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40)
날이 밝자마자 투란은 뇌리를 울리는 잔소리부터 들어야 했다.
―앞뒤 어긋난 얘기를 했다는 거 알고 있지?
‘어? 뭐가?’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고 해놓고서 찾아낼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고! 홀시딘, 저 상아탑의 마도사가 말이야! 넌 붉은 여왕벌 꿀맛에 정신줄 놓고 더 묻지 않았고!
‘아, 그거…… 음, 뭐…… 가보면 어떻게 되잖겠어?’
―야!
“후아암!”
일부러 큰 숨소리를 뱉어내면서 투란의 눈길이 주변을 훑었다.
홀시딘의 기척은 망루 밖에서 느껴졌다. 뭔가 준비하는 듯, 마법의 기척을 잔뜩 풍겨내고 있었다.
―이대로 덜렁거리며 가봐야!
‘너도 꿀맛에 홀랑 넘어갔으면서 아침 되자마자 잔소리야? 그러고 보니 그거 마실 동안에는 아주 조용하더라? 왜 그랬어?’
―드라코눔에서 주식으로 삼는 거랑 거의 똑같았다. 너무 오랜만에 그 맛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어서 잠깐 말문이 막혔던 것뿐이야.
‘헤에, 그랬구나. 정직한 대답에 감사! 자, 그러면…….’
아직도 속이 든든한 것을 신기하게 여기면서 투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바람이 곧바로 몸에 와 닿는 것을 느꼈고, 덕분에 망루의 투명한 벽이 사라진 채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흘깃 돌아보니 누운 자리가 움푹 패인 채로 외곽이 돋은 침구가 요람처럼 누워있는 동안에 바람막이 노릇도 해준 모양이었다.
‘아, 이거 땅 파고 들어가 누운 꼴이었네? 이렇게도 되는구나.’
새삼 마법사가 준비한 망루의 도구들을 둘러보면서 투란은 망루 가에 섰다.
내려다보니 홀시딘이 저편을 바라보면서 로브 자락을 펄럭이는데, 한 손으로 눌러 짚은 지팡이 곁으로 둥실거리며 뜬 모습이었다. 투란은 곧바로 그 곁으로 뛰어내렸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투란이 건네는 말에 홀시딘이 빙그르, 지팡이를 중심으로 삼아 회전하며 망루를 바라보는 모습이 되어 대꾸한다.
“잠이 오지 않아서…….”
“어? 설마 밤새 그러고 있었어요?”
투란의 물음은 홀시딘의 입가에 곧바로 씁쓸한 웃음이 나타나게 했다. 바로 투란이 한 말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표정이 그 웃음과 함께 홀시딘의 얼굴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홀시딘이 꺼낸 말은 그런 기분과 조금 거리가 있는 물음이었다.
“속은 든든하겠지?”
“음? 아, 에…….”
“그럼, 망루를 챙길 테니 좀 떨어져 있어.”
“에, 엥? 망루를 챙겨요?”
투란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얼른 홀시딘을 지나치면서 망루에서 멀리 섰다.
홀시딘은 지팡이를 들어 올려 망루 앞에 꼿꼿하게 세우듯이 들이댔고, 곧바로 짧은 주문이 흐릿한 소리로 울렸다. 투란은 귀를 쫑긋했지만 제대로 들을 수 없었고, 망루는 그 흐릿한 소리에 철저하게 반응하듯이 비비 꼬이면서 맴돌며 길쭉하고 가늘게 변해갔다. 지팡이가 운 것은 조금 뒤였고, 망루와 지팡이 사이에 굵은 실 가닥이 오가는가 싶더니, 지팡이로 변해버린 망루가 실타래 옮겨오듯이 옮겨졌다.
“좋아, 그럼 출발하자. 에어록.”
투란이 신기한 광경을 보며 눈을 깜박거리는 사이에 일 끝났다는 듯이 지팡이를 거둬들이면서 홀시딘이 새로 마법을, 투란을 알드바인에서 묶어 올 때의 마법을 다시 걸고 있었다.
