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3)
그저 거꾸로 꽂혀 기다리는 창이 아니었다.
드러누운 거미가 창 같은 다리를 쭉쭉 내뻗어 꿰려 한다는 것을 과시하듯, 쏟아지는 잉크 사이로 껌벅이는 눈알을 열심히 찌르고 있었다. 눈알부터 파내고 그다음에 몸통도 완전히 꿰어 버리겠다는 듯!
이에 대항하여 잉크 속에서 가죽이 울퉁불퉁하니 솟아났고, 눈알이 감기면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담백한 광채가 주변으로 번져 가면서 어둠을 밀어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거미의 다리가 생긴 그대로 창처럼 찔러 왔고―…….
스륵, 스륵!
―황금 모피에 닿으면서 미끄러졌다.
퍽.
바로 아래에 드러누워 네 쌍, 여덟 가닥의 다리를 모아 찌르던 거미 위로 투란이 떨어졌다. 둔한 소리가 울리면서 여덟 개의 다리가 밀려나며 거미의 몸통이 푹 꺼지듯이 오그라들었다.
‘거미 아래 또 거미가 있지는 않군.’
투란은 바닥에 가득한 거미가 몇 층으로 쌓이지는 않은 것에 살짝 안도하면서 잽싸게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사방에서 거미들이 몸을 뒤집으면서 창질을 해 왔다.
바닥이었던 곳, 벽이었던 곳에서는 느슨하게 늘어진 채로 어딘가를 향해 말려 가는 거미줄이 팔랑거리는 꼴이 보였다.
얇은 막처럼 쳐진 거미줄, 마력 차폐와 감각 교란을 일으켜서 미리 알아낼 수도 없게 하는 그물의 함정은 결국 바닥 가득한 거미 떼와 창질뿐인 듯싶은데…….
―벽에 들러붙은 녀석들한테도 주의해라.
드라고니아가 경고했다.
‘벽?’
투란은 원래 있던 벽에서 십몇 미터는 더 멀어진 벽을 다시 봤다.
암벽의 질감이 선명한데, 그 암벽이 꿈틀거리면서 곳곳에서 작은 입을 열며 뭔가 게워 내려는 시늉을 하는 것이 보였다!
‘아, 그놈들인가…….’
실뭉치를 이용한 화살을 토해 내는 놈 말고, 아예 배 속에서 소화액을 끌어내 뿜어내는 마수 거미가 있었다. 용해성(溶解性)이 꽤 지독해서 쇳덩이든 바위든 먹어치울 수 있을 싶은 마수였다. 영양가가 없어서 정말로 먹어치우는 일은 없을 듯했지만!
치익, 칫, 칫!
벽에서 희뿌연 물방울이 날아왔다
‘응? 아니, 저거 자기네도 못 버티는 용해액 아니었나?’
투란이 의아해하는 순간, 긴 다리로 창질 하던 거미 몇 마리가 희뿌연 물방울에 맞고 발버둥 치며 옆으로 허우적대며 뒹구는 꼴이 바로 보였다. 가죽에 구멍이 바로 뚫렸고, 흐르는 물방울에 닿은 부분이 확실하게 녹아 뭉개지는 꼴이었다.
아무래도 몬스터에게 지휘당하는 마수답게, 주변에 동족이 있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조금 묘하군. 알에서 깨어나면 보호 대상이 아닌가.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문을 품은 듯이 중얼거렸다.
‘에잇!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냐! 함정 파 놓은 놈, 어딨어? 이놈들은 함정 속에서 대기하다 덤비는 거고, 어떤 놈이 벽이랑 바닥을 꾸며 놓은 거야? 어딨어?’
빙그르르, 제자리에서 돌면서 날아드는 다리, 용해액 방울 따위는 싹 무시한 채로 투란은 이 함정을 주도한 거미를 찾으려 했다. 거미의 함정에는 상당히 익숙해져서 이모저모로 대비했는데도 이 함정을 미리 알지 못했던 까닭, 마수의 수준에서 준비된 함정이 아니라는 점을 느끼면서 또 무슨 짓을 할까 생각하니 서둘러 찾을 필요가 있었다.
