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47)
열매는 사흘째에 완연히 부풀어 올라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 열매 속에서 부유하며 떠다니는 작은 형체는 열매가 무엇인가의 알이라고 증명하는 듯했다. 열매를 매달고 있는 줄기가 짐승의 내장처럼 늘어진 채로 꾸물거리는 상황과 마찬가지로!
나무 얼굴은 그런 열매를 내려다보면서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이전처럼, 다시 입으로 돌조각을 토해내려는 듯…….
나무 얼굴의 형체는 그 헛구역질에 따라 점차 꼼짝 않는 조각에서 살아 움직이는 조각으로 변해갔고, 어느새 침 몇 방울을 튕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더불어 어깨와 복부, 둔부의 형상도 미묘하게 나무 얼굴 아래로 나타났다. 자세히 봐야 겨우 알 수 있는 꿈틀거림을 드러내는 형상이었지만, 팔다리는 없는 몰골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알―열매가 흔들렸고, 언제라도 떨어질 듯이 보였다.
바람결이 환한 안개를 실어왔고, 주변에 반짝거림을 뿌렸다.
햇살이 반짝이는 안개를 타고 내려오듯이 주변으로 여리게 번져나갔다.
그에 따라 그림자가 그려내는 윤곽이 보다 짙고 검어지는 듯했다.
헛구역질을 하던 나무 얼굴이 힘겹게 갸웃하면서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색다른 풍경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린 안개가 낀 숲이었을 뿐이고, 맑은 날의 햇살이 안개 사이로 흐릿하게 번지면서 이슬을 유난히 더 반짝이게 할 뿐이었다.
나무 얼굴은 다시 자신의 열매―알을 내려다보면서 헛구역질을 했고, 그 반동에 따라 나무 틈새에서 꾸물거리는 내장이 세게 흔들렸다. 열매가 흔들거렸고, 곧 땅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푹, 푸푹.
시뻘겋게 달아오른 꼬챙이 세 가닥이 치솟았다.
반짝이던 이슬방울이 한꺼번에 시커먼 색으로 변했다.
바람결을 따라 흐르던 안개가 검게 물들며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렸다.
나무 얼굴은 갑작스러운 주변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무 얼굴의 모든 관심은 떨어져 내린 열매―알을 관통한 붉은 꼬챙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한없이 뿜어낼 듯한 용암의 창이 열매를 꿴 채로 느릿한 척하면서도 빠르게 치솟으며 기울어고 미끄러져, 알을 나무 얼굴로부터 멀리 떼어내고 있으므로!
웨에!
나무 얼굴이 몇 방울의 침을 튕겨내면서 괴성을 질렀다.
이번에는 헛구역질이 아닌, 순수하게 자신의 알을 빼앗아 가는 창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는 듯한 외침이었다.
그에 호응하듯, 붉었던 세 가닥의 용암 창이 검게 변해갔고 열기가 사라지며 세모꼴을 만들 듯이 멈췄다. 알을 꿴 세 가닥 검은 꼬챙이, 그 기울어진 모양과 박힌 자리가 만들어내는 세모꼴의 중심에 시커먼 이슬방울이 뭉쳐들었고 부풀어 올랐다.
뭉클거리던 이슬방울은 서서히 사람의 형체가 되어갔고, 새카만 손가락을 툭툭 튕겨 알을 쳤다. 껍질은 이미 때가 익은 탓이란 듯, 꼬챙이에 꿰일 때부터 예정된 것이란 듯이 균열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몇 조각씩 떨어져 내리며 그 속을 드러냈다.
뚝뚝, 알 속에서 점액(粘液)이 걸쭉하고 무겁게 떨어져 내렸다.
툭, 작은 트롤의 손, 발이 깨진 껍질 틈새로 삐져나왔다.
세 개의 알에서 튀어나온 작은 손발 중에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세 개의 알이 모두 조금씩 깨어지면서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사하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워어어어― 콰직!
나무 얼굴이 격노한 표정을 지었고, 나무껍질이 으깨져 흩어졌다.
얼굴은 이제 바위 조각이 덮인 듯, 두텁고 거친 바위 투구를 쓴 듯한 머리통이 되어 박혀 있던 나무에서 목을 길게 빼는 꼴을 드러냈다.
마마 트롤이 본래의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몸통의 윤곽이 선명해졌고 나무껍질을 짓이기고 튕겨내는 것처럼 바위로 덮인 살갗이 드러났다. 더불어 어깨와 허벅지, 엉덩이의 모양과 이어진 자리에 팔다리의 윤곽이 또렷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콰악, 촤아아!
무서운 굉음과 함께 마마 트롤이 박혀 있던 나무가 양쪽에서 절단되었다.
뒤이어 시뻘건 벽이 마마 트롤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치솟았다.
벽은 열기를 뿜어냈고, 공중을 덮으며 거대한 반구형(半球形)으로 맺혔다.
퍼석.
알이 미약한 소리와 함께 모든 껍질을 떨궈낸 것도 그 순간이었다.
알 속에서 축 늘어진 채였던 작은 트롤 세 마리는 모두 검은 창에 꿰인 채로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점액을 감은 듯한 꼴을 드러냈고,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몰골을 보였다.
