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2)
“밝혀라.”
아무래도 그 윤곽, 형태, 울림이 전혀 예상했던 것이 아닌 탓에 투란은 마법의 빛을 불러내서 봐야 했다. 그렇게 순간적인 기분으로 아무 생각 없이 불러낸 마법의 빛은 곧바로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알을 펑펑 뭉개 버렸고, 잔뜩 실눈처럼 감고 있던 뿔수리의 눈과 사람의 눈, 여러 가지 다른 눈동자를 부릅뜨게 했다.
‘으아, 실수다. 황금 털은 그냥 어둠 속에서 보이는 거였나…….’
시커먼 광택의 잉크가 찰랑거리는 와중에 시리게 느껴지는 미묘한 고통에 투란은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은 앞에 늘어진 괴상한 철갑옷, 방패…… 구겨서 박아 놓은 듯한 검과 창 따위가 매끈하게 다듬어진 괴상한 쇳덩이 앞에서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는 거대한 망토처럼 뒤편에 둘러 있었고, 다른 넷은 거미의 몸통을 둘러싼 채로 다리 사이에 매달려 있었던 두꺼운 철판(鐵板)이었다. 우악스럽게, 억지로 구겨서 몸통에 매달고 짊어지고 있던 것으로 보였다.
―투란, 저 갑옷…….
‘응? 철판 갑옷이잖아? 왜?’
―안에 인간이 담긴 채로 압착(壓着)한 거다.
‘……에?’
투란은 구겨진 철판, 원래 철갑옷이었지만 잔뜩 납작하게 구겨진 것을 다시 살펴봤다. 드라고니아가 지적한 것처럼, 그 면갑(面甲) 틈새로 뭔가 심하게 마르고 썩은 듯이 덜렁거리는 것이 들러붙고 매달린 듯한 꼴이 보였다.
‘저게…… 시체라고?’
―완전히 뭉개서 짜내고 말린 탓인지, 제대로 썩지도 않고 섬유층 형태로 남은 모양이다.
‘이거 대체 뭔 거미야?’
어이없어 투란은 문장의 풍경 속에서 새로 삼킨 괴물 거미를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보이드에 휘감긴 뭔가가 텅 빈 듯이 보였다.
투란은 그 ‘시각’적인 형태에 그것이 진짜 비었다고 속지 않았다.
그 투명한 형태가 거기 있고, 꿈틀거리면서 보이드의 속박에 버둥거리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미세하고 흐릿하다 해도, 이 풍경 속에서 투란은 그 정수(精髓)를 분명히 알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정말로 몸으로 때우는 타입인가…… 근데, 얘는 대체 뭐야?”
투명한 거미에 대한 관심을 바로 돌려서 투란은 주렁주렁 매단 쇳덩이 따위가 전혀 없는…… 거미처럼 생겼지만 어딘가 이상한 녀석을 살폈다. 질기고 단단한 각질이 그 다리를 안팎으로 감싸고 있었고, 둥글둥글한 아랫몸통과 우람한 윗몸통은 이미 밀착한 갑주를 두른 듯한 몰골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쇳덩이를 몸에 매달고 있었다.
드리고니아가 별빛 무리를 번쩍거리면서 말한다.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삼켰잖아! 삼켜 놓고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냐고 뒤늦게 따지나! 몬스터 로드는 관찰이 중요하다며! 역병의 수해에서 한번 독하게 골탕 먹고서 또 같은 짓을 왜 하는데!”
“어? 아니, 그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지! 저놈 때문이라고, 저 망할 새끼 뱀!”
투란이 바로 ‘천칭’에서 뻗어 나간 긴 가지 한 곳을 짚으며 말했다.
드라고니아는 곧바로 반발하는 소리를 천둥처럼 울려 낸다.
“몸길이 이십오 미터에 몸통 최대 지름이 일 미터하고도 이십 센티미터인 뱀을 놓고 새끼, 새끼 하지 말라고! 아무리 다 자라지 못한 채로 몬스터로 변이한 놈이라도 해도 저건 뱀의 왕족이다! 역병의 수해에서 역병을 버티면서 살아남은 괴물 뱀이잖아! 저걸 잡겠다고 허튼짓하다가 그 배 속에 있는 엉뚱한 놈들을 잔뜩 삼켜서 저 난장판을 만든 난리를 떤 건 네 실수가 맞아!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변명하려 들지 말라고!”
