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1)
Chapter 93. 여왕과 왕 Ⅰ
투명하게 변해서 사라지는 거미, ‘절규하는 마물’이 일컬어지던 괴물이 남긴 것은 가시처럼 돋아났던 바늘 무더기뿐이었다. 하얀 구슬도, 부풀었던 거미의 형상도 모두 투명하게 스러져 갔다. 남겨진 바늘 무더기는 하얀 구슬이 잔뜩 오그라든 탓에 몇 층으로 얼마나 많이 쌓여 있던가를 증명하듯이 수북하게 바닥에 떨궈진 채였다.
한데 바닥에 깔린 잉크 속으로 바늘이 잠긴가 싶은 순간, 곧바로 삐죽한 바늘이 쑥쑥 잉크 사이로 돋아나는 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게 가죽이었어?’
새로운 가죽을 맛본 ‘파라블랙․잉크’가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내는 상황을 느끼면서, 거의 생각 없는 본능에 따른 결과물을 보면서 투란은 의아해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하얀 공의 모양은 실뭉치였고, 그 안에 불쑥 튀어나온 것이 괴물 거미의 가죽이라니…… ‘절규하는 마물’이라 불리며 거미 군단 속에 있으니까 거미라고 추측만 되었던 녀석이라 정확한 모양조차 알려지지 않았더니, 이모저모로 신기하잖은가.
게다가 문장 속의 풍경을 통해 본 생김새는 또 다르기도 했으니―
―후반신(後半身)이 조금 길고, 엉덩이 혹은 꽁지라 불릴 부분에 알을 잔뜩 매달고 있는 것처럼 하얗게 공 모양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점을 빼면 의외로 거미의 모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을 굳이 따지자면 세모꼴의 머리, 입이 삐죽하고 뒤편으로 짧은 뿔처럼 세모꼴의 두 꼭지가 삐져나간 듯이 보이는 것과 오물거리는 입 아래턱에 노골적인 대롱 모양의 구멍이 달려 있는 정도였다. 이 묘한 대롱 아래에서 맨 앞다리 한 쌍, 제일열(第一列)이라 부를 만한 두 발이 마주하고 비벼 대는 손처럼 바쁜 시늉을 보였고 제이열(第二列)의 한 쌍 다리는 발톱 아래에 대롱을 감춘 듯한 꼴로 아주 느긋하게 늘어뜨린 채였다. 셋째, 넷째 쌍의 다리는 가는 털이 미세하게 달린 채로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한 촉각으로 느껴졌다.
“꽤 멀쩡하네? 크기도 원래 사람 정도 되는 모양이고…….”
꽁지에 매달린 공에 돋은 바늘 모양의 가죽과 다르게 몸의 다른 부분은 멀쩡하니 외각(外殼)의 가죽인 듯이 보였다. 그 때문에 투란이 이렇게 중얼거리니…….
“뭐가 멀쩡해! 그 사이즈가 그렇게 줄어든다는 점에서 이미 제대로 몬스터라고!”
드라고니아가 여전히 무슨 해면섬유질의 효율, 비율을 생각하는 듯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투란은 피식 웃음을 흘리는 말로 이를 받는다.
“누가 몬스터 아니랬어? 잡을 때 본 모양은 완전히 공에…… 땡글땡글한 알에 쌓인 꼴이었잖아. 이렇게 잡고 보니, 조금 이상하게 생긴 거미 같지만…… 이거 작아지기는 해도 커질 일은 없어 보이잖아? 그러니까 괜한 생각은 안 해도 될 거야.”
드라고니아가 거대화할 가능성을 두고 투덜거린다는 점을 떠올리며 다독이는 소리였다.
“그건 그 거미가 하던 대로 그 힘을 사용할 때의 이야기지! 몬스터 로드가 그 형태, 성질을 응용할 경우에는…….”
“없어도 이미 몰튼노트 더 기간틱 덩치는 확보했잖아. 이제 와서 새삼스럽긴!”
“……더 기간틱이 돼야 한다는 최소한의 제약이라도 있는 거잖아!”
“음? 흠…….”
투란은 갸웃거리는 시늉을 해 보이면서 드라고니아의 말을 되새겼다.
