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5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53)
‘대체 지금까지 몇 가지였지?’
멍하니 앉아서, 돌아보지 않는 홀시딘이 둥둥 떠다니는 꼴을 보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아 보려 했다. 그 순간, 드라고니아가 빠르고 냉정하게 소리 없이 말한다.
―만났던 거미 품종은 약 백오십 종, 완전히 파악 못 한 채로 놓친 놈들이 색깔만 다른 건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략 셀 수밖에 없다. 그 백오십 여종 중에서 한 가지 성질의 실을 지닌 경우가 대략 팔십여 종이었고…… 산림에 들어선 지 사흘 안에 몽땅 겪어 봤다. 그때 밤새고 나흘째부터 만난 거미 품종이 두어 가지 성질의 실을, 거미줄을 사용하기 시작했지. 거미 품종에 비하면 거미줄의 성질은 수가 적다. 다른 모양, 다른 습성이더라도 같은 성질의 거미줄을 사용하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역시 어림잡아 삼십 가지 정도는 된다.
‘……그렇게 많다고? 모아 둔 거미줄이 삼십 가지가 안 되잖아?’
―채집에 실패했으니까.
‘근데 넌 어떻게 알아?’
―프로브를 통해 관찰, 계측을 하고 있었으니까.
‘홀시딘보다 더 많이 알아냈던 거야?’
―투란, 너 대체 내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저 상아탑의 마도사처럼 여기 버티고서 널 기다리며 가져온 것만 쳐다보는 처지냐?
‘……쳇, 그래서 이제는 프로브를 막 뿌려 대도 되는 거야?’
투란은 소리 없이 툴툴거리면서 눈길을 한쪽으로 돌렸다.
벽 앞에 넓게, 두꺼운 깔개가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는 진흙으로 쌓아 올리고 다듬은 듯한 산림의 모형이 튀어나온 그림처럼 자리 잡은 채였다. 작은 깃발이 모형 곳곳에 꽂혀 있는데, 깃발 위에는 동그라미와 점이 찍힌…… 홀시딘이 ‘이게 너다, 투란!’이라면서 투란이 돌아다닌 곳에 꽂아 표시하고 있었다.
―마법사의 트릭을 파악했으니까. 프로브는 현장 적응력이 뛰어난 마법이고, 상황에 맞춰 은닉 형태와 방식을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다! 조금 더 파고들면 상아탑의 어떤 마도사도 파악할 수 없는 프로브를 구성해 낼 수 있어.
‘얀마! 대체 뭔 짓을…….’
뭔가 끓어오르는 듯한 분위기로 자랑하며 과시하고 싶어 하는 듯한 묘한 말투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어처구니없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 머리를 긁적이고 볼을 쓰다듬으며 산림 모형을 향해 꼼지락거리며 앉은 채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는 시늉도 했고!
“아, 비컨은 설치했지?”
뒤통수를 향해 갑자기 울려 온 홀시딘의 말에 투란은 고개만 돌린 채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그야, 가자마자 던져 놨죠.”
“그래, 그렇다면…… 음, 저기로군.”
홀시딘이 둥실 떠와서 산림 모형에 새로운 깃발을 꽂았다.
홀시딘의 마력에 투란은 잠깐 움찔했다.
마치 산림을 한꺼번에 더듬어 가듯이 외부로 방출되는, 옅고 넓게 퍼지는 마력이었다. 곧이어 새 깃발에 이미 꽂혀 있던 깃발이 반응하며 동그라미와 점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빛은 모형 위로 그림을 그렸고―
“어?”
―투란은 보다 선명해진, 자신이 나돌아다녔던 산림 지형이 공중에 그려지는 광경을 보며 살짝 놀란 소리를 냈다. 깔개 위에 놓여 있던 모형도 들썩거리면서 좀 더 솟구치며 모양을 잡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투란이 돌아다닌 산림 지역이 아주 작은 티끌 정도의 크기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듯도 보였다.
