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3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35)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네. 하펠, 정말로 마스터 켈브란을 싫어하는구나?”
홀이 또박또박 짚듯이 말했다.
제론도 미묘하나마 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이 잠깐 하펠을 멍하게 한 모양이었다.
하펠이 다시 입을 연 것은 모닥불이 다시 작게 튀는 소리를 내면서 나무토막을 갈라놨을 때였다.
“싫어하지! 하지만 지금 내 감정이 문제라는 게 아니야! 제론, 대체 내가 한 말을 제대로 듣긴 했어? 홀, 우린 지금 조작당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덫에 걸린 탓에 예상 이상으로 여기서 시간낭비를 했단 말이야!”
“흠……, 제론?”
홀은 제론에게 마찬가지로 생각하냐는 듯, 가벼운 눈길과 함께 불렀다.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고, 하펠을 향해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한다.
“네 감정에 기반한 판단이잖아. 구체적으로…… 마스터 켈브란이 마스터 엘투란에게 어떤 음모를 꾸몄다는 거는 순전히 감정을 기반으로 한 판단이라고. 실수를 저지른 쪽은 세비앙이었지. 마스터 엘투란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가사 상태에 빠졌는가는 우린 아직 정확하게 몰라. 세비앙이 갇혔다는 것만으로, 세트반에도 보좌로 갔다 왔다는 것까지 고려한다고 해도 모두 네 감정을 근거로 한 정황분석이잖아. 냉정해지라고.”
하펠은 낯을 찌푸린 채로 묵묵히 들었다.
제론이 하는 이야기는 확실히 한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보다 멀리서 객관적으로 판단한 분석의 결과였다. 하펠로서는 여기에 반박할 객관적인 근거를 댈 수가 없었다. 그저 이전의 불쾌함, 그 불쾌함의 잔재를 통해 많은 부분을 건너뛴 추측이라는 결론은 하펠 스스로 생각해도 기분을 내세워 무시할 수 없는 냉정한 관측이었다.
홀이 입술을 잘근거리는 하펠을 보며 보태듯이 말한다.
“게다가 말이야…… 일단 이 상황이 조작된 채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예정 이상으로 날을 보냈고, 예상 이상으로 여기 일이 힘들었다고 투정할 거야? 이전 보고에 없던 놈들이 나왔다고 칭얼대고 싶어? 지금 당장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쿠르릉, 쿠웅.
멀리서 울려온 큰 땅울림이 홀의 말을 끊었다.
제론과 하펠의 눈길이 단숨에 한곳을 향해 옮겨갔다.
홀 또한 둘과 같은 방향을 바라봤고, 그 사이에 제론이 재빠른 읊조림을 입술 사이로 흘려냈다.
셋의 앞에 일렁이는 물결 같은, 테 없는 거울이 나타났다.
거울 속에는 크고 검은 형체가 비춰져 있었다.
셋이 잠깐 침묵하는 사이, 다시 땅울림이 큰소리와 함께 전해져왔다.
쿠우우우웅.
“실측 크기는?”
하펠이 마법의 거울을 바라보면서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는 듯이 물었다.
“100……미터.”
제론이 스스로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대답을 했다.
“제론, 도감! 기밀봉인된 부분이 있다고 했었잖아!”
홀이 급하게 외쳤다.
제론의 손이 등 뒤의 벽감을 향해 바쁘게 움직였다.
촤르륵, 두터운 책이 펼쳐졌고 요란하게 넘어갔다.
너무 바쁘게 펼친다고 투정부리듯, 책을 감싼 금속 테가 이상한 빛을 머금기까지 했다. 세 마법사는 그 빛을 보고 동시에 놀란 소리를 냈다.
“뭐?”
제론은 자신의 도감이 왜 갑자기 이러는가 당황한 소리를…….
“첨삭(添削)?”
하펠은 도감에 적용된 마법의 성질을…….
“업데이트잖아!”
홀은 구체적으로 마법의 종류를 짚었다.
제론이 놀란 표정을 지웠고, 재빠르게 책의 테두리를 짚으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를 흘려낸다.
