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4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39)
홀짝, 한 모금 보랏빛 즙으로 다시 입을 축이면서 홀시딘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상황은 꽤나 분명해졌지. 우리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울타리가 우릴 그 안으로 집어삼킬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구경만 하다가는 잡아먹힐 미래가 불과 몇 년 안에 오늘로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그 울타리가 또 다른 울타리와 만나면서…… 완벽한 재앙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었지. 오늘까지는 말이야.”
투란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홀시딘을 바라봤다.
이야기 하던 중에 돌연 투란을 향해 깊은 눈길을 들이대며 잠깐 말을 멈췄고, 마치 ‘이건 네 이야기야.’라는 듯한데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잖은가.
“그레이우드에서 엘데인과 거리보다 여기와 그레이우드의 거리가 더 가깝지. 숲의 경계가 불타는 평야와 겹쳐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는 예상하기가 아주 힘들었어. 그나마 가장 희망적인 예상이 둘 중 하나만 남지 않을까 하는 거지만, 누가 남든 남은 녀석이 보다 더 끔찍해질 거라는 점은 분명했고 말이야.”
“어, 에…….”
“그리고…… 십여 년 전에는 이 불타는 평야에 대해서는 해결될 가능성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고, 그나마 오우거 쪽이 상대할 만하다고 판단되었지. 어쨌든 오우거니까. 그런 생각으로 세 번씩이나 토벌을 시도했지. 헌터 길드에서 말이야. 첫 번째 시도에서 토벌 팀의 반이 죽었고, 반은 무쇠뿔 오우거에게 뭔가 바쁜 일이 생겨서 살아남았어. 두 번째 시도에서는 바쁜 일이 없었는지 토벌 팀을 몰살시켜줬고, 세 번째 토벌 팀은 무쇠뿔 오우거에게 거의 전력을 퍼붓기는 했지만 팀 멤버의 삼분의 일가량이 죽은 다음에 다시 무쇠뿔 오우거가 바쁜 일이 생겨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전력으로 도주했다는 기록을 남겼어. 대단한 실패가 세 번 이어진 셈이었지만, 헌터 길드는 그 세 번의 시도를 하는 사이에 무쇠뿔 오우거에 대해, 다른 오우거 사냥과 뭐가 다른 상황이었는가에 대해서 철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쌓아 올렸지. 몬스터가 되었음에도 무쇠뿔 오우거가 여전히 ‘정령(精靈)의 가호(加護)’를 받아 웬만한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든가, 강력한 공격으로 한순간에 반신(半身)을 날려 보냈어도 거침없이 움직인다든가, 잠깐 모습을 감췄다 나타나면 완전 회복이 돼 버리는 불사신 상태라든가 하는 특이점을 그때 거의 밝혀낸 셈이야.”
“가호? 정령의 가호요?”
다른 몇 마디보다 그 한 부분을 짚으면서 투란은 어리둥절해 하는 의문을 드러내 보였다. 정령이 뒤틀려 생성되는 몬스터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정령이 몬스터를 지키기 위해 그 힘을 쓰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탓이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 역시 투란처럼 의문을 토해내고 있었으니…….
―무슨 소리야? 정령의 가호를 잃어버린 오우거가 몬스터가 되는 걸텐데 몬스터가 되어서 정령의 가호를 그대로 받고 있다고? 뭔 말이야, 이게?
‘그래?’
투란은 한층 더 갸웃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홀시딘을 바라볼 수 있었다.
홀짝, 가볍게 입술을 축이면서 홀시딘이 가만히 말을 잇는다.
“이상했지. 정령은…… 섭리의 한 축이고, 그 편린이 뒤틀려서 몬스터가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몬스터에게 가호를 부여하는 경우는 상아탑의 방대한 기록을 다시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어서 더욱 당황스런 상황이었지.”
“도감! 도감에서 찾아본 건가요?”
