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0)
사르르…… 까아아!
뭔가 부산스럽게 비비적거리면서 움직이는가 싶다가 돌연 선명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한참 촉각만을 반복적으로 자극하다가 갑자기 터진 음향이었다.
위협적인 분위기가 역력했고, 드라고니아는 즉각 한가한 얘기를 한구석으로 치우며 경고를 한다.
―조심해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이쪽에 가까이 붙어 오는 듯하니까. 어떤 공격을 해 올지 몰라!
‘응, 준비는 잘해 놨…….’
퍼억!
투란의 한쪽 볼이 앞에서 뒤로, 둥글게 파인 흔적을 남기며 사라졌다. 마치 머리 한 부분이 공처럼 파이고 비워져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퍽, 퍽!
어깨와 허벅지 한쪽 또한 둔탁한 소리를 울려 내며 원래 박혀 있던 공이 빠져나가 버린 듯한 흔적을 남긴 채로 관통된 듯, 베여 나간 듯이 사라졌다.
―투란―!
팍, 퍽, 퍽!
움직이던 그대로 한 걸음 투란이 내딛는 순간, 허벅지가 패여 나간 다리가 두어 번 더 뚫렸고 멀쩡했던 다리도 정강이 부분이 패여 사라졌다.
어둠 깊은 곳에서 갑작스럽게 뭔가에 아주 세게 가격당한 상황이었고, 패여 나간 자리에서는 너무 빠르고 충격적이어서 분출되지 않던 피가 뒤늦게 분출되는 듯했다. 하지만 깊은 어둠 속에서 뿜어 나오는 피는, 그 어둠에 물들기라도 한 것처럼 시커먼 빛깔이었으니……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이가 밝은 곳에서 봤다면 투란을 향해 피가 검은 괴물이 사람 몰골을 했다고 할 광경이었다.
첨벙.
투란의 몸이 기울어지면서 한 손으로 바닥을 딛는 순간, 뭔가 바닥에 가득 고인 물이 빠진 듯한 소리가 울렸다.
―놀라게 하지 마!
‘놀라라! 이게 뭐야! 진짜 깜짝 놀랐잖아!’
투란이 몸에 입은 타격과 다르게 별 탈 없다는 것을 안 드라고니아가 안도하는 말을 했지만, 투란은 울컥하면서 갑작스럽게 당한 일에 대해 한껏 놀라는 기분을 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기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파라․블랙 잉크를 채워 넣은 악마의 심장 혈관이라니…… 과연 이런 식으로 하면 몸의 손상에 대응하는 방법이 되는군. 게다가 발아래로 미리 잔뜩 흘려 둔 잉크로 손상 부분을 즉각 보충…… 안 하냐! 뚫린 채로 뭐 하는 거야!
‘다친 척…….’
투란은 엎어진 채로 엉금엉금 기고 있었다.
몸이 펑펑 뚫린 탓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셈이었다.
더불어 한껏 짙어진 바닥의 물웅덩이, 시커먼 잉크의 웅덩이가 깊어서 그 안으로 서서히 잠겨 드는 시늉까지 하면서!
한쪽 팔꿈치로 땅을 짚고 한쪽 무릎으로 버티며 기는 투란을 향해 다시 타격이 이뤄졌다.
퍼억!
버티던 팔죽지가 뻥 뚫리듯이 절단되었고, 투란은 머리부터 잉크 속에 처박히는 꼴을 보이며 가라앉고 잠겨 드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저 뒤편의 시커먼 잉크 속에서는 한 점의 빛조차 사라진 어둠을 꿰뚫어 보는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알이 잔뜩 돋아나서 지켜보는 중인데…….
―저게 뭐지? 프로브로 제대로 계측이 안 된다. 크기가 부풀었다 오그라들었다, 제멋대로인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을 향한 잔소리를 포기한 것처럼, 전투 상황에 집중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저건 내게 맡기고, 아라크녹스에 대해서 말해 봐. 여왕을 먼저 잡으면 도망간다며? 그럼, 여왕이 위기에 처하면 구하러 오지 않고 도망칠 궁리부터 한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 아라크녹스는 여왕을 수호한다는 목적으로 태어났으니까. 기본적으로는 아라크녹스를 돌파하지 않고는 여왕의 거처에 도달할 수 없어. 하지만 가로막는 아라크녹스만 제거하고 빠르게 여왕을 제압하면, 더 이상 여왕을 지킬 수 없게 된 상황이라고 판단되는 순간부터 남은 것들이 도망친다. 여왕이 자신을 포기하고 새로운 세대를 키우라는 명령을 한다고 해야 할 거야.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사이, 투란은 허우적대는 몸짓으로 훼손된 몸에 시커먼 액체가 차오르면서 다시 기어 나갈 수 있다는 듯이 움직였다. 아주 꼴사납게, 뭔지 모를 것에 당해서 당황하는 모습으로!