털썩, 홀시딘이 방석과 함께 바닥에 떨어지면서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건 좀 힘들구먼.”
“아니, 이게 뭔…….”
투란은 홀시딘을 보고, 깔개 위의 세밀한 모형과 빛의 무늬로 솟구쳐 올라온 입체적인 지도에 대해 의아한 낌새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 얼굴에 홀시딘이 이마에서 살짝 샐 듯 말 듯 한 땀을 손등으로 쓸어 올리면서 대답한다.
“똑같은 마법 지도를 둘 만든 게 아니냐고? 아니야. 아래는 전체를 보여 주는 거고, 위는…… 이렇게!”
순간, 둥실거리던 빛의 무늬 한 곳이 확대되면서 주변의 무늬를 밀어내는 듯이 보였다. 작은 점이었던 풍경이 순식간에 크게 펼쳐지면서 더 잘 보이게 된 상황이었고, 투란은 알아차렸다.
“……지금 저곳을 바로 그려서 보는 거예요?”
“그럼! 지금 당장 전체 상황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 지난 이십 일 동안 네가 고생한 거야. 거미의 은신처를 마법으로 직접 탐지해 낼 수 없다면, 전부 한꺼번에 보면서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가 알아내야잖아.”
“아, 예…… 근데 괜찮은 거예요? 꽤 부담 가는 마법 아니에요?”
“응? 아니, 내가 환영(幻影) 다루는 쪽으로 좀 약해서…….”
―서툴구먼.
‘어? 서툰 거였냐! 약한 거라고? 이게?’
마력을 방출한 다음의 후유증처럼 땀방울이 굵어지는 홀시딘의 모습에 한마디 던졌다가 나온 대답과 드라고니아가 짚는 소리에 투란은 뭔가 당황스러웠다. 얼핏 봐도 아주 대단한, 발로 뛰어서 이십 일이 걸린 지형을 단숨에 그려 내는 굉장한 마법이었다. 그런데 약하다느니, 서툴다느니…….
“원래 별 관심이 없는 쪽이라, 케이라 가르치느라고 조금 배워 둔 정도였어. 최근에 와서 연습을 좀 하기는 했는데, 역시 잘하지 않던 짓이라 힘들구먼. 아직 좀 선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더라도 적당히 보라고.”
“홀시딘, 저 뿌연 거는 홀시딘이 서툰 탓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한 가지 색의 빛이 선명하게 윤곽을 그려 내는 와중에 뒤엉긴 것처럼 안개 모양으로 흐트러진 부분을 가리키면서 투란이 말했다. 홀시딘도 그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몇 번 손을 움직이다가 말한다.
“거긴…… 마력 차단?”
“맞아요. 거미가 쳐 놓은 그물이 너덜거리고 있던 곳이에요, 저기가. 채집하면서 남은 그물 조각이 아직 거기 있나 봐요. 저 조각, 마력을 차단해서 마법을 막는다고 했던 그 실뭉치였을 거예요.”
“과연…… 거미의 은신 그물이었지?”
“예. 저 실그물 주변은 뭔가 막힌 느낌이라서 직접 휘저어 봐야 제대로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꽤 넓게 퍼져 있군요?”
투란은 뭉클거리는 깔개 위의 모형을 보면서, 위로 확대된 빛의 무늬에서 뿌연 부분처럼 제대로 모양을 잡지 못하는 작은 산림의 흔적을 주욱 이어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에 홀시딘이 흐흣 하며 새는 웃음부터 흘렸고, 끝장났다는 듯이 힘줘서 말한다.
“길이다, 투란. 이놈들 역시 떼로 한곳에 모여 있어! 거기서 나와서 이 쟈카라 산림 전체를 주기적으로 순찰하는 거야.”
“……한곳은 아닌 것 같은데요?”
투란이 눈매를 좁히면서 대꾸했다.
