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33)
거뭇한 땅거죽이 광택을 흘려냈다.
작은 모닥불이 자리 잡고 뭉친 것처럼 타오르는 탓이었다.
불빛은 사방을 밝히지 못했고, 세 방향으로 갈라진 채로 흩어져나갔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세 방향, 세 사람이 앉은 자리 뒤에 크고 작은 벽이 가로막고 있는 때문이었다. 벽은 모두 벽감을 갖춘 채였고, 불빛이 그 속에 담긴 물품의 그림자를 끌어내며 살랑이게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 마련한 식사를 하는 중이었고, 가장 작은 벽 앞에 앉은 가장 작은 체격의 홀이 손을 내밀 때까지 묵묵히 식사만 했다.
“무, 물 좀!”
내민 손이 자신을 향한 꼴을 보면서 하펠이 고개를 팍팍 젓는다.
“물통 있잖아! 네가 담아온 물 마셔!”
목이 메이는 것을 풀려는 듯이 가슴을 두드리면서 홀이 대꾸한다.
“다 마셨다고! 물 좀!”
이는 곧바로 하펠의 얼굴에 음흉한 웃음을 떠올리게 했다.
“호오? 다 마셨어? 마법사라면서, 다 마셨어요? 미리 준비해온 물이 모자란 것도 문제지만, 적절히 조절 않고 그냥 싹 다 마셨어요? 후후훗, 그렇다면! 고통 받아랏!”
“이 치사한……!”
“뭐가 치사해! 물통을 더 챙겨오지 못한 자신을 탓하라고!”
가슴을 두드리면서 목메임을 풀려는 홀을 향해 하펠이 보다 신난다는 듯이 나무라는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둘을 보면서 제론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고, 잔소리와 함께 자기 물통 하나를 홀에게 던져준다.
“여기, 이거 받고. 둘 다 그만 좀 해라. 애들도 아니고…….”
홀이 물통을 입에 대고 들이붓는 모습을 보며 하펠이 코웃음을 친다.
“애도 아닌 녀석이 물도 제대로 챙겨오지 않았잖아!”
목을 푼 홀이 곧바로 이에 반박하며 으르렁거린다.
“제대로 챙겨왔거든! 예정대로 일이 끝났으면 며칠 동안 목욕을 할 수도 있었다고! 지금 며칠째인지 생각은 하는 거야?”
하펠은 여전히 코웃음치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눈알을 살짝 데굴거리면서 재빠르게 날짜를 셌다. 그리고…….
“십삼 일. 열셋째 날의 밤이잖아? 음, 원래 예정이었다면 그러니까…….”
“팔 일. 원래 예정은 팔 일차에 여기 일 끝내고 돌아가는 거였다고! 나한테 그런 예상 일정표를 보낸 마법사 하펠, 책임져야 할 때가 아니신가!”
홀이 눈꼬리를 치켜올리면서 따졌다.
그러나 하펠은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고…….
“홀, 내가 너에게 준 일정표는 내가 짠 것이 아니야! 만약 누군가 그걸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제론, 일정표를 짠 바로 네 책임이다! 아, 그래서 물통 건넨 거였구나?”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는 말투는 곧바로 제론이 낯을 찌푸리게 했다.
“동료간에 서로 돕고 나누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부터 해라, 마법사 하펠!”
하펠은 혀를 낼름거리면서 ‘내가 왜?’ 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 꼴에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면서 홀이 제론에게 묻는다.
“대체 왜 일정이 어긋난 거야?”
장난끼없이 진지한 물음은 제론이 잠시 눈매를 좁히면서 생각에 잠기게 했다.
하펠은 그 모습에 식사를 다했다는 듯이 그릇을 정리하고, 자신의 뒤에 세워진 벽감 속에 담았다. 홀은 하펠의 그릇이 차곡차곡 벽감에 담기는 꼴을 보고 나서 간단하게 손을 털어 그릇없이 이뤄진 식사를 마쳤다.