“컨텐트, 업데이트…… 승인자는 마스터…… 켈브란! 업데이트 사유는…… 육십 년 이상 사용되지 않았던 도감이고, 도감의 운반자가 아직 내용을 갱신하지 않은 것을 조금 전의 교신 중에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마스터 엘투란이 준 도감 아니었나?”
하펠이 쥐어짜낸 목소리로 물었다.
홀이 제론을 대신해서 빠르게 말한다.
“세트반에 다녀오면서 가져온 도감이야! 낡아서 그쪽에서 폐기할까 말까 하는 건데, 조금 수선하면 다시 쓸 수 있는 마법이라고 가져오셨지! 보조로 따라갔던 세비앙에게 수선하라고 지시했고…….”
“가져가면 쓸모 있을 테니 일단 가져가라고 하셨지.”
제론이 홀의 말을 이어 끝맺었다.
하펠은 그 소리에 ‘또 그 망할 년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오는 소리는 어딘가 무심하고 냉정했다.
“업데이트 내용은?”
“아, 잠깐…….”
제론이 숨을 몰아쉬었고, 빠르게 손과 입을 움직였다.
쿠르르…… 쿠웅.
다시 땅울림이 세차게 울렸다.
상황은 느긋하게 책을 뒤척일 때가 아니라고, 강렬하게 경고하는 듯했다.
순간 홀이 하펠에게 말한다.
“하펠, 가속 쓸 수 없어?”
“있어. 둘 다, 내게 동조(同調) 해! 긴장했어도 반발하지 않도록 주의해서, 받아들여! 퀵.”
우우우웅!
땅울림이 보다 길게, 거울 속에서 움직이는 실측 100여 미터에 달하는 거체가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고…… 세 마법사에게 들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셋에게는 주변의 사물이 느려진 듯한 상황이었다. 그 상황 속에서 제론의 목소리가 한층 더 빠르게 흘러나온다.
“긴급 상황이 아닐 경우, 상급 마도사 이상만 열람 가능! 하지만 기재된 긴급 상황일 경우, 도감 소지자에게 즉각 공개한다! 뭔…….”
“무슨 내용인데!”
첫 구절에서 제론이 황당해 하는 모습에 하펠이 바로 그 투덜거림을 끊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련하고 길어진 땅울림 사이로 바로 쳐들어온 잔소리였고, 제론은 다시 냉정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낸다.
“몰튼노트 더 기간틱. 이 지역을 봉쇄하게 된 원인. 드라코눔의 사자가 상아탑에, 주변 왕국에 알려준…… 십여 년간의 관찰 보고.”
“더 기간틱?”
하펠이 의미를 찾겠다는 듯이 되뇌었고, 홀은 재촉하는 소리를 바로 꺼낸다.
“크기만으로 이미 특별해 보여! 그래서? 격퇴할 방법은? 다시 얌전히 재우려면?”
제론의 눈동자가 책 안을 훑어내듯 빠르게 흔들렸다. 그리고 제론의 입에서는 다시 평정이 깨진 소리가 나온다.
“이 뭔…… 빙설(氷雪)의 저주(詛呪)를 이용한 지역봉쇄? 이백 년 이상 지속되는 저주로 인해 광범위한 기후 변화가 동반된다니! 농작물 수확불가 상태가 되는 지역은 세트반 전역, 쥬레인 절반…… 그 외 인접한 세 나라 상당 지역? 이 미친…….”
“드라코눔, 거기 용의 일족은 신체 성장만 백오십 년, 지식의 전수에 따른 정신적 성장에 백 년. 일족 중에서 한몫을 제대로 하는 성장이 끝날 때까지 못 잡아도 이백 년은 넘기는 녀석들이야! 애가 태어나서 다 자랄 때 정리된다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겠지!”
하펠이 매서운 속도로, 날카롭게 울리는 목소리를 토해내서 제론을 다시 냉정하게 가라앉혔다. 그러나 냉정해진 다음에도 제론은 격앙된 감정 탓인가 바로 말을 잇지 못했고, 그 틈에 홀이 하펠에게 묻는다.
