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4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41)
Chapter 89. 두 번째 시련, 무쇠뿔 오우거
“어라? 그거 기어박스……? 동그랗게 생겼네?”
투란이 갸웃하면서 홀시딘이 꺼내 든 중심이 볼록한 원판 형태의 물품을 보고 중얼거렸다.
“응? 시계 본 적 없어?”
“달칵거리면서 태엽 풀리는 소리 나는 걸 보니, 기어 박스인데…… 시계요? 태엽상자 같은 걸로 시간 재는 것도 만들어요?”
“네가 본 기어박스는 뭐 하는 물건이었는데?”
“음, 그야…… 그러고 보니 때 되면 무조건 터뜨리는 덫을 만드는 데 쓴다고 했었네! 오호…….”
투란은 팔짱을 끼면서, 홀시딘이 한 손에 지팡이를 잡고 한 손으로 꺼내 뚜껑을 여는 시계를 바라봤다. 한 손에는 마법의 도구를, 한 손에는 기계술로 만들어진 도구를 든 까닭이 궁금하다는 듯…….
홀시딘은 설명보다 먼저 펼쳐진 침구에 몸을 얹고 단정히 앉는 자세부터 만들었다. 오랜 시간 견디겠다는 듯이 이리저리 몸가짐을 바꿔보더니, 결국 지팡이를 반쯤 바닥에 굳게 박아넣었고 시계를 쥔 손은 아주 편안하게 허벅지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다음에야 투란이 입술을 삐죽이는 꼴을 흘깃하며 말한다.
“마력을 제어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시간 감각이 어긋나기 쉬워. 그럴 때는 아예 시간을 측정할 도구를 따로 이용하는 게 더 나으니까. 이제부터 시작하려는 마법은 광범위한 탐지를 위한 마법이고…… 완성되려면 이틀이나 사흘 정도 걸려.”
“에? 마법 한 가지 거는 데요? 준비 다 된 마법이잖아요?”
“예정과는 조금 많이 변해 있잖아. 변해버린 부분을 감안해서 새로 조정하는 거라 어쩔 수 없어.”
“그럼, 그동안 난 뭘 하고 있으면 되는데요?”
갸웃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왠지 홀시딘이 저리 자리 잡으면 아예 꼼짝도 않을 듯하잖나.
“쉬고 있으라고 하면…… 많이 심심하겠지? 그렇다고 주변 정찰을 하고 있는 것도 애매할 텐데…… 하이딩 피트라서 주변 돌다가 오히려 주의를 끄는 경우도 있을 테고…… 음, 어쩐다?”
갸웃하는 홀시딘의 말은 어딘가 진지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투란은 곧바로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홀시딘은 마법에 이미 집중한 상태였고, 순전히 여분의 의식만을 남겨 떠들고 있었다.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눠서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전에 스쳐가듯 들었던 마인드 트릭을 홀시딘이 제대로 쓰는 모습을 보이는 셈이었다. 마음의 중심을 투란에게 두지 않고, 마법에 둔 채로!
한숨을 쉬는 시늉을 하며 투란이 말한다.
“주변을 살펴보고 경계를 서고 있도록 하죠. 다른 생각이 나거나 하면 바로 돌아와서 말하고 말이에요.”
“그래…… 불러야 할 정도로 급한 일은 거의 없겠지만…… 있다면 바로 로열 가든의 징표를 사용하도록 하지.”
여전히 살짝 들뜬 듯이 진지하지 못한 느낌을 담은 말투로 홀시딘이 대꾸했다.
그런 마법사의 모습에 투란은 슬쩍 돌아서서 계단을 오르며 드라고니아에게 소리 없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저렇게 보였을까?’
―저렇게라니?
‘왠지 성의 없이 건들거리면서 대꾸하는 것 같잖아. 전혀 진지하지 않게 말이야.’
―글쎄…… 네 경우랑은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진지하지 않다는 부분은 잘못 본 거다. 홀시딘의 마법은 지금 이 하이딩 피트를 재조정하는 마법과 준비된 탐지 마법의 검토, 로열 가든의 징표를 통해 너를 관찰하는 것까지 세심하게 해내고 있거든.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 너에게로 전해오는 징표의 파동을 통해 알아낸 게 이 정도이고…… 저 상태라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상황에 대한 다른 방향에서의 검토와 계획을 재구성하는 것도 하고 있다고 봐야 할걸.
