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4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36)
Chapter 88. 금기와 금단의 숲으로
삐이!
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타고 작은 새 몇 마리가 열풍(熱風)이 사라진 곳을 둘러보려는 듯이 날고 있었다. 새로 생긴 굵고 높은 망루는 작은 새들에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었고, 그 안에 있는 두 사람에게는 새들이 울음소리가 새삼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홀시딘이 훌쩍거리는 콧물을 손등으로 스윽 닦아내면서 새삼스러운 표정과 함께 중얼거린다.
“이런…… 겨우 이틀 넘겼는데 벌써 불타는 평야를 정리해버린 꼴이잖아. 이 망루 다시 챙겨 넣으려면 최소 사흘은 있어야 하는데…….”
투란은 콧물만 닦고 눈물은 그대로 놔두는 홀시딘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제대로 세수를 하시죠? 씻을 물도 충분히 있잖아요? 설마 물이 모자라나요? 옛날에도 물이 모자라서 구박받았다면서 넉넉히 가져오지 않았어요?”
“옛날에도 물 넉넉히 가져왔었거든?”
“음? 물 없다고 구박받았네 어쩌네 했잖아요!”
“예정을 넘겨서 그렇게 된…… 아,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던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았으니까 그렇죠. 무슨 마법이냐고 했더니, 제론이랑 하펠이라는 마법사랑 여기 왔다가 대거인이 일어섰다는 이야기만 했고, 그사이에 구박하고 구박받다가 짱돌로 한 대 쳤다면서요? 그러니까, 그게 시커먼 거인 심장 뚫는 마법이랑 뭔 상관이었냐고요.”
“아…… 내가 그렇게 떠들고 있었어?”
홀시딘이 확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투란은 대놓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마주 봐줬다.
잠시 둘이 눈을 깜박거렸고, 조금 있다가 홀시딘이 다시 입을 연다.
“시크릿 키퍼는 가끔 로열 클래스에게 옛날 얘기를 하기도 하지. 하지만 그건 시크릿 키퍼와 로열 클래스 사이의 비밀이 된다는 거, 알겠지? 어디 가서 떠들면 안 되는 얘기야.”
“그랬어요? 그렇다면, 기왕 꺼낸 얘기니까 마무리는 해줘야 어디 가서 묻는 일이 없다는 거, 아시겠죠?”
투란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면서 대꾸하고 있었다.
홀시딘은 킁킁거리는 콧소리부터 내며 콧물을 정리하는 시늉을 하다가 한숨부터 흘려냈다. 그 모습은 아무래도 옛날이야기를 자신도 모르게 마구 떠들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하려 하니 뭔가 민망해 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투란은 눈을 부릅뜬 채로 어디 가서 이 이야기를 몽땅 캐묻고 말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결국 입을 여는 홀시딘이었다.
“뭐, 마무리고 뭐고 없어. 제론과 하펠은…… 내가 정말로 몰튼노트 더 기간틱의 심장을 관통할 수 있는가를 확인한 다음에 내 말대로 하겠다고 했지. 내게 자기네가 가지고 있던 마석, 마력을 축적해놓은 거랑 여분의 마력을 축적할 수 있는 마석을 모두 넘기고 둘이 힘을 합해 알드바인으로 귀환하고, 마스터 엘투란의 상태를 보고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난 그때 막 시험 삼아 짜놓았던 새로운 헬플레임, 그 이전에 있던 마법을 기반으로 개조해낸 마법의 불꽃을 썼고…… 뚫었지. 꽤 거친 마법인 탓에 내 몰골도 많이 망가지기는 했는데…….”
* * *
거센 바람결에 휘말린 옷자락이 찢겨진 채로 펄럭였고, 온몸에는 사나운 짐승의 발톱에 잔뜩 긁힌 듯한 흔적이 남겨졌다. 하지만 홀은 그런 자신의 상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 편의 거대한 채로 걸어나서려는 절벽이 구멍이 난 채로 뒤로 넘어가는 광경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느라 바빴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홀의 귓가로 제론과 하펠이 아주 빠르게 떠드는 소리가 스며들었다.
“대단한데? 탐지 마법을 직접 대상에 투사하는 대신에 주변 반향을 읽어내는 데 써서 목표를 포착한 거지?”
“탐지 마법뿐이 아니군. 헬플레임이 발생하는 위치, 그 다음에 격출될 궤도, 모두 마력이 직접 몰튼노트 거인에게 닿는 경우가 없었어. 순수하게 구현된 결과물, 그것만 저 거대한 산악 같은 놈에게 부딪히게 했어. 홀, 기대 이상이었다.”
제론이 감탄했고, 하펠은 하나하나 짚어 감상하는 듯한 말을 했다.
두 살 위 동기 둘이 하는 말은 홀에게 살짝 뿌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고, 보다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다시 토해내게 했다.
“그럼, 이제 내게 맡기고…….”
“에어록.”
하펠이 홀의 말을 자르면서 마력이 맥동하는 소리를 뱉었다.
