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59)
쿠르르…….
잔향(殘響)은 길고 오래 메아리쳤다.
높이 치솟은 먼지와 티끌이 구름처럼 숲을 덮겠다는 듯이 뭉클거렸고, 안개처럼 퍼져 나가면서 숲을 감추려는 듯했다.
이는 수십 미터의 폭의 숲이 푹 꺼져 버린 탓이었다.
땅속 깊은 곳을 향해 깊이 가라앉아 절벽처럼 보이는 구멍이 숲의 한구석에 뚫려버린 여파(餘波)가 그렇게 맴도는 사이, 구멍 깊은 곳에서는…….
“아, 겨우 한 마리 잡았네. 어라? 여긴 어디야?”
부스스, 몸에서 사라지는 검은 재를 흘러내리면서 투란은 두리번거리는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위로는 울퉁불퉁한 절벽이 높이 솟구쳐서 먼 하늘로 구멍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절벽이 수십 미터 두께를 이룬 천장처럼 투란이 선 자리에서 다시 수십 미터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투란은 천장이 뚫린 기묘한 땅굴 속에 서 있는 듯했다.
땅굴은 넓게 펼쳐진 채로 여러 가지로 갈라져서 주변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다시 둘러보니, 구멍 너머 위쪽의 산림을 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 땅 밑 공동(空洞)이 떠받치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이거…… 뭐야?”
투란은 다시 중얼거렸고,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대꾸한다.
―거미의 둥지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어느 쪽을 따라 나가든, 깨어나지 않은 거미의 알이 가득해. 알 하나에 한 마리씩도 아니고, 수십 마리의 거미…… 사람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의 거미 유생(幼生)이 꾸물거리고 있다. 특정한 조건이 아니면 알에서 나올 수 없는 듯하다만…… 알을 부수는 건 저놈들을 확실히 풀어놓을 것 같군. 지금 검색해 본 상황을 조합해서 말하자면, 이 쟈카라 산림에 저 녀석들이 자리 잡은 시간 동안 이 땅 아래에 개미처럼 거미가 굴을 파고 둥지를 만든 꼴이다. 저 위 숲에서 날뛰는 놈들을 천 마리를 잡든, 만 마리를 잡든 유생이 담긴 알 몇백 개를 깨우는 것만으로 다시 보충되겠지. 물론 그 유생이 마수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말이다.
잠깐 이쪽저쪽의 굴을 프로브로 빠르게 조사한 결과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투란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런 숲 아래의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저기 저거…… 거미줄인가?”
위로 뚫린 구멍을 바라보면서 절벽의 단면으로부터 슬그머니 스며 나와 나풀거리는 가늘고 길게 늘어진 실 가닥을 확인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그래, 짐작대로야. 땅 아래 이런 거대한 둥지를 만드는 사이에 거미줄을 지표(地表)의 아래쪽, 나무뿌리 아래에도 잔뜩 흘려 넣고 광범위하게 덮어 뒀다. 마법으로 탐지되지 않기도 하지만, 투란 네가 한 것처럼 수십 미터의 지반(地盤)을 통째로 뭉개고 들어오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상황이지.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답해 줬다.
투란은 검은 재가 발아래로 몰려와 스러지는 꼴을 내려다보며 잠깐 머리를 긁적였다. 곧 목소리를 살짝 높인 투란의 중얼거림이 터져 나온다.
“아, 모르겠네. 이런 건 역시 마법사에게 물어야겠어. 홀시딘! 홀시딘―! 여기요, 그거 이리 좀 보내 봐요!”
―앙? 뭔 소리를―!
‘너란 녀석이 없는 척해야 하니까.’
히죽, 입술을 삐죽대면서 소리 없이 답하고 투란은 높이 올려다봤다.
하늘이 높이 보이는 풍경에서 흐릿한 회색빛 화살이 곧장 투란을 향해 날아들었다. 저 구름 너머에서 누가 투란을 노리고 쏘아 보낸 듯, 화살은 투란의 가슴 앞까지 날아왔고 곧바로 징징 울리는 소리를 뱉어 낸다.
