…… 감금할 수 있으니까 괜찮기는 하겠지만, 저 지역을 몽땅 차지할 정도로 미쳐 날뛰는 거라면…… 가능하려나?’
로열 클래스를 보호하는 마법이지만 그 보호 상태란 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마법의 정원 안에 미쳐 날뛰는 몬스터 로드를 가둔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에 시크릿 키퍼로서 특별한 권한이 부여된다고 해도 역시 마도사로서 홀시딘의 역량이 꽤나 필요하고 소모될 터였다.
홀시딘은 왼쪽 주먹을 꽉 쥐면서 심호흡을 했다.
‘죽으려나?’
시크릿 키퍼가 된 마도사가 어떤 말로(末路)를 맞이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애초에 시크릿 키퍼가 되었다는 것도, 누구의 비밀을 지키는가도 전혀 전해지지 않으니까. 로열 클래스의 시크릿 키퍼로서 알아야 할 한정적인 지식만 전해질 뿐이지,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자에 대한 기록은 전혀 물려받지 못했다. 단지 이 징표를 얻으면서 마도사로서 홀시딘 스스로 깨닫고 알아차릴 수 있을 뿐이었다.
만약 한 사람 분의 역량으로 부족하다면 이 로열 가든의 마법은 두 번째 시크릿 키퍼를 찾아 전이될 터이고, 첫 번째 수호자의 생명을 거둘 터였다. 처음부터 이 마법이 상아탑의 율법과 서약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럼, 다음에는 케이라에게 넘어갈까?’
홀시딘은 문득 자신의 뒤를 이을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온 제자…… 이제는 알드바인의 마스터가 되버린 마법사에 대해 떠올렸다. 아무래도 홀시딘이 감당못해 넘긴 마법을 이어받는다면, 케이라가 이 근처에서 거의 유일한 자격을 갖췄을 듯싶다.
‘엄청나게 욕 먹겠는데?’
피식, 홀시딘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어째서인가 얌전하고 차분한 성격임에도 스승인 홀시딘을 대할 때는 괄괄하게 불타오르는 성질머리를 드러내는 제자가 케이라잖은가. 당연히 스승을 향해 일단 욕부터 시작할 듯싶다!
왜 멍청하게 뒈졌냐고.
‘아니, 나 아직 안 죽었어!’
퍼득 홀시딘은 고개를 저었다.
제자에게 욕 처먹을 상황을 떠올리다보니, 왠지 가슴 한 곳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생각이 저절로 고쳐지는 듯했다.
살짝 한숨을 쉬어내면서 홀시딘은 편안하게 앉은 자세를 고치면서 조금 더 허리를 펴고 저편을 향해 눈길을 모았다. 마법으로 탐지할 수 없다면, 오감(五感)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종합해서 생각함으로써 상황을 추측해야 하므로 마음이 풀어지지 않게 다시 조이고 가다듬는 셈이었다.
이런 기다림은 수 킬로미터를 넘어온 거대한 땅울림과 함께 멈춰졌다.
쿠우우우웅.
몇 킬로미터 거리를 둔 채였지만, 걸어오는 것이 100여 미터에 달하는 높이라면…… 덤으로 수십 미터의 폭을 지닌 것이라면 작더라도 또렷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중량(重量) 또한 가볍지 않아서인가, 꾸물거리면서 움직이는 낌새가 보였다 싶은 순간부터 몇 초 뒤에는 여지없이 땅울림이 은은하고 아련하면서도 또렷하게 와닿고 있었다.
쿠우우웅!
홀시딘은 긴장했다.
마도사의 감각은 마력에 의해 저절로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저 언덕을 넘어서는 거대한 인간의 형상…… 대거인의 형체가 또렷하게 홀시딘의 시각에 포착되고 있었다. 더불어 알 수 없었던 장벽 경계 안쪽의 상황이 마법에 의해 탐지되고도 있었으니, 결코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몰튼노트 더 기간틱!’
―더 기간틱.
쉽게 볼 수 없는 대거인의 시체라서 거의 유일하다는 의미로 ‘더 기간틱’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몰튼노트가 스며들고 삼켜버린 유일한 대거인의 시체, 저렇게 움직이면 더 이상 시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바로 그 대거인’이란 의미를 담아 부르는 호칭이었다.
‘바로 그 대거인’의 형체를 갖춘 몰튼노트가 땅울림을 울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홀시딘이 우두커니 홀로 앉아 차 한잔 즐기는 분위기를 꾸미고 있는 망루를 향해…… 투명한 벽 너머로, 강화된 시각과 마법의 탐지를 요란하게 자극하면서 ‘더 기간틱’이 걸어오고 있었다.
쿠웅, 쿠우웅.
시커먼 숯이 흩어지며 검은 바람처럼 흘렀다.
거대한 사람의 발자국은 새카만 웅덩이를 파듯이 찍혔고, 발목과 다리, 그 위의 몸뚱아리에서 흘러내리는 시커먼 재가 웅덩이를 바로 메우며 덮었다. 그 위로 스쳐가는 무색(無色)의 바람이 곧바로 검은 바람으로 변색(變色)되며 길게 흘러 넘치는 듯했다.
언제나 바람이 뒤틀리며 벽을 이루던 곳, 장벽의 마법이 세워져 있던 곳은 새카맣게 물들었다가 서서히 그 색채를 잃어가며 마법이 사라져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대거인은 그렇게 앞을 향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걷고 있었다.
쿠웅, 쿵.
‘투란……?’
