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5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50)
흥분(興奮), 혹은 광분(狂奮)이라 할 만한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상아탑의 마도사, 마스터 홀시딘은 침착하게 허공에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로 상황을 정리하며 투란에게 말할 정도로 진정했다.
“그러니까, 모른다는 거지?”
아주 짧고 간결하게 압축된 물음이었다.
투란 또한 아주 단호하게 대꾸한다.
“알 리가 있냐고요! 대체…… 숲의 오우거라는 거, 이렇게 열매 속에서 자라서 태어나는 거였어요?”
“몰라,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어.”
“그럼 뭘 알고 계십니까, 마법사님?”
“비꼬는 소리 해봐야 소용없어. 요정의 일족이 무슨 방법으로 숲을 지키는 폭군을 불러내는가는 마법사에게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으니까. 알아내려고 갖은 잔꾀를 다 부려봤지만, 이제까지 밝혀진 적이 없는 비밀이라고.”
“그럼, 얘는 대체 뭐예요?”
투란이 발을 흔들어 열매를 툭툭 건드리면서 물었다.
곧바로 홀시딘의 표정이 파래졌다가 붉어지면서 낮게 깔린 격노의 음성이 튀어나온다.
“그러지 마! 그러다 깨지거나 망가뜨리면 어쩌려고!”
“아니, 왜 무섭게 그런 표정으로 그래요? 이 녀석이 나오면 다시 이 숲이 말썽 부릴지도 모르잖아요?”
“아니라고! 그 열매 속에 있는 오우거는…… 그래, 틀림없이 이 그레이우드의 무쇠뿔 오우거가 맞지만, 몬스터가 된 놈이 아냐! 그건 이제 막 맺혀서 새로 태어나는 무쇠뿔 오우거라고!”
“어떻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야, 네가 한 짓을 왜 나한테 물어! 말해봐, 여기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어? 로열 가든의 징표로도, 내가 준비한 마법으로도 파악 못 했다고!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트롤도…… 마마 트롤도 홀랑 날려버리고, 무쇠뿔 오우거는 몬스터 로드답게 꿀꺽한 모양인데, 대체 얘 뭐야? 어떻게 한 거냐고! 하나씩, 하나도 빼놓지 말고 말해보라고!”
강렬한 의지가 맺힌 홀시딘의 눈빛은 마치 투란의 뼛속까지 꿰뚫고 파헤치려는 듯이 번뜩거렸다. 덕분에 목덜미를 덮은 무쇠껍질 사이로 식은땀이 새는 듯한 기분으로 투란은 급히 마음 깊은 곳을 향해 소리 없이 외쳐야 했다.
‘뭐라고 해야 하냐고! 야, 둘러댈 말 좀……!’
―뭔 소리를 해도 안 통할걸. 눈 돌아간 마도사를 무슨 수로 말리냐? 최대한 꾸며대서 억지 부리는 수밖에 없다. 자세한 사정을 다 털어놓는다 해도…… 어차피 뭔 일인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니까!
‘그래, 그 억지로 꾸민 소리라도 알려달라고!’
―아, 그것까지 모른다고?
‘헛소리라도 마법사에게 통할 헛소리를 해야 할 거 아냐! 마법사가 혼자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달라고, 제대로 통할 미끼 같은 말을 해야 하잖아!’
―그렇군, 그렇다면…….
투란은 일단 깊이 생각하는 척, 숨을 고르면서 홀시딘의 눈길을 피해 멀리 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느릿하게 입을 열며, 기억을 더듬는 척하며 드라고니아가 알려주는 헛소리를 읊어대기 시작하니…….
“마스터 홀시딘, 내가 아니에요. 잠깐 귀를 기울여보세요. 흥분하지 말고, 숲을 좀 느껴봐요.”
“뭐?”
홀시딘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고, 곧바로 ‘이게 어디서 수작을!’ 하는 표정이 바로 상아탑의 마도사 얼굴 위로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투란은 ‘내 배를 째고 싶다면 째든가!’라는 뻔뻔한 태도로, 말한 그대로 자신은 마치 숲을 느낀다는 표정과 태도를 꾸미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홀시딘도 끄응 하는 낮은 소리와 함께 명상(冥想)이라도 하듯이 흥분과 함께 자신을 진정시키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라?’
투란은 뭔가를 느끼는 척하며 살짝 감는 시늉을 했던 실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홀시딘도 ‘어?’ 하는 소리를 짧고 굵게 울리면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니, 투란으로서는 지금 자신이 느낀 바가 절대로 착각이 아닌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헛소리라고 여기고 내뱉었는데, 정말로 ‘숲’이 느껴지잖는가!