“아― 놔아―! 허물 벗는다고 내장까지 벗어 젖히고 이마빡 꼭지에서 튀어 나가 새 몸을 키우는 괴물 편을 왜 드냐고! 너도 그거 볼 때까지 저게 그런 놈인 줄 몰랐잖아! 그리고 뱀의 왕족은 무슨! 저놈 쬐그맣잖아! 저거 두 배는 넘어야 제대로 큰 놈이지! 내가 봤다니까!”
“거짓말! 뱀의 가죽에 드러난 무늬로 나이랑 크기가 보이거든? 저거보다 몇 미터 더 길고 굵었을 뿐인데 뭘 두 배로 공갈을 치고 있어! 저거랑 싸워 봐야 질 놈이 뻔하잖아!”
“아, 좀 믿어 봐!”
투란은 투덜거렸다.
하지만 어렴풋한 기억은 투란에게 드라고니아의 분석이 아주 냉정하고 정확할 거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굉장히 크고 굵은 채로 미쳐 날뛰던 거대한 뱀…… 얼핏 봐도 수십 미터였던 그놈, 먹을 것이 되어 주고 가죽을 남겨 준 그 마수(魔獸)는 역병의 수해에서 만난 괴물(怪物)보다 성장한 뱀의 왕족이지만, 막상 둘이 실물로 맞닥뜨려 싸운다면 투란이 새끼라 부르며 짜증 부리는 새끼 뱀이 몇 미터가 작은 크기에도 큰 놈을 잡아먹을 것이라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서 뭘 믿어, 믿기는!”
드라고니아가 다시 문장의 풍경을 흔들어 대는 듯한 외침으로 으르렁거렸다.
그 외침이 가리키는 광경, 몸을 돌돌 말아 머리를 파묻고 잠든 듯한 뱀의 형상을 받쳐 주는 큰 원반 아래를 느끼면서 투란은 잠깐 말문을 닫았다.
역병의 수해에서 전혀 역병 들지 않은 모습으로 누비는 거대한 뱀을 보고, 며칠 밤을 몰래 그 행적을 따라다녔다. 대체 어떻게 역병을 이겨 냈는가 궁금해서!
그 호기심은 투란보다 드라고니아가 더 짙고 강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의 호기심은 순수했고, 투란은 몬스터 로드로서 뱀이 헬임프의 불꽃과는 다른 방식으로 역병을 견딘다는 점에 욕심을 품었다. 마수라 하더라도 그 살점과 피를 통해 알아내고 싶었던 투란의 욕심과 호기심 가득한 추적은 결국 뱀이 아주 괴이(怪異)한 상태인 것을 알아냈다. 저 뱀은 역병 들린 짐승, 몬스터를 거침없이 잡아먹었고 온 몸에 역병을 두른 몰골이 되었다가 몸을 벗고 새로 키워 내고 있었으니…… 역병의 수해 안에서 역병을 요리조리 피해 내며 살아남은 몬스터인 셈이었다.
그 때문에 투란은 더욱 맹렬하게 뱀을 잡으려 했고, 몸을 벗어 버릴 때…… 온몸이 역병에 물들어 망가지다가 새 몸의 씨앗을 뱉어 내는 순간을 노리고 덮쳤다. 그래서 그 정수를 삼켰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랑 다르지! 보라고, 정신을 잃고 엎어졌냐? 아니잖아! 봐, 두 마리 삼켰어도 깔끔하게 나눴잖아! 완전히 깨끗하게 갈라서 따로 놓고 보는 중이잖아! 그때처럼 몇 마리인지 세지도 않고 날름 삼킨 것도 아니고 말이야! 다르다고, 그때랑!”
숨을 잠시 골랐다는 듯, 투란은 반박했다.