홀시딘은 투란의 말에 ‘뭐?’라는 소리부터 내놓기는 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한곳에서 갈라져 나온게 아니라 갈라져 있던 것이 한곳으로 모인 꼴인가.”
“음, 어쩌면…… 저 끝은 숲이라기보다 바위 벽이었고, 그 옆에 동굴이 있었어요. 땅속으로 내려가는 걸로 보였는데…… 이 녀석들 땅속에도 길을 파 놓을 수 있나요?”
“……할 수 있어. 예전에 왕국을 침범했던 놈들이 땅을 파서 사람을 잡아다 창고처럼 보관했다고 하더군. 지금도 거미의 던전이라는 흔적이 남아 있지.”
“지금 우리가 얘들 잡아다 쌓아 두는 것처럼요?”
“아니, 우린 죽여서 잡아 오고 녀석들은 산 채로 잡아 보관했지.”
“산 채로? 이 거미, 딱히 거미줄에 매달아 놓고 쪽쪽 빨아 먹는 거미다운 짓은 안 하던 것 같던데요?”
투란은 쟈카라 산림에 와서, 거미처럼 생긴 녀석이 으적으적 짐승을 깨물어 뜯어 먹는 꼴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면서 물었다. 그 입은 완전히 그냥 짐승처럼 이빨이 가지런히 돋은 꼴이었고, 몸뚱어리 모양만 거미라고 생각하기 딱 좋았다. 실도 뿜어내고 다리도 여덟 개이고 하는 꼴을 더 보면서 거미 주제에 깨물 줄도 아는 경우라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기는 했지만.
홀시딘이 머리를 긁적이며 투란의 의아함에 답한다.
“보관당해서 끌려간 사람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나는 몰라. 중간에 따라잡고 구해 낸 경우로 보면, 가사(假死)에 가까운 수면(睡眠) 상태인 채로 끌려간다는 것만 알아냈지. 수백 년…… 거의 삼사백 년 동안 이 산림의 거미 군단에 대해 알아낸 정보라는 게, 지난 며칠 동안 네가 알아낸 거랑 비슷해. 그나마 헌터 수색단이 끈질기게 정보를 모아서 알아낸 내용은 이놈들의 정점에 몬스터가 있다는 거고 말이야. 아직 투란 네가 만나지 못한 몬스터, 그게 거미 두목이야.”
“흐흠…….”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살살 간지러운 입을 꽉 다물었다.
홀시딘에게는 아직 미지(未知)의 몬스터인 듯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이 거미 떼의 정점에 선 몬스터 거미가 두 가지 품종 중 하나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아라크녹스 혹은 아라크노스라고.
다른 품종이고, 아주 다른 특징을 지녔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이 바로 마수인 거미를 낳아서 무리짓게 하고 그 무리를 통해 한 지역을 장악한다는 것. 둘 중 어느 쪽인가는 직접 끌어내서 봐야 알 수 있다는 것.
어느 쪽이든 간에 그 은밀한 둥지, 보금자리를 찾아내기 전에는 낯짝 보기 힘들다는 것! 하지만 이는 거미 형태의 몬스터라면 대부분 띠는 습성이라 딱히 두 품종만의 특징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이 쟈카라 산맥의 거미 몬스터가 마수로 낳은 거미 무리가 마력 차폐의 실그물을 자아내는 것은 꽤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마수든 몬스터든, 거미랑 싸울 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거미그물의 함정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탐지를 철저히 하는 것인데, 이 거미 무리는 마법을 쓰는 자들에게 그 점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한 상태는 보기 힘들다고.
게다가 다양한 성질의 거미줄, 그 실그물 중에서는 오감(五感)에 혼란을 일으키는 특성을 지닌 것들도 있었다.
“……아무튼 모이든 흩어지든 일단 저길 두들겨 보기는 해야겠지요?”
“그렇겠지.”
“일단 가 보고 생각을…….”
“일단 쉬고 나서 생각을 해라!”