투란이 갑자기 눈을 번뜩이면서 물었다.
홀시딘이 눈을 껌벅이다가 피식 웃고 대답한다.
“주로 도감이었지. 도감에 수록되기 전의 다른 기록도 닥치는 대로 찾아봤고 말이야. 흐흠, 투란은 도감에 관심이 많은가 보네?”
후욱, 숨을 몰아 내쉬면서 투란이 빠르게 외친다.
“대도감! 로열 클래스에게 하나 주는 거 맞죠?”
―야! 너, 지금……!
드라고니아가 주의산만한 투란의 태도를 짚으려 했고, 홀시딘은 ‘엥?’ 하는 소리와 함께 한참 엇나간 화제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투란은 눈앞의 홀시딘을 향해, 뇌리에서 울리는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까지 한쪽으로 확 치우면서 또 외친다.
“몬스터, 마수, 온갖 짐승이랑 풀, 나무…… 도시가 모두 표시되어 있다는 지도랑, 도시마다 특산물이랑 그런 거 전부 기록된다는 마법책! 나중에 새로 알려진 것도 상아탑 근처에 가면 저절로 기록에 추가된다는 책! 그 대도감 말이에요! 하나 주는 거 맞죠?”
“그거 알드바인 상아탑에도 없거든! 너 말하는 거 보니, 분명히 그냥 도감 한 권이 아니라 도감 전서(全書), 통틀어 대도감(大圖鑑)이라고 하는 그거 말하는 거지? 그거 알드바인에 한 권도 없어! 만들려면 들어가는 금괴가, 금괴? 어, 금괴!”
홀시딘은 돌연 로열 가든에 담긴 묵직한 금괴를 떠올린 듯, 말을 더듬었다.
그 모습에 투란이 히죽이 웃으면서 말한다.
“후후훗, 만들어 줄 수 있는 거군요? 아, 알드바인에 놔두고 빌려주기도 할 테니까 일단 내 거 한 권 만들어줘요. 음, 우선 안전하게 머물 곳부터 한 곳 마련해야겠지만, 아무튼! 마스터 홀시딘, 대도감 한 권 약속했어요!”
“어, 그래…….”
“그러면…… 그래서 정령의 가호가 여전히 유지되는 건가요? 지금도?”
뻔뻔하게 투란은 다시 이야기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있었다.
홀시딘은 한숨을 쉬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하던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 지금도 유지될 거야. 내가 여섯 달 전에 확인했으니까, 그사이에 다른 일이 없었다면 여전히 유지되겠지. 헬플레임도 퉁겨내고 일그러뜨리면서 사그라들게 만드는, 거의 대부분의 마법을 무효화하는 강력한 정령의 가호가 말이야.”
“에, 여섯 달 전이요?”
투란이 맹한 표정과 함께 짚었다.
홀시딘이 피식 웃음과 함께 대꾸한다.
“십이 년에 걸쳐 이뤄졌던 변화가 십 년이 되기도 전에 벌어졌는데, 그 전보다 몇 배가 크고 빠른 상황이었어. 그쯤 되면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은 반드시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여섯 달 전까지 그렇게 점검하다가 대강 확장속도가 어느 정도인가, 얼마나 빠르게 가속하는가 확인한 다음부터 대책 마련에 집중해왔다. 뭐, 내가 세운 대책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고,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 행운이 제대로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난 몹시 불행해질 것 같군! 그러니, 딴생각하지 말고 잘 좀 들으라고!”
“에, 예에.”
말이 나오면서 점차 진지해지고 엄격해지는 상아탑의 마도사를 향해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얌전한 자세를 잡으면서 냉큼 대답하고 있었다. 뭔가 잔소리가 더 심해지기 전에 진압하겠다는 듯한 태도였기에, 홀시딘은 살짝 불끈한 눈초리를 했지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데 집중하기로 한 듯 말한다.