―오우거에 호응하는군. 마도사의 감각을 자극할 정도라니, 이렇게 선명하게 힘을 드러내는 숲은 전설 속에서도 몇 곳 안 된다.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다 통할 것 같은걸.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헛웃음처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헛소리의 첫마디와 함께 찾아온 기묘한 감각에 대해 하는 말에 마음을 쓰지 못했다. 그보다는 깊이 몰아닥치는 듯한 ‘숲’의 분위기를 통해서 오우거의 정수(精髓)가 토해내는 아련한 기억…… 정수를 이뤄내는 근본적인 어떤 시작에 대해 마음이 집중되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시작, 최초의 형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억의 시작을 여는 최초의 박동, 무엇인가의 맥동(脈動)에 맞춰져 시작된 심장의 고동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그 최초의 박동과 함께 오우거는 ‘삶’의 형태를 시작하고 있었다. 최초의 그 박동과 더불어 긴 세월이 흘렀고, 오우거는 자신을 형성해 갔다. 그 과정을 통해 오우거는 ‘숲’을 느낄 수 있었고 사명(使命)을 본능 속에 새겨 넣었다.
그런 오우거에게 ‘숲’은 꼭 필요했다.
‘숲’은 바람을, 흙을, 물을, 따스하고 여린 불을 필요로 했고!
‘숲’을 이루는 초목(草木)은 양분을, 양분을 공급해줄 짐승을 필요로 했다.
오우거는 그렇게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숲’을 돌봐야 했고, 지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숲’이 허용한 많은 것을 오우거는 활용할 수 있었고, 그런 ‘숲’의 힘을 빌릴 때마다 오우거는 ‘삶’을 확신했다.
‘숲’이 없다면 오우거에게 ‘삶’ 또한 없었다.
사아아, 사라락.
바람결이 세게 ‘숲’을 감싸듯이 불었다.
투란은 그 인과(因果)가 반대라는 것을 바로 느꼈다.
‘숲’이 숨을 내쉬듯이 바람을 몰아붙여 온 것이다.
그 바람에 흔들리는 열매가 더욱 세차게 맥동을 하는데, 철저하게 투란의 심장―오우거의 심장과 호응하며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 두근거림 속에서 문득 투란은 깨달았다.
‘시간이 필요했구나. 몬스터가 된 놈을 대신할 새로운 녀석을 키울 시간이…….’
그것은 길고 긴 순환의 고리였다.
몬스터가 된 오우거가 정령의 나무가 깃든 숲을 헤매고, 그 심장의 고동이 넓게 오래 퍼져 나가면서 정령의 나무는 마침내 오우거의 심장이 깃든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계속해서 숲을 헤매는 오우거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맥동하는 심장을 키우고, 오우거의 형체를 빚어낸다. 열매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 꽤 시간이 필요하지만 몬스터인 오우거를 몰아낼 새로운 숲의 폭군이 자라날 터였다.
투란은 ‘숲’에게서 그런 순환의 마디를 빼앗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정령을 끌어내고 오우거의 형상을 한 채 앉은 투란에게서 ‘숲’은 다시 그 순환의 마디를 찾아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채로 새로운 무쇠뿔 오우거의 열매를 맺었다. 두 그루로 나눠진 정령의 나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마마 트롤의 활발함을 전부 쥐어짜내서 이뤄낸 결과인 셈이었다.
아직 트롤의 여운이 남은 탓인지, 열매는 아주 빠르게 작은 오우거의 형체를 완성시켰고 이제 긴 세월을 겪으면서 크게 키워낼 준비를 마쳤다. 잠시 동안은 계속 투란의 심장 박동에 맞춰, 앞으로는 열매 속의 심장이 홀로 뛸 수 있도록 가능한 오래 함께 뛰도록 하면서…….
“투란, 이걸 떼어내면 열매가 새로 돋아날까?”
갑작스럽게, 불쑥 튀어나온 홀시딘의 물음이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예? 떼어……? 새로 돋냐니요?”
―이런, 마법사도 알아차린 모양이군. 너를 통해서 이 열매가 맺힌 걸 말이다.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처럼 속삭였다.
투란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홀시딘을, 상아탑의 마도사를 바라봤다.
홀시딘이 다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덕분에 뭔 이야기를 하는가 잠깐 더 어리둥절하게 하면서 말한다.
“지금 말이야, 완전히 네가 뒤집어쓴 오우거의 조그만 모습에…… 그 심장에 호응해서 열매가 맺혔고, 너랑 딱 맞춰진 채로 열매 속 심장이 뛰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걸 싹 떼어내면…… 네가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이 숲이 새로운 열매를 바로 당장 맺지 않겠느냐, 이거지! 투란, 오우거가 맺힌 열매라고. 아, 그렇군! 알기 쉽게 말하자면, 이거 떼어 가면 상아탑에서 금전 천 닢은 쥐어짜낼 수 있다! 정말이야, 내가 며칠 안에 바로 금덩이로 받아다 줄 수 있다고!”
투란은 새삼 뒷골에 식은땀이 맺혀서 두르고 있는 무쇠껍질 틈새로 새어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상아탑의 마도사가, 상아탑을 책임진다는 마스터가 상아탑을 쥐어짜내서…… 금전 천 닢을 내주겠다고 하시는 중이다!
번들거리는 그 눈빛을 보니, 담담한 태도와 표정을 잔뜩 꾸미고 있기는 한데 꼭 떼어 가고 싶다는 그 갈망이 너무 노골적이잖은가! 아무리 봐도 입으로는 떼어 가면 하나 더 생길 테니 괜찮지 않느냐고 묻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딴 거 알 바 아니고 그냥 떼어 가고 싶다는 기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자신에게 변명을 하듯, 투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떼어내도 또 열릴 수 있으니, 떼어 가자고!