제론은 둘이 정리하는 모습에 자신도 정리를 시작하면서 다시 말문을 연다.
“원래…… 이곳 경계를 유지관리하는 일은 세트반의 상아탑 쪽에서 맡아왔어. 알드바인의 상황이 꽤 괜찮아졌다고 마스터 엘투란께서 큰소리를 좀 치신 바람에 올해에 떠넘겨진 거야. 뭐,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면 대충 정리하라고 다시 지원을 줄이려 했을 테니까 마스터에게는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보다는 큰소리 치고 지원 받는 쪽을 선택한 걸로 볼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강요받은 부분이 있다고 봤어. 그래서 이전 유지관리하던 세트반 쪽에서 어느 정도 인원을 여기에 보내는가도 알아봤지. 중급 마법사 둘, 견습인 하급 마법사 다섯 정도가 나흘 정도 걸린다고 하더군. 몇 년 동안 계속 그 인원을 유지한 것도 확인했지.”
“잠깐, 그거 제대로 확인한 거야?”
하펠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번에는 홀이 갸웃하면서 묻는다.
“그 인원으로 나흘 만에 정리를 끝냈다고? 어떻게?”
하펠도 이 물음에 동조하는 듯이 ‘정말 어떻게?’ 하는 중얼거림을 토했고, 제론이 미묘하게 찌푸린 표정으로 하던 이야기를 잇는다.
“장벽 마법의 유지보수 하는 과정에 대한 보고서도 연감(年鑑)에서 찾아 모두 읽어봤어. 우리가 겪은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지. 버닝 데드인 키클롭스가 장벽을 두드리고 틈새를 찾아내려 맴돈다든가, 작은 크기의 버닝 데드가 장벽 밖에서 형성돼서 싸돌아다닌다든가 하는 내용이 전혀 없었다고. 그래서 별일 없이 장벽을 점검하고 혹여나 잘못되고 어긋난 것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우리 셋이면, 확실한 중급 마도사 셋이라면 나흘도 걸리지 않고 정리할 수 있다고 예상했었지.”
“나흘 안을 예상했다고?”
하펠이 제론의 어깨 너머를 보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불쑥 묻는 소리를 냈다. 홀이 바로 이에 동조하듯 혼잣말처럼 길게 중얼거려 묻는다.
“나흘 예상했으니까 얼렁뚱땅 두 배로 일정을 잡아버린 것까지는 이해하겠어. 근데 내 동기이신 마법사 제론께서는 대체 어째서 한 달 이상의 소모품들을 준비해서 다 싸 들고 오신 거래요?”
하펠이 곧바로 고개를 세게 끄덕이면서 ‘나도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론은 둘을 향해 조금 뚱한 표정을 흘리면서 대답한다.
“우선, 내가 너네보다 몸집이 크니까. 그리고 난 여유 있게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잖아. 배고프고 목마른 거 싫어. 이게 개인적인 이유이고…… 알드바인으로 귀환하지 않을 경우를 예상해서, 너네 몫까지 미리 챙겨 온 거야.”
“응? 그건 무슨 예상?”
하펠이 의아함을 토하는 사이에 홀은 ‘헉? 납치!’라는 소리를 했고, 발끈해서 노려보는 제론에게 혀를 낼름했다. 제론은 한숨짓는 표정으로 ‘뭔 예상!’ 이라며 보채는 하펠을 향해 대답한다.
“생각보다 이쪽 일이 쉬워보여서, 여차하면 바로 마스터를 지원 갈 수 있겠거니 싶었다고.”
“어?”
“아…….”
하펠은 조금 놀란 듯했고, 홀은 납득한 듯했다.
하펠이 바로 홀에게 묻는다.
“마스터가 사냥하러 간 몬스터가 지원까지 필요한 놈이었냐? 왜 너네는 아는데 나는 모르는 거지?”
“에, 그게…….”
홀이 조금 미적거리면서 제론을 흘깃했다.
