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56)
Chapter 92. 세 번째 시련, 아라크레온
“좋아, 아주 잘 잤나 보네!”
느긋하게 떠오르는 햇살을 받으면서 홀시딘이 둥실둥실 뜬 채로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발가락을 움직이면서…… 입고 잠들었던 옷은 이미 홀랑 벗어 던져 놓고 다시 뱀의 비늘과 그림모쓰의 가죽이 엮인 반바지 차림으로 몸에 그려진 오러 마크, 헌터스 배너를 훤히 드러낸 채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몸풀기를 하는 중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산림을 휘두르듯이 흘러와 아래가 넓게 펼쳐진, 뭉툭하니 좁혀드는 원추형 돌기둥과 거기 달라붙은 네모난 돌상자 위에서 꼬물거리는 듯한 둘을 스쳐 지나갔다.
홀시딘은 투란을 흘깃하고는 바로 쟈카라 산림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이제 쟈카라 산림의 지형과 여기 서식하는 마수 거미에 대해 익숙해졌으니 본론으로 들어갈 때가 왔어. 즉, 이제부터 세 번째 시련이 시작된다고 보면 되는 거야. 하지만 이전 두 번과 다르게 이 세 번째 시련은 조금 애매할 수밖에 없어, 투란. 왜냐하면 아직도 이곳에서 거미의 군단을 낳고 기르며 세상으로 밀어내는 것이 뭔지 모르거든. 예전에도 그 원인이 아닐까 싶은 몬스터 거미를 몇 번 잡아 봤지만, 매번 다른 성질과 능력을 지닌 거미 괴물이 새로 자리 잡았구나 하는 정도를 알아낸 게 고작이지. 결국 대체 무엇이 계속해서 이곳에 거미 괴물을 풀어놓는가, 그걸 알아내서 처리하는 것! 달리 말하자면 또다시 거미군단이 쟈카라 산림에서 풀려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세 번째 시련이야. 알았어, 투란?”
“알았다고요. 그러니까 잘 모르겠으면 이 거미 떼가 뭉개고 있는 산림을 깡그리 불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도 된다는 거잖아요?”
“……아니, 잿더미까지 만들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필요는 없어도, 그렇게 해도 상관없잖아요? 그쵸?”
“……그래.”
쓰윽 고개를 돌리며 흘겨보는 투란의 물음에 홀시딘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쇠뿔 오우거가 날뛰던 그레이우드는 그렇게 잿더미로 만들기에는 너무 넓어져 있었고, 그렇게 재로 만들어 봐야 며칠 못 가서 다시 무럭무럭 싹이 돋고 몇 달 못 가서 다시 우거져 버리는 괴물 숲이었다. 그 때문에 잿더미로 만들어 봐야 답이 아니었지만, 이 쟈카라 산림은 꼭 그렇지도 않았다. 규모도 그레이우드보다 훨씬 작은 길이 수십 킬로미터였고, 갈기 산맥 전체를 놓고 보면 산불 나서 홀랑 다 탄다고 해도 아주 조그맣게 까만 얼룩이 한 곳 뚝 떨어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니 투란이 하는 말은 할 수 있다면 말릴 것까지는 없는 대책인 셈이었다.
그러나 홀시딘은 한 가지 분명히 경고할 수밖에 없었다.
“잿더미로 만들어서 해결되었다는 증명은 해야 해. 쟈카라의 거미 군단은 수십 년에 한 번, 대강 사십에서 오십 년 사이에 한 번 출몰하니까 대충 처리하고 사오십 년 뒤의 일은 알 게 뭐냐는 식으로 사기 친 녀석들은 예전에도 있었거든.”
“흐흠, 해결되었나 안 되었나 알아낼 방법은 있는가 보네요?”
투란이 혀를 날름하면서 물었다.
마치 ‘증명했다고 치면 어쩔 건데?’라고 짓궂게 묻는 듯한 태도에 홀시딘은 살짝 울컥한 표정을 드러내며 답한다.
“한 삼사 년, 빠르면 일이 년 이내에 알 수 있어. 여기 다시 거미 떼가 와글거리며 나타나서 이전과 같은 속도로 번식하고, 이전처럼 거미줄을 치고 다니면 전혀 해결되지 않은 거지!”
