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55)
‘여러 가지 재주를 익혀서, 여러 사람처럼 꾸밀 거니까! 키린도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이것저것 배우고 익혀서 단련하라고 했다고.’
―마법사가 가르쳐 준 오러 마크를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면서 돈 벌라고 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언젠가 그런 게 필요한 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거지! 음흣! 네 도움이 컸어! 고맙다고!’
―나중에 오러 마크 새길 때를 대비한 아부냐?
‘아니, 내 천칭에 오러 마크를 두를 수 있도록 도운 것에 대한 순수한 감사야! 정말 순수하게 고맙다니까.’
―대꾸가 늦었어! 그사이에 잔머리 굴려서 생각하는 거, 다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디 있는가 잊었나? 나, 네 천칭 속의 몬스터야!
‘쳇, 드라코눔의 아칸이 째째하긴! 금전 두 닢씩 벌어 봐야 이만 닢 채우려면 까마득하다고!’
소리 없이 투덜대면서 투란은 거울 앞에 놓인 옷에 눈길을 줬다.
다시 봐도 거미의 실과 가죽으로 지어 놓은 한 벌…… 장갑까지 끼어 있는 풀 세트의 한 벌이었다. 입어 보고 몸에 맞는가, 몸에 어떤 느낌인가를 확인하고 입은 채로 자고 일어나서 다시 몸 상태를 확인해 보라는 게 홀시딘의 말이었다.
매번 다른 가죽과 성질의 실을 이용해서 옷을 지었고, 투란의 감상에 따라 조금씩 계속 새로 고치고 있었다. 뭐 하러 그러는 건지 투란에게는 꽤 애매했지만 덕분에 투란도 새삼 느낄 수 있는 바가 있었으니…….
“음, 이번에도 이상하려나.”
옷을 입을 때마다 뭔가 낯설었다.
새옷을 입어서가 아니라 옷이 아예 낯선 느낌이었다.
특히나 마수인 거미의 가죽으로 된 장화를 신고서는 걸음걸이가 아예 뒤뚱거릴 정도로 괴상해지기도 했다. 마치 살갗 위에 두꺼운 뭔가를 바른 느낌…… 황금매의 무장 생성 마법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 투란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처음 홀시딘의 옷을 입고 그 감각에 어리둥절했을 때, 가차 없이 놀렸다.
그동안 홀랑 벗고 다니던 탓이 아니냐고.
어이없어 투덜대면서 투란이 겨우 어찌 된 일인가 확인하니, 금방 알 수 있는 일이기는 했다.
마법의 무장은 자신의 마력을 통해 생성된 탓에 마력을 통한 감각 확장을 덤으로 받는 부분이 있었고, 굳이 몸에 맞는가 아닌가를 따질 필요가 없이 딱 맞게 형성되기 마련이었다.
그와는 다르게 가죽과 실로 지어진 옷이 주는 감각…….
결국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투란이 꽤 오래 벗고 다닌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익숙해져서 진짜 옷이 낯설어진 셈이었다.
“거참 거미 덕분에 별일을 다 겪는군.”
홀시딘이 거미의 실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그 가죽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 보다가 불쑥 새옷을 지어 볼 테니 입어 보란 소리를 했다. 어딘가에 쓸모가 있는 듯한데, 일단 가장 어울리는 것은 몸에 걸쳐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괜히 마법사의 호기심에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마수라서 삼키지도 못하는 거미의 실과 가죽으로 지은 옷이 어떠한가에 대한 관심은 투란에게도 있었다.
게다가 마법사가 짓는 옷이잖은가!
상급 마도사가 지어 주는 옷이 과연 어떤 것인가, 말로만 듣던 재단사만 못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투란도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기는 했다. 덕분에 새 옷을 입는 낯선 경험도 해 봤고!
“흠, 이번에는 꽤 가볍네?”