찰랑거리고 첨벙거리는 잉크 웅덩이가 어둠 속에서 넘쳐흐르며 번져 갔고, 어느 틈에 제대로 기는 듯한 투란을 향한 공격은 되풀이되었다. 아예 짓이기겠다는 듯이 등부터 가슴까지 관통하기도 했고, 목 위의 머리를 여러 번 파먹듯이 없애기도 하고!
그러나 그런 과격한 상황을 겪는 중인 투란의 마음 한편은 아주 냉정하게 드라고니아를 향해 말하고 있었으니…….
‘흐흠, 그렇다면 어쨌든 이 녀석들 위치를 파악해야겠네. 홀시딘이 그린 지도랑 이 땅 아래랑 비교해 보고, 대강이라도 군단장 녀석들이 어디 있는가 알아낼 수 있겠어? 하는 김에 숨어 있는 여왕의 위치도…….’
―여왕은 숨지 않아. 이 둥지 안에서 여왕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거미답게, 자신의 그물 안에서는 절대적인 강자의 자세로 버틴다. 자부심이랄까, 긍지랄까…… 그 자세를 깨뜨릴 때, 여왕에게 압도적인 위협을 가할 때 살아 있는 군단장 아라크녹스가 도망치는 거야.
‘……찾기 쉽다는 소리지?’
뭔가 장황해진 설명을 한구석으로 치우면서, 투란은 허우적대는 몸짓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 더 빠르게 기어 나가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첨벙거리고 찰랑대는 잉크 웅덩이는 이제 폭이 넓은 동굴의 벽까지 잔뜩 번져 나간 듯했고,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면서 뚫린 구멍을 메우면서 달아나는 투란을 향한 공격이 주춤했다.
아무래도 너무 이상하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조차도 이제는 슬슬 의아해하는 듯한데…… 그 주춤한 순간에 투란의 한 손이 바닥에 놓인 알을 짓이겼다.
퍼석.
퍼억!
공격이 언제 멈칫했냐는 듯이 끔찍한 위력을 더하면서, 더욱 거세게 투란을 향해 내리찍혔다. 잉크 웅덩이가 충격의 파문을 그리며 범람했고, 벽과 천장으로까지 튀어 오를 지경이었다.
―잘도 부셨구나? 보기와 다르게 꽤 단단한 알인데?
‘응? 아, 손바닥만 마그마 로드로…… 야, 이건 나한테 맡기고! 그 여왕의 특징에 대해서 말해 봐! 어떤 능력을 지녔지? 어떻게 생겼어? 홀시딘이 말한 군단장 수준이랑 비슷해? 아, 그런 군단장 아라크녹스에 대해서는 따로 아는 것 없어?’
―군단장은 여왕의 성향에 따라 제멋대로야. 하지만 여왕은 셋 중 하나지.
‘……셋 중 하나라니?’
―아라크녹스의 여왕은 페이, 레온, 팩터. 아라크페이, 아라크레온, 아라크팩터 중의 하나란 말이야. 셋은 성격도 특징도 완전히 다르다. 여신 아라크누아의 사도가 이 세상에 어떤 염원을 품고 소환하느냐에 따라 다른 형상을 품는다고 하지.
‘소환?’
―그래…… 아라크녹스는 원래 몬스터가 아니고, 아라크누아의 신전에서 소환해 내는 신수(神獸), 성체(聖體)라 불리기도 하는 존재야. 원래는 소환의 목적이 이뤄진 다음에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하고 남는 경우가 생기는 거지. 그러니까 저건 산맥 안에서 나온 괴물 거미가 아니고 산맥 밖에서 여기까지 밀려온…… 타락해서 몬스터가 된 신수란 말이야. 이 산맥의 힘에 의해 자신을 유지하며 여기에 둥지를 튼 거지.
