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43)
단도처럼 길게 돋아난 손톱이 살갗에서 덜렁거렸다. 겨우 살가죽에 매달린 듯이 덜렁거리는 손톱 아래로 핏방울이 뭉클거리면서, 간신히 피를 뿜어내지 않는 꼴을 보이고 있었다.
‘바위도 할퀴면 갈라지는데…….’
투란은 그림울프의 손톱을 보면서 어이없어 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손가락이 화끈했고, 드라고니아의 말 그대로 신나게 긁어댄 자신의 손톱이 빠질 지경으로 덜렁대고 있는 꼴이라니! 여태 이 손톱을 끌어낼 때면 바위든 뭐든 자신만만하게 할퀴었다. 하지만 손톱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잖던가? 아주 특별했던 몇 가지만 빼면…….
도망친 오우거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도, 휘황하다 할 정도로 카프리곤의 뿔보다 더 굵고 크게 길게 높이 자란 뿔을 지닌 주제에 싸울 낌새는 전혀 없이 혼자 때리고 튄 부분에 대한 분노가 살살 다시 끓어오르는데…….
―달빛 아래서 말이지.
툭하니 드라고니아가 다시 한마디 뱉어주고 있었다.
‘어?’
―햇빛이 가려진 그늘이라고 해서 달빛이 번쩍대는 밤은 아니란 말이다.
‘에…… 쳇.’
투란은 겨우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그림울프, 투란 자신이 붉은늑대로 부르던 녀석의 힘은 달빛 아래에서 최고로…… 최강의 형태로 드러낼 수 있다. 지금처럼 햇살 가득한 대낮에 숲의 그늘에서 그 빛살의 파편을 뒤집어쓸 때는 아주 약해지는 것이 바로 늑대의 힘! 몬스터 엠블럼으로 끌어낸 형상임에도 달빛이 끼치는 영향에서는 완전히 벗어날 수가 없는 경우잖은가.
―하지만 만월 때의 힘이라도, 저 오우거의 가죽이 그냥 쉽게 갈라져 줄 것 같지는 않군. 무쇠뿔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놈의 몸에 맺힌 무쇠 같은 껍질이 뿔로 번져 감싼 채일 뿐이다. 손발, 허리와 급소인 부분을 적당히 감싸둔 모양은 원래 요정의 일족이 생각해 부여한 것일 테지만…… 그게 덮지 않은 부분도 보통 질긴 가죽은 아니었고 말이지.
‘과연, 시련이란 말이지.’
투란은 산맥 안에서 벗어난 지금, 산맥 안에서 얻어온 붉은 늑대―그림 울프의 발톱을 버텨 내는 무쇠뿔 오우거의 살갗에 새삼 감탄했다. 약해진 채라 해도 분명히 돌을 쪼갤 정도는 되는 늑대의 손톱이었는데!
―오우거는 괴력(怪力)으로 손꼽히는 몬스터야. 그 괴력을 버틸 수 있는 몸뚱이를 지녔다는 점에서, 출신이 춤추는 산맥 깊은 곳인가 아닌가를 따질 까닭이 없을 정도로 강하다. 그랑츄가 버텨내는 곳에서 오우거가 버텨내지 못할 리가 없잖아. 얕보지 마라.
‘흠, 그것도 그러네…… 그렇다면 이 녀석이 지금 어디 있나 한번 볼까!’
―응?
숨을 고르면서 투란은 흩어져 있던 몬스터의 형상을 집결시켜서 다시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곧바로 가슴과 어깨, 등으로는 검게 그어진 선들이 이어진 문신이 드러났다.
‘좋아, 문신 위장도 제대로 되고…….’
‘천칭’과 황금매의 문장을 오가는 자신의 상황을 고려해서 어느 때라도 문장의 형태를 감출 수 있는 문신이었다. 윌 라이트를 기반으로 하는 마력도 적당히 부여된 채로 웬만한 마법사라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문신 속에 감춰진 몬스터 엠블럼을 느낄 수 없도록 처리한 위장을 다시 확인하면서 투란은 나무 위로 뛰어올랐고…….
