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
Chapter 10. 평화롭게 시체 사이로
‘작은 늪’을 얻었다.
투란은 자신을 차분하게 지켜보다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
악마의 심장과 작은 돌은 투란의 몸을 영역으로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기준을 찾아냈다. 그 결과, 투란은 심장 속에 작은 돌을 중심으로 삼는 ‘작은 늪’을 얻게 되었다.
더 이상 피와 살을 누비고 나가는 물살은 없었고, 더 이상 살갗 위로 뿜어지는 검붉은 진액도 없었다. 적절하게 심장 속에서 작은 돌이 자신만의 영역을 선포하고 악마의 심장이 그 경계를 가늠하면서 생겨난 ‘작은 늪’이었다.
작은 돌은 이제 ‘작은 늪’을 온전한 형체로 갖춘 듯했고, 악마의 심장은 ‘작은 늪’을 이용해서 투란의 몸에 새로운 힘을 밀어 넣고 있었다. 이 힘은 작은 돌의 힘과 어우러지며 분명하게 ‘한 몸’이라는 선언이라도 하는 듯했고, ‘작은 늪’은 매우 순조롭게 투란에게 양분이 되어 주듯이 심장 속에 자리 잡았다.
이것이 겨우 투란이 이해한 바였다.
‘그럭저럭 살 만해졌나?’
이는 투란이 겨우 안심하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이제는 검붉은 진흙이 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듯한 꼴을 면할 수 있었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팔다리를 주무르고 문지르면서 투란은 감각을 조금 더 가다듬으며, 진흙투성이 꼴이 아닌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짓거리에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투란은 바닥을 긁어 아직 젖은 채인 흙을 팔다리에 끼얹으며 박박 처바르는 짓을 했다. 이를 조금 있다가 다시 툭툭 털어내며, 투란의 입에서는 한숨이 새 나왔다.
‘뭐 하는 거냐, 지금.’
이곳은 샤오콴 마을이 아니다.
투란도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샤오콴 마을의 소년이 아니었다.
이제는 분명한 몬스터 로드로서, 홀로 ‘혼돈의 늪’에 빠져들어 어딘지 모를 곳에 와 있다.
흙투성이가 되었다고 끼니를 굶는 벌을 받는 일도 없다.
먹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옷의 가죽 조각이든, 괴물의 남은 잔해든, 먹어 치울 뿐이다. 없어서 먹지 못할 뿐!
‘그리하나 저리하나 굶는 거는 똑같나?’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더 머무를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결심은 간단했다.
‘얼른 여기서 나가자.’
투란은 숨을 들이쉬고, 악마의 심장이 허파를 조이며 목구멍을 지키는 넝쿨의 실그물을 촘촘히 그려내며 ‘작은 늪’의 중심에 버틴 작은 돌이 은은하게 한 몸임을 확인하는 힘을 뻗어 내는 것을 느꼈다.
균형이 맞춰지고, 조화를 이룬 두 가지 몬스터.
뭔가 몬스터 로드로서 자신이 성장한 듯해서 투란은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 떠올리다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시커먼 허무가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기둥처럼 서 있는 쪽.
그보다 가까울 터인 서리 안개와 몇 개의 태양이 싸우는 곳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분명 이 절벽 너머에 거기서 흘러나온 불꽃 구름과 공중을 가로지르는 강줄기가 있을 법했다.
분명한 느낌은 그 짙고 깊은 시커먼 허무, 심연뿐이었다.
이는 곧 투란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는 느낌이었다.
저기서 멀어진다, 하는 마음은 금세 굳어졌다.
곧 투란은 움직였다.
휘이잉!
바람소리에 투란은 어리둥절해서 주변을 둘러봐야 했다.
어느새 정상인 듯, 더 오를 곳은 없었다.
그런데 대체 여기가 어딘가?
하늘은 희뿌연 색이었고, 투란이 둘러보는 저 아래의 풍경은 아주 낯설었다.
너무 낯설어 투란으로 하여금 잠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했다.
“뭐야, 이거…….”
숨소리도 주의하며 올라왔지만 결국 이 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는 듯, 투란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열심히 바위를 타고 올라온 풍경에는 기대했던 것이 전혀 없었다.
투란을 싣고 온 물줄기는 허공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잖냐는 것처럼, 흔적도 없었고 불꽃구름도 없었다. 그 방향으로 여겨지는 쪽에는 그저 검붉은 색채의 땅이 넓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저편에 아늑하게 산자락이 보일 때까지 펼쳐진 평원처럼.
‘음, 저거 설마?’
그 검붉은 색채가 꿈틀거리고 푹푹 치솟는 꼴이 분명히 불길인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눈매를 좁혔다. 물을 두를 수 있게는 되었지만 그렇다고 불구덩이로 뛰어들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저 검붉은 평원 쪽은 멀어져야 할 곳, 시커먼 허무가 버티는 쪽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쪽, 얼핏 봐도 짙은 녹색과 허연 구름 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모습이 숲과 늪이 얽힌 모양이었다. 당연히 투란이 향해야 하는 곳이다.
