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4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44)
“무슨 일이 있었나?”
홀시딘은 신중하게 말을 골라 묻고 있었다.
뭔가 다른 곳에 집중하느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고요한 하이딩 피트의 안쪽은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듯한 빛의 조각을 품은 것처럼 맑고 밝았고, 그 속에 지팡이를 쥐고 부양(浮揚)한 모습인 탓인가 마법사의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자연스럽고 담담해 보였다.
덕분에 투란으로서는 묻는 말이 나왔을 때 한번 더 봐야 했고, 그 말투의 진지함을 깊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잠깐 홀시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의아해 하며 무슨 말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고민하는데…….
―느낀 모양이군. 네가 저지른 위험한 짓을 어느 정도 눈치챈 모양이다. 어쩌면 오우거를 찾으려 하던 마법이 불완전한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로열 가든의 징표가 어떻게 작용했든가…… 투란, 홀시딘에게 전부 감추기보다는 어느 정도 말해두는 게 좋겠어.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소리 없이 투란의 뇌리에 말을 퍼붓고 있었다.
듣다 보니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이 궁지에 몰린 기분이 저절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숨과 함께 투란은 털썩, 홀시딘 앞쪽에 놓인 쿠션 침구에 주저앉았다.
“조금 위험한 짓을 했는데 말이죠…… 음, 일단 한번 보는 게 얘기가 빠르겠네요.”
홀시딘은 이 말에 조용히 기다렸고, 투란은 가만히 들어올린 오른손에 역병 들린 웨어울프의 형상을 드러냈다.
이글거리며 속살이 벌겋게 드러났다 감춰졌다 하는 기괴한 형상…….
홀시딘은 말없이 이를 바라보다가 투란과 눈을 마주했다.
투란은 홀시딘이 여전히 입을 다문 채로 기다린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고 말을 해야 했다.
“역병의 숲을…… 그 수해라고 불리는 곳을 넘어올 때 얻은 거예요. 뭐, 함부로 다루기 곤란해서 없애버릴까도 고민해봤었는데 한 가지 굉장히 쓸모 있는 능력이 있어서 간직하고 있었어요. 다행스럽게도…… 음, 몰튼노트의 성질을 섞게 되면 그럭저럭 쓸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조금 써봤는데…… 에, 그 쓸모 있는 능력이 주변을 살펴보는 거였거든요. 그러려면 일단 땅속에 조금 역병의 힘을 흘려넣고, 살짝 오염시켜놔야 하기는 하는데…… 억제할 수 있는 정도만 했으니까 숲에 역병의 흔적이 남거나 역병이 옮겨가는 일은 없어요. 암튼 3, 4미터 정도를 퍼뜨려 놓으면…… 한 4, 5킬로미터까지 곧바로 살펴볼 수가 있거든요. 근데 이걸 심었다 싶은 순간에 그 오우거가 튀어나와서 냅다 후려갈기더라고요. 너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이거 번지지 않게 하느라고 제대로 붙들지를 못했는데, 이거 치우니까 갑자기 휭하니 사라져 버리잖아요! 그 망할 오우거, 때리고 튀다니……!”
“갑자기? 전혀 흔적도 없이?”
홀시딘이 불쑥 짚듯이 물었다.
투란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맞고 일어나서 보니, 그게 아주 가느다란 나무 뒤에 숨어있던 것처럼 나왔더라고요. 그 덩치에는 절대로 숨을 수 없는 가느다란 나무였는데 말이죠.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녀석…… 몇 킬로미터 안에 없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거였어요. 홀시딘, 그놈 몇 킬로미터씩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놈이라면…… 그렇게 도망칠 놈을 찾아서 어떻게 붙들고 때려잡을 건지, 방법은 있는 건가요?”
홀시딘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틈타듯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린다.
―그럴듯하군. 거짓말이 늘고 있어. 그 정도면 그 자리에 있었던 마법사라도 잘못된 설명은 없구나 싶겠다.
‘시꺼!’
조금 세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한숨을 홀시딘을 향해 뿜어내면서 투란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는 시늉을 했다. 이제 홀시딘이 뭔가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눈빛을…… 열심히 번뜩대는 표정으로!
“나무라, 역시 정령의 나무가 변질된 상태인가.”
홀시딘이 고요하게, 소리가 거의 들릴락 말락 중얼거렸다.
귀를 쫑긋하면서 투란이 바로 묻는다.
“변질이요?”
“마마 트롤이 정령의 나무를 섭취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지? 어디 다른 누구에게 들어본 적 있나?”
“동화……? 마스터 홀시딘이 뭔가 들러붙어 스며드는 것처럼 말했었잖아요? 따로 들은 적은 없고요.”
