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4)
작은 돌, 물방울, 물방울…….
단단히 닫혀 있는 톱니바퀴의 마개 아래, 천칭의 꼭대기에 놓인 원형 받침대 위에 세 가지가 둥실거리며 떠 있는 풍경이었다.
‘역시 완전히 다른가.’
투란은 천천히 문장 속의 풍경을 좀 더 둘러봤다.
전보다 더 풍경이 분명해져 있었다.
천칭의 꼭대기, 접시 모양은 보다 다듬어진 원형이었고 그 아래에는 여전히 찬란하게 세공된 타원체의 알이 놓여 있었다. 원형 받침대와 알 사이를 채우는 것은 톱니가 맞물려 이어진 테, 보기에 따라서는 이 또한 마개와 같은 톱니바퀴 모양이었다.
테를 기점으로 삼아 길게 양쪽으로 뻗어 나가는 것은 분명한 저울대이고, 그 끝이 좁아들며 뭐든 매달아 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한 천칭이라면 이 저울대로 끝이겠지만, 이 천칭은 연금술사의 것을 기반으로 했고 새로운 저울대를 뻗어 낼 역량이 느껴졌다.
다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는 듯했다.
투란은 좀 더 문장을 느꼈고, 지금 정리할 일에 주의를 기울였다.
둥실거리며 떠 있는 세 가지 에센스, 분명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나 아예 다른 세 가지 몬스터였다.
‘어떻게 할까…….’
결론은 이미 분명하게 내려져 있었다.
돌, 작은 돌이 두 가지 물살을 언제라도 뿜어낼 수 있다면 굳이 물방울 둘의 에센스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몬스터 로드의 그릇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했고, 에센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고유 마력은 소모된다고 했다.
그러니 전혀 써먹지 않을 몬스터를 삼켰다면 얼른 저 아래로 보내는 것이 좋다, 투란은 이렇게 들었다.
물론 지금 상황이 들었던 것과는 조금 많이 다르기는 했다.
“하나 늘어날 때마다 살이 쪽쪽 빠지는 것 같고, 신경이 마구 곤두선다고! 아, 부적을 늘리면 괜찮아진다는데…… 돈이 없어, 돈이!”
삼킨 몬스터의 에센스를 꼬박꼬박 유지하면서, 그 다양한 능력을 언제 활용할 때가 오지 않겠느냐고 호들갑을 떨던 몬스터 로드의 말이었다. 돈이 없어 부적이 모자라네 어쩌네 했지만, 이미 달고 있는 부적이 서너 개는 되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무능하고 바보 같다고 욕도 많이 먹는 듯했는데, 결국 투란이 그를 본 것은 세 번을 넘지 못했다.
사냥을 간다며 떠나는 그를 세 번째로 본 다음, 그에 대한 마지막 소식은 함께 사냥 갔던 이들이 투덜대며 떠드는 소리에 담겨 돌아왔다.
“그 머저리! 한 가지로 제대로 변신했으면 멀쩡했을 텐데 이것저것 꺼낸답시고 까불다가 뒈지다니! 그 새끼 믿고 방심했으면 다 죽을 뻔했잖아.”
뭔가 어이없는 꼴을 겪은 듯한 일행은 결국 그가 죽는 바람에 제대로 사냥을 못 했고, 그 대신에 그의 시체를 뒤져서 가져온 부적으로 실패한 사냥의 손해를 메꿨다고 했다.
투란은 그때 잠깐 돌았던 흉흉한 소문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냥은 몬스터를 잡으러 가는 척하고 그 몬스터 로드의 부적을 사냥하려는 헌터들의 꼬임일 수도 있다고 나불대다가 그 일행 중의 헌터랑 주먹다짐하고 싸운 이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둥실, 두둥실.