“우어?”
투란은 곧바로 허우적거리다가 이전과 다른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온몸을 돌돌 말 듯이 감싸던 압력이 아니고, 허리와 등, 다리를 부드럽게 받쳐 올리는 바람결이었다. 그리고 바람으로 이뤄진 집처럼 위, 아래, 왼편, 오른편, 앞, 뒤로 두툼하고 짙게 자리 잡는 바람결이기도 했다.
“인도하라, 약속한 곳으로.”
투란이 뭔가 묻기 전, 홀시딘은 쉼 없이 마법을 이어갔고 다음 순간에 홀시딘과 함께 투란은 자신이 높이 치솟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망루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버린 채로 발아래 저 멀리 흔적만 희미한 채로 놓여졌고, 저편 불타는 평야의 풍경도 아래로 굽어보는 것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런 주변 풍경을 오래 볼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 느릿한가 싶었지만 곧 쏘아진 화살보다 몇 배나 빠르게 허공을 가르면서 홀시딘과 투란은 저 멀리로 날려지고 있었다.
바람의 거품, 혹은 방울 같은 형태 속에서 투란은 아래로 스쳐가는 풍경을 둘러봤고, 옆으로 눕거나 몸을 뒤집거나 해봤다. 홀시딘이 멀어져 가는 불타는 평야의 변해가는 풍경에 침묵한 사이에, 투란은 에어록이 어떻게 자신을 감싸고 보호하며 멀리 실어나르기 위해 준비된 것인가를 확인하는 셈이었다.
‘와아, 신기해! 내 에어로는 이렇게 못하려나?’
―네가 준비를 잘 갖출 줄 알게 되면, 언젠가 할 수 있겠지. 너 하기 나름이다.
‘쳇. 아, 망루는 저렇게 둘둘 말아가지고 다닐 수 있는 거야? 세이프티 하우스랑 너무 다르네?’
드라고니아의 잔소리에 투란은 바로 툴툴거리려다가 물었다.
―마법에 사용한 촉매를 일정량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거야. 이건 너에게는 좀 무리다. 아니, 너뿐 아니라 시알라 남매에게도 무리겠군. 순수한 마력을 이용해서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안전가옥을 형성하는 것이 세이프티 하우스이고, 그 때문에 환경에 맞춰진 안전한 집을 만든다면…… 이 상아탑의 마도사가 촉매를 이용해 구현한 저 망루는 어디에서든 일정한 성향을 지닌 영역을 형성한다고 해야겠지. 촉매의 내구성에 따라서 망루의 지속성이 곧바로 영향을 받기도 하니까…… 단순히 말하자면 황금매의 세이프티 하우스보다 안전하지는 않다. 하지만 마법사의 다양한 도구, 주문을 위해서는 훨씬 안정적인 영역, 경계를 지켜준다고 해야겠지.
‘흐흠, 뭔가 어려운 얘기네. 아, 내려가네?’
날아가는 궤도가 살짝 아래를 향하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곧바로 홀시딘을 향해 입을 연다.
“그 오우거의 숲으로 바로 들어가는 건가요?”
저 편에 서서히 숲의 모양이 드러나고 있기에 꽤나 알맞은 때에 묻는 셈이었다.
그런데 아직 불타는 평야의 추억에 잠긴 탓인지, 홀시딘이 조금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니, 원래 내가 준비한 곳은 숲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야.”
“지금 우리 숲으로 떨어지는 거 아닌가요?”
점점 낮아지면서, 슬슬 높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지 않을가 싶은 궤도였기에 투란은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홀시딘은 지팡이를 살짝 뒤틀 듯이 움직였고, 지팡이 머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바람결이 뒤틀리는 듯하면서 잠시 둘은 위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렇게 조금 높아진 다음에 홀시딘의 대답이 나온다.
“아무래도…… 숲 한복판으로 처박혀야 할 모양이네.”
