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4)
투란은 ‘천칭’에 집중하며 마음을 보이드로 휘감는 상상을 했다.
곧바로 등뼈 틈새를 휘감는 ‘악마의 심장’이 준비해 둔 대로 가늘게 부풀어 올랐고, 윌 라이트의 마법이 피어올랐다. 의지를 기반으로 한 마법으로부터 준비된 주문이 즉각 발동했다.
‘메모리움, 그라프트!’
달콤한 전율,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온몸에 퍼지는 ‘기억’이 바로 ‘악마의 심장’이 형상한 등골 줄기 한 가닥에 맺혀 들어갔다. 이 맛의 감각이 사라지고 나서 거미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서서히 투란은 전율하는 고르고니아의 형상을 뒤틀고 다시 황금의 모피만을 남기며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맛을 느끼던 몸이 부르르 떨다가 가라앉았고…….
‘역시 기억이 가물거리네. 원 스택도 아니고, 그냥 맛보고 끝이었나.’
마법으로 ‘기억’을 보존한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 있었다.
이전에 ‘파라블랙․잉크’ 때처럼 덜렁 새로운 것을 맛봤다가 가지고 있던 것을 홀랑 까먹는 짓을 하지 않으려는 투란이었다. 고르고니아의 정수 속에는 뭔가 다른 것의 기억은 전혀 없었으니, 맛을 느낀 후에는 흐려지고 사라질 ‘기억’일 거라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맛만 보고 사라지게 하기에는 지금 알게 된 거미의 일생에 대한 ‘기억’은 놓칠 수 없잖은가.
‘이거, 꽤 오래 살았네?’
몸으로부터 어렴풋이 사라져 가는 ‘기억’의 한 자락, 그 속에는 수많은 거미를 이끌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인간의 군단과 맞서던 전장(戰場)의 풍경도 있었다.
투란은 잠시 뇌수가 깨끗하게 발려진 채인 거미를 바라봤고, 다채롭게 변하던 그 몸의 색이 하나의 무늬로 압축되듯이 고정(固定)되는 모습을 봤다. 축 늘어진 다리는 여전히 금빛이 일렁이는 실에 포박된 채이고…….
‘안 되겠어, 일단 잠깐 물러서야겠다!’
투란은 입안이 축축해지면서 사라져 가는 맛에 대한 갈망이 솟는 것을 느꼈다. 너무 맛있어서 다른 것을 더 잡아먹고 싶다는 기분이 무럭무럭 샘솟을 지경이었다. 또 다른 뭔가의 맛을 보고 싶다고!
이는 일단 고르고니아의 형상을 완전히 떨쳐 낸다 하더라도 그 경험으로 인해 얼마 동안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는 쾌락의 감각이었다.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본능에 휘둘리지 않는다 해도, 그 감각에 취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몬스터에게 휘둘려지고 싶어 할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 투란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의 휴식이었다.
그러나 이 동굴은 늘어져 쉬기에는 적당하지가 않다고 알려 주듯, 뭔가 끊임없이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다. 하나가 쓰러진다 해도 다른 녀석이 그 자리를 채워 침입자를, 알을 부순 투란을 죽이러 오는 것이다!
‘흐음, 실을 마구 늘어뜨린 것만으로도 주변 상황을 알 수 있네.’
새로운 지각 능력을 느끼면서 투란은 일단 등을 부르르 떨어 금빛 털 사이로 바쁘던 바람의 군단장을 움직였다. 고작 등의 한 곳에 혹처럼 작게 솟아난 정도였지만, 황금 모피를 겹쳐 쓴 탓인가, 그 힘은 활발하고 강력하면서 예민했다. 곧 네 다리가 분주히 움직였고, 주변의 실 무더기를…… 투란으로부터 흘러나간 것뿐 아니라 다른 거미에 의해 뿌려졌던 것까지 모두 회수하고 되감아 버렸다. 그 과정에서 투란은 서 있는 주변 지형을 전(全) 방위(方位)로 파악해 냈으니, 거미 무리가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 또한 알아차렸다.