드라고니아는 대답 대신, 뱀의 아래쪽에 별의 광채를 흩어 뿌리면서 그때를 되새겨 주겠다는 듯이 밝혀줬다.
투란으로서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트리 트롤, 완전한 역병인 것처럼 역병을 옮기고 다니는 놈!
키클롭스, 뼈와 힘줄이 드러난 부분이 오히려 더 우람한 변종(變種)!
역병에 들린 잔나비는 그나마 귀여웠다.
뭐가 섞인 건지 겨우 알아냈던 무쇠 턱 ‘덫’ 표범의 돌연변이(突然變異)! 이놈은 벌레의 날개와 척추에서 갈라져 나온 전갈 꼬리 같은 괴상한 뼈의 촉수 한 가닥을 지닌 채로 점 무늬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온몸을 새까맣게 물들여 완전히 검은 표범처럼 되기도 하는, 사실은 검은 표범이 아니었나 싶은 요상한 놈…… 마수인 무쇠 턱 덫 표범이 어쩌다 저렇게 변했는가, 드라고니아가 분석한다고 며칠 설치기도 했다!
뱀이 이런 것들을 잔뜩 삼킨 채로 소화하고 있을 때, 투란이 덮쳤다.
그리고 그때…….
“아, 지난 일은 치우고! 지금 할 일부터 해야잖아! 지금 역병 들린 녀석들 감상할 때가 아니지!”
투란은 뱀의 배 속에서 나온 녀석들 아래쪽을 훑듯이 짚으면서 외쳤다.
정상에 뱀을 뒀고, 그 아래에 뱀의 배 속에서 소화되던 놈들을 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역병의 수해에서 투란이 밤새 홀로 몰래 사냥했던 괴물들, 호기심과 무관하게 미리 가야 할 길목을 가로막으려 들던 쉽지 않아 보이던 녀석들이 그 아래로 주렁주렁 늘어져 매달린 꼴이었다. 거꾸로 매달린 신장 20미터의 거뭇한 거인을 기둥 삼아 두른 장식(裝飾)처럼!
“하아…… 투란, 얕보지 마라. 여신의 타락한 아이들은 어디 있더라도 위험한 놈들이고, 그 본능은 아주 파괴적이란 말이야.”
“알았어, 조심한다고! 그보다 이 철갑 두르는 녀석은…… 역시 나중에 파악하고 지금은 조금 더 파고들자고!”
투란은 ‘천칭’의 정상에 나란히 놓이며, 아직 분류하기 전인 거미의 몬스터 에센스를 조금 더 강하게…… 아예 잔소리를 봉쇄하겠다는 듯이 한 겹 더 보이드로 둘러치면서 마음을 돌렸다―.
―철컹.
“조금 긴장해 볼까?”
투란은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곧 시커먼 잉크가 꿈틀거리면서 여우의 머리를 그려 냈다.
여우의 머리가 이리저리 잉크 안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뭉개진 쇳덩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쇳덩이 주변으로 잉크가 찰랑였고 잉크 속의 무늬인 여우가 움직여 쇳덩이를 집어삼키는 시늉을 하는 순간, 거미가 걸치고 있던 쇳덩이 무더기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때도 금괴를 두고 홀가분하게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정신 줄 놓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지.’
―그냥 방심하지 않았으면 충분한 일이었잖아! 부담 없이 움직인다고 방심하지 않으면 넌 삼킨 몬스터의 혼란에 빠져들지 않는다고!
‘알았다고!’
결국 잔소리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듯, 투란은 투덜거림을 멈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발아래, 발목까지 잠기게 하는 시커먼 잉크를 매단 채로 이제는 마법의 빛으로 앞쪽을 훤히 밝혀가면서 어둠이 깨져나가는 듯한 지하를 두리번거리는 태도로.
그러다가 투란이 이상한 느낌을 알아차린 것은 다시 휘어진 동굴 한 굽이를 돌아선 다음이었다.
‘바람이 거센데?’
넓어졌고 높아지면서 살짝 아래를 향한 듯이 비탈진 형태의 새로운 동굴에 들어선 느낌과 함께, 몇 걸음 딛자마자 몸을 밀어 오는 세찬 바람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투란의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바로 혀를 차는 소리부터 뱉는다.