하펠의 눈매가 가늘어진 채로 제론을 향했다.
제론이 머리를 긁적대면서 대답을 한다.
“트라이헤더(Triheader).”
“그건?”
“그래, 하펠 네가 예전에 몬스터 사냥법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서, 트라이헤더를 본보기 삼아 사냥계획을 짜놓은 거. 마스터 엘투란은 상급 마도사 이상이 나설 경우에 네 계획이 굉장히 현실성이 있다고, 둥지 안에 틀어박힌 그 머리 셋인 거북뱀 괴물을 하펠 네 계획대로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셨어. 음, 그리고…….”
“근데 왜 날 안 데려가고 세비앙을, 그 멍청한 년을 데려가셨는데!”
하펠이 제론의 말을 자르면서 성난 소리를 질렀다.
홀이 씩씩거리는 하펠을 향해 대놓고 혀를 차면서 대꾸한다.
“그렇게 성질 부릴 테니까 아예 하펠에게는 일 끝날 때까지 말하지 말라고 하신 거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알드바인의 동료에게 대뜸 욕부터 꺼내는 그 성질부터 고치라고!”
“닥쳐, 이 꼬맹아! 제론, 이유가 뭐야! 넌 들었겠지?”
하펠이 땅바닥에서 거뭇한 돌을 집어 홀에게 던질 듯한 손짓을 하다가 모닥불에 내던지면서 씩씩대는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홀은 움찔거리며 혹시 돌이 날아들면 피하겠다는 시늉을 했고, 제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우선, 보조해줄 마법사는 세비앙 정도면 충분하다 하셨어. 네 계획대로라면 말이야.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경우라도, 세비앙 한 명이라면 어렵지 않게 데리고 도망칠 수도 있으시다고. 하지만 세비앙을 이쪽으로 보내놓으면 여기 일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다고 하셨지. 큰소리는 치셨지만 알드바인의 현재 상황이 넉넉한 인원으로 이쪽 일을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 소수의 기량으로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파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신 거야. 음, 그리고 내가 너랑 함께 여기 일을 하겠다고 추천했어. 설명 끝.”
하펠은 뭔가 납득하기 싫다는 듯이 끙끙거렸고, 홀이 모닥불 속에서 달아오르는 돌을 보며 눈살을 지푸린 채로 말한다.
“마스터 엘투란께서 하펠 성질 고약한 부분을 고려하신 것이라든가, 세비앙이 여기 일에 제 몫을 못할 거라 생각하신 부분까지는 이해하겠어. 근데, 제론은 왜 지원할 궁리를 한 거야?”
이 소리는 제론보다 하펠이 먼저 흠칫해서 다시 말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그건 또 무슨 이유야?”
“너…… 그거 과제받아서 쓴 거라는 거 기억은 하고 있냐? 과제니까 빨리 해치우겠다고 팔딱거리면서 절반쯤은 영웅담의 내용을 고스란히 변형시켜서 썼잖아! 쓰고 나서 그럴듯하다고 히죽거린 꼴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군!”
“그, 그건…… 영감(靈感)은 어디서든 얻을 수 있는 거잖아!”
“하아…… 그래, 영감은 어디서든 얻을 수 있지. 하지만 그 영감을 실현하려면 엄청 쪼잔한 상황을 겪어야 한다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도 당연하고. 자기가 짠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을 심하게 겪고 나면 마음에 상처가 남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너 대신 세비앙을 데려가신다고 했지. 그러니까 나는 당연히 걱정할 수밖에! 알드바인의 현 상황을 고려해봐. 호수로 나가는 길목에 둥지를 튼 트라이헤더를 잡는 거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마스터는 안 되면 도망친다고 하셨지만, 이번에 반드시 해치울 작정으로 나선 거라고. 그렇게 물러서지 않고, 상황이 길어진다면 지원이 필요하잖아.”
“근데 왜 세비앙이야?”
투덜거림이 하펠의 입에서 다시 되새김질처럼 나왔다.