슬그머니 가라앉은 듯, 뜨는 듯 하는 세 가지 에센스—몬스터의 정수—를 보며 투란은 회상을 멈췄다. 이 풍경 속에서 빠져들 생각은 이 녀석들에 대한 처분이 분명히 먼저이므로.
‘우선 하나 제치자.’
투란은 물방울 중에서 하나, 자신의 의지에 호응해서 태어난 놈을 저 아래로, 심연의 나선으로 보내기로 했다.
투란의 의지가 굳어지는 순간, 부드럽게 천칭의 축을 타고 올라오는 시커먼 나선의 가닥이 가늘게 물방울 하나와 닿았다. 물방울은 작은 흐름을 타고, 섬세한 톱니바퀴의 조각으로 분산되며 나선을 따라 축을 관통하며 저 아래로 내려갔다.
검은 파문이 잠깐 천칭의 축 아래에서 일렁였고, 투란은 마력이 작지만 세차게 치솟는 것을 느꼈다. 몬스터 하나를 잡아먹은 만큼 저 아래 심연이 마력을 키워 주는 듯했다.
“삼키면 삼킬수록, 삼켜서 없앤 놈의 수만큼 착실하게 강해진다! 그게 몬스터 로드라고!”
그렇게 들었던 말을 지금 실감한다는 것을 투란은 알았다.
이런 느낌이니까, 그런 소리는 당연히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냥 저것도 넣어 버려?’
투란은 잠깐 남은 물방울에 대해 고민했다.
이 녀석에 대한 미련은 분명했다.
이 녀석이 바로 고무쇠를 잡은 놈이니까!
다시 고무쇠를 만났을 때, 또 마른 가죽 꼴로 기다려 줄 리가 없다!
그러니 고무쇠를 다시 만나면 투란이 사냥해야 했다.
사냥 난이도가 중상위에 매겨져 있는 고무쇠, 난폭한 성질 때문에 그 능력과 무관하게 어딘가에 죽어 있는 채로 발견되는 경우가 바로 사람의 손에 그 시체가 들어오는 일의 절반 이상이라는 놈이다.
그 고무쇠를 확실하게 한번 잡은 몬스터, 그게 바로 이 튀는 물방울이다.
고무쇠 사냥을 할 때,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한편으로 투란은 몸을 이 물방울로 변신할 경우의 위험함도 뼛속 깊이 깨달았다. 그냥 뼛속까지 튀어 달아나는 꼴을 봤으니, 싫어도 똑똑히 알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단 말썽부리지 않게 치워 놓을 수 있으려나?’
위험한 줄 알지만 끊을 수 없는 미련 속에서 갸웃거리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스르르.
소리가 없지만 그 부드러움이 소리를 느끼게 해 주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천칭의 정상 받침대, 원의 바닥에서 부드럽게 몇 가닥의 바람처럼 나선이 솟아나서 물방울을 휘감았다. 바람결에 닿은 물방울이 굵고 큼직한 톱니바퀴의 형상으로 분해되며 나선을 따라 내려갔다.
‘어?’
알의 위에 놓인 톱니의 테로부터 작은 가시가 길게 뻗고, 내려간 나선의 흐름이 그 긴 가시로 옮겨졌다. 가시 끝에 작은 고리가 부풀고, 가시를 타고 가다 뭉쳤던 나선은 세 가닥으로 나눠지며 더 아래로 처지면서 동그란 접시를 그렸다.
물방울이 접시 위에 올려졌다.
잠깐 뒤에 투란은 이게 무슨 일인가 알 수 있었다.
저 아래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긴 가시와 사슬, 받침대였다.
언제라도 툭 끊어지면 이 공허를 가로지르면서 튀는 물방울은 심연에 잠겨 버릴 것이다. 하지만 투란의 의지가 지속되는 한, 그런 일은 없다.
‘보관하는 거구나.’
필요한 때가 되면 다시 이 정상으로 끌어올려 부려먹을 수 있다.
악마의 심장처럼.
‘어라!’
