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5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51)
Chapter 91. 거미의 산림, 쟈카라
콰르르, 콰왕!
섬광(閃光)과 함께 울린 천둥이 가까운 곳에 내리꽂힌 벼락불의 웅장함을 뼛속까지 스며들게 해 줬다. 폭우(暴雨)가 바람을 타고 폭포(瀑布)처럼 쏟아져 내리는 탓에 가지가 잔뜩 돋아난 나무 아래에서도 빗방울을 제대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갈기 산맥의 남서부, 쟈카라 산림이라 불리는 한 귀퉁이를 가득 채운 먹구름은 포악한 날씨를 과시하며 쉽게 가실 낌새가 전혀 없었다. 먹구름이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는 한낮을 밤처럼 느끼게 했고, 벼락불은 거의 유일한 빛의 근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무 아래에서 투란은 천둥을 틈타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중얼거리고 있었으니…….
“마법사랑 엮이면 정말로 좋은 꼴 못 본다니까…….”
곧바로 짙은 짜증이 섞인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꾸가 뇌리에 꽂혀든다.
―또냐? 벌써 이십일 일째다. 스무날에다가 하루 더한 날이라고! 그만 좀 해!
콰릉!
또다시 새하얗게 떨어지는 벼락은 꽤 가까워서 나무 아래의 어둠을 밝혔고, 그 탓에 완벽하게 징징대는 표정을 짓는 투란의 얼굴이 살짝 세상에 비쳤다. 벼락의 뒤를 이어 땅울림을 일으키는 천둥의 광폭한 소리가 메아리쳐졌고, 그 틈을 타듯 투란은 다시 징징대는 중얼거림을 토한다.
“그만할 수가 없잖아…… 뭐냐고, 그게…… 금전 이만 닢이라니……! 허흐흥!”
―나도 딴 녀석이 그런다면 그러려니 하겠다만, 마법의 촉매로 쓰인 이만 닢을 아까워할 처지냐? 맛있다고 처먹은 금덩이가 그 이상이었잖아, 너!
“……이제 와서 그런 지난 일을 왜 들춰?”
―이십 일하고도 하루를 더 지난 일을 계속 징징대는 놈이니까! 까먹었냐? 금이 얼마나 맛있었나, 네 입으로…… 아니, 온몸으로 맛보면서 좋아 죽던 녀석이 너라고! 그때 처먹은 금덩이보다 적잖아, 이만 닢 이상을 처먹어 놓고 뭘 그리 아쉬워하냐고! 남은 금이 그보다 적은 것도 아니고!
“한 닢도 못 써 봤잖아, 금전…….”
―뭐? 못 써 봐? 안 쓴 거잖아! 숨긴답시고 일부러 쓰지 않았으면서!
“……이쁘게 저울에 달아서 썰어 놓고 깎아 놓은 금전을 침대 아래 두고 자 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제대로 무게 달아서 금전 모양도 만들기도 전에 이만 닢이 사라졌어! 게다가 뭐냐고, 그렇게 만든 궁전인가 뭔가에 왜 난 못 들어가!”
―궁전 만든 마도사인 홀시딘도 못 들어가잖아! 뭐가 불만이야? 오우거가 숙성(熟成)해서 태어날 때까지는 아무도 못 들어가는데, 그 새로운 무쇠뿔 오우거 때문에 궁전 지으라고 한 건 너라고, 너!
“나도 무쇠뿔 오우거처럼 되는데…… 그런데도 못 들어간다니! 그게 말이 되냐! 시크릿 키퍼의 열쇠도 바로 받을 수 있었고, 내가 바로 허가를 한 로열 가든의 맹약자인데, 홀시딘은 몰라도 왜 나까지 못 들어가! 그 망할 놈의 나무, 왜 나까지 튕겨 내냐고! 역시 그 숲에 확 불을 질러 버리고 그 정령 뿌리를 날름 뽑아냈어야 했어!”
―징징댈 시간은 끝난 모양이다. 온다, 이번에는 힘을 합쳐서 덮쳐 올 모양이군. 뒤편에 네 마리, 앞에 세 마리야.
“이 지긋지긋한 거미도 그래!”