투란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모습에 홀시딘이 버럭 소리치면서 한쪽 귀퉁이를 가리켰다. 벽이 만나는 모서리,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이었다. 위에서 내려올 때는 방 한복판에서 꼬여 내려온 나선계단이었지만, 더 아래층으로 가는 계단은 귀퉁이에서 벽에 붙은 채였다. 뭔가 위에서 습격해 온다 해도, 이 방 한복판이니 여러 가지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맨 아래층까지 단숨에 뚫고 내려갈 수 없도록 갖춰진 구조였다. 그 맨 아래층은 침실이었고, 홀시딘이 분류를 마친 채집물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다.
투란은 침실의 풍경을 떠올리면서 슬쩍 말해 본다.
“오면서 별일 없어서 꽤 쉬었…….”
“그 체력 소모도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홀시딘은 다시 손짓하며 완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잘 덮어 놨잖아. 도로 살아나 움직인다고 해 봐야, 전부 네가 잡아서 잘 다져 놓고 토막 내놓은 건데 왜?
드라고니아는 대놓고 놀리는 말투로 떠들어 줬다.
‘그게 아니잖아! 그 잡동사니 꼴은 보기만 해도 어이없다고!’
투란이 한숨을 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엉금엉금 기고 구르는 꼴로 움직이면서, 드라고니아에게는 소리 없이 대꾸하고 홀시딘에게는 소리 내서 말한다.
“정리, 해 놓은 거죠?”
“어? 어…….”
“마스터 홀시딘?”
“음, 덮어 놨어.”
투란의 물음에 살짝 소매 안으로 손을 감추면서 홀시딘이 대꾸했다.
그 모습에 투란은 으르렁대는 표정을 잠깐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굴러서 아래를 향한 계단에 발을 걸쳤고, 그사이에 홀시딘은 재빨리 소매 안에서 손짓으로 마력을 휘둘러 아래쪽 방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아, 새 옷도 한 벌 지어 놨으니까 몸에 맞는가 한번 입어 봐.”
“……에, 예.”
재빠르게 화제를 바꾸기 위해 던진 소리인 줄 알면서도 투란은 착실하게 대꾸해야 했다. 새 옷이란, 홀시딘이 그저 자기 호기심만을 채우는 중이 아니라는 증거 같은 것이니까.
그래서―.
거울 앞에 얌전히 놓인 한 벌의 차림새를 보고 투란은 맹한 표정부터 지어야 했다.
“한 벌이라더니…… 또…….”
투란에게 한 벌의 옷은 웃옷 하나랑 바지, 그렇게 두 조각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홀시딘에게는 아무래도 위에 입은 옷과 아래 입은 옷, 속옷과 신발까지 모조리 아우르는, 그야말로 풀 세트가 한 벌이었다. 덕분에 잠들기 전에 잠깐 입어 보는 것이 일거리가 될 지경이다!
벅벅, 뻐근해 오는 뒷목을 잡듯이 긁적이며 투란은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봤다. 곧바로 투란의 입가에서 ‘아―!’ 하는 소리부터 나온다. 이전과는 다른 모양을 한, 가슴과 어깨를 잇는 검은 문신(文身)이 살짝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이므로.
―헌터스 배너는 이미 적당히 확인했잖아?
‘그래도 볼 때마다 신기하다고…… 알드바인의 특제(特製) 오러 마크라니…….’
―뭐, 잔머리 굴리는 상급 마도사를 생각하면 다시 봐도 어이없기는 하다만.
‘……야, 이거 금전 두 닢이라고, 금전 두 닢!’
―헐?
‘홀시딘이야 그냥 모양만 잡아 준 거겠지만, 실제로 작동하게 했잖아. 내가 아니고 바로 네가 말이야! 자랑스러워하라고!’
―그런 짜깁기가 대체 어디가 자랑스럽단 거냐!
‘흐응?’
투란은 문득 쟈카라 산림의 첫째 날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