“그래, 동화. 하나가 된다, 섞인다는 말 그대로야. 마마 트롤은 나무의 의지를 꺾고, 나무가 본래 지닌 성질을 휘어서 양분을 자신이 모조리 가로채지. 나무가 말라버리는 까닭은 그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마마 트롤의 포식 대상은 아니야. 정령의 나무에 깃든 자연력, 정령의 응축된 힘을 변이시켜서 자신의 육체를 복제해내는 것, 그게 바로 마마 트롤이 새끼를 낳는다는 현상이지. 정확하게는 재생산 능력이 없으면서 전투적인 능력이 강화된 새로운 트롤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고. 그런데 무쇠뿔 오우거가 그 과정에 끼어들어서 마마 트롤에게 중상을 입혔고, 정령의 나무에는 이전과 다른 수준의 영양을 줘버린 거야. 그 과정에서 마마 트롤과 정령의 나무가 보다 더 깊이 밀착된 것이고…… 둘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공존하는 괴상한 꼴이 되었다…… 이게 지난 십여 년간 내가…… 나와 케이라가 내린 결론적인 가설이야.”
“가설?”
“확신은 없다는 말이야. 반복적인 관찰을 통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레이우드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 된다는 말이지. 이 가설이 맞다면, 무쇠뿔 오우거가 여전히 정령의 가호를 지닌 것도 말이 되거든. 즉, 가호를 부여하는 나무가 이미 괴물의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무쇠뿔 오우거가 괴물이 되었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양분의 공급자라는 점이고 지켜준다, 왜곡된 채라도 정령의 힘은 여전히 사용될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건, 꼭 무쇠뿔 오우거가 나무를 따라서 몬스터가 된 거란 소리 같잖아요?”
“그래. 그리고 이 가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홀시딘은 잠시 말을 멈췄다.
조금 말하기 곤란한 듯, 혹은 말하면 되돌릴 수 없는 진짜가 될까 봐 저항하는 듯한 낌새를 보이면서!
하지만 투란의 뇌리에서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이 소리 없이 울리고 있었다.
―이 숲도 역병의 수해처럼, 숲이 몬스터가 된 경우라고 말하는 거로군. 단지 한 마리의 오우거만을 몬스터로 지닌 채로.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한다는 건…….
후웃, 홀시딘이 숨을 몰아 내쉬면서 나름대로 담담한 말투를 유지한 채로 이야기를 이었고 투란이 집중해서 들으니…….
“마마 트롤, 정령의 나무가 하나 된 몬스터. 거대한 숲의 형태를 지닌 몬스터랑 싸운다는 얘기가 되지. 무쇠뿔 오우거는 그런 몬스터를 지키는 몬스터인 거고.”
―마마 트롤이 정령의 나무랑 엮인 곳을 안다는 말이야. 무쇠뿔 오우거는 거길 중심으로 삼아 활동하는 중일 테고.
벅벅, 투란은 머리부터 긁적거렸다.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홀시딘의 목소리, 드라고니아의 말을 짧게 되새긴 뒤, 투란이 말한다.
“그럼, 어찌되었든 트롤과 나무가 있는 곳이 숲의 핵심이란 얘기네요? 어쩌면 약점일지도 모르고…….”
“보고 싶어?”
“당연하잖아요!”
“흠, 그러면…….”
홀시딘이 머리를 흔들며 턱으로 뭔가 그려내는 시늉을 했다.
곧바로 투란 앞에 작은 빛의 화살이 나타났다.
“어, 이건?”
“그래, 길잡이. 10여 년 전에…… 아직 숲의 지름이 40킬로미터 안팎이었을 때 헌터 길드 녀석들이 실패를 거듭할 때 마킹을 해뒀지. 그 마크를 이용해서 계속 관찰해왔던 거야. 따라가봐, 너라면 직접 보고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다녀오죠!”
투란은 대략 1미터 앞에서 동동 뜬 채로 한쪽을 가리키며 날아갈 듯한 빛의 화살을 보며 힘차게 답하고 얼른 일어섰다. 홀시딘이 그 모습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나가는 듯한 소리로, 아주 빠르게 덧붙여 말한다.
“아, 그리고…… 황금매의 문장을 지닌 경우가 이미 생사불문(生死不問)의 일급 포획대상이라 별 의미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역병을 지닌 몬스터든 몬스터 로드든 생사불문의 긴급(緊急) 격멸(擊滅) 대상이거든. 상아탑에서든, 헌터 길드에서든…… 뭐, 근본적으로 몬스터 로드가 다룰 수 없는 예외적인 존재로 인정한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투란. 혹시라도 시크릿 키퍼인 나 말고 다른 누군가에게 그 역병 들린 모습을 들킨다면…… 그 순간부터 바로 최상급 상금이 걸린 사냥감이 되는 거야. 뭐, 그냥 알아두고 조심하라고.”
“예.”
하이딩 피트의 문, 뚜껑을 열고 나가기 직전에 바싹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서 끝까지 들은 다음에야 투란은 짧게 답했다. 매우 매서운 꼴을 상상해서 바로 무서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는 듯!
덜컹, 털썩.
홀시딘은 투란이 사라지고 뚜껑문이 닫히는 광경을 보고 나서야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두텁고 둥근 시계로 살짝 이마를 긁듯이 문지르는 사이, 홀시딘의 입에서 한숨과 어울리는 중얼거림이 새어 나온다.