투란은 벼락과 폭우 사이로 거뭇한 그림자처럼 땅거미가 진 듯한 형상으로 다가오는 거미의 몰골을 보면서 외쳤다. 보통 거미 서너 마리가 앞뒤로 다가오는 광경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날씨를 위장(僞裝)처럼 두른 채로 다가오는 거미는 어지간히 체격 좋은 큰 늑대만큼이나 컸고, 그 다리 길이는 좋은 창이나 장검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질감을 드러낸 채였다. 길 가다 우연히 보면 곧바로 ‘괴물이얏!’이라고 외칠 듯한 거미의 거대한 형상인 셈인데, 투란은 그 거미를 보며 쪼그리고 앉은 채 억울하다는 듯이 외침을 이어 가고 있었으니…….
“저렇게 생겨 갖고 왜 마수냐고!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씨이이― 달칵, 덜컥!
보통 거미와 다른 체격에 어울리는, 그 크기에 걸맞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거미가 다리를 빠르게 움직였다. 한둘도, 서넛도 아닌 한 몸에 네 쌍씩 되는 다리를 앞뒤로 일곱 마리나 되는 큰 거미가 한꺼번에 움직이며 창칼처럼 휘둘러 웅크린 투란을 내리찍고 베려는 듯이 덮치는 광경이었다. 그 입에서는 침방울처럼 튀어나온 것이 하얗게 뭉쳤다가 빠르게 움직이는 앞쪽의 발 한 쌍에 의해 펼쳐지면서 엷은 그물이 되어 투란을 덧씌우려고도 했다.
투란의 외침은 거미 무리가 거의 자신의 몸에 그 사납고 날카로워 보이는 다리를 갖다 댈 때까지 이어졌다.
“몬스터한테서 태어났다면서! 근데 왜 너네가 마수냐고, 이 못된 놈들아!”
―그만하고, 어서 정리해라. 아직 거리가 있지만 한꺼번에 달려들 기회를 엿보는 놈들이 가득하다. 오늘은 간단히 정리하고 돌아간다며?
드라고니아는 어딘가 심드렁하니, 투란이 잊고 있는 오늘의 계획표를 읊어 주는 듯했다. 이는 곧바로 꼼짝도 않으며 투덜대던 투란을 움직이게 했고, 더욱 짜증이 가득한 으르렁거림을 토해 내게도 했다.
“못된 놈이면 못된 놈답게 비싸기라도 해야지! 가죽 다 벗겨도 은전이 뭐냐고, 은전이! 속살도 더럽게 맛없는 것들이! 뒈져어어―!”
우드드―, 요란한 소리와 함께 투란의 오른손이 커졌다.
―야, 거미 실…… 거미줄 샘플 얻어다 주기로 했잖아. 이번 녀석들, 거미줄이 또 다른 성질이다.
“비싼 거 토해라!”
불끈불끈하던 왼손으로 허공에 맺혔다가 펼쳐지며 다가오는 하얀 거미줄, 그물이라기보다는 엷고 하얀 베일처럼 다가오는 것을 쑤셔 팔뚝에 감으면서 투란이 조금 전과는 다른…… 약간의 기대가 담긴 외침을 터뜨렸다.
파락, 하얀 베일이 일그러지면서 빗물과 어둠 속을 밝히는 퍼릇한 광채를 머금고 타올랐다.
와드드―!
투란의 오른손이 무쇠 껍질을 두른 채로 거미 다리 몇 개를 한꺼번에 움켜쥐고 부러뜨리며 당겼고, 끌려온 거미의 몸통에 곧바로 주먹이 꿰뚫고 들어갔다. 거미의 몸통에서 짙은 체액이 검붉게 튀어 올랐고 거미는 부러진 다리를 버둥거리다가 멈췄다.
한 마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거미 무리는 폭우와 천둥, 어둠 속에서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불끈불끈하는 낌새로 두꺼워지는 투란의 몸을 찌르고 패고, 베며 파란 불길이 치솟는 그물 장막으로 덮어씌웠다.
하지만 거미의 다리 수십 쌍은 오우거의 살갗에 제대로 긁힌 자국도 만들지 못했고, 우람하게 끝없이 허공을 향하는 듯한 무쇠뿔은 파란 불꽃이 넘실거리는 그물 장막을 찢어 버리며 나무를 잡고 위에서 다리를 휘두르는 거미 한 마리를 꿰뚫었다.
―샘플 포획 끝났다.