‘으아, 그게 뭐야.’
듣다 보니 마치 홀시딘이 여러 개의 머리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따로 떠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꺼번에 해치우며 히죽 웃는 듯하잖은가!
조금 질린 기분을 떨쳐내려는 듯, 투란은 재빠르게 계단 위에 뚜껑문을 열고 나갔다. 그 순간…….
휘이잇!
풀잎을 가르는 세찬 바람이 투란의 얼굴을 더듬고 지나갔다.
나뭇잎 사이를 가르고 떨어져 내리는 조각난 햇살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늘의 시원함,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온 햇살의 따스함이 뜨겁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상쾌한 바람이 투란의 머리카락 사이로, 완전히 밖으로 나온 투란의 몸을 더듬으며 지나갔다.
‘솔나무……?’
투란은 넓게 펼쳐진 잎 테두리가 회색인 것을 봤고, 그 속이 녹색으로 채워진 채로 매달고 있는 방울을 흔들거리는 나뭇가지를 봤다. 완연히 그늘 속에 잠긴 잎은 가늘게 회색 바늘모양으로 말려 있는 것이 솔나무의 잎이란 것을 바로 증명하는 듯했다. 하나의 나무에서 잎이 펼쳐진 모양과 바늘처럼 말린 모양을 동시에 드러내고, 거기 매달린 열매는 동글동글하면서 녹색의 끈이 나란히 그어진 회색 바탕의 까칠한 표피에 싸인 듯이 보였다.
바로 가까운 나무를 타고 오른 투란은 열매 하나를 따서 곧바로 껍질을 쪼개봤다. 보랏빛 점액이 걸쭉하니 흘렀고, 입에 넣자마자 흐릿한 단맛이 느껴졌다. 홀시딘이 간밤에 목을 축이라고 줬던 음료 맛이랑 비슷했다.
‘음, 이걸로 즙을 내서 만들었나 보네.’
입안에 열매를 넣고 우물거리며 투란은 내려다보이는 바닥, 조금 높은 곳에서 둘러볼 수 있는 풍경을 빠르게 훑어봤다.
사아…….
바람 소리가 나뭇잎 사이를 헤집으며 가지를 흔들고 지나갔다.
부드럽게 숲의 곳곳을 누비며 나무 사이로 흐르는 바람결을 표시해주듯이 흐느적거리는 넓은잎 솔나무의 은은한 회색 윤곽, 퍼릇한 잎사귀 아래로 매달린 열매가 방울처럼 흔들거리지만, 방울 소리는 없었다.
‘이상해…….’
짐승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숲이 흔들거리는 회색의 물결 사이로 푸른빛이 일렁이며 그 아래에서 회색과 녹색의 묘한 거품방울처럼 찰랑이는 풍경을 꾸미고 있을 뿐이었다.
엉켜버린 듯한 나무줄기, 가지가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조금 세고 짙게 들려올 뿐이고 거기에 바람 소리가 더해져 있는 풍경…… 다시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진짜 이상한 숲이지?’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원래 이상한 숲이라서 온 거잖아?
‘야! 그런 거 말고, 역병의 숲이었어도 들짐승 소리, 날짐승 소리, 벌레 소리는 다 있었잖아! 여긴 그런 게 전혀 없어! 이상하잖아!’
―뭐, 홀시딘이 말한 대로라면 그건 전부 오우거에 의해 도륙된 탓이겠지. 날짐승이나 벌레까지 무슨 수로 잡았는가는 납득하기 어렵다면…… 좀 더 둘러보고 알아보지 않으면 억지로 근거 없는 추측만 할 수밖에 없지.
