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4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42)
“얘기가…… 크르르, 다른데? 크르르! 보기 힘들다더니! 크흥!”
늑대의 입으로, 투란은 사람의 말을 토해냈다.
어디 숨어 있나 몰라서 찾으려 했더니, 바로 등 뒤에서 나타나 주먹질을 해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대체 이렇게 빠르게 나타날 놈을 홀시딘은 왜 그리 힘들게 찾으려 하는가, 하는 의문이 어이없이 피어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투란이 느릿하게 일어서며, 흩어져 있던 역병의 힘을 거두고 나무에 반쯤 몸을 가리고 있는 듯한 오우거…… 두 뿔이 우람하게 돋아난 오우거를 마주 보는 순간, 오우거의 형체가 나무 뒤로 숨어버리 듯, 사라지고 있었다.
―저게, 어디로 사라진 거지?
다시 한번, 드라고니아가 나타난 오우거를 봤을 때와 똑같은 말투로 의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투란도 똑같은 의문을 늑대의 입으로 토해냈다.
“이놈…… 아예 없어졌잖아? 아니, 저 가느다란 나무 뒤에 숨을 수도 없는데 조금 전에는 또 어떻게 된 거였어!”
오우거를 가려주는 듯했던 나무는 오우거의 손가락 굵기보다 가늘어 보였다.
한데 오우거는 그 뒤에 몸의 반 이상을 분명히 가리고 있었고, 그 뒤로 숨는 듯이 물러서는 순간에 사라졌다.
투란은 짧은 순간을 다시 되새기면서 그 광경을 확인했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다시 한번 기억을…… 너무 순간적이었던 방금 상황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다시, 아주 세세하게 티끌 하나까지 헤아리면서 지켜보는 것처럼.
그 주먹은 검은 바탕에 갈색 넝쿨 끈, 초록빛이 맴도는 건틀릿에 감싸인 것처럼 보였다. 느닷없이 가느다란 나무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거침없이, 아주 크게 휘둘러지면서 검게 이글거리는 늑대의 형상을 내리찍었다.
그걸 피해낸 채로 다음에 본 것은 오우거의 상체, 허리 아래는 보이지 않았고 윗몸조차도 절반은 나무에 가려진…… 자기 손가락보다도 가느다란 나무에 가려진 괴이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오우거의 머리에는 주먹처럼 뭔가에 감싸여 있는 우람한 뿔, 턱과 목을 감싸고 맺혀진 듯한 기묘한 갑주의 형태…… 무쇠라는 호칭이 어째서 붙어 있는가를 증명하는 듯한 특이한 무장(武裝)이었다.
무쇠뿔 오우거가 주먹을 거둬들일 때, 투란은 역병의 힘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맞붙어 싸워볼 생각을 했고 그 순간 오우거는 큰 두 가닥의 뿔을 살짝 흔들며 나무 뒤로 스윽 사라졌다.
남은 것은 역병의 힘이 사라진 채로 움푹 패 버린 땅과 멀뚱하니 사라진 오우거를 추억하는 듯한 투란뿐.
사아앗.
부드러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한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귓불의 뒷면을 꾹꾹 눌렀다. 작게 돋아 있던 ‘악마의 심장’,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파라블랙․잉크’가 투란의 귓가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투란의 눈가에 짙고 검은 그늘이 드리워졌고, 미세한 눈알들이 점처럼 돋아났다. 바쁘게 움직이는 눈알들을 통해 투란은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을 아주 넓게 시야에 담았고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오우거, 무쇠뿔 두 가닥을 흔들거리며 주먹질을 했던 놈은 지금 이 근처에 없다!
‘땅을 딛고 뛰어간 것도, 껑충거리며 날아오른 것도 아니야. 나무를 타지도 않았어.’
―그래, 흔적도 없이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이건 마치…….
‘어? 너, 전에 이런 거 본 적 있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곤혹스럽게 꺼낸 한마디를 바로 붙들었다.