“아, 원인이 남아 있으니까 다시 똑같아진다는 거군요. 흐흠, 그러면 예전에 사기 친 녀석들은 겨우 오 년도 가기 전에 들통났던 건가요?”
아쉽다는 듯, 묘하게 혀를 차는 소리부터 내고 하는 투란의 말이었다.
홀시딘은 끙 하는 소리부터 내고 다시 침착하게 자신을 진정시키면서 대꾸한다.
“사기 쳤다기보다는, 정말로 해결한 걸로 착각을 했지. 가끔 있는 일이잖아. 그때는 정말로 해결되었나 해서, 제대로 검증을 하지 않기도 했고 해서…… 한 칠팔 년 정도 후에 알게 되었어.”
“알게 되었다라…… 거미 떼가 막 몰려나왔다는 말인가요?”
“음, 뭐…… 그렇게 된 셈이지. 몬스터 거미 몇 마리를 잡았고, 눈에 띄는 마수인 거미만 수천 마리를 잡아 죽인 대토벌이었는데…… 결과는 거미 군단이 더 빨리 나타나게 하는 참담한 결과가 되었지.”
“……대토벌?”
뜻밖의 한마디에 투란이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떠 보였다.
보통 헌터 파티가 몇십 동원되는 정도로는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홀시딘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쟈카라 산림과 맞닿은 국경을 가진 나라 둘이랑 두 나라가 버티다 놓치면 거미 군단의 습격을 받는 이웃 나라 셋, 모두 다섯 나라에서 힘을 모아 토벌 군단을 꾸며서 거미 군단의 뿌리를 뽑으려 했지.”
“……그거, 좀 심하잖아요? 여기 좀 넓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섯 나라에서 보낸 군단이 밀고 들어오기에는 좁지 않아요?”
투란이 조금 질렸다는 듯이 다시 묻고 있었다.
홀시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쟈카라 산림을 향해 다시 눈길을 돌리며 대답한다.
“그래, 그게 좀 심한 문제였지. 그래서 세 나라에서 거미 사냥에 특화된 군단을 꾸미고 두 나라에서는 운영 자금을 대주는 식으로 협력했어. 거의 일 년 이상 걸린 대토벌이었는데 말이야…….”
“……그랬는데 사기 친 걸로 끝났다고요?”
“뭐, 뒷이야기가 꽤 복잡하니까 나중에 한가할 때 해 줄게. 지금은 그런 대토벌을 하는 게 아니고, 투란 너의 시련이잖아?”
홀시딘이 살짝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하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라 자기 입으로 하기 싫다는 듯한 태도였다. 시련이 끝나면 나중에 몰라라 하고 딴 데 물어볼 곳이라도 알려 줄 듯한 낌새가 무럭무럭 피어 나오잖는가!
이에 투란은 입술을 삐죽였다.
“나중에 꼭 그 얘기 해 줘야 해요! 홀시딘이 직접!”
“앙? 야, 꼭 내가 직접―!”
파앙!
홱 고개를 돌리며 울컥하는 홀시딘의 눈앞에서 투란은 세차게 튀어 나갔다.
발 구르기가 돌을 울리며 마법으로 지어 올린 거처를 은은하게 울리는 사이, 홀시딘은 투란이 수십 미터 저편으로 데굴데굴 구르다 뛰고 튀어 오르는 모습으로 산림 속으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한숨이 슬그머니 홀시딘의 입가에서,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낌새로 새어 나왔다.
“조심해라, 투란. 그 대토벌이 어중간하게 끝난 까닭은…… 일 년여 만에 토벌군이 거의 전멸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사냥꾼이 사냥감이 된 상황에서 더 지속할 수 없던 탓에 제대로 검증해 볼 여유가 없어서 물러난 거였으니까. 그러니까…… 이 거미 군단에게 재앙을 보여 줘. 캘러미티 로드답게!”
투란에게 전혀 들리지 않는 속삭임을 흘리고, 홀시딘은 햇살 아래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쟈카라 산림의 풍경을 노려봤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평범하게 우거진 숲이라는 듯한 거미의 산림을……!