―가던 방향, 그 벽 위편이다. 위장 그물을 거두고 있는 거미는 그쪽이다. 응? 또 뭔가 하려는 모양인데?
드라고니아가 주변의 거미줄, 드러난 그물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말했다.
‘뭘 또…… 엥?’
뭘 하려는가 묻던 투란은 앞쪽이 무너지는 것을 확인했다.
드라고니아가 지적한 놈이 붙어 있다는 암벽이 갈기갈기 찢기며 파편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돌로 치려는 건지, 그대로 깔아뭉개려는 건지 모르겠군.
꽤 태평하게 상황을 보는 말이었다.
‘그거나 그거나!’
투란은 두 발에 힘을 줬다.
순간적으로 무릎부터 발끝까지 두툼하게 잉크가 감기며 가죽이 되었고 카프리곤의 발목과 발이 형성되었다.
쿠웅!
격한 발 구르기와 함께 금빛 털이 살랑거리는 바위처럼 투란은 암벽을 찢고 내던지는 한 마리를 향해 뛰어 날았다. 날아드는 창 같은 다리, 쏟아져 오는 바위 틈새로 튀는 용해액…… 모든 것이 금빛의 털이 살랑거리며 뿜어내는 힘에 밀려났다.
하지만 투란은 원하던 괴물 거미에게 닿을 수가 없었다.
2, 3미터 앞에서 대롱거리는 꼴로 허공에서 바람이라도 타고 있는 꼴이 되었을 뿐이었다.
‘뭐야, 안 끊어지나?’
시각적으로 거의 포착되지 않는 거미그물에 걸린 것을 알아차리면서 투란은 의아해했다. 바람결 같던 거미줄은 결국 고르고니아의 황금 모피와 닿으면 밀려나고 끊겨 흩어졌다. 한데 이번에는 왜 그 거미그물에 걸린 파리꼴이 되었는가?
―계속 후려치고 있어서 그래. 한번 쳐 둔 거미줄에 걸린 게 아니고, 저거 지금 쉬지 않고 너한테 그물을 날리고 있다. 그게 쌓이고 두꺼워지면서 카프리곤의 도약으로 밀어붙이는 스테노아의 모피에 버텨 내는 거다. 저거, 이제까지 함정을 파고 위장을 했던 마수 거미랑은 완전히 수준이 다르군. 바위도, 강철도 찢는 거미줄을 이렇게 쉴 새 없이 뿜어내는 건가……. 투란, 이대로 있으면 너 그냥 매달린 채로 둘둘 말린다.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는 건가?’
―아까부터 해 보는 중인데, 마력 차단이 된 그물인 데다가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속성에 아주 강한 내구성을 지닌 모양이다. 이제까지 본 거미줄의 거의 모든 특성이 다 발휘되는 걸로 보여. 아무래도…… 함정 전문의 군단장 거미가 아닐까 싶은데…… 이 거미줄 정말 어떻게 해 봐!
‘……시끄러워!’
어느새, 함정 벽과 바닥의 거미 떼가 슬슬 멀어지는 꼴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살짝 짜증부터 냈다. 대롱거리는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던 거미줄이 잔뜩 두껍게 쌓인 것을 과시하듯이 보였다. 마법의 빛이 닿으면 금세 사그라들게 하면서, 이미 발생한 빛에는 미묘한 광택으로 응답하면서!
보기에 따라서는 잔뜩 쌓인 거미줄 뭉치에 투란이 냅다 몸을 던져서 스스로 파묻힌 듯한 상황이었다. 그 거미줄 뭉치가 지속적으로 계속 쌓여 가며 힘이 세든 말든 푹 파묻어 묶을 참이고.
투란으로서는 강력한 힘에 대항하는 전혀 색다른 광경을 보는 셈이었다.
‘젠장, 뭐 이런 귀찮은 놈이 다 있냐고!’