전혀 낯선 상황이었고 처음 보는 투란과 달리 드라고니아는 뭔가 비슷한 것과 비교하는 ‘마치’라는 한마디를 꺼내고 있었으니…….
―아빈가의 숲…….
‘야, 그 녀석은 허공에 분명히 자취를 남겼다고. 게다가…… 좀 멀어진 곳에 확실히 다시 나타났고 말이야.’
―거기처럼 이곳도 원래 요정의 일족이 머무는 숲이었지.
‘응?’
여우 이야기인가 해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휙 돌아간 이야기 방향에 투란이 어리둥절했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성급히 떠든 소리는 아예 신경 쓸 일 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정령의 나무, 오우거, 요정의 일족. 그런 것이 함께 모인 숲에는 요정의 길이라고 하는 이차원(異次元)의 통로가 열려 있을 때가 있어. 정령의 가호를 받은 존재만이 그 안을 거닐 수 있고, 요정의 비술을 아는 이만이 들락거릴 수 있는…… 우리가 아는 마법과는 다른 형태, 성질로 이뤄진 이상한 영역이다.
‘오우거가 무쇠주먹을 휘둘러대면서 그 길로 다닌다고?’
―가디언으로서 오우거는 그 안에 머물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길 자유롭게 들락거리지는 못해.
‘뭔 소리야?’
―가디언인 오우거가 잠들 때, 요정의 길이 열리면서 정원처럼 오우거를 감싸준다. 그때 오우거는 그 안에 머물고, 잠깐 깨어서 거닐 수 있단 말이다. 저렇게 주먹질을 하기 위해서 자기 멋대로 들락거리지는 못한다고. 그건 정령의 가호를 획득한 요정의 일족, 그 녀석들이 비술로만 가능해.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을 투란은 잠시 되새겨보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에서 투란은 갸웃했고…….
‘그럼, 요정의 일족이 남아서 저 오우거를 그 안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주먹질하게 돕는다?’
―여기 요정의 일족이 남아 있다면 홀시딘이 아니더라도 이미 인간과 충돌했을 거야. 숲에 들어와 설쳐댄다는 트롤도 그냥 둘 리가 없었을걸.
‘결국 오우거가 요정의 길을 써먹는 것 같지만 무슨 상황인지 모른다는 거잖아?’
투란은 자신이 애써 짜낸 추측이 빗나갔다는 소리에 툴툴대고 말았다.
드라고니아가 한숨 쉬듯이 투란의 불만에 동참하듯이 말한다.
―아까부터 모른다고 했잖아. 저 오우거가 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흐흠, 그런데…… 저거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주먹질하고 갔지? 그것도 딱 한 번만 내리찍고 바로 갔잖아? 왜 그랬을까? 왜……?’
투란은 당장 알 수 없는 부분을 한편으로 치우고 새로운 의문을 품으며 갸웃했다.
사납고 거친 놈이 갑자기 튀어나와 포악하게 인사하고 간 것도 아닐 텐데…….
―아, 투란! 정령! 정령의 움직임을 봐라!
‘응? 정령?’
투란은 곧바로 ‘윌 라이트’에 집중했고 자신의 스피릿 아티팩트와 감각을 연계시켰다.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정령의 움직임이 투란에게 포착되었다.
땅에서, 풀잎에서, 나무에서, 바람에서…… 숲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묘한 힘이 조금 전 주먹질에 팬 흔적에 모여들었고, 그 주변을 더듬으며 보듬듯이 흐르며 스며들고 있었다.
‘저거……?’
―맞아. 역병 들린 힘이 닿았던 부분들이지.
‘그렇다는 건……!’
―저 무쇠뿔 오우거가 숲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나타났고, 그 위협이 사라진 순간에 떠났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역병 들린 웨어울프면, 아니 역병의 숲에서 얻은 녀석들을 이용하면 바로 불러낼 수 있다는 뜻!’