어느새 절반 정도로 좁혀진 ‘바로 그 대거인’과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점차 우람하고 거대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그 형체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홀시딘은 쉴새없이 투란의 현재 위치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저 다가오는 녀석의 어딘가…… 높이 100여 미터, 폭 수십 미터의 어딘가 한구석에 박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몰튼노트의 영역이 고스란히 거인의 형체 속에 압축된 것처럼, 마법의 탐지가 그 거대한 몸통 주변에서 가로막히고 있는 탓이었다.
그나마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탓에 짐작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기는 했는데…… 홀시딘에게는 전혀 확신할 수 없는 한 부분이었다.
거인의 심장, 메워진 가슴의 구멍 속에 붉게 번들거리면서 이글거리는 채로 배어 나오는, 녹아내린 듯한 불길!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 형상이야말로 홀시딘이 투란의 흔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녹아내리는 불길이 ‘바로 저 대거인’=‘몰튼노트 더 기간틱’의 몸 전체에 퍼지면서 맥동하고 있잖은가! 그야말로 버닝 데드의 몸에서 자글거리고 피어난 채로 흐르는 불길과 똑같았다.
거인의 체격, 저 거대한 형체를 고려한다면 저 정도 불길은 몰튼노트의 성질로 볼 때, 아주 당연한 수준이었다.
‘도대체…… 살아있기는 하잖아, 그런데 저게 뭐야?’
홀시딘은 다시 생각을 거듭했지만, 역시 저 광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거대한 형체 속에 투란이 담궈져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2미터 안팎의 작은 몰골이 저 넓고 큰 몸통 어디에 박혀 있나를 알 수 없기는 하지만, 두 눈에 훤히 보이는 곳…… 저 가슴의 뚫린 구멍을 메운 자리, 심장 언저리가 가장 의심스럽다는 점은 분명했다. 만약 ‘더 기간틱’이 여태까지 장벽의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유일하다시피 한 장애였던 심장의 결여를 투란이 채워줬다하면, 그런 상태라고 한다면 홀시딘에게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비어버린 심장을 채워주고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여태까지 가두고 있던 장벽을 넘게 한다?
‘뭐야, 그게!’
몬스터 로드가 작은 몸집을 이용해 몬스터 체내에 파고들어 싸우는 사례(事例)에 대해서는 꽤 많이, 자주 상아탑에 정보가 쌓여 있기는 했다. 덩치 큰 놈이랑 싸울 때, 단단하고 전혀 소화될 리가 없는 몬스터의 형상이 되어서 그 체내로 직접 뛰어들어 싸우는 방식은 나름대로 이치에 닿는 전술이니까.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그 몬스터의 약점을 보완해서, 가둬둔 자리나 묶어둔 자리에서 탈출시켜준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홀시딘은 상아탑의 마법 울타리가 남긴 정보의 잔해를 재빠르게 검토했다. ‘더 기간틱’이 돌파해준 덕분에 울타리는 빠르게 상아탑을 향해 괴멸(壞滅)된 상태에 대해 경고를 보냈고, 그 경고 속에는 이제껏 가리고 감춰뒀던 울타리 안쪽이 마지막에 어떤 상태였는가에 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속에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으니, 받아둔 채로 나중에 검토하려던 생각을 고쳐먹고 당장 뒤져본 셈이었다.
그리고 홀시딘이 이렇게 꼼짝않고 앉은 채로 복잡한 마음을 바쁜 생각으로 가득 채우는 사이, ‘몰튼노트 더 기간틱’은 엎어지면 닿은 듯한 거리까지 다가왔다.
쩌억, 쿠르릉!
엎어졌다.
“흐, 어?”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지는 어린 꼬마를 보는 것과는, 그 상태와 규모가 아예 격이 달랐고 마법사로서도 평생 상상해볼 리가 없는 상황이었던 탓에 홀시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놀란 소리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 시작부터가 예상 밖이었으니!
거대한 발목이 뚝 부러지면서, 100여 미터 저편에 발을 딛는 순간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여태 잘 걸어오던 발목이 왜 부러졌는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릎도 부러졌고, 갑작스럽게 발목을 끊어놓은 균열이 몸을 타고 번져가면서 엎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손이 앞으로 내밀어지는가 싶더니, 그 손바닥 위로 거인의 머리통이 뚝 떨궈지고 있었으니…… 바로 눈앞에서 산사태가 덮치는 광경이 이럴까 싶었다. 물론 산사태가 얌전히 손안에 뭉친 채로 내밀어지듯이 떨궈지는 경우는 없다!
이쯤에서 홀시딘은 더 생각하며 검토하기를 멈췄고, 그냥 어이없어 지켜보기만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콰륵, 콰르륵! 쿠르륵.
촉매를 잔뜩 써서 지어올린 망루 앞으로, 거대한 머리통이 손바닥에 올려진 채로 주르르 밀려왔고 충돌할 듯 말 듯한 자리에서 딱 멈췄다.
곧바로 땅울림이 망루의 아래부터 타고 올라왔고, 엉덩이 붙인 자리가 덩달아 바르르 떨며 우는 듯했다.
거인의 이마팍, 망루랑 딱 마주한 자리가 폭삭 뭉개지면서 어기적거리는 몰골 하나가 꾸물꾸물거리면서 기어나온 것이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온몸의 갈라진 틈새로 이글거리는 작은 불길이 넘실대는 몰골이었다.
홀시딘에게 그 느릿하고 가냘픈 꼴은, 젊은 시절부터 자주봐서 꽤 익숙했다.
물론 홀시딘이 젊은 시절에 본 것 중에 저렇게 거대한 머리통에서 마법의 망루로 건너오겠다는 경우가 없기는 했고…… 벽을 손가락으로 긁으면서 저딴 소리를 내뱉는 경우도 없었다!
“크아앙! 버닝 데드다앙! 무섭지롱!”
실룩실룩, 홀시딘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투명한 유리벽이 느슨하게 풀리면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