투란은 앉아 있는 정상의 풍경을 좀 더 둘러봤다.
삐죽하니 허공에 내밀고 있는 혀처럼 생긴 바위였다.
저쪽에도 비슷하게 내밀고 있는 바위가 있었고, 둘 사이에는 꽤 넓은 간격이 벌어진 채로 아래는 텅 비었다.
투란이 올라온 곳을 돌아보니, 열심히 절벽의 한쪽 면을 따라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려가야 할 반대편, 길은 없고 그냥 기울어진 절벽의 반대편일 뿐이었다.
‘불타는 곳은 아니잖아.’
대신 뭐가 나올지 모를 풍경이다.
투란은 ‘작은 늪’에 마음을 모으고, 그 중심에 자리 잡은 작은 돌의 힘을 느끼고 끌어내 몸에 좀 더 짙게 퍼뜨렸다. 그리고 두 손을 가만히 모아, 새롭게 손바닥 위로 도톰한 돌을 형성시켰다.
새로 형성된 돌에는 물살에 대한 투란의 염원이 고스란히 실렸고, 짙은 물빛이 투란의 주변을 휘감았다. 곧 투란은 물살 속에 머무는 꼴이 되어 상쾌함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명확하게 가늠하며 깨쳤다.
‘역시 몸속에서는 균형부터 잡다 보니, 밖에서 들여오는 쪽이 좀 더 시원하네.’
‘작은 늪’은 심장 속, 결국은 투란을 껍질 삼아 형성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거침없이 용량을 늘리고 질량을 키울 수 있는 형편이 아닌 탓에 몸 밖으로 형성시킨 돌처럼 시원하고 큰 물살은 일으키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는 듯, 이렇게 손바닥을 통해 새로 형성한 작은 돌이 새로 뿜어내는 힘은 곧장 ‘작은 늪’과 호응하며 투란의 몸에 바로 어우러졌다. 비록 나눠져 있지만 하나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흠, 이건 악마의 심장처럼 따로 나왔다고 일단 서로 딴 놈이라고는 안 하네.’
묘한 느낌이었다.
악마의 심장을 두 손에 따로 형성시키면, 이 녀석들은 일단 서로를 작아먹기 위해 서로를 재 보려 한다. 한데 작은 돌은 물살을 뿜고 ‘작은 늪’을 이루면서 나눠져 있더라도 서로 하나라는 듯이 어우러졌다. 심장 속의 돌을 꺼내든, 손의 돌을 심장에 꽂아 넣든, 바로 온전한 하나로 뭉칠 듯한 느낌조차 분명했다.
반드시 그리될 듯하다.
투란은 천천히 손바닥에 형성한 돌을 해체했다.
그래도 이전처럼 물살이 몸을 억누르지는 않았다.
여전히 ‘작은 늪’을 꾸리고 있는 돌의 힘에 반응하는 듯했다.
‘좋아.’
투란은 얌전하게 몸을 감은 물살을 실컷 들이켰다.
입으로, 덩굴줄기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투란은 내려갈 절벽의 아래에 희뿌연 안개, 녹색과 짙은 그림자가 엮인 묘한 풍경을 좀 더 눈에 담았다.
이제는 내려가 저 속에 어울릴 때였다.
‘젠장!’
투란은 엉덩이를 축축한 땅에 붙이면서 발바닥을 당겨 봐야 했다.
내려오는 길은, 그냥 절벽의 까칠한 돌에 손발을 문지르면서 확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며 조심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주의하고 조심한다고 돌 더미가 부드러워지는 일은 없었다.
결국 투란의 손발, 가끔 미끄러져 긁힌 뱃가죽과 등살, 어깨라든가 종아리 곳곳이 긁히고 벗겨진 꼴이 되어야 했다.
이는 투란에게 꽤나 의외였고, 황당한 상황이었다.
살갗 곳곳을 채우고 있는 실그물, 악마의 심장이 자아낸 넝쿨의 섬세한 보호가 전혀 먹히지 않는 꼴이니까.
‘물을 뿜는 것도 아니고 무슨 칼날도 아닌 것들이 왜 이리 까칠해!’
절벽의 돌은 몬스터도, 마법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단하고 까칠했다.
투란이 다 내려와서 겨우 몸을 추스르며 쉬게 할 정도였다.
중간에 덤벼드는 것도 없고, 무너지는 것도 없어서 꽤 평화로웠다.
한숨을 쉬며 투란은 이제 슬슬 살갗에 닿는 안개가 점점 축축해지는 쪽을 쳐다봤다. 일단 초록빛이 짙은 이파리, 이끼를 잔뜩 달고 있는 나무, 이름 모를 나무가 우거진 꼴이면서도 그 바닥에는 꾸물거리는 늪의 거품이 새 나오는 곳이었다.
‘정글 스웜이라던가.’
기억 너머에서, 늪과 밀림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과 상태를 일컫는다 했던 말이 스쳐 갔다. 결국은 밀림에 늪을 덧붙인 말에 불과한, 하지만 투란이 지금 보는 풍경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게 만드는 호칭이었다.