―샘플링할 생각이로군. 상아탑에서는…… 뭐, 어떤 계통의 마법사라도 그렇겠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오우거의 형성 과정을 지켜볼 기회라면 놓치고 싶지 않겠지. 운이 좋으면 요정의 일족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가디언 오우거를 만들 연성과정을 확립할 수도 있겠고 말이야. 참 좋은 기회이기는 하군.
‘야, 지금 그런 소리를 할 때냐! 아, 진짜……!’
투란은 ‘숲’을 느끼면서, 미묘하게 채워지며 사라지는 듯한 시리고 아린 느낌을 기억해내면서 탐욕스럽고 짙은 갈망을 대놓고 뿜어내는 마도사를 향해 입을 열어야 했다.
“에, 홀시딘…….”
“응, 그래! 떼어 볼까? 새로 자라나 한번 보자고!”
“떼지 말고! 굳이 떼어 가지 않고 두고 지켜볼 방법도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로열 가든의 시크릿 키퍼잖아요! 여기에 로열 가든처럼 지켜줄 수 있는 마법을 쓰고, 홀시딘은 그걸 지켜보…… 홀시딘? 마스터 홀시딘!”
나오는 대로 일단 지껄이다가 투란은 문득 홀시딘의 태도가 홱 바뀌는 꼴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서, 정신 나간 것 아닌가 의심하며 그 이름을 불렀다.
홀시딘은 정말로 잠깐 어딘가로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눈을 몇 번 깜박였고, 조금 전과는 아예 다른 목소리로…… 탐욕도 갈망도 없는 소리로 투란에게 묻는다.
“로열 가든의 기원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예? 기원이요? 아니요. 몰라요, 그런 거.”
투란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로열 클래스에 대해서 키린이 이런저런 정보를 잔뜩 투란의 뇌리에 꽂아 넣고 새겨줬지만, 그 기원이니 뭐니 하는 부분―마법사나 관심을 가질 듯한 부분은 몽땅 건너띈 채로 새겨 알려줬을 뿐이다! 그딴 거에 대해서는 키린 자신도 별 관심이 없는 듯도 했고, 로열 클래스 신청과 자격 획득에 별 의미도 없다고 여긴 것처럼…… 혹은 투란이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나름대로 아픔을 줄여주기 위해서 생략했든가!
“모른다…… 그럼, 정령의 궁전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지금 말한 건가?”
“예? 정령의 궁전? 그게 뭔데요?”
“오랜 옛날, 이 섀터드 세븐, 브로큰 킹덤이라 불리는 이곳에 온전한 하나였던 왕국이 있었지. 에아본 왕국, 그 왕가의 비전 마법으로 이뤄진 궁전…… 요정의 일족조차도 우러러 볼 정도로 정령의 나무가 정원을 가득 채웠던 궁전. 가디언 오우거를 요정의 일족만큼이나 잘 만들어낸 마법의 궁전.”
“처음 듣는데요?”
투란은 홀시딘의 차분하면서도 깊이 흥분한 듯한 모습에 눈을 깜박거리면서 대꾸해야 했다.
‘넌 알아?’
―전설이다. 솔직히 말해서, 드라코눔에서도 믿는 자가 거의 없는 전설이야.
드라고니아가 살짝 애매하게, 살짝 신중하면서도 ‘그딴 전설 믿는 미친놈이 여기 있구나!’ 하는 듯한 모호한 말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홀시딘은 투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보다는 너무 오래 자신도 잊고 있던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고 푹 빠진 것처럼 말을 잇는다.
“정령의 궁전은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지. 로열 가든이란 마법을 에테온의 대마도사가 다시 발견해낼 때까지 말이야. 로열 가든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시크릿 키퍼라는 사실은 정령의 궁전 또한 조건을 갖추면 재현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지. 투란, 그 조건 중에 정령의 나무와 나무가 빚어낸 신생(新生) 오우거도 포함된다. 정령의 궁전은 그 가디언과 한 가지로…… 한꺼번에 지어져야 하거든. 그리고…… 음, 다른 조건도 지금 완벽하다. 원하는가? 여기에…… 신생 오우거와 정령의 나무를 통해 왕의 율법과 서원을 지키는 키퍼인 나, 홀시딘이 정령의 궁전을 발현하기를 원하는가, 투란?”
“그런 게 돼요? 열매 따내지 않고 한다는 거죠?”
“그래, 네 말대로…… 따내지 않고 지켜볼 수 있기도 하지. 할까?”
“음, 에, 으흠…… 이런 기회 다시없겠죠?”
“없지.”
“으음…… 에잇, 해봐요.”
―잠깐, 투란! 이거 수상하……!
강렬한 마력이 홀시딘을 중심으로 치솟으며 거대한 회오리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투란은 그 사나운 마력의 격류 속에서 멍멍해진 귓가로 스며오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금전 이만 닢이 소모된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