“에? 처박히다니요옷!”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아마도……!”
“아, 진짜……!”
투란은 홀시딘이 정말 어처구니없이 대답하고 있다고 투정부리고 짜증 내는 척하면서 재빠르게 주변을 훑어봤다. 이럴 경우에 홀시딘을 붙들고 이게 뭐냐고 따지는 것에 집중하다가는 아주 위험한 꼴을 겪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그사이에 주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쪽이 더 낫다!
홀시딘은 투란이 그러는 모습을 흘깃하고는 곧바로 지팡이에 마력을 모으면서 정신을 집중했고…….
“리빌드(Rebuild).”
지팡이 끝이 한곳을 가리키는 순간에 짧은 마법의 한마디가 세게 터져 나왔다.
지팡이가 곧바로 이 한마디를 지상(至上) 명령으로 받아들인 듯이 세차게 진동했고, 지팡이로부터 굵은 실 가닥이 맴돌면서 풀려나오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다음 순간, 투란이 보고 안 것은 몸에는 거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센 충돌이었다.
콰앙!
“헐?”
순식간에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온 ‘망루’가 땅속을 파고들었고, 투란은 자신과 홀시딘이 그 망루의 바닥층에 아주 얌전하게…… 한 톨의 충격도 없이 부드럽게 몸을 휘감는 바람결에 쓰다듬어지는 채로 놓이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곧바로 입에서 새는 소리를 내고 마는 투란이었는데…….
“걱정할 일 없다니까.”
홀시딘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면서, 마음을 놓은 표정을 한껏 지으면서 이런 소리를 하잖는가!
“조금 전에 엄청 긴장했잖아요! 다 보였거든요!”
“음, 뭐…… 이렇게 숲의 경계가 예상을 초월한 속도로 확장되어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원래 마법사가 그런 예상 밖의 일을 보면 좀 당황하는 거야. 하지만 내가 준비한 이곳에는 아무 침입이 없었고, 예정대로 하이딩 피트(Hiding Pit)가 완성되었으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
“내가 긴장한 게 아니고, 할배가 긴장했잖아앗!”
껄껄 웃으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홀시딘이었고, 투란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며 짚었다.
“으흠, 너무 소리 지르지 마라. 여기는 이미 무쇠뿔 오우거의 영역 안이라고 봐야 하거든. 숲 안으로 우리가 뛰어들면서, 뭐 보다시피 땅 아래로 잽싸게 파고들어 뚜껑 단단히 덮은 꼴이기는 하지만…… 오우거가 땅속이 이상하다고 삽질이라도 할지 모르니까.”
“오우거 핑계 삼아 협박입니까!”
투덜대기는 했지만, 투란의 목소리는 확 낮아진 채였다.
이에 홀시딘은 빙긋 웃었고, 드라고니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오면 좋은 거 아니었냐? 찾으러 다닐 거였잖아?
‘얼래? 그, 그러네?’
투란은 자신에게, 그리고 홀시딘에게 어이가 없어서 잠깐 숨을 몰아 내쉬면서 망루가 거꾸로 박힌 하이딩 피트를 둘러봤다. 중심에 선반이 새겨진 듯한 기둥을 두고, 나선계단이 외곽 벽을 감은 채로 위로 올라가며 층을 만들어내는 구멍으로 된 집처럼 보였다. 땅 속이라서 따로 벽을 세울 필요 없이 그냥 파고든 순간에 벽이 마련된 듯한 광경, 맨 아래쪽에 쿠션 침구와 함께 다시 홀시딘의 로브가 벽장 모양으로 늘어선 것까지 망루를 거꾸로 쌓아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단지 밖을 엿볼 수 있는 유리벽은 싹 사라진 듯한…….
“여기 원래 숲 안쪽이 아니었다고요?”
불쑥 투란이 묻는 소리에 홀시딘은 잠깐 신중하게 생각하고 나서 대답한다.