쿠웅.
반구형이 땅과 닿으며 그려낸 원형(圓形)의 지반(地盤)이 몇십 센티가량 치솟았다가 세차게 내리찍히면서 둔탁한 울림을 토해냈다.
화륵.
아직 마마 트롤이 몸을 박아놓고 있는 크고 굵은 통나무 양끝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살아있는 듯한 불길은 나무를 곧바로 숯으로 만들면서 그 속으로 깊이 파고들 듯이 꾸물거렸다. 숯이 된 부분은 곧바로 갈라지며 새로운 불길을 넘실거리면서 뭔가 형체를 만들려는 듯이 움직인다!
웨어어!
마마 트롤이 느닷없이 피어난 불길에 위협을 느낀 듯이 거세게 포효했고, 그 순간 두 팔, 두 다리가 나무의 형체 속에서 튀어나오며 허공을 휘젓고 땅을 디뎠다. 여전히 등과 허리, 몸통이 나무에 붙은 채였지만…… 그 팔다리, 가슴팍에는 두텁고 억센 바위가 살갗을 덮은 모양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순간, 작은 트롤 세 마리 사이에서 낮은 콧노래가 흘렀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검은 사람의 형체가 내는 소리였다.
마마 트롤은 그 소리에 흠칫하며 눈길을 줬고, 세 마리 작은 트롤의 몸으로 번져가는 불그스름한 광채를 봤다. 광채가 사라지면서 세 마리 작은 트롤의 몸이 가늘어지는 듯했고, 살갗이 갈라졌다. 곧 살갗의 틈새로 투명한 잔해가 흘러내리다가 흩어져 사라졌다. 세 마리 작은 트롤은 어느새 뼈와 가죽만이 남아 너덜거리는 듯한 기묘한 모양으로 변했다.
“헤에, 이 정도 잔유물을 남기기도 하는 거야?”
투란은 콧노래를 멈추고 중얼거렸다.
이 중얼거림에 마마 트롤의 괴성이 응답해왔다.
그읏, 웨어어어!
바위 같은 손발이 허공을 휘젓고 땅을 디디며 투란을 짓이기려 하듯 움직였지만, 바로 멈춰졌다.
콰직, 푹.
투란의 발아래에서, 반구형의 지붕과 벽에서 튀어나온 검은 꼬챙이가 마마 트롤의 몸통을 꿰고 있었다. 3미터 이상의 거구였지만, 굵고 긴 꼬챙이 10여 가닥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마마 트롤을 꿰뚫었고 땅에서 밀어 올렸다.
투란은 버둥거리는 마마 트롤을 두 눈동자로 바라보며, 양쪽으로 절단된 나무의 단면을 볼과 귀, 눈가에 돋은 다른 눈동자 여럿으로 지켜봤다.
반구형 벽에 물린 나무의 단면, 바깥 쪽 부분의 단면 중심에는 꽤 작고 붉은 고리가 박힌 채로 맴돌고 있었고 나무의 단면을 쥐어짜내서 조그마한 열매를 만들어내려는 듯이 보였다. 그 사이에 마마 트롤은 자기 몸을 꿰뚫은 검은 꼬챙이를 두 손으로 잡아가며 으르렁거리면서 변하고 있었으니…….
―투란, 저거 마그마 로드의 껍질을 뒤집어쓰려 한다!
드라고니아의 경고가 투란의 뇌리에 울렸다.
두 눈을 할당해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투란이 느릿하니 몸을 일으켜 마마 트롤의 바위 살갗 위로 번져가는 검은 수정의 형질(形質)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제법인데? 어디까지 할 수 있나 해봐.”
―무슨 소리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기묘한 여유에 불안한 듯이 물었다.
투란은 대답하지 않았고, 드라고니아는 더 묻지 않았다.
바로 마마 트롤의 검게 변한 살갗, 검은 크리스털의 광택이 맺힌 자리에서 시커먼 재가 피어올라 맴돌았고, 곧장 불티를 머금다가 터져버리고 있으므로!
웨으어어?
당황한 듯한 마마 트롤의 괴성이 울렸다.
반구형의 지붕과 벽 곳곳에서 시뻘건 눈알이 툭툭 튀어나오듯이 맺혔다.
마치 마그마 로드가 이 신기한 물건은 뭐냐고, 사람과 뿔수리의 시각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봐야겠다고 나서는 듯한 광경이었다.
“쉽지 않지? 그래, 하지만 너 생각보다 대단하다! 미끼로만 잠깐 쓰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잖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투란은 손을 내밀었고, 꼬챙이를 밟으면서 마마 트롤 앞으로 바싹 붙었다. 아직 갈라진 채로 내장을 드러낸 마마 트롤의 몸 안쪽으로 투란의 손이 저미듯이 파고들었다.
“흐흥, 심장이 꽤 센데?”