“켈브란이 봉쇄된 지역에서 저게 튀어나오게 조작했다고 생각해?”
“미쳤다고 생각되는 싫은 작자이기는 하지만, 그건 아닐 거야. 무엇보다 그럴 능력이 없어! 얼마 전까지 상급 마도사였다고. 앞으로 한 십 년을 조작한다면 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의 켈브란에게 저건 무리야. 기껏해야 몰튼노트의 키클롭스가 장벽 주변에서 얼쩡대게 해서 우릴 좀 골탕 먹일 수준, 그게 내가 아는 켈브란의 한계야.”
텅!
제론이 거칠게 책을 덮었고, 냉정하지만 사나운 말투로 외친다.
“저게 보이면, 즉각 후퇴. 최단시간 내에 상아탑에 보고할 것! 이게 마지막 각주로구만!”
“헐? 장벽의 마지막 보수는?”
홀이 거울 속의 거대한 형체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광경을 흘깃하면서 물었다.
제론은 은근히 떠는 말투로 대답한다.
“장벽은 흠결이 없어도 저걸 완전히 막아내지 못한단다. 고작 며칠 버티는 게 고작이니까, 보고를 최우선 사항으로 놓는 거래. 켈브란이 밑줄까지 팍 그어놓고 강조해놨다. 저건 절대로 마법사 몇 명이 막을 수 없는 거라고, 상아탑 전체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오늘 업데이트된 이 각주를 달아놓은 게 한 팔 년 전이야. 상급 마도사 켈브란의 첨언이라고, 딱 서명까지 해놨으니까.”
“그 얘기는…… 켈브란이 뭘 의도하고 있든, 여기서 누가 죽어나가는 걸 바란 적은 없다는 거?”
홀이 미묘하게 눈살을 찌푸린 채로 중얼거렸다.
제론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마도.’라고 대꾸했다.
그러나 둘의 이런 의견이 나오자마자 하펠이 굳은 표정과 딱딱한 목소리를 토해내니,
“켈브란은 여기서 마법사가 죽어나가는 것만 바라지 않았을 뿐이야. 저게 며칠 뒤에라도 장벽의 봉쇄를 파괴하고 나돌아 다니기 시작한다면…… 일단 엘데인은 괴멸(壞滅)이다. 그리고 곧바로 세트반, 쥬레인의 국경 근처를 돌겠지. 그러면 최소 피해가…… 만단위로 세야 할 거야. 하루하루, 그런 피해가 쌓이겠지!”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제론이 불쑥 물어온 소리는 잠깐 하펠을 후벼파는 듯했고, 하펠은 매섭게 제론을 노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하지 않느냐고 비아냥대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하펠은 제론의 표정이 엄숙한 채이고, 티끌만큼도 비아냥대는 낌새가 없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제론은 정말로 하펠이 이 상황에서 어떤 타개책이 있느냐고 묻고 있을 뿐이었다. 멀리서 찾을 수 있는 어떤 해결책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셋이 해낼 수 있는 타개책을!
때문에 하펠은 ‘퀵’에 의해 가속된 생각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머뭇거릴 필요 없이 그 찾아낸 대책이 하펠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다.
“제론은 홀을 데리고 알드바인 쪽으로 귀환해. 가는 도중에…… 마스터 켈브란에게 연락을 넣어서 이 상황을 통보하고. 홀, 제론을 도와서 귀환 여정을 단축시켜. 둘이 힘을 합치면 그럭저럭 내가 가속하는 것만큼 빠르게, 조금 무리하면 사흘 이내에 알드바인으로 귀환이 가능할 거야. 귀환 후에는 알드바인으로 저게 올 경우에 대해 대책을 짜내라고. 나는…… 우리 셋 중에서 가장 빠른 이동, 가속 마법을 지녔으니까 남아서 저놈의 주의를 끈다. 장벽 안으로 들어가, 저게 장벽에 관심을 두지 않게 최대한 버틸 테니까 가능한 빨리 대책을 세우고 널리 알려줘. 저걸 하루 잡아두면, 만 명 이상이 하루를 더 산다. 이 이상 좋은 방법은 현재 우리에게는 없…….”