‘열매가 잔뜩 열려 있어. 바닥에 떨어진 거는 껍질이 까이지도 않은 채로 계속 땅에 파묻히는 꼴이라고. 이런 열매라면 새들이 떼로 몰려와서 와글거려야 한다고. 새들이 그렇게 와글거리면 새똥을 쫓는 벌레가 꼬이고, 그 벌레를 노리는 작은 짐승과 더 큰 벌레가 꼬이고…… 역병의 숲에서도 그런 숲의 생태는 최소한 유지되었잖아.’
―전부 역병 들린 채라 몽땅 몬스터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 분명히 괴상하기는 한데…… 투란, 여기 나무와 풀은 모두 ‘정상’이다.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고.
‘야, 그렇게 말하니까 더 무서워!’
―그래서 어쩌려고?
‘흠……. 오래 있기는 싫어! 아, 우리도 프로브로 뒤져볼 수 있잖겠어?’
―홀시딘의 마법을 얕보지 마라. 우리 프로브까지 포착해낼걸. 황금매의 문장과 함께 전해졌다고 우기기에는 드라코눔의 마법이 너무 특징이 분명하지. 투란, 나에 대해서는 숨기기로 하지 않았나?
‘쳇. 숨기기로 한 게 아니고, 네가 숨었잖아. 널 꺼내 보일 수 없다면, 있다는 시늉도 하지 말라고 아주 뜨겁게 내 가슴에 못 박아줬지. 너도 그건 딱히 싫은 것 같지 않더라?’
―몬스터가 된 채로 제정신을 차린 곳이 몬스터 로드의 문장 속이다. 뭔 자랑할 일 있다고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겠나!
‘암튼, 들키지 않고 프로브를 쓰려면…… 지금 상태로는 안 되는 거지?’
―그래, 몬스터의 형상을 끌어내고 고유마력으로 덮어서 분산시켜 활용하는 힘을 지닌 척해야 하지. 역병의 숲에서 얘기했던 대로 말이야. 넌 아직 오러로는 그럴듯하게 보여줄 원격제어가 안 되니까, 남은 거는 몬스터 로드답게 몬스터의 능력을 핑계 삼는 수밖에 없어.
‘좋아, 그러면…… 말 나온 김에 역병의 숲에서 얻은 녀석들을 써먹어볼까!’
―에? 엥? 야, 잠깐!
드라고니아가 당황한 소리가 뇌리를 울렸지만, 투란은 왼팔을 뻗어 붉은 털과 사나운 발톱이 자라난…… 손의 역할을 하는 발을 내뻗어 나뭇가지를 당겨 몸을 날리고 있었다. 단지 한 팔로 가지를 당겨 퉁겼을 뿐이었지만, 투란의 몸은 투석기에서 쏘아진 돌덩이처럼 경쾌하게 높이 날았다.
발아래 깔린 숲의 풍경, 그 사이를 가르는 바람결을 노출시키듯이 흔들거리는 나뭇잎의 출렁임을 보면서 투란의 왼팔에서 붉은 털이 사라지고 검은색의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느껴지는 털이 자리 잡았다. 이글대는 검은 불꽃의 색채는 잠깐씩 흩어졌고, 그때마다 투란의 살갗이 흩어지는 것처럼 붉은 속살이 훤히 드러나며 가죽이 벗겨진 꼴을 보였다. 너무 깊이 팰 때는 슬쩍 뼈의 모습까지 드러날 지경이었다.
이런 검은 털의 이글거리는 형상은 곧바로 투란의 온몸을 채웠다.
크릉!
살짝 짐승의 목젖을 울리며, 투란은 검게 이글거리는 두 팔을 휘둘러 나무를 잡고 뛰어 오르면서…… 어느 틈엔가 네 발로 허공을 달리는 듯한 늑대의 모습을 살짝 드러내며 하이딩 피트로부터 멀어졌다.
나무를 박차고, 그 가지를 타고 거의 날 듯이 질주해서 얼마 뒤에 투란의 앞에 나무가 우거지지 못한, 풀만 무성한 빈 마당 같은 지형이 나타났다. 하이딩 피트는 없지만, 하이딩 피트가 자리 잡은 곳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투란은 거기에 네 발 짐승, 시커먼 늑대의 모습으로 내려섰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역병 들린 웨어울프라니! 여기 역병 터뜨려서 뭘 어쩌자고!