마수를 숨겨 둔 함정, 암벽을 찢어 날리는 거미줄, 기본적인 감각은 물론이거니와 마법의 탐지조차 헝클어 버리는 그물…… 이를 두껍게 쌓아서 적을 그냥 파묻으려 하는 대담함!
간혹 날아드는 바위가 방향을 조금씩 바꾸면서 최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빈틈을 찾으려 하는 것까지 파악하면서 투란은 진심으로 귀찮아했다. 발에 걸리는 거미줄을 밟고 튀려 해도 순간적으로 느슨해지며 밟는 힘을 흩어 버린 채로 제자리에 머물게 강요하는 데다가 무수한 실과 그물의 장막 속에 숨어서 이쪽에서는 눈길조차도 직접 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치 고르고니아의 눈길에 닿으면 위험하다는 것도 계산에 둔 채로 훤히 보이는 자리이지만, 전혀 보이지 않게 장막을 치고 숨은 꼴로 이 난리를 떨고 있는 셈이었다.
정말로 이 거미줄, 쌓여 두꺼워지는 그물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참이다!
―마그마 로드로 한 방 세게 갈래?
‘……이런 짜증 나는 놈 때문에 복잡한 흔적 남기고 싶지 않아!’
투란은 보다 적합한 방법을 찾으려 했다.
마음가짐을 바꿔, 신속하게 깔끔하게 이 상황을 정리해 보겠다고 다짐하는 투란에게 ‘천칭’이 호응하는 듯했고…… 투란은 답을 찾아냈다.
곧바로 황금 모피의 등골에서 볼록하니 가늘고 짧은 금빛 털에 덮인 알 모양의 혹이 돋아났다. 혹 주변에는 얌전히 접어 붙인 듯한 두 쌍, 네 가닥의 튼튼한 다리가 붙은 채였다. 금방 네 다리가 금빛 털 사이로 펼쳐졌고, 알의 형태에서 금색의 광채를 머금으며 휘날리는 실 더미가 바람처럼 흘러나오니…….
위이이―!
바람이 방향을 바꾼 듯한 울림이 퍼져 나갔다.
금빛이 고르고니아의 형상, 뒤편 등 쪽으로 번져 갔다.
시커먼 잉크가 걸쭉하니 매달린 발아래로 안개처럼, 구름처럼 뭉클거리는 실 무더기가 뭉쳐 들었다. 투란을 잡아 가두고 있던 바람결 같던 실 무더기가 모조리 뒤틀리며 발아래로, 좌우로 뭉클거리며 몰려갔다.
발아래에 걸쭉하니 매달렸던 잉크가 탄탄한 실그물 위로 엉겼고, 고르고니아의 형상이 그 위를 딛으며 걸었다. 한 걸음 딛는 순간, 딛고 있던 안개구름 같은 바닥이 앞으로 몇 미터를 질주하듯 내달리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겹쳐져 있던 풍경이 찢어지며, 얄팍해 보이지만 제법 두껍고 큰 몸을 한 채로 네 쌍의 다리를 번개처럼 질풍처럼 움직이고 있는 괴물 거미의 모습이 드러났다.
―바람의 군단장이냐…….
드라고니아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고르고니아의 눈을 부릅뜬 채로 함정을 지휘하는 괴물 거미를 노려봤다.
순간적으로 네 쌍의 다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사이에 등에 솟아난 다리 두 쌍은 네 가닥의 촉수처럼 바쁘게 움직였으니…….
피잉, 패팽.
괴물 거미의 네 쌍 다리가 뭔가에 사로잡힌 듯이 멈췄고, 당겨졌다.
한 걸음 딛는 순간, 딛는 바닥이 다시 앞으로 주욱 밀려갔고 투란이 내민 두 손에 대각선이 2미터가량 되는 마름모꼴의 괴물 거미가 붙들렸다. 고르고니아의 혀가 날름거렸고, 금빛 바람이 괴물 거미의 머리부터 몸통까지 찢었다.