하지만 뭔가 감이 오질 않으니―.
―꾸물꾸물.
시커먼 잉크가 은은한 금빛에 굴곡진 형상을 드러내면서 움직였다.
주변을 봉쇄했던 상황을 풀고, 다시 동굴에 깔린 모습으로!
어둠이 짙게 깔린 채였고, 고르고니아의 황금 모피(毛皮)가 은은하게 빛을 내는가 싶은 광경이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동자에 맺혔다. 이는 투란을 살짝 갸웃하게 했다.
‘어라? 털빛에 망가지지 않잖아?’
여린 빛으로도 금세 부서져 나가는, 짙은 어둠 속에서만 보는 이상한 도마뱀의 눈동자가 부서지지 않고 있었다. 뭔가 색다른 능력이 생긴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황금 모피의 털에서 흘러나오는 여린 황금색 광채는 눈에 보이는 빛이라도 자연적인 광원(光源)과는 다르기라도 하다는 듯했다.
‘원래 이런 거였나? 갑자기 이러는 건가?’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발을 질질 끌면서 일단 앞으로 나아갔다.
오랜만에 고르고니아의 형상을 갖추고 나니 뭔가 느긋하게 이 어둠을 감상이라도 하고 싶다는 기분이었다. 이 황금색 광채 가득한 모피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도 덩달아 피어났고!
발목까지 시커먼 잉크에 잠긴 듯한 꼴로, 바닥에 깔린 잉크를 질질 끌어 앞으로 밀어내고 뒤에서 당겨 주변을 덮는 묘한 상태로 투란은 동굴의 한 굽이를 돌았다. 구불거리는 동굴이 어디로 이어지든, 일단 더 깊이 들어가면서 마중 나올 뭔가를 기대하는 기분이었다.
이에 호응하듯, 오래지 않아 뭔가 나왔다.
처음에는 어둠 속에 우뚝 선 듯한 형체에 투란이 가늘게 감긴 듯한 눈길을 던져 봤다. 바닥에서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알이 데굴거리며 그 형체가 지닌 대강의 모습을 재빨리 확인하고 있으니, 굳이 감긴 거나 마찬가지인 고르고니아의 눈으로 볼 필요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뿔수리의 눈알도, 사람의 눈알도 몇 쌍으로 살짝 깔아 놨으니 갑작스러운 빛이 터진다 해도 여전히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응?’
앞에 있는 형체는 꿈쩍도 않는데 뭔가 와서 툭 치는 느낌이 있었다.
‘디퍼 다크 리저드’의 독특한 시각에 분명히 뭔가 보였다.
뜬금없이 허공을 그으면서, 어슬렁거리는 투란의 어깨부터 등짝까지 세게 짓누르려는 듯이 두들겨 온 뭔가였다. 하지만 그 기묘한 타격 이후에는 다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때리는 뭔가의 느낌과 타격의 흔적만 남기고 간 셈이었다.
―바위라도 뭉개서 절단 낼 정도의 일격이었어! 스테노아의 황금 모피를 두른 채라서 그런 둔한 느낌만 남은 거야! 넋 놓고 있지 말라고! 게으름뱅이 고르고니아의 흉내 낼 때가 아냐!
‘에? 그랬어?’
투란은 어슬렁거리면서 앞으로 다시 한 걸음 내디디며, 앞에서 꼼짝도 않는 어스름한 형체를 이모저모로 뜯어봤다. 고르고니아의 뜨다 만 눈에는 대강 그림자 같은 것이 거기 우뚝 서 있구나 싶었지만 ‘파라블랙․잉크’에 의해 형성된 눈동자 무리는 제법 그럴듯하게 그 형체를 파악해 내고 있었다.
네 개의 다리를 갖춘 둥글둥글한 아랫몸통, 그 위로 윗몸통은 어딘가 사람과 닮은 듯도 하면서 비비나비처럼 우락부락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다. 아래에 다리가 넷 달린 것처럼 위에도 축 늘어뜨린 다리……라기보다는 팔인 느낌이 강한 것이 네 가닥 갖춰진 채였다. 키는 대강 한 3미터는 넘을 듯 보이니, 절대로 작은 놈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머리통이 아래로 늘어진 한 다발의 수염을, 위로 길게 흩어지는 난발한 머리카락이 잔뜩 난 몰골이 좀 희한한 느낌이었다.