후욱, 투란이 세게 숨을 들이쉬는 순간 바닥의 잉크가 여우의 입을 열었고 뇌수가 사라진 거미의 몸을 날름 삼켰다. 곧이어 투란의 몸에서 고르고니아의 형상이 사라졌고, 투란이 왼팔을 들어 천장 쪽으로 높이 겨냥했고…… 팔뚝을 감아가는 잉크 끝자락이 가늘고 길게, 그 안에 넝쿨 줄기를 담은 채로 쏘아졌다. 그 끝에는 ‘악마의 심장’이 키워 낸 작은 발톱이 돋아났고, 천장 한구석에 바로 박혔다. 잉크로부터 가죽이 맺히고, 길게 이어진 검은 끈이 투란과 천장을 이어 주는 듯했다. 곧이어 끈은 투란의 팔뚝을 감으며 투란을 위로 끌어 올렸다.
올라가며 투란은 자신이 얼렁뚱땅 내닫고 거미가 물러서며 만든 흔적을 내려다봤다. 아주 잠깐 급하게 싸운 듯했는데, 좌우로 폭이 거의 4, 50미터이며 전후로는 가볍게 백 미터, 깊이가 2, 30미터는 되는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거미가 준비했던 맨 처음의 함정이 뭉개지고 쪼개지며 길게 밀려온 듯한 광경이었다. 더불어 폭도 넓어졌고, 위쪽 천장까지 실에 긁혀 떨어져 내린 꼴이었다. 덕분에 숨어 있던 거미 떼는 이래저래 깔리고 눌린 채로 파묻힌 듯했고…….
‘나가자!’
관심을 돌려 투란은 천장에 감춰진 거미의 길을 바라보며 서둘렀다.
일단 홀시딘에게 가야 했다.
파앗!
바람의 길을 따라 자신을 데려온 에어록의 방벽이 해제되자마자 투란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묻는다.
“이거 뭔지 알겠어요?”
마름모꼴의 거미가 투란의 손목 아래에서 열린 입에서 툭 뱉어져 나왔다.
홀시딘은 그 광경에 익숙한 모습으로 손짓을 했고, 거미의 몸을 조사했다.
마력에 의해 들어 올려지고 여기저기 만져진 거미의 마름모꼴 몸은 금방 반응해서 작은 마름모, 큰 마름모를 앞뒤로 돌출시켰다. 몸에 드러난 무늬도 밝은 곳에서 보니 무슨 나비나 나방의 날개에 어울릴 듯이 보였다.
“이거, 구름 거미 군단장이잖아? 예전에 잡았는데! 이 무늬, 생김새는 완전히 똑같아! 거미마다 무늬, 형태가 달라야 하는데 이건 옛날 전쟁에 나타났던 바로 그놈이라고!”
“얘가 좀 이상한 것 같더라고요. 하나 잡아 눌러 놨더니, 하나 또 나오는 모양이라 이상해서 가져온 거고…… 아, 이상한 거는 이것도 있어요. 이거 혹시 알겠어요?”
투란이 다시 손을 휘둘러 여우의 입을 열고, 쇳덩이 한 뭉치를 쏟아 냈다. 넓은 철판처럼, 망토처럼 생긴 쇳덩이 두엇은 환한 곳에서 보자 꽤 섬뜩한 모양이었다.
홀시딘은 바로 알아차린 듯했다.
“……기사단이야. 거미와 전투했던 기사단, 병사들. 그들의 검과 방패, 갑옷을 통째로 짓뭉개서 장갑화한 거야. 그런데 이런 짓도 잡았던 군단장의 습성인데? 그 장갑 두른 개미 같은 놈도 있었어?”
“개미? 네 발로 서서 네 팔을 휘두르는 수염 달린 놈이었요. 개미 같지는 않았는데?”
“응? 네 발, 네 팔? 그건 장갑 군단장 거미가 아닌데? 뚱뚱한 개미처럼 생겨서 몸에 희생자들을 짓뭉개 붙여 놓고 전장을 휘젓고 다닌 놈이라고. 원래 껍질도 완전히 장갑인 채인 녀석이! 게다가 그 장갑이란 특성도 진짜 능력은 아니었지. 잡아서 뜯어 보고 나서야 완벽해 보이던 장갑이 온통 틈새투성이고…….”
“마스터 홀시딘! 일단 잡아 없앤 거는 빼고, 얘기해 주던 녀석들. 다른 군단장인가 하는 녀석들 얘기나 마저 해 줘요. 아, 그리고 잠깐 씹을 거라도 있으면 좀 주세요. 배 속에 뭘 좀 담아 둬야겠거든요.”