―본다는 거는, 무슨 소리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자신만만한 한마디를 캐물었다.
마치 오우거의 행방을 이제는 단번에 찾아내서 볼 수 있다는 듯한 투란의 기분을 느낀 때문이었다.
‘음? 헤헹, 내가 일방적으로 한 대 맞기만 한 줄 알았어? 늑대 손톱으로 그어대면서 오우거 몸을 파헤치려고만 한 줄 알았나 보네?’
한껏 으스대는 마음가짐으로 대꾸한 다음, 투란은 자신의 오른손을 가슴에 모으면서 정신을 집중한 채로 입술 안쪽에서 낮고 빠른 한마디를 울렸다. 입술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소리였지만 드라고니아에게는 아주 선명하게 들리는 주문이었다.
“프로브!”
윌 라이트의 마력은 투란의 오른손에서 살짝 맥동했고, 동시에 저 먼 곳에서 세찬 맥동을 일으켰다. 곧바로 투란이 눈을 부릅떴고, 지금 자기 앞의 풍경이 아닌 전혀 다른 곳, 숲의 나무 사이에 선 오우거의 몸 근처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어……?
드라고니아가 느닷없이 프로브의 마법에 의해 투란이 전혀 다른 곳을 감지해낸 것을 알아차리며 놀란 소리를 아끼지 않고 내줬다.
―워어어!!
“으아으악?”
오감을 자극하는 맹렬한 울림과 함께 투란은 나무에서 기우뚱 흔들렸고, 재빨리 왼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지 않았으면 그대로 떨어질 뻔했다.
―어!
드라고니아는 이번에도 갑자기 강렬한 파동을 전해 투란의 오감을 뒤흔들면서 사라진 프로브에 확실히 놀란 소리를 터뜨렸다. 한 손으로 나무를 잡아 대롱거리다가 주르르 미끄러지면서 땅에 내려앉으면서 투란이 후욱 하는 숨소리와 함께 중얼거린다.
“이게…… 대체 뭐야?”
무쇠뿔 오우거의 몸에 ‘파라블랙․잉크’를 뿌려뒀었다.
가늘고 길게, 늑대의 손톱 끝에서 흘려내서 가능한 골고루 묻혀놓았다.
그리고 방금 전, 멀리 떨어진 몬스터의 파편,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 형성된 조각에 의지를 불어넣으며 윌 라이트의 마법을 기반으로 한 프로브를 형성시켰다. 덕분에 단숨에 무쇠뿔 오우거의 주변 상황을 오감을 통해 엿보고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순간 오우거의 입이 활짝 열리면서 우렁찬 외침이 터졌고…… 프로브가 이를 전하자마자 소멸해버렸다! 덩달아 몬스터 엠블럼의 마력,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조차 강렬한 충격과 함께 날아가 버린 듯 이제는 ‘파라블랙․잉크’의 지각(知覺)마저 사라진 채라니!
―투란, 포스 로어(Force Roar)였다. 그것도 네이처 포스를 이용한…… 자연적으로 마력을 마모시켜서 소멸시킨 셈이야.
‘로어?’
투란은 끙끙거리며 머리를 감싼 채로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는 건데, 거기서 뭔 포스란 말인가!
그것도 마력을, 마법을 자연스럽게 날려보내는 거라니!
―그래, 짐승의 포효…… 맹수의 울부짖음이 사냥감에게 영향을 끼치는 거는 잘 알고 있지? 몬스터 중에서는 포효로 보다 지독한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잖아. 오우거는 그런 맹수의 성향을 지녔다. 숲의 침입자를 향해 거칠고 사납게 대응하기 위해서 그런 성향을 의도적으로 심어놓는다고 할 수 있겠지. 아무튼, 정령의 힘을 실은 오우거의 포효는 마법을 어느 정도 흐트러뜨리고 방해한다. 방금 네가 들은 소리는 그런 성향을 보다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 정령의 힘과 불가분의 관계인 자연력을 고스란히 발휘한 포효…… 포스 로어라는 거였고 그런 성질인 탓에 네 마법, 몬스터의 파편까지 싹 다 날려준 거지.