중얼거리는 투란의 말에 마마 트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바위살갗 아래로 붉은 광채가 번져가고 있었고, 그 광채를 뿌리는 핏빛 그물이 마마 트롤의 전신(全身)이 장악해버린 탓에 꼼짝도 못하는 꼴이었다. 투명한 재가 마마 트롤의 몸에서 피어올랐고, 크고 굵직한 바위조각이 바닥에 떨어지며 마마 트롤은 바람 빠진 가죽 보자기처럼 오그라들었다.
“테라트, 이거랑 저거 물고 있어.”
투란이 낮게 속삭였다.
땅거죽이 움찔거리면서 사람 손 모양으로 치솟았다.
마마 트롤과 세 마리 작은 트롤이 남긴 유해(遺骸)가 흙으로 이뤄진 몇 개의 손에 따로 붙들린 채로 땅 밑으로 가라앉았다.
숨을 고르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자아, 이거 홀시딘에게 전혀 보이지 않았겠지? 모르는 거겠지?’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으로 만들어진 영역이다. 마그마 로드를 들이대고 있기도 했으니, 마법에 의한 탐지는 어림도 없어. 다만 로열 가든의 징표는 어떻게 작용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 일단 당장은 전혀 활동하는 낌새는 없었다만…….
‘뭐, 지금은 그 정도면 되니까. 어쨌든 이것도 몽땅 비밀로 해달라고 해놓고 슬쩍 넘어가보자고.’
―역시 황금매를 이용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천칭을 이용해 단숨에 트롤을 제거한 방법이야 깔끔했지만, 너의 비밀을 지키는 거라면……. 어차피 마그마 로드로 짓이겨놨다고 둘러댈 참이면서 굳이 천칭의 문장을 쓰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잖아?
‘야, 정령의 나무에서 몬스터 에센스를 뽑아내려면 움켜쥐고 동시에 문장의 각인을 새겨야 한다고 투덜거린 거는 너잖아! 황금매의 마력으로 쥐어짜내는 거는 깔끔할 수가 없다며? 순수한 몬스터 엠블럼의 각인이 필요하다며!’
―정령의 나무에 스며든 부분은 많지 않은가보군. 마무리 된 모양이다, 봐라.
‘으씨!’
슬쩍 말 돌리는 드라고니아였지만, 투란은 더 따지기 전에 벽에 물린 나무의 단면, 양쪽 단면에 맺힌 핏빛 고리의 씨앗같은 형체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투란의 손에 새로운 핏빛 고리가 맺혔다. 씨앗의 형체를 품은 핏빛 고리가 돌출되며 길게 검은 줄기가 뻗어 나왔고, 두 손의 새로운 고리와 맞물렸다.
투란이 주먹을 쥐는 순간, 씨앗의 형체와 핏빛 고리가 사라졌다.
숨을 고르면서 투란은 잠시 문장의 풍경에 집중했고…….
* * *
“뭐야, 별거 없네? 그냥 트롤의 에센스잖아? 게다가 작아! 제대로 트롤이 나올 수도 없어!”
보이드에 휘감긴 채로 나눠진 마마 트롤, 작은 트롤 셋, 열매 둘의 형상을 향해 튀어나온 소리가 ‘천칭’의 풍경 속으로 장대한 메아리처럼 퍼졌다. 곧바로 이에 대한 대꾸처럼 드라고니아의 웅장한 음성이 별빛무리 속에서 쩌렁쩌렁 울려나온다.
“뭘 바랐는데? 설마 괴물이 된 정령의 나무라도 삼킬 줄 알았냐?”
“어, 조금 그랬지.”
“야, 이 욕심꾸러기야아!”
“얘네는 일단 나중에 정리하고, 오우거는? 마마 트롤이 튀어나왔는데, 얘 왜 아직 안 보이지? 바로 튀어나와서 덤벼들 줄 알았는데, 좀 늦잖아?”
* * *
―때려 부수고 있다.
문장 속 풍경에서 관심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는 투란의 뇌리에 드라고니아가 조금 맥 빠진 듯한 소리를 울렸다.
‘때려 부숴? 뭔 소리야, 그건?’
―녀석은…… 마마 트롤이 제 새끼 챙긴다고 형체를 노출시켰을 때, 그러니까 마그마 로드의 창으로 꿰서 알인 채로 새끼를 떼어낼 무렵에 10킬로미터 정도 저편에 나타났다. 그러고 나서 나무를 부여잡는가 싶더니, 으스러뜨렸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숲의 나무를 공격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잡아 뽑고 들이박으면서 때려 부수고 있어.
‘뭐야, 그게! 제대로 본 거야?’
―당장 보면 알잖아.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곧바로 이미 분산시킨 채로 프로브를 머금게 해서 뿌려놓은 ‘파라블랙․잉크’에 마음을 집중했다. 한쪽 방향에서 거칠게 일어나고 있는 파괴의 광경이 곧바로 투란에게 보였다.
‘왜 저래?’
무쇠뿔 오우거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숲의 나무를, 드라고니아의 설명 그대로 파괴해가는 광경을 향해 투란은 이리 물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숲을 지키던 폭군이 숲을 때려 부수는 폭군이 되어 있는가?
―글쎄…… 어쨌든 저 상태로는 이쪽으로 올 것 같지는 않지?
‘이런 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