“이빨 꽉 깨물어!”
빠악! 끄엑?
주먹만 한 돌에 볼을 맞은 하펠이 바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론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닥에서 돌을 주워 하펠의 볼을 가차 없이 후려갈긴 홀을 바라봤다.
둘이 당황해서, 정말로 전혀 예측하지 못한 홀의 행동이 대체 뭔가…… 마법사답게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잠시 멍해질 때, 홀이 거침없이 가차 없는 으르렁거림을 토해낸다.
“주의를 끌긴 뭘 끌어! 저놈이 뿜어내는 불길이 키클롭스의 불티로 보여? 그것도 잔뜩 두른 바람으로 겨우 밀어낸 주제에 저 불길을 버텨내겠다고? 며칠을? 무능하면 자기가 무능한 줄 알고 인정해야 할 것 아냐! 제론, 제론은 대체 뭘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이 무능한 멍청이의 영웅놀이를 그냥 받아주려는 거야?”
둘은 아직 멍한 채로 깊이 숨을 들이쉬는 홀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박거렸다.
홀은 그런 둘을 향해 대놓고 억센 한숨을 뿜어내며 말을 잇는다.
“두 살씩 더 처먹었다는 동기란 작자들이 이렇게 멍청하다니! 난 정말 운이 없구만…… 하아…… 입 열지 마, 그냥 닥치고 있어. 하펠, 기껏 쥐어짜낸 계획을 왜 능력도 없으면서 실행하겠다고 나대? 제론, 똑바로 보라고! 지금 여기서 그 계획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건 나뿐이잖아! 키클롭스를 파괴하고, 잠깐이나마 지울 수 있었던 건 내 불꽃 마법뿐이었잖아! 이런 상황에서 나이가 어리네 어쩌네 할 생각이었어? 내가 상아탑의 중급 마도사란 거, 잊었어? 아니면 인정 못해? 정신 차리고 생각하라고!”
“저건 키클롭스가 아니야. 너무 커. 네 불꽃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니까 원거리에서 긁어대면서 계속 주의를 끌어야 하고, 그런 짓은 내가 최적이다만?”
돌에 맞은 자리를 문지르면서, 아직 골이 울리는지 일어서지는 못하는 채로 하펠이 제법 냉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제론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펠의 의견이 오히려 일리가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홀은 더욱 거세게, 아주 오만하게 이에 답한다.
“키클롭스를 상대하면서 봤잖아. 심장, 머리. 생명체의 구조를 의태하는 몰튼노트의 특성 때문에 중요부분을 파괴하면 일단 다시 그 파괴 부위를 복구할 때까지 활동이 정지되잖아. 100여 미터의 덩치라고 해도, 저건 기본적으로 거인. 그렇지? 그렇다면 심장을, 그 의태가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단숨에 파괴하면 시간을 벌 수 있어! 그렇게 해야 그 계획대로 된다고. 내 불꽃 마법, 헬플레임이 최적이야.”
잠시 하펠과 제론이 서로를 마주 봤다.
복잡한 눈빛이 교환되었고, 제론이 말문을 연다.
“증명해봐. 저놈의 거대한 심장을 뚫을 수 있다는 걸, 며칠 동안 그 마법을 반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봐.”
* * *
“그래, 그렇게 그 미친 새끼들이 나한테 사기를 쳤어. 훌쩍.”
“아, 네…….”
투란은 ‘이 할배, 미쳤나봐! 무서워!’라는 표정을 지은 채로, 홀시딘이 두서없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물론 투란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훌쩍대고 우는 소리로 떠들어서 그런가? 뭔 이야기인가 잘 모르겠어!’
―그럭저럭 이야기가 끝나면 정리할 수 있는 조각은 다 나왔다. 나중에 정리하면 되니까, 일단은 들어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