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5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52)
투란은 애매한 기분에 듬뿍 젖은 채로 홀시딘을 바라봤다.
홀시딘은 무쇠뿔 오우거의 잔해, 몬스터의 정수를 투란이 삼키고 남은 잔유물은 다른 경우랑 아주 다르다고 했다. 요정의 길을 넘나들면서 괴물인 채로 정령의 가호를 한동안 유지했는 데다가, 원래 몬스터로 변이된 원인조차 무쇠뿔 오우거 내부가 아닌 외부…… 원래 무쇠뿔 오우거의 근원이어야 할 정령의 나무가 뒤틀린 탓이었기 때문에 잔해 자체가 마법사에게는 굉장한 연구 대상이라고 했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면서 챙긴 잔해로부터 홀시딘은 굉장한 마법 물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다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인 셈이었다. 문제는…….
‘이만 닢 쓰고 오백 닢…… 넷이라면, 다해서 이천 닢인가? 그거 생긴다고 좋아라 하는 거야, 지금? 마법사면서 숫자도 못 세나?’
투란에게는 지금 좋아 죽는 표정인 상아탑의 마도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작자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니…… 넓은 방은 네 방향의 벽을 향해 서로 다른 도구를 잔뜩 늘어놓은 채인데, 이건 누가 봐도 마도사가 잔뜩 일을 벌여 놓고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피어날 광경이었다.
문득 거미랑 싸우고 폭우와 벼락 사이를 터덜거리며 걸어와서 비가 그친 광경을 보게 된 조금 전의 경험을 되살린, 투란으로서는 새삼 뭔가 비뚤어진 소리를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잖은가!
“귀중한 오우거를 이용한 마도구인데…… 다해서 금전 이천 닢을 겨우 받을 수 있는 건가요?”
홀시딘이 이 소리에 곧바로 고개를 치켜올리면서, 눈길은 펼쳐진 두루마리 속의 거미줄 뭉치에 보내는 채로 대꾸한다.
“응? 무슨 소리야? 거뜬하게, 라니까. 그 가격이 바닥이라고. 거기서부터 이것저것 따져서 계속 올려야지! 이건 풀 세트일 경우에는 더 비싼 값을 매긴다고 해도 뭐라 할 놈 없을걸!”
“……에, 예?”
투란은 당황했다.
홀시딘은 투란이 당황한 것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거미줄 뭉치를 향해 손끝을 튕기면서 묻는데…….
“이건 어떤 현상을 일으켰지? 구덩이에 새로 담은 녀석들이 만든 실뭉치 맞지? 어디 보자…….”
이리저리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그으면서 마력을 뿜어내는 모습이 투란이 느끼는 의아함보다 지금 당장 자신의 호기심부터 풀고 싶다는 태도가 무럭무럭 뿜어 나오잖는가!
―틀렸다…… 마도사가 이 지경이면 네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한 대답은 한참 뒤에나 해 줄걸.
‘젠장, 알아! 안다고!’
소리 없이 투덜거린 다음에 투란은 홀시딘의 물음에 웅얼거리면서, 되도록 낮게 재주 있으면 들어 보란 듯이 대답한다!
“퍼렇게 타는 것 같던데요? 왜 퍼런색인지는 모르겠는데…… 쏟아지는 빗속에서 퍼렇게 타오르다니, 이상한 불이었데…….”
“응? 퍼렇게? 호오, 이런 식이었나?”
투란의 말에 홀시딘은 갸웃하다가 손가락을 튕기며 딱 소리를 냈고, 그 순간 두루마리 안에서 살짝 삐져나온 거미줄 가닥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모락모락 하는 꼴을 보이다가 사라졌다. 이쯤 되면 딴소리하기도 힘들어서 투란은 얌전히, 그래도 좀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한다.
“예, 이어진 부분은 대부분 탔을걸요. 두루마리로 낚아채지 않았으면 남는 것도 없이 타 버렸을 거예요.”
“그래, 채집용 두루마리가 역시 쓸 만하지? 아, 이거 엘렉트론 반응인가? 과연 재밌는 마수라니까.”