“투란! 그렇게 크게 일을 벌이면 어쩌라는 거야! 그래 놓으면 나중에 어떻게 아닌 척 덮냔 말이야! 몰튼노트 더 기간틱이라니! 굳이 그런 주먹질 안 해도 되잖아! 어쩔 거냐고! 보상금 받으려면 딴 놈들이 와서 조사할 텐데, 조사하다가 이거 그냥 마법의 불길이 아닌데요, 몰튼노트 같아요, 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냐고! 흔적 없이 살살 잡아도 되잖아아―!”
―이 마법사, 미쳤나? 뭐라는 거야, 대체!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드라고니아가 홀시딘이 보내오는 전언에 대해 매우 냉혹한 감상을 토해 냈다. 투란은 입가에 실실 새는 웃음을 머금은 채로, 화살 꼬리에 살짝 커지면서 나타나는 홀시딘의 환영을 보며 말한다.
“에이, 앞으로 잡을 게 몇 마리인데 첫 번째 한 마리한테 그렇게 오래 시간 끌 것 없잖아요? 단숨에 잡을 수 있을 때 팍 잡아야죠. 그런데, 홀시딘…… 대체 내가 왜 이렇게 땅밑으로 내려와 있는 거죠? 분명히 땅에 기둥 박고 잘 받아 내서 구덩이가 좀 파이는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여기 어딘지 알겠어요?”
화살이 드러내는 환영이 잠시 침묵했다.
화살이 빙그르르 맴돌았고, 환영은 주변을 둘러보는 듯했다.
그다음에 홀시딘의 환영이 투란을 마주 보면서, 미묘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태도로 말한다.
“상당히 심하게 은닉된 지하 공간이야. 더 기간틱의 말도 안 되는 주먹질로 지반 붕괴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찾아낼 수 없었을 정도네. 한 손으로 내지르고 한 손으로 버티는 시늉을 했다고 해도, 그 버티는 손을 받쳐 주는 지반은 견디지 못했단 말이야! 너무 심했다고! 몰튼노트의 충격파는 주변에 미묘하게 다른 불길이랑 성질이 다른 흔적을 남긴단 말이야!”
“음, 그랬어요?”
시침 뚝 떼면서 투란이 잔소리를 한 귀로 싸악 흘려 내는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홀시딘의 환영이 끄응 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어쨌든…… 투란, 이게 아마도 이 쟈카라 산림 거미의 진짜 주둔지인 모양이다. 아마…… 군단을 거느리는 놈들도 저렇게 땅 아래까지 그물 쳐 놓고 아래에 숨은 채라서 웬만해서는 발견되지 않았을 듯싶군. 아무튼, 일단 뚫어 놨으니 지상의 비컨과 너의 위치를 호응해서 대강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만…… 나와서 예정된 포인트 지점으로 갈래? 아니면 이대로 땅속으로 쳐들어갈래?”
“쳐들어가는 쪽이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요…… 나중에 파묻어 버리면 무슨 일이 있었나 감추기도 쉽겠죠? 그런데 아까 바람의 군단장이니 뭐니 했잖아요? 혹시 여기 거미 떼를 휘두르는 우두머리 몬스터 거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거예요? 몇 마리나 되는지, 어떤 놈들인지…….”
묻는 말을 흘리면서 투란은 천천히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닥에 거대하게 파인 흔적에는 이제 검은 재라든가 불티의 낌새가 전혀 없었다.
홀시딘의 환영이 매달린 화살도 느릿하게 투란의 걸음에 맞춰 옮겨졌고, 그러는 사이에 홀시딘의 말이 흘러나온다.
“……이제까지 확인해서 기록된 경우가 여덟 마리 정도 된다. 그중 둘은 예전에 왕국과의 전투, 거미 군단과의 전쟁이라고 하는 전투를 통해서 잡아 없애는 데 성공했지. 나머지 여섯은 형태와 모양을 포착했지만, 가까이 접근해서 성질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저 멀리서 관측한 것이 고작이고, 바람의 군단장이라는 놈은 그중에서 제일 많이 눈에 띈 놈이었어. 허공에 둥실거리며 떠다니는 놈이었으니까. 실로 자아낸 날개로 떠다니다가 추락해 잡힌 놈 말고는 제일 유명한 경우지. 거미 군단이 규모를 유지한다는 점으로 보자면, 결원이 생긴 군단장 자리를 다른 거미가 채웠을 듯도 싶지만, 확실하지 않아. 그러니까 여섯에서 여덟 정도, 바람의 군단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 거미가 있다고 봐야 할 거다.”