핏빛 고리가 투란의 손끝에서 맴돌며 실려 가 괴물 거미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괴물 거미의 형체가 투명해지면서 다채로운 광채를 흘리는 사이, 금빛이 섞인 짙은 회오리가 대롱처럼 동굴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동굴 상하좌우의 암벽에 새로운 그물이 한 겹 더 씌워지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한구석에서 뭔가 꿈틀하며 살살 움찔거리는 낌새가 있었다.
‘응?’
펼쳐 놓은 바람결…… 거미그물에 확실하게 포착된 형태, 마름모꼴의 괴물 거미였다. 방금 투란이 그 정수를 삼킨 놈이 한 마리 더 있는가?
투란은 곧 등에 돋은 다리를 움직였고, 그 한 마리를 마저 잡으려 하는데…….
촤악!
거세고 날카로운 다리가 가늘게 꼬인 실 가닥을 휘둘렀고, 그 결과 찢어진 그물 틈새로 마름모 형태가 툭 튀어나와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들킨 다음이니 이제 앞뒤 잴 것 없이 전속력으로 도망치겠다는 듯한 작태였다. 그 와중에 몸에 두른 위장 그물을 펼치며 시야에서 숨은 채로 달아나려 드는 꼴은 어딘가 감탄스럽기도 했다!
푸릇! 크응!
콧김을 뿜어내면서, 투란은 진심으로 화를 냈다.
바람의 군단장이라던 괴물 거미 본능은 자기 거미줄이 찢기는 것과 함께 투란의 분노에 동참했고, 고르고니아의 본능은 부릅뜬 눈길을 받지 않고 냅다 튀는 거미에 대해 몹시 귀찮게 한다고 짜증을 내며 함께 분노하는 듯했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별빛이 길게 뻗어 나갔다.
뻗었던 별빛이 다시 투란의 미간 사이로 당겨지는 순간, 마름모꼴의 거미가 꿴 채로 함께 당겨졌다.
푸르, 풋, 풋!
고르고니아의 콧김이 세차게 내뿜어졌고, 흘러나온 혀가 날름거렸다.
어느새 구부정하니 고르고니아 본연의 체형이 이뤄진 채, 날름거리는 혀와 부릅뜬 눈 아래에서 꿰여 온 거미의 머리통이 갈라졌다. 거대한 크기에 걸맞게 꾸며진 듯, 마수와 괴물이라는 본질을 담았다는 듯이 머리통 속에는 검푸른 뇌수(腦髓)가 꾸물거리는 몰골로 담겨 있었다.
츠릇, 츳츳.
혀가 그 뇌수를 핥았고, 가차 없이 들이켰다.
―투란!
‘어? 에?’
흠칫, 투란은 자신의 몸이…… 고르고니아의 혀가 제멋대로 움직인 것을 자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미 고르고니아의 목구멍을 넘어 괴물 거미의 뇌수는 배 속으로 흘러들어 갔으니!
‘아! 우와―!’
―투우우우―라아아안!
길게, 아주 먼 곳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충분히 들으면서도 투란은 배 속에서 퍼져 나와 고르고니아의 온몸으로 달콤하게 질주하는 전율(戰慄)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맛있다아―!’
그 전율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순간, 투란은 거미의 일생이 자신의 등골을 단숨에 스쳐 가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마름모꼴의 거미, 함정을 다루는 이 녀석이 한때는 하늘 높이 실로 자아낸 날개를 펼치며 날고 있었다는 것부터…… 한 마리인 주제에 셋으로 갈라져 움직일 수 있다는 것까지!
‘정신 차려라.’
달콤하고 맛있는 전율과 전혀 다른, 차갑고 시원한 감각이 투란의 마음을 찔렀다.
드라고니아가 아닌, 투란 자신의 한마디였다.
등골 깊은 곳에서 가만히 숨어 있던 ‘악마의 심장’ 속에 담긴 ‘투란’의 말이었다.
이에 투란은 정신을 차렸고, 자신이 고르고니아의 본능에 너무 깊이 취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보니…….
‘이런 능력도 있었어?’
새삼 깨달은 바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