속옷 바지를 집어 올려 일단 다리부터 꿰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부드러운 실그물은 원래 거미에게서 생성될 무렵 같은 끈적임이 없었다. 그저 가볍고 부드럽게 살을 스치면서 기분 좋은 느낌만을 남길 뿐이었다. 속옷 위아래가 모두 묘할 정도로 하얗다는 부분이 살짝 신경 쓰였지만, 애초에 두르고 있던 그림모쓰와 뱀의 가죽 위로 덮인 탓인가 속옷 바지의 빛깔은 하얀 바탕 아래로 그림자가 무늬처럼 숨은 듯한 묘한 상태였다.
―그 바지는 그렇게 덧씌워 끼워 입으란 것은 아닌 것 같다만?
‘내 맘이지, 뭐! 이러는 게 편안하단 말이야!’
툴툴대면서 투란은 웃옷을 들어 팔로 꿰어 넣듯이 입기 시작했다.
알몸인 위쪽 속옷은 어깨와 팔꿈치까지 이어진 소매를 갖춘 채로 살갗에 찰싹 달라붙으면서 근육까지 세공한 무늬처럼 보이겠다는 듯했는데, 그 하얀 색이 꽤 짙은 탓에 살갗의 색채는 물론 가슴의 오러 마크가 지닌 검은 빛깔까지 모두 가리고 있었다.
―이건 오러를 은닉할 경우에는 아예 오러 마크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고려한 모양인데? 목 아래 부분까지 꼼꼼하게 덮는 속옷이니, 어지간해서는 이걸 입은 채로 활동할 경우에는 오러 마크까지 감출 수도 있겠어.
‘헤? 아, 그렇네. 이전에는 가슴이랑 목덜미가 좀 낮아서 살짝 보였지?’
―그래, 그걸 네가 지적하면서 감출 거면 다 감추는 게 어떠냐고 생각 없이 나불거렸지. 홀시딘은 그걸 꼼꼼하게 기억하고 받아들인 모양이다.
‘어? 으윽, 마법사 앞에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더니…… 이번에는 좋게 넘어가 준 모양이지만 다음부터 좀 더 조심해야겠다!’
―이미 잔뜩 나불거려 놓고 꽤 빨리도 반성하는구먼!
‘쳇! 딴 말에 대해서는 딱히 뭘 어떻게 하지 않았잖아!’
―꼭꼭 쌓아 두고 나중에 한꺼번에 한마디씩 따져서 뭘 할지도 모르지!
‘야, 왜 괜히 사람 겁을 주려고 해!’
투덜거리는 와중에 투란은 위아래로 한 겹의 옷을 더 입었다.
가죽 바지는 광택을 뿌리는 검은색이었고, 회색의 셔츠는 속옷의 하얀빛을 한 번 더 덮어 가렸다. 바지는 발목을 조이듯이 좁아졌고, 셔츠의 소매는 손목뼈에 닿을 길이였다.
‘이거, 그 망할 놈의 먼지 더미 실을 굵게 꼬았나?’
투란은 셔츠를 이룬 실이 원래 거미가 뿜어낼 때 아주 가늘던 것을 기억해 내면서 어리둥절했다. 거의 눈썹 굵기의 백분의 일 정도 되는 가는 실이 엄청난 뭉치로 아주 질기게 엉겨 와서 그랑츄의 힘은 물론 오우거의 힘으로도 끊기 어려웠다. 샤벨투쓰의 이빨로 열심히 베어 냈지만, 그 가는 실뭉치는 하늘하늘하면서 먼지구름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엮이며 그물질을 했다. 결국 실 끝자락에서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던 거미 몇 마리를 패 죽이고 나서야 벗어났다. 그러고 나서 보니, 그 거미 몇 마리가 그물질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품종의 거미가 전혀 다가오지 않는 꼴에 살짝 질리기도 했다.
―꽤 정교하게 꼬아서 엮었으니, 질식할 염려는 없어.
드라고니아는 징그럽던 그 가는 먼지 더미 같던 실그물이 지녔던 가장 독한 공격, 숨결 사이로 스며 와서 체내에서 질식사를 유도하던 것을 지적하며 말하고 있었다. 너무 가는 그 실그물 뭉치는 숨을 들이쉴 때 허파로 스며들 수 있었으니까! 물론…….