“방심할 수가 없으니, 전력을 기울일 각오를 해야겠군요! 홀시딘, 땅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위보다는 감추기 쉽겠죠?”
“이 구멍을 보면 땅 아래도 샅샅이 뒤질 것 같다만…… 뭐, 상관없겠지. 로열 가든의 마법이 금괴를 좀 쓰기는 하지만, 까짓거! 투란, 마음껏 싸워라! 시크릿 키퍼로서, 기꺼이 덮을 수 있어! 금괴를 좀 쓰기는 하, 겠, 지, 만!”
“……가능한 한 깔끔하고 신속하게 처리하죠.”
금괴란 말이 나올 때마다 움찔거리다가 투란이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가지가지 한다.
드라고니아는 두 사람의 대화에 매우 냉소적인 한마디를 남겼다.
들은 쪽도 듣지 못한 쪽도 이 한마디에 꿈쩍도 않았지만!
“그러면…… 일단 파악하고 있는 녀석들의 특성이라도 좀 알려 줘요. 이 아래에서 갑자기 만나서 또 상태 봐 가며 싸우다 보면 들을 수 없잖아요.”
투란은 여린 햇살이 기둥처럼 내려앉은 자리에서 벗어나, 깊은 어둠이 맴도는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물었다.
화살의 환영이 조금 더 밝아지면서 홀시딘의 말은 투란의 귓속에 속삭임을 전하다. 주변 분위기를 파악한 듯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오로지 투란에게만 들리는 말이었다.
“군단장이라고 하는 놈들은 기본적으로 거미의 형태를 이리저리 다시 끼워 맞춘 몰골이야. 그러니 눈에 띄면 바로 이놈이다 싶을 거다. 하지만 그 괴상한 꼴이랑 다르게 가진 능력은 제대로 상급 몬스터니까, 가볍게 여기지 마라. 우선 조심해야 할 놈은…….”
투란은 성큼성큼 걷는 듯하지만, 조심스럽게 어둠 너머를 살피면서 홀시딘이 하는 말을 들었다. 여섯 마리, 그중 하나는 이미 잡았으니 빼놓은 다섯 마리의 몬스터 거미에 대한 이야기를…….
그 첫 번째는 투명(透明) 거미였다.
맑은 크리스털로 세공된 2, 3미터 크기로 생김새는 흔히 볼 수 있는 거미랑 똑같다고 했다. 다만 수정(水晶)을 조각해 만든 듯한 그 거미는 바로 코앞에서도 거의 허공을 보는 듯해서 ‘투명’ 거미라고 불린다는 것인데…… 살육(殺戮)과 파괴(破壞)를 통해 그 몸에 뒤집어쓰는 혈육(血肉), 잔해(殘骸) 때문에 일단 날뛰기 시작하면 어찌 되었든 눈에 띄는 놈이라고 했다.
다만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서 그렇게 날뛸 때에는 자신이 상대를 완벽하게 압도할 때문이라서, 보통은 아예 눈에 띄지 않는 채로 어디에 있는가 전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설명과 함께 홀시딘은 투명 거미란 놈이 어쩌면 여러 가지 실그물을 조합해서 탐지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덧붙였다. 지난 20일 정도를 투란과 함께 쟈카라 산림의 거미를 조사한 덕분에 가질 수 있는 의문이라면서.
더불어 맑고 투명한 그 크리스털의 거미 신체(身體)가 기괴한 밀도(密度)와 강도(剛度)를 지녔기 때문에 닿기만 하면 바위나 강철조차도 무슨 진흙처럼 푹푹 찍히는 흔적을 남긴다고 했다.
잡는 데 성공했던 장갑(裝甲) 군단장이라던 거미조차도 견뎌 내지 못한 샤벨투쓰의 발톱으로 만든 몬스터 블레이드까지 튕겨 낼 정도로!