‘오우거 주제에 그런 편리한 재주를? 아, 잠깐! 그럼, 헌터 길드에서 당했던 정령의 가호가 방금 전의 그거?’
―그건 굳이 포효할 필요가 없이 마법에 저절로 반응하는 걸 거야. 조금 전에는 오우거가 의도적으로 너의 마법에 반발한 거고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방금 전 프로브, 아주 훌륭했다. 몬스터 로드로서 몬스터의 파편을 이용하면서 거기에 윌 라이트를 원격으로 걸고, 그 속에서 다시 프로브라니! 꽤 발전했잖아. 대단했어!
‘대단한데 단숨에 박살 난 거잖아. 아, 뭐 이래!’
어느덧 쪼그리고 앉은 꼴이 되어서 투란은 대놓고 실망하면서 낙담했다.
프로브가 발생한 위치는 꽤 멀었고, 유지된 채라면 몰라도 이렇게 단숨에 마법이 날아간 다음에는 오우거가 어디 쯤에 있는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실패인 셈이었다. 오우거의 능력을, 그 응용하는 재주를 얕본 탓에!
―응? 오우거의 위치를 찾으려 한 거잖아? 성공했는데 뭘 실망하는 거냐?
‘뭐? 성공? 아니, 방금 프로브가…….’
―호오? 형성된 프로브가 파괴당했으니까, 그걸로 더 이상 아무 역할도 못한다고 여긴 거냐?
‘몰튼노트랑 싸울 때도 신나게 파괴당했고, 그걸로 끝이었잖습니까?’
미묘하게 비꼬는 말투로 투란이 되물었다.
―그건 바로 앞에 있는 놈이 너무 컸고, 새로 프로브를 자아낼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고…… 딱히 프로브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잖아? 하지만 이번에는 드라코눔 프로브가 어떤 수준인가, 제대로 보여주마.
투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훌렁 날아가버린, 흔적도 남기지 못한 프로브일 텐데 대체 뭘 하겠다고 이리 자신만만한 소리를 한단 말인가? 정작 마법을 걸었던 투란 자신도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하는 판인데!
―적당히 몬스터 로드의 힘을 나눠서 윌 라이트에 실어봐. 그리고 옆으로 몇 미터 정도 사이를 두고…….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일단 따르기로 했다.
두 조각의 힘을 담은 잉크 방울을 형성시키고 앞을 향해 비스듬히, 양쪽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놓아 자신이 선 자리와 세모꼴을 만들고 다시 프로브의 마법을 펼치니…….
―탐색(探索)의 포효(咆哮).
거기에 드라고니아가 조금 색다른 ‘의지’를 담고 있었다.
마법이라기보다는 마법으로 이뤄진 프로브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했다. 그 다음은 프로브가 알아서 해줄 거라고 여기는 듯!
‘어라?’
곧이어 투란은 자신의 몸으로 전해오는 프로브의 미묘한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마리 벌레처럼, 프로브 둘이 떨었고 투란의 몸에 공명(共鳴)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멀리 울려 퍼진다!
―5킬로미터 체크. 탐색의 포효.
‘응?’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몇 마디에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프로브가 일으킨 파동이 주변 5킬로미터를 확실히 쓰다듬듯이 스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것도 감지해내지 못했고, 뭔가를 보거나 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드라고니아는 다시 한번 같은 ‘의지’를 일으키며 명령했고.
―10킬로미터 체크. 조금 넓게 가볼까, 탐색의 포효!
10킬로미터를 스쳐 갔던 프로브의 파동이 보다 넓게 번지며 그 이상의 지름을 지닌 원 안을 꽉 채우듯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감지되는 것은 역시나 없었고, 드라고니아의 명령은 반복되었다.