“헌터 길드에서 실패한 후, 가능한 거리를 두고 관찰을 해보기로 했었지. 그렇게 해서 그레이우드의 상황을 십여 년 정도 관측했고, 무쇠뿔 오우거랑 마마 트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어째서 숲이 이렇게 확장을 가속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려고 애썼어. 확실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데다가 알 수 없는 일이 잔뜩 있기는 했지만, 분명히 알아냈다. 무쇠뿔 오우거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숲은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마마 트롤을 제거하지 않으면 무쇠뿔 오우거는 멈추지 않는다, 오우거에게 잡혀 죽는 세 마리 트롤은 보통 닷새 안에 길면 육칠 일 뒤에는 다시 태어난다.”
“마마 트롤이 정말 잘 먹나 보군요.”
“그레이우드의 근원인 정령의 나무가 숲의 확장과 함께 더욱 충실한 양분이 되어 주고 있으니까. 순전히 마마 트롤의 몸이 그 출산을 버텨내고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만 필요해진 셈이야. 무쇠뿔 오우거는 아낌없이 정령의 나무에 넉넉한 양분을 뿌려주고 말이지. 즉, 이 순환의 중심에는 둘이 있고 둘 중 하나를 제거해야 하는데…… 둘 다 정령의 나무와 엮인 채이고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태란 거지. 게다가 숲이 이백오십 배 이상 확장된 뒤에는 간단히 숲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방법이 없게 되기도 했으니까.”
“흠, 그렇군요. 10킬로미터짜리 숲이었을 때라면…….”
투란은 납득할 수 있었다.
몰튼노트를 잡아가두려고 둘러친 장벽만 수십 킬로미터였다.
만약 그레이우드란 숲이 10킬로미터 지름이었을 때라든가, 적어도 100킬로 폭을 넘기기 전에 재빨리 손을 썼다면…… 숲과 함께 무쇠뿔 오우거가 강해지기 전이었다면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제는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홀시딘은 뒷머리를 살짝 긁적이면서 말한다.
“십여 년 전까지 여유롭게 생각했던 까닭은 그대로 숲이 커져봐야 갈기산맥 쪽으로 다시 끌려들어가고 끝날 것처럼 보였거든. 갈기산맥을 가로질러 나왔고, 그 끝자락이 여전히 걸쳐 있는 상태라서 이쪽 평원보다는 산맥 쪽 숲이라고 여겨지는 게 그레이우드였으니까. 마수가 가득한 산맥 안에서 숲이 커진다면, 무쇠뿔 오우거라도 마마 트롤이라도 자연스럽게 배제당할 수 있다고…… 좀 지나치게 낙관적인 판단을 했었지.”
“홀시딘이요?”
투란이 갸웃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홀시딘이 미묘하게 씁쓸한 낯빛을 띠며 대꾸한다.
“상아탑과 헌터 길드에서…… 함께 파견된 스카우터 팀이 그렇게 결론 내렸어. 알드바인에서 따로 간섭할 필요가 없었지. 이쪽으로 이렇게 확장해서 불타는 평야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겨우 한 일 년 전에 알아차렸거든. 그때부터는…… 음, 뭐 내가 초조해졌지. 그래서 나 혼자 슬그머니 나와서 알아보고 있었어. 여섯 달 전까지 말이야.”
투란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스카우터 팀의 판단을 믿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몰튼노트까지 풀어줄지 모르게 된 상황을 알고 나서 홀시딘이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 듯하잖나. 특히나 과거에 이곳과 아주 깊이 얽혀있는 홀시딘이었으니까.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아무 답도 구할 수 없어서, 단숨에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는 불꽃을 연구하려고 처박혀 있었지. 거의 답이 보일 듯 말 듯 했으니까. 너한테서 용암왕을 끌어낸 주문은 그 결과물이었지. 너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흠, 그거 그 오우거에게 통할 것 같나요? 정령의 가호를 뚫고 말이에요.”