순간적으로 홀은 자신이 몸이 완벽하게 결박되는 것을 느꼈고, 뒤로 확 당겨지며 밀려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와중에 재빨리 유동시킨 마력을 이용해서 메시지 마법으로 외치기도 했는데…….
“뭔 짓이야?”
“헤? 과연 두 살 어려도 우리 동기로구만! 말문을 막았더니, 바로 마법으로 말을 하네. 거봐, 하펠…… 입까지 막을 필요는 없었잖아.”
제론이 담담하게,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하펠은 재미없다는 듯, 제론과 홀을 둘러보며 말한다.
“떠들게 놔뒀다면 벌써 주문을 이용해서 바람의 보호를 풀려고 했겠지. 그 얘기는 제론, 네 입으로 먼저 꺼냈잖아. 홀, 이건 내 독단이 아니야. 우리 둘이 의논한 결과다.”
“의논?”
홀이 다시 메시지 마법으로 반문했다.
둘이 홀만을 빼놓고 대화를 한 적이 있던가?
넘어지는 절벽 같은 대거인 이후에 홀은 단 한 번도 둘만이 대화를 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둘이 입을 열면 곧바로 홀에게도 그 이야기가 들렸다. 그런데 제론과 하펠은 마치 따로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말한다?
이에 제론이 곧바로 대꾸를 한다.
“듀얼 메시지. 이럴 때 써야지 않겠어? 너 하는 거 보면서 우리끼리 계속 대화를 했지. 세 마법사 중에 둘이 찬성한 일이니까, 혼자인 넌 우리 의견에 따르도록 해. 일단은 말이야. 뭐, 마음에 안 들면 나중에 따지라고.”
하펠이 이에 보태 말한다.
“시간이 없으니까, 간단히 하자. 우리가 한 얘기는 나중에 이걸로 확인해봐. 매우 합리적이고 가장 효율적인 결론이니까.”
홀은 제론과 하펠이 동시에 건네주는 작은 수정 조각이 자신의 품 안으로 파고들면서 살갗에 들러붙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키워드를 말하면 수정 조각 속에 담긴 기록이 곧바로 뇌리로 스며들 터였다. 하지만 이 수정 조각의 키워드는 뭔가?
“제론이 홀 시디넬에게 전한다. 내 이름을 부르면, 답할지니.”
“하펠이…… 홀시딘에게 전한다. 내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이름을 밝혀라. 너는 홀시딘이야.”
홀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고, 제론도 비슷한 눈길로 하펠을 바라봤다.
하펠의 입술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말한다.
“홀, 홀이란 이름은 음절이 너무 짧아. 홀 시디넬은 음절이 너무 길어. 그러니까…… ‘홀시디’라고 하면 음절이 적당한데 매듭짓는 소리가 좀 약하잖아. 그러니까 홀시딘. 어때 네 별명인 파나틱 플레임보다 듣기 좋지? 음절 길이도 적당하고. 별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멋진 새 이름이라고 여기고 받아두라고. 알겠어?”
“누가 그딴 억지를! 얼른 이거 풀고……!”
홀이 따지려 했다.
제론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린 소리는 홀의 이어지는 말을 막았다.
“마지막이라고 완전히 떼를 쓰는구만, 하펠! 뭐, 마지막이니까 통할 억지려나. 그럼, 홀…… 홀시딘. 작별이다. 마지막 선물로, 우리가 지금 창조해내는 새로운 마법에는 네 이름…… 아니, 별명을 붙여놓을 테니까. 더 연구해서 개량해봐. 금기를 범하지 않고 성립하도록 말이야. 안녕.”
“영웅담 좋아하는 하펠이라고 기억하지 말고, 그냥 영웅이 된 위대한 마도사 하펠이라고 기억해라. 괜히 중급 소리는 따로 붙이지 말고! 오래 살아라, 홀시딘! 알드바인으로, 바람이여, 인도하라!”
* * *
“그렇게 날 날려보낸 다음, 둘은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서 경계의 장벽 속에 새로운 마법을 새겨넣었지. 내 별명…… 그대로 갖다 붙인 마법 파나틱 플레임을 말이야. 장벽 속에 생명을 심어서, 몰튼노트 더 기간틱이 그 몸을 구성할 때마다 심장에 구멍을 내버리는 마법. 저 영역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마법을 남겨뒀어. 투란, 너는 그런 파나틱 플레임을 지웠다.”
“에, 뭐라고요!”
투란은 당황했다.
뭔가 갑자기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느낌이잖은가.
엄청난 마법이 있었는데 망가뜨린 놈이 된 듯하잖나!
책임 회피를 위해 뭔 소리든 해야 했고, 투란은 곧바로 핑계를 기억해냈다.
“그거 홀시딘 마법이었잖아요! 둘이 뭘 어찌했든 홀시딘 마법이니까, 나중에 연구해보라고 했다면서요? 그럼 이제는 홀시딘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이제는 마스터 홀시딘이잖아요!”
홀시딘은 파닥대면서 ‘절대로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온몸을 동원해 외치는 투란을 보면서 웃음부터 터뜨리고 말았다.