‘……고르고니아 얘기랑 비슷하네. 그래서, 셋의 특징은? 어떤 여왕인지 알아냈으면 바로 그 성격이랑 특징을 말해 줘.’
―아직 못 찾았다. 한데 이제 저거 잡아도 되지 않냐?
‘응? 아, 이제 다 된 것 같기는 해. 생각보다 난폭하고 특이한 녀석이잖아, 티끌 같은 씨앗으로 파고들어서 잔뜩 부풀면서 뼈와 살을 삼킨 채로 튕겨 나간 다음에 곧바로 다시 티끌처럼 작아지다니…… 저렇게 작아진 채로 대체 뭔 능력으로 이렇게 충격을 주는 거지?’
―무슨 소리야, 저거 생체 파동이잖아. 카프리곤도, 드레이크도 지닌 능력이다. 단지 저 녀석의 체적 변화가 너무 이상해서 이런 현상인 것뿐이지.
‘엥? 이게 생체 파동? 우허어―.’
투란은 어이없어하는 듯한 시늉을 했다.
이때까지 투란이 앞뒤로 움직이는 사이에 천정, 바닥, 벽으로 번진 잉크는 투란을 중심으로 동굴 양쪽에 느슨하게 자리 잡는 듯한 상황이었다. 잉크가 채우지 못한 빈자리에는 어둠에 잠겨 든 듯한 수정 가루가 은은하게 맴돌았지만, 빛이 없는 탓에 반짝임도 없었다. 하지만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동자는 잉크가 번진 곳곳에서, 한 점 빛이 없는 것을 기회 삼아 잔뜩 피어난 채로 고속(高速) 이동하는 티끌―절규하는 마물이라 불리는 거미의 군단장이 일으키는 파문을, 그 작았다 커졌다 하는 모습을 더해 아주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었으니―.
―절규하는 마물, 그 모양은 하얀 구슬이 뭉친 형체였다. 그 구슬마다 작은 바늘이 하나씩 돋아나 사방을 향한 꼴을 한 채로, 구슬 셋이 만나 모이는 세 모서리의 중심에서 가늘고 긴 실 한 가닥을 뿜어내 어딘가 한 점을 붙들고 자유롭게 허공을 누비고 있었다. 촉각만을 자극하는 포효, 절규를 할 때에는 가는 실이 매섭게 팽팽해졌고, 건드리면 베일 듯한 위세였다.
그 한 가닥 실이 잉크가 흐르는 벽에 닿아 제대로 접착되지 않는다 싶으면, 즉각 세 가닥의 실이 다른 방향으로 세차게 뻗어 나갔고 뭔가를 관통해서라도 들러붙는 위용을 보였다. 그 때문에 절규하는 마물은 항상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아주 빨랐다. 티끌처럼 작은 탓에 살갗에 닿으면 살점 사이에 끼듯이 스며들었고, 그 상태에서 뭉쳐 있던 구슬이 한꺼번에 부풀면서 뼈와 살, 체액을 모조리 삼키고 튀어 나갔다. 그렇게 나가는 순간에는 삼켰던 것을 모조리 허공에 뿌리는데…… 이 과정이 아주 짧은 탓에 요란한 타격음과 함께 뭔가 두들겨 맞고 몸 한구석이 으깨진 채로 뜯겨 나가는 광경을 드러내고, 당하는 쪽조차도 그런 느낌을 겪게 했다.
그 움직임, 작았다 커졌다 하는 능력이 그 정체를 결코 쉽게 포착할 수가 없게 할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거기에 다양한 실의 특성이 섞이기까지 한다면―.
―씨이잉! 투둑.
원래 절규 속에서 팽팽해진 실이 일으키는 날카로운 소리는 파묻혀 들리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 절규의 충격파가 상쇄되고, 티끌 같은 마물이 황금빛 털의 끝자락에 걸려 멈추는 순간에는 그 소리가 오히려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정지를 깨뜨리려 주먹만큼 커진 마물이 어떻게든 황금빛 털에 얽힌 가시를 당겨 빠져나가려다가 가시가 부러지는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울렸다.
우으으―!