‘내가 숨 막혀 애먹지는 않았잖아.’
―그래, 그래서 홀시딘이 잠깐 고생했지!
‘음…… 경고는 했다고!’
―바로 앞에다가 털어 대면서 말이지.
‘에, 혹시 이거 털면……?’
투란은 소매를 툭툭 손끝으로 치고 손가락으로 세게 튕겨 봤다.
꽉 꼬인 밧줄처럼 소매가 탄력 있게 튕겨 낼 뿐, 원래 성질대로 먼지처럼 흩어질 듯한 낌새는 없었다.
―관대한 마법사로군, 홀시딘은…….
‘그런 소리 하는 네가 이상한 거야! 게다가, 홀시딘은 그 자리에서 불을 뿜었잖아! 뭘 나중에 또 앙갚음할 거리가 있냐고!’
―흐흥, 앙갚음할까 걱정돼서 바로 소매 한번 두드려 본 녀석이 누구지?
‘시끄러워!’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홀시딘이 먼지 더미 한 조각을 삼키자마자 웨엑 하면서 입으로 불을 토하던 광경을 떠올렸다.
그때…… 숨구멍 속으로 이물질이 들어가는 순간, 홀시딘은 마치 배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불길로 붙잡아 밀어내듯이 불을 뿜어냈다.
투란의 얼굴을 향해 거침없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탓에 투란은 새까맣게 물든 채로 그 불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그 불을 뒤집어쓴 채로, 홀시딘이 왜 파나틱 플레임이라 불리는가에 대해서 투란은 조금 깊게 생각도 해 봤다!
보통 불의 마법을 잘 다루는 마법사라고 해도, 입으로 불을 뿜는 짓은 하지 않는다 했는데…… 무슨 길가의 재주꾼처럼 홀시딘은 입으로 불을 뿜었다! 그래서 미친 불꽃, 불에 미쳤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때 드라고니아는 그렇게 입에서 토해져 나오는 불길보다는 그 불길을 뿜어내는 홀시딘이 내화(耐火) 능력을 지닌 것인지 피화(避火) 능력을 지닌 것인지 궁금하다고 떠들고 있었다.
그게 뭔 소리인가 투란은 묻지 않았다. 지금 그 애매한 소리가 기억났지만, 역시 묻고 싶지 않았는데…….
―응? 그게 궁금했어?
너무 선명하게 떠오른 기억을 알아챈 드라고니아가 먼저 떠들잖나!
―내화 능력은 불을 견뎌 내는 거고, 피화 능력은 불의 영향력에서 아예 차단된 상태를 유지하는 거야. 뭔 차이냐 하면, 피화 능력은 얼지도 않는다고 하면 알기 쉽겠지?
‘얼지 않는다니? 얼음이랑 뭔 상관이……?’
―불의 영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온도의 변화에서 격리된다는 뜻이다. 온도의 변화에는 뜨거워지는 것처럼 차가워지는 것도 포함되고 말이야. 그래서 피화 능력은 피한(避寒)능력이라고도 하지. 하지만 내화 능력의 경우에는 아주 쉽게 얼어 버리는 경우도 있어. 온도의 상승에 견고하게 버텨 내는 구조가 온도의 하강에는 아주 취약할 수도 있거든.
‘헐?’
관심 없어하던 투란은 이제 조금 어이없어하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맨발을 잠깐 보다가 투란은 놓인 가죽 장화를 봤고, 그 속에 얌전히 뭉쳐진 끈 조각을 확인했다. 한숨과 함께 투란의 손이 끈 조각을 집어 발가락 사이로 가져가니…….
―멀쩡한 버선 놔두고 왜 계속 그 발싸개 끈부터 쓰는 거냐?
드라고니아도 더 장황하게 지식을 늘어놓기보다는 투란의 행동으로 관심을 옮긴 척하고 있었다.