파삿, 촤아악!
나뭇가지를 스치고, 몸으로 흘려 내면서 투란은 날다람쥐처럼 숲을 가로질렀다.
그 속도라면 나뭇가지가 살가죽을 갈기갈기 찢을 듯했지만, 투란의 몸에는 긁힌 흔적조차 없었다.
―묻지 않고 그냥 갈 거냐?
‘응? 뭘?’
―뭘? 왜 시치미 떼? 아라크녹스인가 아라크노스인가. 홀시딘은…… 상아탑이라면 분명히 판별할 정보를 쥐고 있을 거라니까. 그걸 확인해야…….
‘소용없을 거야.’
―소용없다니? 둘 중 어느 타입인가에 따라서 습성이 완전히 다르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여기서는 별 상관이 없을 거라고.’
―뭐? 어째서냐!
‘원인을 모른다고 했잖아. 대토벌을 했는데도 모른다는 소리였다고. 그러니까 홀시딘은 그런 이야기가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덮어 둔 거라고. 괜히 선입견을 갖고 방심하지 않도록 말이야. 가끔 상아탑의 마법사가 의심스러운 정보를 숨길 때는 그런 경우라고 했어. 뭐, 헌터 입장에서는 작은 단서라도 아주 귀할 때가 있는데 숨겼다고 성질내는 경우가 되겠지만…… 내 경우에는 아예 모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걸.’
―그럼, 내가 한 말은 몽땅 선입견을 심어서 널 위험에 빠뜨리는 수작이었다는 거냐?
으르렁대며 따지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피식 웃으면서 굵은 나뭇가지를 밟으며 잠시 멈췄다. 위로는 햇살이 가득 스쳐 가지만, 아래로는 짙게 우거진 숲의 그림자가 여전히 밤의 흔적을 간직한 듯이 어두웠다.
‘너랑 홀시딘은 완전히 입장이 다르다고. 넌 여차하면 날 직접 도울 수 있으니까, 말할 수 있는 만큼 말해 두는 편이 좋은 거고. 홀시딘은 혹시나 내가 자기 말에 신경 쓰다가 방심할 경우에 직접 나설 수가 없으니까,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거지.’
―무지(無知)가 도움이 된다니, 대체 무슨 발상이냐?
‘응? 에잇, 나중에 따져! 지금은 일단…… 어디 보자, 여기가 그러니까…….’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대강 어디까지 왔는가를 가늠해 봤다.
몇 마디 떠드는 사이에 시원하게 나무를 타고 날듯이 숲을 가로질렀다.
이미 숲 깊숙한 곳이었고, 투란이 자고 나온 사이에 거미 무리가 새로운 그물질을 하고 은닉한 채로 나타난 먹잇감을 노리는 낌새가 맴돌고 있었다.
‘……며칠 전에 지나갔던 곳이지? 흐흠, 이쯤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네.’
투란이 허벅지를 더듬었고, 새로 파 놓은 바지 주머니 속에서 작은 알을 꺼냈다. 달걀을 축소해 놓은 듯한 작은 알을 잠깐 눈 가까이 대 보고, 그 안에서 풍겨 나오는 홀시딘의 마력을 느끼면서 투란은 숨을 고른 다음 손가락에 힘을 줬다.
톡.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작은 알이 터졌고, 흐릿하고 투명한 바람결처럼 홀시딘의 마력이 퍼져 나왔다. 잠시 투란과 그 주변을 맴돌던 마력은 금세 다시 뭉치면서 투란 앞에 흐릿하고 여리지만 잘 보이는 화살 형태를 만들어 냈다.
마법의 화살은 바로 빙그르르 돌다가 한쪽을 가리켰고, 투란은 곧장 그 방향으로 뛰었다. 마법의 화살은 마치 투란의 앞에 매달린 것처럼 움직였고 계속 투란에게 방향을 알려 준다, 마치 알드바인의 탑 안에서처럼!
이렇게 다람쥐처럼 나무를 타고 날 듯이 튀어 나가는 투란을 향해 뭔가 쏘아져 온 것은 잠깐 뒤였다.
피이― 핏!
“하나, 둘, 셋…….”
