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3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34)
“음, 자네는…… 오? 몇 년 전에 알드바인으로 옮겼다는 말은 들었지, 하펠! 오랜만이군.”
“오, 오랜만…… 아니, 저는 지금 마스터에게로…….”
“아, 내가 지금 알드바인에서 유일하게 활동가능한 마스터라서 내게 연결된 거야. 아하, 그러고 보니 하펠 자네는 내가 마스터 레벨이 된 걸 모르고 있었나 보군! 아핫, 놀랐는가?”
“예, 아주 놀랐습니다. 켈브란, 어째서 지금 알드바인에 마스터가 당신이 유일하다는 거지요?”
어느새 하펠의 목소리는 가라앉은 채였고, 아주 평이한 말투였다.
제론과 홀은 그런 하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웬만큼 성질이 돋은 다음에야 나오는 ‘냉철한’ 하펠의 모습인 탓이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제론이 문득 기억해낸 듯이 낮게 중얼거린다.
“켈브란이면……, 세트반의 상급 마도사?”
홀이 고개를 갸웃했고, 그 사이에 하펠이 들어올린 수정판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아, 며칠 동안 전혀 연락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던가. 마스터 엘투란은 지금 가사(假死) 상태시라네. 트라이헤더와 격전 중에 크게 다치셨지.”
“에? 예!”
하펠뿐 아니라 제론과 홀도 덩달아 ‘어?’ ‘뭣?’ 이란 소리를 동시에 크게 내고 말았다. 켈브란의 목소리가 다독이는 말투로 이어진다.
“보조로 데려갔던 마법사가 촉매를 잘못 관리한 탓에 트라이헤더에게 심하게 반격을 당하셨다더군. 그 마법사는 현재 구금상태이고…… 알드바인의 정황 때문에 내가 세트반에서 파견을 나온 거야. 음, 이게 벌써 나흘 전이로군. 그래서 자네가 마스터를 요청했을 때 내가 이렇게 바로 연결된 거지. 그런데, 무슨 일인가? 그쪽에서도 뭔가 좋지 못한 상황인가? 지난해까지는 별일 없었던 걸로 아는데? 새로운 변화가 생겼는가?”
“아닙니다. 내일 아침 정도면 일을 마칠 수 있어서, 귀환 예정을 보고할 참이었습니다.”
하펠은 아주 평온하게 말했고, 동시에 수정판을 아래쪽에서 두드리는 묘한 손짓을 했다. 두드림으로 번진 작은 울림과 함께 수정판 위로 상반신의 사람 형상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처럼 생겨났다.
덕분에 제론과 홀은 켈브란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바로 볼 수 있었고, 동시에 서로를 흘깃하면서 갸웃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하펠이 켈브란의 모습을 굳이 둘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가? 딱히 특이한 외모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가. 그렇다면 가능한 빨리 돌아오길 청해야겠군. 지금 알드바인에는 자네들 정도의 마법사가 꽤 필요하니까 말이야. 달리 할 얘기는 없는가?”
“지금은 없습니다. 보고서라면…… 아직 써놓지를 않아서…….”
“문서 보고? 그런 건 돌아와서 천천히 하게. 그럼, 일 잘 마무리하고 오게나.”
수정판 위의 형상이 나긋하고 유쾌한 표정과 태도를 보이고 나서 사라졌다.
제론은 켈브란의 모습이 마지막에 보여준 담담한 미소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고, 홀은 그런 제론의 태도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이상한 거야?”
하펠이 수정판을 아예 헝겊으로 휘감아 구석으로 꽂아 넣는 사이에 홀이 제론에게 묻고 있었다. 제론은 홀의 물음에 곧바로 대꾸한다.
“지금 한 얘기 중에 뭔가 재밌는 일이 있었나?”
“응? 재미? 하펠, 제론이 뭐라는 거야?”
홀은 수수께끼 풀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두 손을 늘어뜨린 채로 한숨 쉬는 자세로 앉은 하펠에게 물었다. 하펠은 이 물음에 아주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를 하는데, 이는 제론을 향한 물음이었다.
“제론, 느낄 수 있었어? 우리 조작당하고 있었다는 거.”
홀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론도 구겨진 인상으로, 애써 목소리를 낮추듯이 대답한다.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냥 느낌이 아주 좋지 않기는 했다. 그리고…… 조작이라고 보기에는 범위나 규모가 너무 크지 않나?”
“에잇, 진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고!”
홀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제론과 하펠에게 묻고 있었다.
하펠이 홀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부터 하고 제론에게 말한다.
“연감, 읽지 않은 부분도 몽땅 기억하고 있지?”
“응? 아, 그야 뭐…….”
제론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을 익히기 위한 기초훈련인 ‘마인드 트릭’, 그 중에는 기억과 관련된 기술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고스란히 기억에 담아둘 수 있는 심리적인 기술이었다. 연감이라든가 도면 따위를 당장 이해하면서 보는 대신에 일단 기억해두고, 나중에 그 형태를 떠올려서 차분히 ‘읽어’보는 것 또한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마법사가 누군가와 말싸움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세세한 것을 짚어내다가 사악하다는 소리도 종종 듣기도 하는…….