“몰라. 해보기 전에는 나도 확신할 수가 없다. 정령의 가호가 수백 킬로미터의 숲을 기반으로 펼쳐지면 어떤 위력을 보일지, 전혀 모르겠어. 하지만 정령의 가호든 뭐든, 용암왕을 맞서기에는 터무니없이 약한 거는 분명하지!”
“수백 킬로미터를 뒤져서 그 뿔 오우거를 찾아낸다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말이에요. 가자마자 바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녀석의 보금자리나 둥지는……?”
“음, 그게 말이지…… 전혀 파악되질 않거든. 하핫.”
“뭐요? 마법사님? 마스터 홀시딘! 지금 웃어서 뭘 얼버무리려고 하는 거예요!”
“하하핫, 아까 말 하지 않았나? 무쇠뿔 오우거가 헌터 팀을 상대로 훌쩍 사라졌을 때는 전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이야. 그레이우드에서 녀석은 정말 흔적도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고…… 아, 내가 그 얘기를 안 했던가?”
“안 했어! 이 할배가 정말!”
“그래? 그럼, 지금 하면 되잖아? 에, 그러니까 말이지…….”
“아오옷!”
“아, 목마른가? 속이 답답해? 이거 한잔 마시고 들어봐! 아까 것보다 더 맛있는 거야, 자자, 쭈욱 한잔 마시고!”
홀시딘이 재빨리 새로 병 하나를 꺼내 투란의 빈 잔에 부었다.
보랏빛이 아닌 선명한 황금색의 액체가 빈 잔에 채워지면서 독하다 싶을 정도로 달콤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그 냄새는 확실하게 투란을 잠깐 멈칫하게 했고, 잔을 입가에 대게 하는 강렬한 유혹에 성공했다!
―야, 이 멍청한……! 어, 이건……?
드라고니아가 잔소리 한번 세게 하려다가 투란이 입과 코 가득히 느끼는 감각에 말을 멈추고 놀랐다. 투란이 그 낌새를 바로 틈타서 꿀꺽 소리와 함께 입안을 비우고 묻는다.
“이게 뭐예요?”
“붉은 여왕벌의 꿀. 한 모금 마시면 사흘을 굶어도 전혀 배고프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강한 술이지! 음, 그러니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래! 그레이우드에서 무쇠뿔 오우거를 찾는 거! 그냥 싸돌아다녀서는 무리이고, 잡으려면 어떻게든 추적해야 하지. 그 준비는 이미 갖춰놨어. 내가 여섯 달 전에 물러설 때, 그 준비가 되어서 물러선 거니까.”
“흠…… 꿀꺽. 홀시딘, 알고 계시죠? 내가 가장 길게 몬스터 형상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열흘이라고 해도, 열흘 내내 그럴 수는 없다는 거. 사나흘 정도는 끄떡없이 유지하지만, 그 정도로는 숲을 몽땅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거. 제대로 오우거를 포착하지 않으면…… 꿀꺽꿀꺽! 몬스터의 힘을 쓰고 어쩌고 할 수가 없다는 거!”
짙고 달콤하면서 속을 시원하게 채워주는, 전혀 술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꿀맛에 빠져들면서도 투란은 말하고 있었다.
홀시딘은 빙긋 웃으면서, 자신의 잔에는 투란의 잔에 부은 것의 절반도 안 되는 적은 양을 부으면서 대답한다.
“알아. 내일 바로 그레이우드로 가서, 한 사흘…… 늦어도 나흘 이내에 녀석을 포착해낼 거야. 그다음에는 놓치지 않을 거야. 그럴 준비는 해놨다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마셨으면 쉬라고, 투란.”
“음, 그렇죠. 쉬어야죠…… 한 잔만 더…….”
잔을 핥다가 투란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내밀며 외쳤다.
홀시딘의 얼굴에서 웃음이 미묘하게 흐려졌지만, 투란의 잔은 다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