―다섯이다. 이 방향으로만 다섯 마리야. 모두 줄 타고 침 뱉는 놈들이네.
스쳐 가는 가늘고 긴 실뭉치로 된 화살, 거미의 화살이 나무를 꿰뚫고 닿은 자리를 녹여 내는 광경을 뒤로한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속삭였다. 투란은 눈을 부릅떴고, 투란의 몸에서 헌터스 배너의 흔적이 곧바로 사라졌다. 대신 투란의 눈가에 검은빛이 맴돌며 번졌고, 작은 눈알이 번져 나온다!
‘이전에 만난 놈들보다 가죽이 두꺼워 보여! 거미줄…… 저 실은 더 가늘지만 더 강한 거 아냐? 땅에 뚜껑 만들던 실처럼 보이네!’
―아, 그 강철보다 더 단단하면서 머리카락보다 얇았던 뚜껑 그물 짜고 있던 실 말이냐? 좀 다르긴 하지만…… 더 질기고 유연하잖나? 강철의 강도(剛度)는 이미 넘어선 것 같고…… 저 정도면 몬스터가 아닐까 싶군.
‘그래, 몬스터야! 그럴 거야!’
높은 나무 끝에 뿔수리의 눈에도 겨우 보일 듯 말 듯 한 실의 한 가닥을 걸어 놓고 매달린 채로 허공에서 추처럼 오락가락하는 시늉을 하는 다섯 마리의 붉은 거미, 투란은 자신을 향해 실 가닥으로 자아낸 화살을 침처럼 뱉어 날리는 거미 중에 가장 가까운 놈을 향해 뛰면서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몬스터지? 몬스터여야 한다아아―! 뭣 좀 얻어 보자고오오! 아무것도 얻지 못해서 매우 섭섭하단 말이다아아!”
―이런 사기꾼 같으니라고! 저놈들 눈알, 가죽은 닥치는 대로 다 뽑아 기억했잖냐! 그걸로 모자라서 악마의 심장으로 저놈들 근육, 체액, 외골격까지 모두 뒤져 본 놈이 뭐가 얻은 게 없어!
‘그래, 몬스터 에센스가 전혀 없다는 걸 확인했지! 섭섭했다고!’
퍼억!
투란은 손끝에 날카로운 손톱을 뿜어내며 붉은 거미의 몸통을 내리찍어 할퀴었다. 하지만 울려 나온 것은 타격음이었고, 붉은 거미의 가죽은 살짝 눌렸다가 다시 탱탱해질 뿐이었다.
‘우어? 전에 만난 녀석들보다 단단하네!’
―다리도 훨씬 길군?
드라고니아가 태평한 말투로 중얼거렸고, 그 의미를 투란은 몸으로 겪을 수 있었다.
할퀴었지만 맞은 듯이 흔들대던 붉은 거미가 길고 가는 다리를 좌악 내뻗어서는 곧장 투란의 주변을 헤집으면서 번개처럼 움직이니―.
“어? 어이쿠?”
―투란은 가늘고 작은 뿔수리의 눈동자 수십 개를 통해 자신을 완벽하게 실뭉치로 만들어 버리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가늘고 질긴 실이 사실은 투명하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마리가 몸을 대며 투란과 이렇게 접촉하는 사이, 함께 화살을 쏘던 다른 거미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오락가락하던 움직임에서 재빨리 주변 나뭇가지를 잡아채며 움직여 투란을 중심으로 감싸듯이 자리 잡으며 길고 가는 다리를 함께 움직이며 투란을 돌돌 말아 가는 그물질을 돕는다!
―투란, 거미줄 속에 독이 있다. 웬만한 오우거에게도 치사량(致死量)은 될 것 같은데? 너, 괜찮냐?
‘……으, 그래서 몸이 짜릿했군!’
―야! 그만 버텨! 아무리 너라도 이런 몸 상태로는―!
‘응, 이제 해독 가능해.’
―뭐?
‘악마의 심장, 오우거에게는 없는 거지. 그럼, 나도 이제 확인해 볼까! 이놈들, 몬스터인가, 아닌가!’
투명한 실뭉치 속에서 투란의 살갗이 검은 바탕 속에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