“지난해까지 여기 보수 관리로 파견된 녀석들, 세트반에서 그 녀석들을 선별해서 보낸 관리자를 찾아봐. 주 관리자만 찾지 말고, 보조까지 다 찾아서…… 공통된 이름이 나오는가 확인해봐.”
“음, 기다려봐. 세트반에서 파견된 파티…….”
제론이 잠시 자기 앞에 무언가를 그리는 듯, 더듬는 듯한 손짓을 했고 곧이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말한다.
“켈브란. 전부 관여했는데? 쥬레인에서 세트반으로 이곳 관리가 넘어온 다음부터 오 년간, 여기에 파견되는 마법사 선별에는 전부 상급 마도사 켈브란이 관여했군. 하펠, 확실히 여기서 뭔가 꾸미려 했다는 의심은 품을 수 있겠어. 하지만 아직 조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 알지?”
“우리 쪽으로…… 알드바인으로 이 불타는 평원의 장벽 관리가 넘어오는 얘기가 있을 때, 마스터 엘투란과 함께 세트반에 갔던 마법사 목록을 점검해봐. 거기…… 세비앙이 있지?”
“응? 그건 연감의 보조항목이니까, 인수인계…… 어디 보자…… 있군. 그때도 세비앙은 마스터의 보좌역으로 따라갔었어.”
다시 공중을 더듬는 손짓을 하고 제론이 대답했다.
홀은 주고받는 얘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난 것을 바로 말한다.
“가서 꽤 괜찮은 마법사랑 만나고 왔다고 했었는데? 음, 젊고 잘생긴? 세트반의 귀족이기도 한 마법사 얘기를 꽤 하던 것 같더라고.”
제론도 이 소리에 ‘어?’ 하다가 보태 말한다.
“그랬지. 마녀들끼리 얘기에 관심없다고 하펠은 그런 쪽에는 귀를 닫고 살았으니까 모르겠지만…… 자기 얼굴도 나름대로 잘생겼다고 투덜대던 녀석들도 꽤 있었으니까.”
하펠은 둘이 하는 말에 눈살부터 찌푸렸다.
“켈브란의 도제(徒弟) 노릇을 하는 엔바르 가문 출신 녀석일 거야. 이름은…… 엔바르 알툼, 아마 그 비슷할 텐데…….”
“엔바르 알투무스. 켈브란과 함께 여기 파견된 마법사 인력관리에 참여했군.”
제론이 바로 허공을 짚으면서, 기억 속의 연감을 뒤척이며 말해줬다.
하펠이 씁쓸한 표정과 함께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조합이 갖춰졌어. 우린 분명히 조작당했다. 설마 알드바인을 거점으로 삼을 궁리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하펠, 설명을 하라고, 설명을! 제론, 제론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알아듣겠어?”
홀이 조금 날카롭게 말했다.
모닥불이 홀의 외침에 반응하듯 조금 길고 세찬 소리를 내면서 태우고 있던 나무토막 하나를 부러뜨렸다.
제론은 그 부러지는 나무토막을 응시하면서, 조금 더 깊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뭔가를 ‘읽는’ 듯한 모습으로 말한다.
“홀, 나도 그렇게 납득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하펠이 하려는 말은…… 세트반의 상급마도사 켈브란, 이제는 마스터가 된 켈브란이 오래전부터 알드바인을 놓고 뭔가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는 거야. 그 결과, 마스터 알투란은 지금 생명이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우리는 여기서 전에 없던 힘겨운 상황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곧바로 홀이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고, 제론은 자신이 정리해 내놓은 말은 이미 오가는 대화 중에 홀도 넉넉히 알아차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얼른 보태 말한다.
“하펠, 이 이야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는 거 알고 있지?”
“빠진 부분? 뭘 말하는 거야?”
하펠은 의아해 했다. 이 정도 이야기했는데 왜 제론이 납득할 수 없는가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 정도면 당연히 알아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표정이 역력한 채로!
제론이 혀를 찼고, 홀이 불쑥 말한다.
“마스터 켈브란이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는데?”
“응? 아, 동기! 그렇군. 너네는 켈브란의 동기를 모르겠군.”
하펠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신이 너무 당연하다 생각해서 빠뜨린 부분이 뭔가를 겨우 알아차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제론이 눈살부터 찌푸리고 어이없어 하며 묻는다.
“그럴 까닭이 있다는 거야?”
“사망률.”
짧고 무거운 한마디가 하펠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응?”
“엥?”
당연히 제론과 홀은 눈을 껌벅이면서 ‘뭐라는 거야?’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펠이 쓴웃음을 짓고, 불타는 평야의 장벽 쪽을 흘깃하면서 말한다.