파사아아…… 푸욱!
투란이 발바닥을 문지르면서 멍하니 보는 사이에 갑자기 나뭇잎 하나가 부풀다가 터졌다. 진한 녹색의 액체가 주변에 번진다. 거기에 닿은 것들이 슬그머니 모락거리는 흰 김을 뿜기도 했다.
‘음, 이 동네 나뭇잎은…….’
역시 그의 상식이 통하는, 이른바 정상은 아닌 모양이었다.
“뭐, 상식? 이 춤추는 산맥에 그딴 게 있다고? 웃기고 있네!”
엄청나게 먼 곳에 왔다는 상인, 한 방에 크게 벌겠다고 샤오콴 마을까지 왔다는 장사치가 그렇게 울분을 토했다. 마을까지 오던 중에 뭘 잘못 먹었는지 토하고 설사를 하며 그렇게 울분을 토하다가, 한 이틀 만엔가 죽은 상인이었다.
오던 길에 독을 뿜은 몬스터라도 만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저 춤추는 산맥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한 몸에 무리가 가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에 적응 못 하면 나도 그리되려나?’
살짝 궁금해졌지만, 투란은 가슴속에서 차분하게 두근거리며 악마의 심장에 담긴 자신이 풋, 웃는 것부터 느꼈다. 이 심장이 뛰는 한, 숨을 못 쉴 곳은 없…….
“……지는 않구나. 불구덩이 속, 거기서는 꼼짝 못하잖아.”
중얼거리면서 투란은 발바닥을 두어 번 손으로 털고 일어섰다.
축축한 땅이 꽤나 촉촉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악마의 심장은 약간 기가 죽은 듯했다.
하지만 투란은 기분이 괜찮았다.
안개는 뭔가 얼리지 않았고, 나뭇잎은 터지기만 할 뿐이잖은가.
거기서 나온 녹색의 액체가 뭐든, 설마 악마의 심장 넝쿨의 껍질에 뭔 짓을 하겠는가?
‘시험해 봐야겠네.’
금세 자신감이 싸악 비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살살 나뭇잎이 터져 뿌려진 녹색 액체 쪽으로 다가가 손끝으로 찍어 봤다.
별일 없었다.
투란의 손가락은 흰 김을 뿜지 않았고, 딱히 손끝 살갗이 자극받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축축한 나뭇잎을 뭉갠 즙에 손가락을 대고 문지른 느낌뿐이었다.
‘음, 안전하네!’
안심하면서 투란은 천천히 보다 축축한 땅을 밟고, 살짝 늪에 발가락을 담갔다.
쿠륵, 꾸르륵.
땅이 울리고 늪이 세차게 거품방울을 피워 올렸다.
투란의 감각이 예리해졌고, 재빠른 판단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투란은 다시 절벽가의 단단한 돌바닥 위로 가서 몸을 낮추며 울리고 있는 늪을, 그 주변의 진한 초록빛 수목을 지켜봤다. 갑작스러운 땅과 늪의 울림에 자극받은 듯, 나뭇잎들이 계속 부풀고 터졌다.
주변이 온통 녹색 액체를 물감 삼아 완전히 채색되나 할 때, 늪이 소용돌이치면서 푹 꺼졌다. 그리고 그 중심이 확 부풀다가 터진 것은 거의 순식간이었다.
가라앉는 것인지, 부풀다 터져 나오는 것인지, 한 가지만 하라고 투란은 발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부푼 중심에서 튀어나온 것이 그의 투덜거림을 막았다.
그건 투란이 숨도 죽이게 할 정도로 크고 긴 놈이었다.
어른 두엇을 굵은 밧줄로 칭칭 감아 놓을 정도로 굵은 몸통을 지닌, 대체 얼마나 긴 놈인지 한순간에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뱀!
키이이이쉬이이잇!
거대한 뱀이 푹 꺼진 늪, 잔뜩 부푼 그 중심에서 튀어나와 허공에서 아주 잠깐 크고 긴 몸뚱이를 파닥대다가 괴성을 질렀다.
신경을 긁는 그 소리가 투란의 눈살을 저절로 구겨지게 했다.
‘비명?’
괴로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푸아핫!
뱀의 큰 입이 벌어지며 뭔가 토해졌다.
피와 섞인 살점 조각들이었다.
거대한 뱀의 몸이 초록빛 수목 사이에 떨궈지고, 구르면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어, 괴로워하는……. 야, 오지 마!’
소리도 못 내는 채로, 투란은 비명 지르고 싶어졌다.
발광하는 거대한 뱀, 잠깐 공중에서 꿈틀거리는 꼴로 겨우 대충이나마 가늠한 결과 한 2, 30미터는 될 놈이 꼬리와 몸통으로 사방을 긁어 대며 투란 쪽으로, 절벽 쪽으로 붙고 있었다.
놈의 몸통에 부딪친 나무들은 부러지거나 통으로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