―그럴 리가 있냐! 네가 아무리 제어한다 하더라도 숲의 본질이자 근원인 정령의 나무에 위협이 된다는 뜻이잖아! 쓰지 말라고! 아무리 제어한다 해도, 숲에 깃든 정령이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쓰지 않는 게 좋단 말이다!
‘흐흠…….’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으르렁대는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는 시늉을 하며 가볍게 한 손가락을 치켜올리면서 입으로 한마디를 토해냈다.
“파이로.”
사람만 한 불기둥이 솟구쳤고, 오우거의 모습이 튀어나왔던 나무를 그대로 품으면서 삽시간에 재로 만들어 흩어버렸다.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슬그머니 팔다리에 힘을 주고 긴장한 채로 기다렸지만, 재가 흩어지고 나서 불의 스피릿 아티팩트인 파이로가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것처럼 두 팔을 뻗으며 울끈불끈하며 덩치를 더 키울까 하는 듯는 몰골을 보일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꺼져줘.”
사람의 상체, 근육질 넘치는 불꽃의 형상을 향해 투란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파이로가 사라졌고, 그 빈자리에 상쾌한 바람이 몰려들면서 쏟아져 내리는 재를 사방으로 흩어버렸다.
―불장난 정도로는 전혀 불러낼 수가 없구만.
‘숲을 지키기는 하는데, 나무 한 그루 정도로는 꿈쩍도 않는 놈인가.’
―나무의 번식에 도움이 되는 불길도 있으니까.
‘한번 더 불러내 보고, 못 잡으면 홀시딘이랑 의논해봐야겠네.’
―뭐? 야, 하지 말라고!
드라고니아의 말을 못들은 척, 투란은 숨을 세게 들이쉬었고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두 손바닥에 찰랑이는 새카만 잉크 방울이 맺혔고, 길게 쏘아져 나가며 비스듬히 앞쪽 두 곳에 좌우로 나눠 떨궈져서 주먹만 한 웅덩이에 고인 듯한 꼴이 되었다.
투란의 두 손과 이어진 잉크 가닥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가늘고 긴 검은 선이 되었다. 투란은 두 손을 허리 쪽에 쓱쓱 문질렀고, 잉크의 검고 가는 선이 두 다리에 얹히며 숲의 바닥을 기며 저편과 확실히 이어졌다.
작게 괸 잉크의 웅덩이에서 뭉클거리는 불꽃, 휘날리는 재와 같은 기묘한 덩어리가 툭툭 피어난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주변의 수풀로 검게 번지며, 노랗게 시든 흔적을 남기며 역병이 주변을 더듬고 번져나가는 광경을 피워낸 것 또한 그 순간이었다.
그 꼴을 보면서 투란은 왼손을 들어 올렸고, 왼손은 붉은 털과 날카로운 손톱이 시원하게 돋아나며 형태가 변해갔다. 투란의 왼팔이 붉은 늑대, 그림 울프의 형상을 완연히 드러냈을 때, 잉크 웅덩이를 향해 시원하게 주먹질이 내리꽂히고…….
―왔다!
잠시 잔소리를 치워둔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뇌리를 울릴 때, 투란은 자세를 낮추고 발목에 카프리곤의 형상을 살짝 덧씌우면서 오른손으로 땅을 짚으며 앞을 노려봤다. 투란이 짚은 오른손은 검은 가죽이 속살을 드러내며 일렁이는 역병 들린 웨어울프의 형상이 되었고…….
워어어!
성난 외침이었다.
잉크 웅덩이를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내리찍은 두 주먹, 팔뚝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휘익 옮겨지면서 한자리로 모였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오우거가 두 가닥 뿔을 과시하는 윗몸을 드러냈다. 드러난 윗몸 아래로 곧장 오우거의 발이 튀어나왔고, 투란이 오른손을 통해 새로 맺어둔 역병의 웅덩이를 내리밟았다.
콰앙! 파앙!