이어지는 생각은 투란에게 묘한 의문을 던졌다.
지금 악마의 심장은 이 풍경의 어디에 있는가?
왜 작은 돌이 둥실대는 이 위에 자리 잡지 않았는가?
돌도, 물방울도 이 위에 있으면서 몸을 변화시켰는데…….
투란은 보석의 안쪽에서 맥동하는 악마의 심장을 느꼈고, 답을 금방 얻었다.
톱니 마개를 열고 닫는 나선, 그 힘으로 형성할 경우에는 정상에 놓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열고 닫는 것과 무관하게 계속 몬스터를 형성하고 유지할 때에는 저 알로 이어지는 나선의 힘을 써야 한다.
언제나 하나로 엮일 수 있지만 나눠져 있을 때는 서로 다른 문장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분리된 채인 모양이었다.
‘애매하네?’
축의 안팎으로 나눠진 심연의 나선, 그 나선의 흐름에 맡겨 끊임없이 도는 톱니바퀴의 집합체 같은 천칭, 그러면서도 연금술사의 천칭, 투란이 기대한 것 이상의 화려한 형상을 꾸미는 모습…….
뭔가 무수히 많은 작은 톱니바퀴가 제멋대로 꾸며 낸 천칭이었다.
투란에게는 이 천칭의 구조와 형상을 적절하게 납득하고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분명하게 아는 바라고는 이것이 문장이 선물한 기적이라는 것이고, 잘 다뤄야 한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래, 잘 다뤄야 하니까.’
생각을 되돌려서 투란은 작은 돌에 마음을 쏟았다.
궁금함을, 호기심을 담은 마음으로 돌에 대해 알고자 했다.
돌이 이에 호응하듯 꿈틀거리며 달달 떨었다.
* * *
하늘빛은 어느새 회색이었다.
투란에게는 뭔가 안심할 수 있는 빛깔이었다.
불타는 구름도 아니고, 시퍼렇게 거품을 튀기는 물이 흐르지도 않잖은가!
‘저 절벽 너머에는 아직 그대로려나.’
높이 치솟아, 투란이 물줄기에 떠밀려 관통해 들어온 쪽은 아예 보이지 않는 지금의 풍경이 약간 궁금했다. 하지만 그걸 보겠다고 도로 그 구멍을 찾아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투란은 작은 돌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 작은 돌이 이미 깨끗하게 정리해서 아무것도 가까이 오지 않는 이 안전한 영역…… 뭔가 왔다가 저 튀는 물방울에 몽땅 으스러져 박살 났을 가능성이 높아 당분간 안전할 거라 예상되는 이곳에서 미리 연습해 봐야 했다.
천천히 두 손을 손바닥끼리 마주 대고, 투란은 돌의 힘을 끌어냈다.
미세한 진동, 부들거리는 느낌이 투란의 몸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물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돌의 힘만 퍼질 뿐이다.
투란의 몸이 제 영역이라는 듯이.
‘좋아.’
투란은 자신이 돌에게서 얻어 낸 답이 맞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처럼 말로 하거나 짐승처럼 몸짓으로 뭔가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돌은 투란의 마음에 호응해서 지닌 본능을 상당히 선명하게 투영해 줬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처럼.
지금 투란이 실험하는 바가 정말 그리 되는가 하는 일이었다.
그 첫 번째인 돌의 힘이 물든 곳에 돌의 의지가 닿으면 다시 돌의 힘이 발휘된다는, 말로 하자니 돌돌거리는 것이 머리를 돌로 만들 듯한 돌의 재주였다.
그리고 투란의 마주 댄 손바닥에 작은 돌을 직접 형성시킨다.
돌의 힘을 이미 퍼뜨린 상황에서 형성된 작은 돌은 손바닥 틈새에서 도톰한 살처럼 자리 잡고, 손등까지 그 형체를 넓혔다. 마치 투란의 두 손이 돌 하나에 겹쳐진 듯한 모양이 되었다.