과연 저게 머리통인가? 이놈도 거미의 군단장 클래스인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투란은 주의를 기울이며…… 뭔가 나른해서 이깟 놈이 뭘 하든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새록새록 피어났지만, 그래도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움직였다.
어쨌든 뭔가 묵직하게 때린 것이라면, 이 어스름한 녀석이 한 짓이 아닐까 싶은데…… 투란이 내딛는 걸음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고, 계속 움직일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타격도 멈추지 않는다?
툭, 투툭, 툭툭.
오히려 묵직하니 투란을 건드려 오는 느낌은 점차 빠르고 많아지는 중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투명한 느낌이잖나? 홀시딘이 설명했던 첫 번째 거미 군단장, 그게 이런 느낌이 아닐까?
드라고니아가 꽤 으르렁대듯 말했다.
프로브에도 제대로 탐지되지 않는 탓에 짜증이 난 낌새였다.
‘그래? 그렇다면…….’
투란은 발끝을 살짝 튕기며 앞으로 느릿하니 한 걸음 내디디며 두 발에 힘을 줬다. 두 발의 발가락 끝과 뒤꿈치를 을 중심으로 시커먼 잉크가 높이, 허공에 길고 넓게 가는 실 가닥처럼 뿌려졌다.
두들겨 오는 것은 곧바로 뿌려진 잉크에 닿았고, 그대로 황금 모피와 부딪히더니 그대로 멈추며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리면서 부서졌다.
‘응?’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잉크에 의해 그 움직인 궤적이 드러날까 싶은 순간, 닿았던 부분을 떼어 내고 도망친 듯했다. 그런데 대체 뭘 남긴 것인가?
―정말 크리스털 같은 껍질이군, 그런데 부서지는 꼴이 꼭…….
‘그래, 정말 그러네.’
드라고니아가 짚는 바에 투란도 동의했다.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크리스털의 잔해, 마치 몬스터 로드가 그 정수를 흡수한 다음에 몬스터의 잔해가 보이는 광경과 비슷했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으니, 깨끗하게 티끌이 되어 사라지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크리스털의 조각 여럿이 분명하게 잉크 위로 떨궈지고 있었다.
투란은 느릿하니 황금 모피의 금빛 털이 찰랑이며 번진 두 손을 내밀었고, 몸에 살짝 힘을 줬다. 고르고니아가 어딘가를 걷다가 뭔가 부딪혀 오면 느슨하게 힘을 줘서 버티는 것처럼!
그 결과, 섬뜩한 울림이 어두운 허공을 채웠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던 어스름한 형체가 곧바로 움직였다.
‘음? 어?’
투란은 상황이 격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두 마리였군!
드라고니아도 이제는 단숨에 결론짓고 있었다.
어스름한 형체…… 그 이상해 보였던, 머리카락과 수염을 잔뜩 늘어뜨렸던 머리통이 빙글 돌면서 수염과 머리카락 다발이 좌우로 뻗어 나간 꼴이 되었다. 그 중심을 잡고 있는 가늘고 긴 테 같던 부분도 당연하게 위아래로 길게 자리를 잡았고, 벌어졌다. 입을 연 듯한데, 대롱 속에 촘촘한 이빨이 나선으로 자리 잡은 듯한 모양이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입김이 ‘디퍼 다크 리저드’의 독특한 시각에 포착되며 드러난 대롱 같은 입 안의 몰골이었다.
그 입을 드러내고, 머리통을 옆으로 누이며…… 사실은 이제껏 눕혀 놓던 머리통을 바로잡은 듯한 어스름한 형체의 네 팔이 바람을 가르듯 움직이며 그물질을 하는 순간은 투란을 묵직하게 때리던 것이 격렬한 반발력에 튕겨 나가면서 허공에 크리스털 조각을 잔뜩 뿌리면서 벽과 격돌하고 다시 튀어나올 때였다.