시커먼 잉크가 콸콸 흘러내리면서 황금빛 털로 흘려 내는 괴이한 짐승의 몰골이 드러나자, 마물은 즉각 작아지면서 새로운 절규를 터뜨리려 했다. 그러나 짐승의 황금빛 털 사이로, 두껍게 꿰맨 흔적처럼 보이는 실밥 같은 눈썹이 펼쳐지고 황금빛 눈동자가 드러나는 순간, 거미의 군단장―절규하는 마물은 멈춰야 했다.
사방으로 날린 가는 실조차도 공중에서 힘을 잃은 듯이 흐느적거리며 나풀대는 꼴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나마 움직이던 여파를 이용해 마물은 황금빛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방향으로 살짝 흔들렸지만, 시커먼 잉크 곳곳에서 새로 눈꺼풀을 열며 등장하는 황금빛 눈의 시야는 모든 방향과 공간을 장악했다.
그리고 어느새, 동굴은 원래의 형상과 다른 시커먼 잉크의 포대 속인 것처럼 변해 있었다. 양쪽 끝이 완벽하게 막힌 포대 안에는 오롯하니 황금빛 눈알만이 데굴거리는 듯했다. 허공의 한 점에서 흘러나오는 실 가닥의 흐느적거림을 잘 보겠다는 듯!
촤악, 젖은 혀가 황금빛 털 아래에서 길게 뻗어 나왔고 흐느적대는 실 가닥의 뿌리를 더듬었다.
꽈득, 뿌읏!
주먹만 한 하얀 구슬 뭉치가 부풀어 올랐다.
가시가 한 가닥씩 돋은 구슬 뭉치는 혀에서 옮겨 오는 촉촉함을 만날 때마다 거침없이 부풀었고, 어느새 사람 머리통만 해졌다. 그 맞물린 구슬 틈새를 향해, 하얀 손이 느릿하게 닿아 구슬을 열어젖혔다.
한 겹, 두 겹…… 구슬 안에는 더 작은 구슬의 층이 있었지만 혀의 촉촉함과 하얀 손의 완고함에 모두 부풀면서 열려야 했다. 그렇게 부푼 구슬은 어느새 사람보다 훨씬 큰 덩어리로 바닥을 향해 늘어졌고…….
―아무리 해면섬유질(海綿纖維質) 구조라고 해도 이런 효율은 괴물이 아니면 어림도 없어! 젠장, 뭐 이런 이상한 놈을 다 낳은 거야!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무슨 소리인가 상관없이 투란은 계속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눈을 번뜩이면서 하얀 구슬 더미를 열어젖혔고…… 마침내 엉덩이 부분부터 구슬 형상을 빚어내고 있는 조그마한 거미의 형체를 찾아냈다. 세모꼴로 주둥이는 뾰족하고 머리 양쪽은 무슨 뿔처럼 보이는 거미는 자신의 엉덩이에서 연쇄적으로 생성되는 하얀 구슬을 여덟 개의 다리로 부지런히 더듬는 자세였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하며 가늘게 떠는 모습이었다.
그 머리에 촉촉한 혀가 닿으니, 역시 머리부터 거미의 몸이 연이어 부풀어 올라 작은 토끼 크기로 순식간에 커졌다!
―이런 미친―! 본체까지 해면섬유질이냐!
‘왜 그러는데?’
혀끝에 걸린 거미의 가죽, 드레이크의 비늘마저 핥아 갈아버린 고르고니아의 혀가 긁어 낸 조각이 투란의 가슴 언저리에 발렸다. 핏빛 고리가 거기에 반응하려는 듯이 빛나면서 길게 막대처럼 광채를 뿜어냈다. 그 광채가 거미의 뜯긴 머리에 닿았고…….
―이 해면섬유질로 네 몸 크기를 형성한다면, 그러고 나서 부풀어 오르면 몰튼노트 더 기간틱의 덩치까지 커질 거다! 이런 비율은 말이 안 된다고!
‘……괴물이면 된다며? 얘, 몬스터라고. 그보다 여왕은?’
마음 한구석으로 드라고니아와 떠들면서도 투란의 정신은 핏빛 고리에 집중했고, 절규하는 마물을 삼켜갔다. 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드라고니아도 투덜거림을 멈추고 답한다.
―찾았어. 레온, 아라크레온이다. 뭐, 그래도 셋 중 제일 상대하기 쉬운 여왕이야.
‘글쎄…… 이런 걸 낳는 여왕이 쉬울까.’
투란은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