드라고니아의 말에 흘깃 투란의 뿔이 돋은 머리가 기우뚱하면서 아직 사람의 팔뚝 크기지만 오우거의 불끈거리는 근육과 살갗이 자리 잡은 왼팔을 내려다봤다. 팔뚝에서는 가죽 한 겹이 벗겨지면서 조금 전에 휘감았던 거미의 실, 그물 한 조각을 품은 채로 두루마리가 되어 말리고 있었다. 투란은 그 두루마리가 완성되는 순간, 재빨리 땅에 떨구며 한 발로 밟아 눌렀고 곧바로 왼손 역시 무쇠 껍질의 오우거 형상으로 바꾸며 오른손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커다란 오우거의 형상이 절반쯤 이뤄졌을 때, 달려들던 거미 무리는 빠르게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도망치려 했다. 사냥감과 자신들의 처지가 완전히 바뀐 상태가 된 것을 이해했다는 듯!
하지만 투란은 그 도망치려는 거미를 다리를 붙잡고 손을 감은 무쇠 껍질의 넝쿨을 내던져 낚아 당기면서 모조리 내리찍고 찢어 버렸다.
콰릉! 쿠르르―.
이번에는 조금 먼 곳에서 벼락이 쳤다.
그 빛은 잠깐 사이에 쇠약해진 파란 불꽃으로 어두워진 나무 아래의 풍경을 다시 한번 밝혀 주며 스쳐 갔다.
‘뭐야, 벌써 끝? 더 안 와?’
―일곱 마리 모두 잡았다. 멀리 있는 놈들은 알아차린 모양이다. 요 며칠 동안 자기네를 사냥하던 것이 너라고 말이야. 은폐 그물을 두르고 사라지는군.
“쳇.”
혀를 차면서 투란은 머리와 몸에서 오우거의 형상을 벗어 냈다.
아직 굵은 두 팔은 바쁘게 움직이며 뭉개 놓은 거미를 차곡차곡 쌓고 다리를 뒤틀고 우그러뜨리며 꼬아 밧줄처럼 엮이게 했다. 거미 무리가 완연히 한 덩어리로 포개진 다음에 두 팔에서도 오우거의 형상이 사라졌다.
발아래 밟아 뒀던 두루마리, 땅에 꾹 파묻혔던 것이 완연히 단단한 원통 모양이 된 것을 파내 집은 투란은 뭉쳐 놓은 거미 더미를 잡아당기면서 폭우와 함께 우거지는 나무 틈새를 걷기 시작했다.
높이 굽이치는 산자락과 숲이 얽힌 어둠 사이로.
쟈카라 산림, 그 끝이 그레이우드로부터 밀려온 초목과 맞닿은 경계 한편에는 바위와 흙, 자갈이 산사태를 만나 무너져 내린 탓에 숲이 자리를 잡지 못한 곳이 있었다. 산사태로 인해, 한쪽이 절벽처럼 우뚝 서고 넓게 숲이 비어 버린 마당을 내려다보는 듯한 풍경이었다.
이 풍경 속에 십오륙 미터는 거뜬히 될 듯한 탑이 두꺼운 자태로 솟아나 있는데 어딘가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마치 산사태를 틈타서 땅 한 곳이 성질 난 것을 드러내겠다는 듯이 뿔을 뻗은 듯한 광경이었다. 그 뿔이 높은 곳 한 귀퉁이에 네모난 모양의 바위 상자가 덜렁 달라붙은 꼴이 그런 자연스럽지 못함을 강조하는 증거처럼 보였다.
투란은 한껏 몰아치던 먹구름이 조금씩 흐릿해지면서 구름 사이로 햇살 몇 줄기가 빛의 창처럼 뚫고 나올 무렵, 이 자연스럽지 못한 풍경에 발을 디뎠다. 투덜거림이 낮게 자갈과 흙, 바위 뿔탑의 풍경을 향해 새어 나온다.
“진짜 너무하는구먼. 다 오니까 비가 그쳐? 대체 뭔 짓이냐고!”
흠뻑 젖은 채로, 질질 끌고 오는 거미 더미가 자신의 키보다 두어 배는 거뜬히 될 듯한 상태여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한 손으로 잡아끌면서 투란은 뿔탑을 바라봤다. 그 옆에 길쭉한 바위 상자, 자세히 보면 셋 정도의 반듯한 네모난 바위를 맞물려 뿔탑에 붙여 놓은 듯한 길쭉한 모양의 한구석에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풀거리는 줄사다리가 보였다.
―이젠 날씨까지 시빗거리냐?