‘헌터의 버릇이라니까. 몇 번 말했잖아!’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런 버릇이냐고! 넌 몬스터 로드이고, 그런 발싸개 끈이든 이런 옷이든 몸이 변화하는 순간에 아무 의미가 없잖아!
‘앞으로는 의미가 있지! 발싸개 끈 하나 제대로 못 감는 녀석이 헌터라고 하고 다닐 수는 없다니까!’
―앞으로?
‘음? 앞으로란 말은 안 했나?’
―안 했다.
‘흐흠…….’
끈을 차분하게 발가락 사이에 감아 넣고, 발가락을 한번 둘러 감은 다음에 발바닥으로 발목으로 두껍게 펼쳐서 감아 건 다음 투란은 뭉친 버선을 꺼냈다. 넉넉한 여유가 있는 버선은 아니었고 셔츠처럼 발 가죽에 달라붙어 한 겹 더한 느낌이 강했다.
‘역시 기가둠이나 로그람 쪽 버선이랑은 다른 건가.’
―그쪽은 어떤데?
‘폭이 넓고 여유가 있어. 그다음에 바깥쪽을 끈으로 감으면서 단단히 조이는 거야. 하지만 브로큰 킹덤…… 이쪽 섀터드 세븐에서는 거의 가죽 장화처럼 꽉 달라붙는 버선이 보통인가 봐.’
투란은 폭 넓은 버선을 어떤 식으로 조이고, 테를 만들어 두는가에 대한 요령을 잔뜩 떠들며 보여 주던 샤오콴 마을의 어른들을 생각하면서 갸웃했다. 시알라 남매 넷도 버선이 발에 찰싹 달라붙는 모양으로 생성하고는 했지만, 그냥 발싸개 끈을 따로 걸지 않으려 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홀시딘이 계속 이런 타입의 버선을 내미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이쪽 버선은 아예 이런 모양인 듯했다.
―발싸개 끈을 아예 쓰지 않는 거 아니냐? 그렇게 달라붙는 버선이라면 굳이 발싸개 끈을 안 써도 되잖아?
‘응? 에이, 설마…….’
대꾸하면서 투란은 뒤로 몸을 젖혀 던지듯 침대 한복판으로 벌러덩 누웠다.
발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버선에 조여든 두 발의 감각이 여전히 살짝 낯선 것을 느끼면서 투란의 눈이 감겼다.
―아직 외투 쪽은 건드리지도 않았다만?
‘……외투까지 다 챙겨 입고 침대에서 자고 싶지 않아! 자고 나서 입을 거야.’
투란은 눈을 꼭 감고, 아직 거울 앞에 남겨진 외투를 아예 보지도 않은 척하면서 셈을 시작했다.
‘첫째 날 거미 백 마리, 둘째 날 거미 이백 마리, 셋째 날 거미 삼백 마리, 넷째 날 거미 사백…….’
―사백은 무슨! 넷째 날에는 오십 마리 좀 넘었을 뿐이잖아!
‘……정확하게 거미 잡은 수를 세는 게 아니라고!’
―아니긴! 그렇게 대강 할 거면 그냥 나무 타는 잔나비를 한 마리 두 마리 세라고! 터무니없이 잡은 거미 수를 과장하지 말고! 듣는 내가 짜증 난다!
‘그럼 대신 세주든가!’
―수면 주문이라고 있는데 말이지…….
‘닥쳐!’
투란은 한숨을 깊이 들이쉬고, 아예 마음을 문장 속의 보이드에 집중한 채로 비워 버렸다. 쟈카라 산림에서 거미 사냥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넷째 날, 다수로 밀어붙이던 녀석들을 대신해서 강력한 새로운 품종의 거미가 등장하며 수가 대폭 줄어들기 시작한 때부터의 일을 기억 저편에 묻어 버리려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수였던 거미 무리에 대한 불만을 모두 마음 깊이 밀어내면서 마음을 비운 투란을 향해 잠이 빠르게 찾아와 채워 줬다.
곧 꿈속에서 쟈카라 산림이 거대한 거미가 되어 불타는 광경을 보며 투란이 히죽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