제론이 눈가를 꿈틀하면서 하펠을 노려봤고, 홀이 쯧쯧 하면서 대꾸한다.
“이름만 나오면 불평을 토해내는 하펠이랑 다르게 세비앙은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쉽게 움츠러드니까, 이번 일을 통해 책임감도 키우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서 성장하길 바라신 거겠지. 어쨌든, 세비앙도 알드바인의 마법사잖아.”
하펠은 입을 꾹 다물었고, 제론이 홀의 말을 잇는다.
“마스터 엘투란으로서는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서 인적자원을 배치한 거니까, 불평은 그만해! 아무튼 그런 상황이라서 나도 이것저것 고려해서, 우리 일정이 꽤 빨리 끝날 경우를 가정했고 마스터 엘투란 쪽의 일이 조금 꼬일 경우에는 바로 그쪽으로 갈 수 있게 대비한 거야.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 쪽이 완전히 꼬여서 그쪽으로는 전혀 신경 쓸 여지가 없는 꼴이 되고 말았지.”
“대체 우리 일정은 왜 꼬인 거야?”
투덜거릴 핑계를 찾는 듯, 하펠이 다시 묻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홀이 하펠의 편에 서는 듯이 물음을 더하고 있었으니…….
“정말 왜 이리 꼬이게 된 거야? 일정을 예상한 것보다 많은 소모품, 식량을 챙겨온 것까지는 이제 납득하겠는데…… 애초에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거야? 연감을 통째로 외우고 대비했다는 제론이?”
“끄응! 아까 말했잖아! 나도 여기 일은 이틀이나 사흘 안에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마 우리가 마스터가 잡은 사냥 일정보다 더 오래 여기 있을 줄 몰랐어! 도대체 세트반 녀석들은 여기서 뭘 어떻게 한 거냐고! 지난해까지 이런 상황에 대한 보고 내용이 전혀 없었다니까!”
제론이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투덜거렸다.
홀은 물통을 흔들면서 ‘흐흠.’ 하는 소리를 냈고, 하펠은 조금 낯을 찌푸리다가 한숨과 함께 말한다.
“어쩔 수 없구만. 이렇게 되면…… 역시 우리보다 마스터 쪽 일이 먼저 마무리 지어졌겠지?”
“그렇겠지. 성공했든 실패했든, 네 사냥법은 길어봐야 열흘 안에 끝장 보는 거니까.”
제론도 한숨과 함께 대답하고 있었다.
홀이 한숨을 공유하는 둘을 흘깃거리며 말한다.
“우리, 이제까지 경과 보고 한 번도 안 했잖아? 아침이면 끝나겠지만, 그래도 돌아가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의 경과보고는 해야 하지 않아?”
“음…… 그것도 그렇지.”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펠은 바로 자신의 벽감을 뒤져서 주섬거리며 수정판 하나를 꺼냈다.
“내가 연락을 할게. 아무래도 너네보다 내가 물어볼 일이 많잖아.”
“야, 보고라고 보고! 저쪽 소식을 듣자는 게 아니라!”
제론의 구박을 외면하면서 하펠은 수정판 위로 손을 움직였다.
수정판이 밝아졌고, 가벼운 울림이 말이 되어 흘러나온다.
“알드바인, 신호 받았습니다.”
“어, 여기…… 마법사 하펠과 두 명. 불길의 평야에서 마스터에게 보고할 일이 있습니다. 마스터와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마스터에게로 교환합니다.”
수정판의 광채가 일렁이면서 색이 바뀌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얼굴이 수정판 속에 찰랑거리는 물결에 비춰지는 것처럼 나타났는데, 하펠의 기대에 찬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지며 놀란 소리가 나왔다.
“켈브란? 상급 마도사 켈브란?”
제론과 홀이 ‘엥?’ 하는 소리를 내면서 서로를 마주 봤다.
알드바인의 마법사 중에는 상급 마도사 켈브란이란 사람이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