“하? 하하핫, 잘못된 거는 없어. 그건 없어져야 할 마법이었으니까. 그래, 분명히 내 마법이기는 했지. 내가 심장을 뚫는 헬플레임을 구현해 냈을 때, 둘이 그걸 고스란히 각인할 줄도 모르고 내가 쓴 마법이야. 그 각인에 생명을 소모시키서 지난 삼십오 년 동안 불타는 평야에서 거인의 심장을 뚫는 마법을 완성시켰지. 내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몰튼노트의 영역이 사라진 다음에는 당연히 사라져야 하는 마법이었어.”
“생명을 뭘 어쩐다고요?”
투란은 홀시딘의 웃음에 덩달아 웃는 표정을 짓다가, 한마디를 짚어내면서 웃음을 지워야 했다. 홀시딘 또한 이 물음에 웃던 표정을 지운 채로 답을 한다.
“둘은 상아탑이 금지한 마법을 이용해서, 목숨을 이용해서 몰튼노트를 멈춰 세웠다. 더 기간틱이 세상을 짓밟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말이야. 그렇게 된 거야.”
투란은 입술을 꽉 맞물린 채로 홀시딘을 바라봤다.
그게 그렇게 된 거라고 어영부영 넘어갈 일이냐고 따지듯이!
홀시딘이 이런 투란의 표정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망할 놈들은 날 속이고 상아탑의 마법사인 주제에 서약을 깨며 금기를 범했어. 용서할 수가 없는 놈들이잖아. 그러니까 난 계속 둘을 욕했고, 아무에게도 여기에 새겨져 있던 마법, 파나틱 플레임에 대해 말하지 않았었다. 투란, 시크릿 키퍼로서 네게 처음 한 이야기니까, 너도 이 비밀을 지켜.”
“아무도 모른다고요? 둘이 막지 않았다면…….”
“여전히 멀쩡하게 있는 엘데인, 가장 가까운 경계 도시는 지금 그 자리에 없겠지. 세트반과 쥬레인, 두 왕국도 지금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 되어 있든가 아예 없어진 채겠지. 섀터드 세븐, 너에게는 브로큰 킹덤으로 알려진 일곱 나라가 지금과는 꽤나 다른 몰골이 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투란, 나는…… 제론과 하펠이 상아탑의 금기를 어긴 자로 기억되게 둘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둘이 내게 남긴 기록, 둘이 남긴 마법의 발상을 상아탑은 통째로 금지된 지식으로 삼았을 테니까. 그 망할 놈들은 내가 자기네가 남긴 발상을 발전시키고 연구하길 바랐거든.”
투란은 말문이 저절로 닫히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홀시딘의 눈가에 새로운 눈물방울이 맺히고 있었고, 그 모습은 희미한 기억을 선명하게 해주고 있었다. 속삭이듯이 떠들던 오러클 아저씨의 모습이 지금 홀시딘에게 묘하게 겹쳐져 보이는 듯했다.
“세상에는 그 업적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영웅들이 있다. 아무도 기억을 못하는…… 고작해야 그 곁에 있던 몇 명만이 간신히 기억해주는 영웅들이지. 내가 왜 샤오콴 마을까지 오게 된 것 같냐? 그래, 그 영웅 몇 명의 자취를 쫓다가 온 거야. 뭐, 와서 이렇게 한 해를 넘길 줄은 몰랐지만.”
살짝 술에 취한 김에 떠들던 소리였고, 샤오콴 마을의 몇 안 되는 애들이 지나갈 때마다 주절대던 말이었다. 애들에게는 ‘와, 진짜 취했나 보네 이 아저씨, 했던 말을 자꾸 하고 있어!’라는 소리만 나오게 했고, 그 꼴이 웃긴다고 그 앞을 오락가락하게 했던 모습이었다.
홀시딘은 마치 그 오러클 아저씨가 누군가의 자취를 쫓았다는 것처럼 제론과 하펠이라는 둘이 남긴 지식을 더듬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 지식을 유품처럼 여기고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그걸 어딘가에 파묻고 잊자고 한다면, 바로 때려눕힐 듯한 낌새가 보인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투란은 잠깐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에 내쉬면서 짧게 말했다.
“내 책임은 아닌 거죠?”
“응? 네가 책임질 일은 없지.”
무슨 걱정을 하는가 의아해 하면서도 홀시딘은 대답했다.
그래서 투란은 얼른 다른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스터 홀시딘은 상금을 책임질 거죠?”
“그래. 동전 한 닢 놓치지 않고, 전부 뜯어낼 거다! 몰튼노트, 이 불타는 평야에 걸린 상금은 모조리 뜯어내 주마! 내일 망루를 거둬서 두 번째 시련을 향해 가기 전에 상금에 대한 밑작업은 다 끝내놓지! 흐흣, 기대해.”
“자, 잠깐만요! 두 번째 뭐요?”
상금을 확실히 챙겨준다는 소리에 활짝 웃던 투란은 난데없이 나온 시련이란 소리에 황당해 하며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아탑의 마도사는 그런 투란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