“그래. 숲 바깥쪽에, 한 일 년 정도는 숲의 확장에 휩쓸리지 않을 거리를 두고 미리 마킹을 해둔 곳이야. 여기까지 숲이 확장되려면 그래도 한 이 년은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반년 만에 삼켜진 꼴이라니…….”
답답해하면서 무거워지는 홀시딘의 말투를 느끼면서 투란이 다시 묻는다.
“이렇게 빨리 번지는 숲이라면, 어느 정도는 미리 막아둬야 하지 않았나요? 뭐, 좀 사납기는 하겠지만 불을 질러놓는다든가 나무가 자라지 못하게 나무에 해로운 독을 뿌려놓는다든가…… 숲을 개간할 때 하는 방법으로 숲의 확장을 막을 수 있었잖아요?”
“그거, 옛날 오우거랑 사투를 벌인 용사 이야기에 나오는 거잖아?”
살짝 가늘어진 눈초리로 홀시딘이 투란에게 되물었다.
슬그머니 그 눈길을 피하면서 투란이 어물쩍 대꾸한다.
“에, 뭐…….”
“그런 방법이 통할 경우도 있지만, 여기는 아니야. 그레이우드, 이거 회색 숲이란 뜻이잖아. 왜 그런 이름이 붙었냐 하면 허연 재가 된 상태에서 새싹이 팍팍 돋는 품종의 초목(草木)이 가득한 곳이라서야.”
“재 속에서 새싹이 돋아요?”
“나무 품종 중에는 씨앗이 깨어나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기 위해서 불에 좀 타야 하는 것들이 있어. 그레이우드는 특히나 그런 품종이 대다수지. 다른 품종은 어쩌다 바람 타고 왔거나, 새로 숲에 들어선 짐승 털에 묻혀 온 경우이고 그레이우드의 기반을 이루는 풀, 나무 품종은 속칭 화염종(火焰種)이라서, 불 붙여 놓으면, 일 년도 안 되서 그 전보다 더 크게 번성하는 숲이지.”
“그, 그러면 숲을 막기 위해서 도끼질이라든가, 구덩이를 파서 독극물이라도 부어놓는 거는…….”
“오우거랑 공성전 하는 셈이잖아, 무쇠뿔 오우거랑 직접 싸워서 이길 자신이 전혀 없는 헌터 길드가 그런 짓을 하겠어? 그렇다고 상아탑의 마법사가 도주할 준비를 한 다음에 도끼랑 삽 들고 벌목할 일도 없지. 뭐, 이런 저런 일로 서로 못할 짓이라고 여기는 상황이 많이 꼬인 채라서, 숲의 확장을 사람 손으로 어떻게 막지는 못하지. 무엇보다 그런 게 되면, 내가 널 여기에 시련이라고 데려왔을 리가 있겠냐?”
“크응! 그렇겠지요. 아, 그런데 여기서 시끄럽게 굴면 오우거가 찾아오는 거였어요? 어차피 찾아야 할 건데, 그냥 막 시끄럽게 해버리면 어떤가요?”
투란은 슬쩍 드라고니아가 짚은 것을 말로 꺼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피식, 홀시딘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고…….
“그렇게 해서 오는 거였으면,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겠냐? 호기심에 찾아왔다 하더라도, 헌터 길드 팀이랑 싸웠을 때처럼 금방 바쁜 일 찾아서 훌쩍 가버리면 우리가 곤란하잖아.”
“크앗! 그런데 아까는 오우거 나온다고 협박질이었어요?”
“어, 그건 애들 얌전히 재울 때 써먹는 자장가 같은 거였지. 근데, 투란 너 그 말에 홀랑 넘어왔잖아?”
“크어엉!”
세찬 콧김을 뿜어내면서 투란은 금단(禁斷)의 숲이라는 그레이우드, 안전한 땅 구멍 속에서 마법사에게 놀림받는 처지가 된 자신을 실감했다! 드라고니아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놀리는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퍼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