―바람? 뭔 소리야! 며칠 전에 당해 놓고 또 헷갈리냐!
‘응? 며칠…… 전?’
투란은 나무 사이에서 바람이 꽤 짙다고 느꼈던 때를 바로 기억해 냈다.
그 바람은 바람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거미줄이었고 바람이 살갗에 매달리듯이 스쳐 간다고 여길 때 온몸이 거미줄에 돌돌 말리듯이 덮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야말로 바람결에 섞여 날아드는 거미의 그물질이었다.
―여기, 이 지하에는 자연스러운 통풍 따위는 없어! 바람 한 점 없다!
드라고니아가 다시 확인해 준다는 듯이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치만…….’
투란은 슬쩍 몸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내디뎠다.
바람결이 몸에 닿자마자 갈라지면서 주변으로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감기고 어쩌고 하는 부분은 없었다. 그야말로 몸을 밀지 못하면 스스로 흩어지며 주변으로 흘러가는 바람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고르고니아의 몸이 아니었다면, 너 지금 잘 다져진 고깃덩이 꼴이라고! 이건 그물로 감싸 말아 버리려는 게 아니야. 실로 절단하겠다고 날아드는 거라고.
‘응? 아니, 감싸는 실이랑 절단하는 실은…… 두 성질이 합쳐진 거라고?’
마수인 거미를 상대할 때 알아냈던 바가 전혀 쓸모없게 된 것을 투란은 한 박자 늦게 실감하고 깨달았다. 이 지하 공동 속에서 만난 거미는 아라크레온을 정점으로 하는 괴물 거미 아라크녹스, 몬스터였다. 그렇다면…….
‘……어디 있지? 어쨌든 조종하는 놈이 있을 텐데? 실이 저절로 움직이나?’
마수인 거미 무리를 통해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혀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면서 투란은 일단 마음을 비웠다. 보이드에 집중하듯, 텅 빈 마음으로 감각을 가다듬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한다.
―바닥보다 아래, 땅속에 숨은 채야. 앞쪽…….
거리까지 가늠해 주는 말을 들으면서 투란은 걸음을 조금 서둘렀다.
슬그머니 두 손을 내밀고 단숨에 눈을 부라려 잡아 버릴 생각으로!
하지만 그렇게 걸어도 고르고니아의 황금 모피에 감싸인 두 다리는 시커먼 잉크에 발목까지 잠긴 꼴을 유지한 채로 꽤 느릿느릿 내디뎌졌고, 몇 초 후에야 몇 미터를 움직였다.
―앞 일 미터 아래에…… 응?
아예 파악해 낸 정보를 시각화(視覺化)해서 투란의 눈에 비춰 주기까지 하려던 드라고니아가 살짝 놀란 듯이 말을 멈췄다. 투란은 아주 담담하게 비명을 질렀다.
“어? 으어?”
땅이 사라졌다.
벽이 멀어졌다.
단단하게 조여져 있던 매듭이 갑자기 풀리면서 힘을 잃고 흩어지는 광경이 뿔수리의 예리한 시각 속에 아주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음, 함정이었군. 조심해라. 창다리 지닌 거미가 바닥에 잔뜩 누워 있구나.
‘너, 이―!’
갑자기 아주 느긋하게, 저 멀리 강 건너에서 구경하듯이 중얼대는 드라고니아를 향해 투란은 아주 순수하게 욕설을 뿜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보다 뻔뻔하게 투란의 뇌리에 중얼거리니…….
―중간에 매듭을 두고 움직이고 있었나 보군. 함정 파고 실을 다루는 놈은 더 앞쪽이다. 응? 그 창날 같은 다리가 많아 봐야 스테노아의 모피에서 털 한 가닥도 못 뜯어낼 텐데 뭘 화를 내나? 이 정도 함정은 애교로 넘기라고……. 감지 안 되는 위장 그물이 있는 거는 너도 알고 있었잖아?
‘이 흉악 치사 뻔뻔한!’
멈추지 않는 욕설이 마음속에 샘솟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함정에 대응해야 하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