‘앙? 누가 역병을 퍼뜨려? 잘 보고, 느끼라고.’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질러대는 소리에 조금 차갑게 반박했다.
입술을 뒤집고 이를 드러내는 검게 이글거리는 늑대의 입 언저리는 털가죽이 순식간에 사라진 듯, 피와 살이 엉긴 속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가 금세 다시 이글대는 털가죽에 덮였다. 이런 현상은 네 발로 땅을 후비는 늑대의 몸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늑대의 발아래 풀 위로 검게 이글거리는 불꽃같은 그림자가 옮겨갔다. 이를 시작으로 삼은 듯 곧 늑대 주변으로 시커먼 색채가 번져갔다. 색채는 후벼파내는 늑대의 발끝을 따라 땅 속으로도 스며들었고, 늑대 주변의 바람결에도 살짝 스며드는 듯했다.
―일차연쇄는 막을 수 있지만 이차, 삼차 연쇄에 의한 역병의 감염은 막지 못했잖아! 그거 다 확인했기 때문에 숲을 떠나서는 쓰지 않기로 했잖아! 그걸 이런 숲에서 꺼내다니! 대체 뭔 생각이야! 오우거 따위가 주름잡는 숲이니까 아예 역병으로 제압하겠다는 거냐? 근심걱정이 모자란 근처 인간들에게 제대로 걱정할 거리가 뭔지 선물해주고 싶어?
‘아, 진짜! 잔소리하기 전에 좀 보고 느끼라고! 잉크랑 섞었고, 블랙 애쉬랑도 섞었어! 절대로 이차연쇄가 일어나지 않는다니까!’
―뭐?
‘하아…… 너, 정말 내가 하는 일을 완전히 느끼지 않고 있었냐? 으이그읏!’
늑대의 이빨 사이로 혀가 낼름거리며 움직였다.
주변을 덮어가는 검은 색채, 이글거리는 털이 흩어지고 맨살이 드러나는 늑대가 느릿하게 두 발로 섰다. 조금 전까지는 네발 짐승이었지만 이제는 두 발 짐승이 늑대의 머리를, 늑대의 앞발을 우람한 손처럼 변화시킨 듯한 모습이 되었다.
―이건 대체 무슨 요상한 재주냐?
결국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투란이 하는 바를 겨우 제대로 느낀 것인지 드라고니아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어이없어 하며 묻고 있었다. 늑대의 입술을 까뒤집으며, 그 살갗을 훌렁 잠깐 벗어젖힌 듯한 시뻘건 속살을 드러낸 웃음을 띠면서 투란이 답한다.
‘뭐가 요상해, 요상하긴! 몰튼노트랑 하루 동안 싸우고 나서도 새로 배운 게 아무것도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
―몰튼노트? 거기서 대체 뭘…… 어라?
‘흐흥, 이제 눈치챘어?’
―이런 식으로 몰튼노트의 능력을 역병 제어에 활용할 생각을 하다니, 그동안 쉬지 않고 어떻게든 마음 한구석에서 궁리하고 있었더냐! 쓰지 않기로 한 건, 그냥 잔소리 듣지 않으려고 둘러댄 거였구나!
‘에헤…… 왜 삐딱하게 그래? 너도 ‘역병의 수해’에 대해서 집요하게 연구했잖아. 너 하는 거 보고 나도 연구를 좀 한 거지. 사실 이렇게 쓸 생각을 한 거는 아니고, 몰튼노트가 뭔가에 스며든 채로 단단히 묶어가며 집중하는 부분이 여태까지 역병 들린 녀석들을 다루는 데 모자란 부분이란 걸 알아차린 것뿐이야. 어쨌든…… 숲이 이상한 힘을 지녔다면, 그걸 읽어내는 데는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콰앙!
검은 늑대가 옆으로 튕겨나갔다.
원래 발 딛고 있던 자리에는 굵게 팬 흔적이 새겨졌다.
―이게, 어디서 나온 거지?
드라고니아는 이제 투란에게 품었던 어이없는 기분을, 거대한 주먹을 내리꽂은 오우거에게서 느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