벌써 몇 번을 들은 두루마리 자랑에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투란은 되새기듯 홀시딘의 말을 따라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엘렉트론?”
“응, 뇌전(雷電) 계열(系列)의 성질을 통틀어서 엘렉트론이라고 해. 뱀장어 중에서 가끔 엘렉트론 쇼크 능력을 지닌 경우가 있지. 굳이 마수가 아니더라도 가끔 자연적으로 그런 능력을 지닌 품종이 있어.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자신이 배출한 분비물, 실그물을 발화하면서 충격을 주는 타입이니 자연적으로 보기는 꽤 힘들 듯한데…… 어라, 그러고 보니 투란, 이거 불타는 꼴을 본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 느꼈어?”
“에, 그렇죠? 아무 느낌도 없었던 것 같은데…….”
“흐음, 오우거를 꺼내 싸웠어?”
“어, 예. 이제는 거미 떼도 열 마리 넘지 않고 센 놈들만 붙으니까요. 며칠 전부터는 그냥 오우거로 싸우고 있었죠.”
“그랬군, 그래서 엘렉트론 쇼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군. 숲의 가디언은 떨어지는 벼락 따위 몸으로 곧장 흘려 내니까. 마법사가 만든 경우랑은 다르겠어.”
“저기요! 홀시딘, 마스터 홀시딘! 그러니까 대체 뭔 얘기냐고요!”
투란이 뭔 소리인지 의아함에 질려서 결국 울컥한 소리를 질렀다. 한데…….
“음? 으흐흐흣!”
쓰윽, 이제서야 투란을 돌아보는 홀시딘의 눈가에 맴도는 저 음흉한 표정은 대체 무슨 의도인가! 저절로 투란이 몸을 움찔하면서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니…….
“자자, 일단 지금은 몬스터 로드의 능력을 싹 접어 두고, 사람으로서 한번 느껴 봐. 그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괜찮아, 설마 손끝에 살짝 닿는 정도로 어디 다칠 것 같아? 독이 있는 거 아니고, 내가 지금 자네를 다치게 할 처지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살짝 대 보라고!”
홀시딘은 손가락 끝으로 거미줄 한 가닥을 끊어 내서 내밀며 히죽 웃음과 함께, 노골적으로 완벽한 사기를 쳐 보겠다는 자세를 갖춘 모습이었다!
주춤하면서 투란은 빠르게 마음속으로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야, 이거 괜찮은 거야?’
―다칠 일 없고, 독도 없지. 분명히 그렇긴 하다만, 낯선 경험일 수는 있겠군.
조금 심드렁하니, 드라고니아가 ‘낯선’이란 말을 강조하며 대꾸했다.
홀시딘은 망설이는 투란의 태도를 보며 가만히 기다리지 않았다.
“에이, 설마 나도 손끝으로 잡고 있는데 무서워? 겁먹은 거야?”
“누, 누가―! 아니, 그 표정이 무서워서 겁나네! 아, 들이대지 말아요! 지금 건드려 볼 테니까!”
어쩔 수 없이 손가락 끝을 내밀면서 투란은 일단 몸을 최대로 뒤로 젖히며 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혹시나 어떤 불쾌함이 있다면 곧바로―…….
찌릿!
―손끝에서 스며 온 찌릿찌릿한 감각이 곧장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치밀어 오르면서 팔이 저려 왔다.
“으켁?”
바로 몸을 뒤틀면서 투란은 슬그머니 마비되는 팔을 통째로 뒤로 빼며 실 가닥에서 손끝을 떼어 냈다. 그러나 한번 스며든 기묘한 뭔가는 여전히 팔을 저리게 하면서 찌릿찌릿하고 쿡쿡 쑤시고 있잖은가!
“이게 뭔―!”
“엘렉트론, 그게 바로 엘렉트론 쇼크야. 제대로 걸리면 심장까지 마비되는 수가 있지! 대단하지? 이 작은 조각에 그 정도 힘이 담겨 있으니 말이야.”
“저기요오? 지금 심장이 뭐라 했습니까! 다치지 않는다며어엇! 독이 아니라더니! 그거 독이잖아앗!”