덕분에 투란도 잠깐 움찔했다.
두 번째는…….
“응? 홀시딘, 이거 무슨 알이지요?”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거의 네 번째 거미 괴물에 대한 말이 나올 무렵에 투란은 발끝에 차인 것을 툭툭 발끝으로 건드리면서 호기심 가득한 시늉을 하며 물었다. 화살 끝에 매달린 환영의 홀시딘이 한참 설명에 열을 올리다가 흘깃 내려다봤고, 바로 화들짝 놀란 소리를 낸다.
“뭐야, 이거! 거미 알? 잠깐, 알 하나에 대체 몇 마리야, 이거!”
“처음 봐요?”
“당연히 처음 보지! 쟈카라 산림 어디에서도 거미 알 따위는 발견된 적이 없어!”
“호오? 하나 떼어 갈래요?”
“응? 아, 샘플! 젠장, 이건 정말 필요한 샘플이기는 하군…… 그럼, 에어로에게 실어 줘. 내 쪽으로 유도하지.”
투란은 땅에 반쯤 박힌 거미 알 하나를 조심스럽게 파냈고, 홀시딘이 제어하는 탓에 작고 상냥한 척하는 바람의 스피릿 아티팩트 에어로에게 넘겼다. 곧바로 바람의 길이 열리며 꾸물거리는 거미 유생 수십 마리가 담긴 알이 투란이 걸어왔던 길을 되짚듯이 날아갔다.
마법을 펼친 홀시딘의 환영이 다시 이야기를 이으려 하는데, 투란이 손을 저으면서 먼저 소리친다.
“됐어요! 이제 더 들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알을 떼어 낸 것이 어떤 놈 성질을 건드린 모양인데요? 저거 정리하고…… 여유 생기면 듣죠!”
“……조심해!”
화살이 알이 날아간 방향으로 쏘아져 나가면서 작은 한마디를 남겼다.
투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터뜨린 말이 메아리치면서 어둠 속을 휘젓는 것을 느꼈다. 소리의 파문이 미묘하게 여기저기에서 뒤틀리면서 투란에게 어둠 속이 어떤 지형(地形)인가를 알려 주는데…….
―아라크녹스. 이제 확실하군. 이 산림의 거미 군단은 아라크녹스, 여신(女神)의 타락한 아이들이다.
‘이름만 떠들지 말라고! 지금 오는 놈은 뭐야? 홀시딘도 알아차리긴 한 모양인데, 이게 무슨 느낌이야? 소리도 아니고, 번쩍이는 것도 없고 그냥 살을 막 쑤시고 찌르는 건가? 이게 투명 거미인가 하는 놈은 아닐 것 같은데?’
―세 번째로 설명한 녀석이겠지.
‘세 번째? 아, 그 절규(絶叫)하는 마물(魔物)? 모양도 확인 못 했다는, 어딘가에서 강력한 충격파만 뿌린다는? 그 충격파의 흔적만 놓고 거미 떼의 중심이 되는 뭔가 있다고 추측만 했다는 거?’
―그래, 딱 맞잖아. 청각도, 시각도 아닌 오로지 온몸의 촉각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잖아.
‘으흠, 계속 이대로면 찾기 귀찮은데…… 지나가서 딴 놈부터 잡을 수 있나 볼까? 참, 아라크녹스가 어떻다고 했지?’
주변의 알이 꿈틀거리면서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반응을 보이는 꼴을 보면서 투란은 여전히 촉각을 자극하지만 전혀 어디 있는가 짐작도 안 되는 거미의 군단장, 절규하는 마물로 불리는 한 마리를 일단 그냥 넘어갈까를 궁리했다. 하지만…….
―아라크녹스는 확실하게 여왕을 섬기는 놈들이야. 그 여왕을 제압해야 군단이 제압된다.
‘오? 그럼, 이거 넘기고 바로 여왕부터 찾아내면…….’
―여왕부터 죽이면 군단장이 뿔뿔이 흩어져서 여왕으로 성장한다.
‘……뭣이여?’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을 발끈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