그 그물질에 걸려 여태 제대로 포착되지 않던 뭔가가 대롱거리며 매달린 듯한 모습의 윤곽을 드러냈다. 바르르 떠는 그물의 심한 진동이 리저드의 시각에 제대로 보였지만, 정작 거미줄에 감긴 녀석은 거미줄에 닿은 부분의 윤곽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두 마리가 협력 중이었다 이거지?’
―투명…… 이래저래 괴상하게 안 걸리던 녀석의 발판을 저 꼼짝 않는 척하던 놈이 만들어 뒀던 모양이야. 조금 전의 반발에도 투명한 녀석 쪽이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실로 감아 충격을 덜어 내고 구해 낸 거다! 이거, 생각보다 귀찮은 싸움이 될 것 같…….
‘귀찮은 거 싫어!’
투란은 윤곽이 오그라들며 헐렁해지는 꼴을 알아차리면서 소리 없이 외쳤다.
어쩐지 이대로는 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채로 와서 때리고 갈 때나 느낄 수 있는 녀석이 더 귀찮게 숨어서 한 방을 노릴 듯하고, 이제 제대로 움직이려고 아랫몸통을 늘어뜨린 채로 접고 있던 네 발을 쭈욱 밀어 올리면서 일어서는 놈이 그 틈을 만들기 위해 달려들 듯했다.
두 마리가 그렇게 덤빈다면, 역시 이모저모로 상황이 귀찮아질 듯하다!
단번에 해결하고 싶다…… 둘을 단숨에 때려잡고 싶다!
소소하고 작은 갈망이었지만, 이는 분명하게 투란의 마음을 울렸고 고르고니아의 본능을 움직였다.
소리 없이, 감긴 듯한 고르고니아의 눈 사이에서 살짝 위로 황금빛 찰랑이는 털 가닥…… 머리카락이 풍성하니 늘어진 듯한 틈새로 별빛 한 가닥이 튀어나왔다. 굵직하고 길게!
별빛은 한순간에 헐렁해지고 있는 윤곽의 다른 한쪽, 조금 팽팽하게 당겨진 쪽을 꿰었고…… 네 팔, 네 다리를 휘두르며 좌우로 길게 늘어진 한 다발의 머리카락인지 수염인지 모를 것을 펄럭대는 놈도 관통해 지나갔다.
이 별빛에 곧바로 호응해서 시커먼 잉크가 발아래에서, 심한 요동과 함께 번져 가며 벽과 바닥을 채우며 투란의 앞으로 몰려 나갔고 출렁거리며 저편에 도달한 별빛의 끝자락에 얽혀 들며 장막을 드리웠다.
황금 모피로부터 느릿하면서 무거운 파동이 퍼져 나갔고, 길게 뻗었던 별빛이 돌아오며 꿰어 있는 두 마리까지 투란 앞으로 당겨졌다. 별빛 끝에 맺힌 시커먼 잉크 줄기는 이미 질기고 두꺼운 가죽이 된 채로 관통당한 두 마리를 엮는 매듭이 되어 있었다.
―투란, 너 이거?
‘오러 몽거보다 약하구먼! 아, 귀찮지 않게 금방 해결했다! 일단 삼켜 놓고, 자세한 거는 나중에 천천히 살펴보자고!’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뿔이 관통해 놓은 구멍으로 시커먼 잉크가 흐르고 질긴 가죽이 남겨졌다. 그 가죽은 투란의 몸으로도 이어져 끈적하게 흐르는 잉크를 새로 흘렸고, 시커먼 잉크 속에서는 핏빛 고리가 번져 가며 두 마리 몬스터의 뚫린 구멍 속으로 파고든다.
―너, 이렇게 무모하게―!
투란이 단숨에 두 마리 몬스터의 정수를 멋대로 삼키는, 뭔가 굉장히 귀찮아서 일을 한꺼번에 몰아 해치우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놀라 뭐라 외치는 소리를 지르는데, 투란은 뇌리를 울리는 그 소리보다 앞에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에 흠칫하고 있었다.
댕그랑, 철컹!
‘뭐래, 이거? 웬 쇳소리?’
어스름한 형체가 부스러지면서, 그 몸통 언저리에서 뭔가 잔뜩 흘러내리며 어두운 동굴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갑옷? 방패!
드라고니아는 새삼 포착된 것에 대해 놀란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