“독 아니라니까. 일단 파고든 충격, 그걸로 끝이지. 몸이 잠깐 반응하고, 끝! 아, 물론 이걸 계속 붙이고 있으면 충격이 흐르면서 이어지기는 하지.”
“잠깐, 왜 나만 이래요? 홀시딘?”
투란은 저린 팔을 휘젓다가 홀시딘이 여전히 실 가닥을 쥔 꼴을 보면서 눈을 치켜 뜨며 물어야 했다. 똑같이 손끝을 댄 꼴이었는데 왜 투란만 찌릿하고 저린 채로 팔이 마비되는 불쾌한 경험을 하고 홀시딘은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을 하고 있는가!
“응? 그야…… 후후훗, 투란! 상아탑의 마도사는 일찌감치 이런 쇼크에 대비하는 훈련을 받거든! 자연스럽게, 마력으로 몸을 채워 엘렉트론의 흐름을 막아 내지! 엘렉트론은 본질적으로 번개 같은 거라서, 닿을 때 재빨리 거스르지 않고 흘려 내거나 아예 튕겨 내는 상태를 유지하면 전혀 충격을 받지 않거든. 후후훗!”
―일단 뭔가 느껴 봤으니, 다음부터는 너 역시 저렇게 대비할 수 있을 거야. 오러를 이용하든, 마력을 이용하든 말이지. 후훗, 좋은 경험을 한 거다. 말로만 듣고는 알 수가 없는 경험이잖아?
‘너어―!’
투란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홀시딘을 흘겨봤고, 마음 깊은 곳을 향해서도 똑같은 기분을 거침없이 쏘아 보냈다. 어째서 안팎으로, 한쪽은 다른 한쪽이 있는 것조차 아예 모르는데 이렇게 척척 어울려서 자신을 골탕 먹이고 있단 말인가!
“일부러 번개에 처맞지 않으면 모르는 거란 소리잖아요? 아니,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냐고! 그럴 일 절대로 없을 텐데, 왜 그딴 훈련을 해요? 마법사들, 다 미친 거 아냐!”
울컥한 투란의 외침이 처절하게, 하지만 잔뜩 낮춘 소리로 홀시딘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물론 홀시딘은 이에 대해 바로 고개를 젓고, 손가락까지 저으면서 실 가닥은 다시 두루마리 안으로 던져 넣는 동작을 하며 대답한다.
“그건 아니지, 투란. 아까 말했잖아. 뱀장어 중에도 이런 능력이 있는 놈이 있다고, 마수도 아닌 짐승 중에서도 말이야. 그게 마수 정도가 되면 번개에 직격당한 거랑 별 차이가 없다고. 그리고 전격(電擊)이니, 뇌격(雷擊)이니 하는…… 통칭해서 뇌전충격(雷電衝激)이라고 하는 강력한 공격 능력을 지닌 몬스터는 꽤 많아. 겉으로는 그런 능력이 있는지 전혀 티도 내지 않고 벼락이나 번개처럼 눈에 띄지 않는 뇌전의 격랑(激浪)을 흘려 내는 경우라서, 뭐에 당한지도 모르고 죽어 나갈 수도 있다고. 무쇠뿔 오우거처럼 특별한 몸을 내세우지 않았다면, 여전히 잿빛바위 그랑츄로 맞서려 했다면 너도 오늘 꽤 위험한 꼴을 겪었을 거야. 그래서 알려 주는 거라고. 절대 거미를 얕보면 안 된다, 투란.”
―잘 들어, 투란. 이건 꼭 기억해 둘 일이니까.
“……크흐, 으헝!”
안팎으로 덮쳐 오는 잔소리에 투란은 옆으로 넙죽 엎어지면서 억울한 심정을 몸짓으로 표현해야 했다. 대체 어째서 상아탑의 마도사랑, 드라고니아가 이리도 안팎으로 딱딱 박자를 맞추면서 잔소리를 합창으로 지르는 꼴을 당해야 하는지…… 역시 어떻게 생각해도 억울하다!