‘야, 이거 언제까지…….’
짧게 반복되지만 조금 답답해진 투란이 막 묻는 말을 던지려 할 때였다.
―반응 있다!
치잉.
짧게 쇠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투란은 움찔했고, 프로브 둘은 그 소리에 반응하듯 이제까지와는 다른 조금 기묘한 파동을 일으켰다. 뭔가 미묘하게 무게가 실린 듯한 파동이었고, 이는 곧바로 투란의 감각에 영향을 끼쳤다.
‘어? 보여! 에? 이거 부서졌던?’
―그래, 드라코눔의 프로브는 재생성이 된다. 외부의 힘을 받아 깨지게 되면, 자신이 부서진 자리에 마킹을 하지. 그 마크는 다른 프로브가 둘 이상 자극해주면 다시 프로브의 형태를 되찾는다. 마력 공급도 필요하지만 말이야.
‘없잖아? 오우거!’
한창 신나서 설명하는 드라고니아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투란은 재생성된 프로브의 주변에 오우거가 없다는 상황에 실망한 기분부터 내질렀다. 조금 민망해진 듯하면서도 살짝 삐진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이야기를 잇는다.
―마킹이 오우거 몸에 되질 않았군. 포스 로어가 단순히 마력만 분쇄하지 않고 실제로 묻어 있던 몬스터의 파편을 밀어낸 모양이다. 하지만 이걸로 녀석이 바쁘게 어딜 갔는가 추적할 수 있게 되었잖아!
‘어, 근데…… 지금 나랑 저쪽 프로브랑 거리가…….’
―응? 그야…… 으음…… 120킬로미터 정도 되는군.
‘120미터요?’
―킬로미터.
‘이 썩을……!’
투란은 새롭게, 소리 없이 실망하고 바로 절규했다.
“끄아아아! 이 자식! 어디로 튀었냐고! 이리 나와! 나도 한 대 패자!”
단숨에 지름 160킬로미터라는 숲을 가로질러, 120킬로미터 저편에 가버릴 정도라면 이 숲 속에서 저 무쇠뿔 오우거를 쫓아다닐 수는 없었다. 투란이 지금 지닌 가장 빠른 수단, 드레이크의 날개를 펼친다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지금 어디 있는가를 알아낸다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짓이잖은가.
바람조차 저 거리를 단숨에 따라잡지는 못할 테고, 번개가 돼야 할 테니!
‘역병! 역병으로 다시 불러내겠어! 이 오우거, 역병을 잔뜩 퍼뜨려놓으면……!’
―정신 차려!
차가운 감각이 투란의 뒷골에 바로 꽂혔다.
“으앗, 차, 차가!”
뒷덜미를 손으로 더듬어보니 바늘처럼 꽂혔던 서리 조각이 손에 시원한 느낌을 남긴 채로 사라지고 있었다.
―너, 아까도 아슬아슬했거든! 새로운 힘을 얻어 어떻게 다룰 방법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아직은 오우거와 싸움에서 완전히 억제하질 못하잖아! 대체 왜 무모한 짓을 하려고 해? 여기다 역병 뿌려놓고 그거 수습하느라고 한 오십 년 처박혀 있고 싶냐? 그런 거라면, 나도 말리지 않겠다만!
‘에, 오십 년?’
잠시, 아주 짧게 투란은 고민하다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마스터 홀시딘을 보러 가야겠다. 찾아내고, 어떻게 하려고 한 건지 물어봐야겠어.”
―좋은 생각이군. 상아탑의 마도사는 이미 저 녀석의 이동방식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겠지. 그러니까 사흘 정도 걸리는 마법을 쓴다는 걸 테고, 뭔가 오우거의 이동을 막을 수단도 고안해 내놓았을 거야.
얼르고 달래는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들으면서 투란은 하이딩 피트를 향해 움직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