곧 거센 돌의 힘이 손 주변을 두드렸고, 물살이 뿜어져 나왔다.
이미 퍼진 돌의 힘에 의해 뿜어져 나오는 물살이 인도되고 적절하게 그 용량이 제한되기도 했다. 그래도 흩어지지 않고 뭉쳐 넘실대는 물살은 투란을 덮는 껍질이 되고, 바닥을 얕게 적시며 작은 융단처럼 깔릴 정도는 되었다.
손목에 걸리는 묵직한 느낌 속에서 투란은 상쾌함을 느꼈다.
살갗으로, 살 속으로 물살이 마셔지고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마른 몸을 축축이 적셔 준다.
‘……되네.’
기쁨과 함께 투란은 애매한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이제 주변이 불덩이로 채워져도, 이 돌의 힘을 이용해 몸을 물로 감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악마의 심장이 생존에 필요로 하는 두 가지, 빛과 물 중에서 물의 문제가 해결된 셈이었다. 빛은 땅굴 파고 들어가 눕든가 하는 일이 아니라면,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물들지 않는다면 그리 절실하지는 않은 편이잖은가?
결국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투란은 그럭저럭 갖춘 셈이었다.
……누가 그를 잡아먹는 일만 없다면.
여기에 작은 돌이 그 말려 버리는 튀는 물결까지 뿜어낸다면, 어지간한 놈에게도 잡아먹힐 일은 없을 듯했다.
‘이 물살은 기억하는구나.’
한숨이 새록새록 투란의 코와 입을 새 나갔다.
작은 돌은 투란의 의지를 담았던 물살은 기억했다.
하지만 그 전에 투란을 이리로 인도한 물결, 튀는 물방울 쪽은 전혀 모른다!
마치 투란에게 삼켜지기 전의 과거 따위, 깔끔하게 털어 없애 버린 듯!
게다가 한번 뿜어내기 시작한 물살을 다른 성향으로 바꾸는 것을 본능적으로 굉장히 꺼렸다! 얼마나 거리냐 하면, 이제 와서 다른 성향의 물살을 만들려 하면 안 될 정도다!
이런 돌의 성향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투란으로서는, 속이 깊이 아릴 수밖에 없었다. 한번 부여한 물살의 성질을 못 바꾸는 줄 미리 알았다면 튀는 물방울처럼 피와 살을 담가 삼키고 뭉쳐 흩어지지 않는 물살을 염원했을 텐데!
희망이 있다면, 이 거리는 돌의 본능을 다룰 정도로 투란이 몬스터 로드의 기량을 갈고닦아 높인다면, 그때는 될지도 몰랐다.
‘고집스러운 놈이라니. 어후!’
“몬스터를 다룰 때는…… 그 본능을 필요한 대로 다루는 것이 문제겠지. 거의 고집불통인 또라이 새끼를 설득하는 꼴이니까. 그런 고집이 없는 몬스터를 골라 삼키는 것도 몬스터 로드의 능숙한 기량이라고.”
좀 더 물살을 들이쉬며, 작은 돌이 사람의 형상에 가장 이상적으로 어우러질 모습으로 마음속에 그려 준 자세를 유지하다가 투란은 갸웃했다.
‘아니, 잠깐. 이건 그러니까 이 바위에 올라앉았을 때랑 비슷한 거잖아? 물 마시는 거야 좋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데.’
걸어야 했고 떠나야 했다.
앉아서 버티는 것은 곤란했다.
움직이면서, 이 물살에 방해를 받지 않아야 했고, 악마의 심장에 촉촉하게 젖게 해야 했다.
‘그냥 심장 속에 물이 직접 생기면?’
집중된 생각은 바로 투란의 몸에 반영되었다.
쿠웅!
투란은 앞으로 기울며 엎어졌다.
‘무, 무거워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