드라고니아가 주변에 색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란 듯, 투란이 투덜거리는 꼴이 투덜거릴 대상이란 듯이 중얼거렸다.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걸었고…….
“맑은 날에도 잘 안 보이는 놈들인데, 비 오는 날에 잡으라고 보내다니…… 너무해, 정말 너무해!”
누군가를 노린 듯한 중얼거림을 토해 냈다. 그러나…….
―홀시딘, 지금 바쁘다. 전혀 듣고 있지 않아.
냉정하게, 매정하기까지 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꾸하고 있잖은가.
‘젠자아아앙―!’
입을 다물고, 투란은 걸음을 빨리해서 뿔탑 아래에 이르렀다.
가까이 이르자 뿔탑은 아래쪽 바닥으로 해자(垓字)를 파 놓고, 듬성듬성 구멍을 뚫어 놓은 밑동을 드러냈다. 해자를 미끄러져 내려가 그 구멍을 향해 거미 더미를 밀어 넣고 나서 투란은 다시 비탈진 해자를 기어올라 왔고, 줄사다리가 너풀거리는 쪽으로 갔다.
‘여전히 바빠?’
―그래.
올려다보면서, 줄 사다리의 높이가 대략 3, 4미터 위인 것을 확인하며 투란이 슬쩍 홀시딘이 지금도 자신의 귀환을 눈치채지 못했는가를 물었고 드라고니아는 상쾌하다는 듯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마법사의 상황을 알려 줬다.
투란은 한숨처럼 숨을 몰아 내쉬면서 뛰어올라 줄사다리를 잡았다.
투란을 추처럼 매단 줄사다리의 흔들림이 잠시 무거워졌지만, 투란이 재빨리 기어올라 높은 바위 상자 한구석의 난간으로 들어서자 다시 바람을 타듯이 세차게 움직였다.
투란은 바로 난간 안쪽에 자리 잡은 문, 그냥 네모나게 뚫어 놓은 구멍으로 들어가지 않고 돌아서서 잠시 산림의 풍경을 바라봤다.
녹색의 빛이 어른거리면서도 거뭇한 그림자가 가득한 쟈카라 산림, 갈기 산맥의 한쪽 끝자락이면서 그레이우드와 맞닿은 곳…… 몬스터에게서 태어난 마수인 거미 떼가 와글거리는 풍경이지만, 이렇게 바라보면 참으로 고요하고 상쾌한 느낌이 가득한 산자락의 숲이었다.
멀리서 새소리가 들리고, 벌레 우는 소리도 짙은…….
벅벅, 원통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중얼거린다.
“정말로 있는 건가, 몬스터 거미…….”
―있다니까. 여기 거미 떼는 분명히 레기온(Legion)을 형성해서 수십 년에 한 번씩 몰려나오는 놈들 맞아. 그 상위층에는 분명히 아라크녹스(Arachnox) 혹은 아라크노스(Arachnoth)라고 불리는 거미 괴물이 있다.
드라고니아가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해 주는 말에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바위 상자 안쪽으로 들어갔다. 난간에 맞붙은 첫 번째 방은 텅 비어 있었고, 그저 바닥에 아래를 향해 구멍을 열고 계단을 드리웠을 뿐이었다.
투란이 그 계단을 세게 밟으면서 내려가니…….
“오, 벌써 왔나?”
홀시딘이 떠다니는 두툼한 방석에 앉은 채로 빙글빙글 돌면서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잖는가!
‘으윽, 금을 얼굴에 바른 것 같아! 반짝거려!’
―그럴 리가 있냐! 관측용으로 세게 밝혀 놓은 빛 때문에 사람 살갗이라도 반사광을 일으킬 정도인 것뿐이라고!
소리 없이 투덜거렸지만 바로 반박만 당한 투란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 듯, 투란은 원통을 홀시딘에게 슬쩍 던져 주면서 묻는다.
“뭐, 좋은 일이라도?”
금전 이만 닢을 꿀꺽했으니, 반드시 좋은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나름대로 신랄한 눈빛으로 낸 소리였지만 원통을 낚아챈 홀시딘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호쾌하게 대꾸해 온다!
“오우거 벨트 둘, 부츠 한 벌, 글로브 한 벌까지! 파워드 아이템을 넷까지 만들 수 있어! 가죽은 별도로 가공할 수 있고 말이야! 파워드 아이템 한 벌이면 금전 오백 닢까지 거뜬하다!”
“아,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