그러나 투란이 이런 몸짓을 해도 홀시딘은 이미 눈길 돌린 채로 채집해 온 두루마리를 벽 한 곳에 걸어 넣고 있었다. 그 옆으로, 이미 다른 두루마리가 펼쳐진 채로 잔뜩 걸려 있는 벽에 새로 하나가 추가되는 광경이었다. 그 꼴을 보다가 문득 투란은 처음 홀시딘이 저 두루마리를 내밀면서 한 말을 떠올렸다.
“몬스터 로드라야 가능한 채집물이 있지. 그때 일을 맡기기 위해서 만들어 낸 특제 두루마리야. 몬스터 로드의 힘에 부서지지 않도록 처리된, 만들기 진짜 까다로운 채집용 마법 두루마리지만…… 잃어버리거나 작정하고 때려 부수려면 안 부서지는 것도 아니니까, 조심해서 소중하게 다루라고.”
그 말대로, 저 두루마리는 팔뚝에 두르면 마치 없는 것처럼 감쪽같이 살갗의 빛깔에 맞춰지면서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에 망가지지 않는 마도구였다. 드라고니아는 그걸 보고 바로 ‘몬스터 로드에게 ‘허락’을 받아야 가능한 거야. 오래된 마법의 기술이다만…….’이라고 쓴웃음 짓는 듯한 소리를 했다. 어쨌든 투란은 나중에 언제라도 그 ‘허락’을 돌이킬 수 있다는 소리까지 몰래 듣고서야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거미와 맞닥뜨릴 때마다 그 실뭉치, 거미줄 조각을 담아서 가져왔다. 때려잡은 거미를 엮고 묶어서 끌고 온 것은 오히려 덤이었던 시작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놈의 거미 새끼들! 오늘도 거미줄 성질이 전혀 다른 걸 들이대고 나온 거잖아?’
새삼스럽게 투란은 알아차렸다.
21일째, 오늘까지 21일 동안 투란이 본 거미는 기본적으로 그 품종에 일관성이 없었다. 오늘은 같은 품종이 함께 몰려온 듯했지만, 이 산림에 들어선 첫날부터 투란은 온갖 괴상한 몰골과 색채를 지닌 거미가 와글거리고 바글거리는 광경을 봤다.
단지 생김새만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는 짓도 완전히 달랐다.
나무 사이로 거미줄을 엮어 그물질하는, 투란이 아는 거미다운 짓을 하는 놈이 오히려 드물다고 할 지경이었다.
어떤 놈은 땅속에 함정 같은 구멍을 파 놓고, 자기가 그 안에 들어간 채로 사냥을 한다! 구멍에 감쪽같은 뚜껑까지 달아 놓은 채로, 주변 땅에 그물을 뿌려 놓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물에 뭔가 걸리면 뚜껑 열고 튀어나와 곧바로 휘휘 말아서 구멍 안으로 끌어당기고 독이빨을 꽂아 끝장을 내는 놈이었다. 그랑츄의 큰 몸집도 잡아당겨 일단 구멍 안에 빠뜨릴 정도로 힘이 좋았다. 그 독이빨이 잿빛바위 그랑츄의 살갗을 뚫지는 못했지만…….
전혀 다른 경우로는 아예 멀리서 침이라도 뱉는 것처럼 실 가닥을 뭉쳐 쏘아 내는 거미도 있었다. 높은 나무에 실을 걸고 매달려서 바람결을 따라 오락가락하며 흔들리는 채로, 마치 쇠뇌를 들고 저격하는 사냥꾼이라도 된 것처럼 뭉쳐진 실 가닥을 쏘아 맞히는 것이다. 그렇게 쏘아 낸 뭉친 실덩이는 진짜 쇠뇌살처럼 얌전히 박히는 것이 아니라, 찰싹 들러붙으면서 살을 녹이고 뼈까지 파고드는 괴상한 용해(溶解) 현상을 일으키는 독성을 지니기도 했다. 바위가 아닌 나무에 꽂히면, 나무가 그냥 구멍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밑동이 녹아 뭉개지면서 부러져 버리는 꼴이 되는…….
아예 노골적으로 파닥거리면서 뛰어와 냅다 다리로 후려갈기는 경우는 그나마 좀 알기 쉽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거미 떼가 품종별로, 때로는 같은 품종인데도 아예 차이가 나는 아주 독특한 성질의 거미줄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