“캘러미티의 한 방이 아니더라도 디재스터의 지속적인 말썽꾸러기인가…… 이쯤 되면 프린스 오브 디재스터(Prince of Disaster)라는 별명을 그냥 뺏을 지경인데…… 음, 뭐 그쪽과 다르게 이쪽은 완벽하게…… 내가 감춰야 하나! 아, 이게 뭐야……. 좋은 일에도 나쁜 점은 있다 이건가. 뭐, 어떻게 되겠지.”
잠깐 움찔하다가 홀시딘은 지팡이에 마력과 정신을 집중시키면서 입을 다물었다.
투란의 신변문제는 나중으로, 얼마든지 미룰 수 있는 일이란 듯!
그리고 투란은…….
“에잇! 긴급 격멸이 뭐야, 긴급은 왜 붙냐고!”
―역병을 빨리 처리하는 게 좋으니 그런 거 아닌가?
‘그런 뜻이 아니라고! 사실 확인 필요 없으니까 일단 쳐 죽여도 된다는 소리야! 헌터 길드와 상아탑이 거는 일감 중에 제일 너저분한 걸로 꼽히는 거라고! 의심 가면 일단 때려잡고 보라는 말이거든. 진짜인가 가짜인가 따지다가 일 커지기 전에 말이야.’
―엉뚱한 피해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소리냐? 그게 무슨 멍청한 짓거리야!
‘잘못 죽인 거면 미안하다고 하고 깊이 반성하면 끝이란 얘기지. 진짜인 경우에는 시간 끌다가 무슨 큰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가짜로 끝나는 게 적은 피해로 더 좋다고, 진짜가 아닌 가짜를 잡는 편이 더 안심할 수 있으니까 의심 가면 때려잡고 나중에 생각해야 할 사냥감이란 말이야. 설마 그렇게까지 여길 줄은 몰랐는데! 괜히 삼켰나!’
―엉뚱한 피해가 나더라도 진짜인가 아닌가 따져보는 것보다 낫다는 소리냐? 대체 어디까지 멍청하길래…… 아니, 너 이제 와서 역병 들린 녀석들 삼킨 걸 후회하냐? 너무 늦잖아! 내 말 듣지 않고 이제 와서 후회라니! 너보다 더 얼빠진 긴급 격멸이란 짓거리에 겨우 후회냐?
‘놀리지 마셔!’
파삿!
앞을 막는 나뭇가지를 꺾어 치우면서 투란은 높이 뛰어올랐다.
한 팔로 나무를 잡아당겨 높이 뛰어도 길잡이인 빛의 화살은 여전히 투란과 1미터 간격인 채로 한쪽을 가리킬 뿐이었다.
휘이잇!
바람결을 몸으로 느끼고, 어느새 발아래 쪽에 넓게 깔린 넓은잎 솔나무가 우거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투란은 멀리 봤다. 그레이우드의 풍경 깊은 곳으로 움직일수록, 회색과 초록빛이 뒤엉긴 숲은 장대한 광경을 더 짙게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 새도 벌레도 없으니까 진짜 이상하네.’
―음…… 포스 로어였겠지.
‘응? 갑자기 뭔 소리야?’
―새와 벌레를 무쇠뿔 오우거가 잡은 방법 말이다. 포스 로어로 나는 놈이든 몰래 기는 놈이든 단숨에 떨구고 자빠뜨려서 쓸어 담았을 거야. 어디에 어떻게 쓸어 담았는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딴 거 생각하지 마!’
투란은 정말 소소한 일에도 오래 생각하는 드라고니아에게 질린 기분을 느끼면서, 숲의 장관(壯觀)을 더 빠르게 가로지르며…… 나무 위를 뛰어 날았다.
그렇게 해서 빛의 화살이 가리킨 곳에 도달하니…….
워, 워어, 웨에엑!
나무에 새겨진 둥글게 윤곽을 잡은 크고 네모난 얼굴이 헛구역질을 했다.
그 입에서 수액(樹液)이 몇 방울 튀어나오기도 했다.
하아, 하아아아.
거친 숨결이라도 토해내는 듯한 시늉을 나무 얼굴이 시도했지만, 여전히 수액 몇 방울이 나무 입술 사이에 솔나무의 진액(津液)처럼 맺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무 얼굴은 목을 길게 빼듯이 아래를 향해 눈길을 주려했고…….
끼익, 길게 누운 듯한 굵고 커다란 나무가 뒤틀리는 소리를 냈다.
위로 솟구치는 대신, 뿌리줄기처럼 누운 나무가 땅을 만나야 할 자리에서 살짝 볼록하니 틈을 만들어 뒀고, 그 틈새 위의 갈라진 나무 속에는 원래 나무라면 있을 리가 없는 짐승의 내장기관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으― 웨에엑!
나무 얼굴이 다시 뭔가를 토해내려는 듯이 힘주는 표정을 지었다.
나무 속의 내장기관, 창자 가닥에 감긴 크고 굵은 열매가 셋…… 창자 가닥을 휘감고 나무 틈새에서 새어 나와 땅에 내려졌다.
열매는 나무껍질이란 외피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으면 완전히 알로 보였고…….
쩌억!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