무쇠뿔 오우거의 발은 손과 마찬가지로 검은 바탕에 초록빛이 맴돌며 넝쿨 끈이 감긴 채였고, 단숨에 웅덩이를 짓이길 수 있을 만큼 컸다. 짧은 순간에 어림잡아도 오우거는 뿔 길이를 빼놓더라도 3미터를 훌쩍 넘는 키였고, 그 몸을 향해 튀어나가는 투란의 웅크린 체격은 너무 작아 보였다. 덕분에 투란의 왼손에 돋아난 손톱은 흡사 다섯 자루의 단도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키이익, 솨아앗!
단숨에 오우거의 주먹을, 팔뚝을, 어깨와 가슴을 한 번의 궤적으로 긁어낸 손톱은 단단하게 얽힌 껍질과는 쇳소리를 가죽과는 둔탁한 마찰음을 남겼다. 하지만 그 주먹을 감싼 건틀릿 형태에는 넝쿨끈이 몇 가닥 끊어진 자취를, 팔뚝과 어깨 가슴으로 이어지는 오우거의 살갗, 두꺼운 가죽에는 그저 움푹 팬 듯이 긁힌 자국만 남겼을 뿐이었다.
그 자국을 남긴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듯, 가까이 뛰어든 투란에 대한 답례라는 듯 오우거의 다른 한쪽 주먹이 투란의 배를 때렸고…… 투란은 목 아래에서 배꼽 아래까지 단숨에 오우거의 크고 단단한 주먹에 덧씌운 듯이 맞는 꼴이 되어 튕기고 말았다.
퍼어억!
―역병! 역병 회수해! 해산시키라고! 감염되지 않게 해!
처맞고 날아가는 와중에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울리고 있었다.
‘이 썩을…… 걱정해줘서 참 고마워!’
나오는 욕을 참고 비꼬는 말로 대꾸하면서도 투란은 포악하게 터지려하는 역병의 형상을 제어해서, 웨어울프와 함께 해체시키고 있었다. 동시에 왼팔의 붉은 털과 형체가 투란의 가슴으로, 어깨와 목줄기로 번져가는데…… 허리와 몸을 휘감은 검은 색채가 투란의 몸에서 길게 흘러나오며 저편으로 이어진 잉크 자국을 남기고도 있었다.
촤악, 찰싹.
부딪히는 나무 사이로 끈적끈적한 액체가 세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맞고 날아가는 통에 몸을 한 바퀴 뒤집는 꼴이 되어 투란은 바닥에 떨어졌고, 하반신을 새카만 웅덩이에 담근 듯한 모습이 되었다. 드러난 상반신은 붉은 털이 왼편을 장악한 기묘한 모습인 채로!
“나왔으니 어디 제대로 한판 붙어보……?”
웅덩이가 찰랑이고 부풀어 오르는 듯한 꼴로 투란의 하반신이 다시 뭉쳐 굳건한 형태가 되어 갔고, 성난 외침은 오우거를 향해 거침없이 토해지다가 멈췄다. 잠시 자신이 날려온 방향을 바라보다가 투란이 맹한 소리를 냈다.
“어디 갔어?”
―딱 한 걸음, 뒤로 빠지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드라고니아가 침착하게 무쇠뿔 오우거가 투란을 한 대 치고 어떻게 사라졌는가를 묘사해줬다.
화륵, 길게 이어진 검은 잉크 속에서 붉은 줄기가 치솟았고 잉크는 여전히 새카맣지만 아주 단단한 결정질로 변했다. 서서히 뜨거운 용암의 가닥이 맴돌려 하는 듯한 광경이었는데, 투란의 성난 목소리는 빠르고 사납게 울려나온다.
“이게…… 저 혼자 때리고 튀었다고!”
―투란, 너 지금 손톱이 빠질 지경이다…… 정신 차려.
드라고니아가 조금 더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
“크아아앙!”
짐승 같은 투란의 목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