“상아탑 마법사의 사망률, 로그메이지의 사망률. 섀터드 세븐, 이 신생 칠왕국의 영토 안에서 따져본 양쪽 사망률.”
“그런 것도 계측하고 있었나?”
홀이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펠이 고개를 저었다.
“안 해, 보통은.”
“켈브란은 했나 보군? 그래서?”
제론이 재촉했다.
“기록도 흩어진 채로 되어 있고, 대부분 거기서 끝나. 하지만 켈브란은 그 기록을 모아서 사망률을 확인했어. 그리고 그 때문에 아주 더러운 생각을 시작했지.”
“야, 네 감정은 좀 빼고 설명해라.”
제론이 하펠의 험악해지는 소리를 경계하듯 말했다.
홀도 고개를 끄덕였고, 하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험한 말을 골라내는 듯 고른 말투로 말을 잇는다.
“켈브란이 확인했을 때, 로그메이지 한 명이 죽어나갈 때 상아탑의 마법사는 최소 일곱, 여덞 명이 죽었어.”
“응?”
“에?”
제론과 홀이 눈을 깜박거렸다.
하펠이 말을 잇는다.
“칠왕국의 영토 안에서, 몬스터라든가 이변(異變)이 발생했을 때 마법사가 누구보다 빠르게 그 상황을 파악하게 되잖아. 그리고 가장 먼저 대응을 할 입장이 되지. 그때, 로그메이지는 도망을 가고 상아탑의 마법사는 상황에 뛰어드니까, 그 이변과 괴물의 위험을 그대로 맞닥뜨리니까 그런 사망률이 된다는 거야.”
제론과 홀은 말없이 서로를 흘깃거렸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서로에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하펠은 그런 둘을 보며 계속 말한다.
“그 사망률은 몬스터 헌터보다 더 높았어. 헌터 길드 소속으로 죽어나가는 몬스터 헌터만 놓고 계산한 거지만, 어쨌든 헌터들 역시 자기네가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랑 대책 없이 맞붙어 싸우는 상황은 피했기 때문이야. 켈브란은 이런 상황이 모두 상아탑의 율법과 서원을 잘못…… 아주 잘못 해석한 탓이라고 결론 내렸어. 우리가…… 상아탑의 마법사가 왜 그렇게 더 많이 죽어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희생하고 왜 욕설까지 들어야 하느냐고 했지.”
“켈브란이 누구 도왔다가 지독하게 욕먹은 적 있었어?”
제론이 눈살을 찌푸린 채로 물었다.
그런 꼴을 겪었다면 아주 개인적인 불순한 감정을 품을 수 있고, 그 감정을 동기로 삼아 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켈브란은 서약을 어기는 셈이 될 터였다.
“아니, 없어. 켈브란이 직접 그런 일은 겪지는 않았지. 하지만 켈브란이 사망률을 근거로 주장을 시작했을 때, 그런 일을 겪은 마법사들이 켈브란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지. 켈브란은 그들에게 개인적인 감정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먼저 권하고 나서, 그런 사망률을 발생시키는 상아탑의 활동방식을 수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아주 냉정한 척…… 흠! 냉정하게 토론을 시작했어. 그래서 상아탑의 서약과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고, 그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활동 규범을 구상해야 한다고 했지. 그렇게 뭉친 녀석들은 자신들을 혁신을 추구하는 마법사라고 자칭하기 시작했지.”
이야기를 하면서 하펠의 표정은 꽤 험악해져 있었다.
홀이 그 꼴을 짚어 묻는다.
“그런데 왜 화를 내고 있는 건데?”
제론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펠을 바라봤다.
하펠이 둘을 둘러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을 억누르는 태도로 말한다.
“켈브란은…… 그 자칭 혁신을 추구한다는 녀석들이 맨 처음 내놓은 의견이 날 아주 짜증 나게 했지. 그게 뭐냐고? 간단해! 로그메이지가 도망치고 몬스터 헌터가 뒤로 빠지는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켈브란과 그 일당들은 그 상황을 왕국에 통보하고 사람들에게 알린 다음에 지켜보자고 했거든!”
“응?”
“어?”
“지나가던 누군가가 쉽게 해결할 수도 있고, 상황이 발생하는 곳에 사는 이들이 엉겁결에 해결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정말 심각해서 마법사가 나서야 하는 건지, 아닌지 보다 냉정하게 지켜보기부터 해야 한다고 말이지! 그렇게 보다가 제대로 피해가 발생하면 그때부터 왕국과 논의를 시작하고, 상황을 해결하자는 거야!”
제론과 홀이 눈을 마주치고 하펠을 흘깃하는 눈길을 교환했다.
이제야 겨우 하펠이 화내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듯하다고 둘은 소리 없는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
켈브란 일파의 제안은 ‘영웅적’이지 못하다!
영웅담 좋아하는 하펠이 좋아할 리가 없다!
“이것들이! 지금 뭔 생각하는 거야!”
둘의 눈길을 간파한 듯, 하펠이 울컥한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