투란이 잠깐 홀시딘의 말을 끊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홀시딘은 크고 작은 마름모의 거미 몸에서 눈을 떼지 않는 채로 투란에게 거뭇한 고기 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생각이 복잡한 듯한 모습이었다. 투란은 고기 조각을 받아들면서 뚱한 소리로 한마디 한다.
“하필이면 이걸…… 너무 쓰잖아요, 이거!”
“응? 아, 조리법을 바꿨어. 이제 쓴맛 대신에 짭짤하고 살짝 매우면서 고소할 거야. 먹을 만하다고.”
“하아…… 기어코 거미를 요리했군요.”
투란은 투덜거렸다.
홀시딘이 내민 고기 조각은 잡아 온 거미를 해체해서 살점을 긁어 내 말린 것이었고, 첫맛은 무지하게 써서 입에 물었다 바로 내뱉을 정도였다. 그래서 말렸음에도 기어코 먹을 만한 걸로 요리해 냈다니…….
“어? 정말 먹을 만해졌네요?”
막상 입에 문 마수 거미의 고기 맛이 나쁘지 않았기에 투란은 놀랐다.
“먹을 만하다니까. 그보다…… 사냥해 버린 녀석이랑, 사냥해 버린 녀석과 닮은 꼴인 녀석이라면…… 나머지는 고스란히 등장할 수 있겠군.”
“그렇겠죠? 슬슬 마수 수준은 나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니까, 아직 듣지 못한 군단장 거미에 대해 들어야 할 듯싶어서 말이죠. 그리고…… 그것도 필요해질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우물우물하면서 투란이 밝은 풍경을 둘러보는 채로 말했다.
홀시딘은 고개를 바로 끄덕였다.
“아레나는 제대로 준비되어 있어. 네가 성장시켜 온 스피릿 아티팩트랑 연계하면, 분명히 예상을 넘는 위력을 발휘할 거야.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든 해낼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러면…… 예전에 확인한 군단장 거미인데…….”
이야기가 이어졌고, 투란은 입에 담은 고기를 꼭꼭 씹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무너진 지반을 통해 헤맸던 동굴과 다르게 햇살이 나른하게 쏟아지는 산림의 풍경은 짙은 녹색과 거뭇한 그림자, 그사이에 간간이 보일 듯 말 듯 한 희뿌연 안개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듯했다.
꿀꺽.
씹던 것을 삼키고 투란은 기지개를 펴는 시늉을 하면서 일어섰다.
홀시딘의 이야기가 맺어질 때였다.
“……라는 정도야.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왕국, 상아탑, 헌터 길드에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여기서 우리가 채집해 본 마수 거미 중에는 이전에 기록되지 않았던 성질과 형태를 지닌 놈도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군단장이라 해도 전혀 다른 능력과 형태로 나올 수 있어. 이전 녀석과 닮은 능력을 지녔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조심할게요. 자, 그럼…… 다시 바람으로 날려 줘요. 아까 거기로!”
“그래.”
홀시딘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손짓으로 바람의 길을 열었다.
투란이 그 모습에 다시 한마디 한다.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조심할 거고, 절대로 방심하지 않을 테니까!”
“믿는다.”
에어록이 투란을 감쌌고, 바람이 길을 열었다.
사박.
―없군. 다시 거미가 얼쩡거린 흔적도 없다.
‘그래? 뭐지, 이 녀석들 한번 빼앗긴 곳에는 미련 없다는 건가?’
투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람을 타고 돌아와, 빠져나갔던 거미의 길을 그대로 다시 되밟아 어둠이 가득한 지하로 돌아왔다. 격전의 흔적과 이제는 완전히 죽어 버린 듯한 마수 거미 떼의 몰골이 무너진 돌 더미 틈새로 살짝 보였지만, 뭔가 이 자리를 다시 차지하고 함정을 파든가 침입자에 대응하는 모습은 없었다.
마치 여기서부터 다시 하던 대로 계속 들어오라는 듯한 분위기였다.
―아라크녹스는 각자의 영역을 지녔지. 어쩌면 그 영역을 책임지는 녀석이 죽든 살든, 다른 영역에서는 간섭 못 하는 걸지도 몰라.
‘흐흠…… 함께 덤비기도 했잖아? 투명한 놈이랑 주렁주렁 쇳덩이 매단 놈…… 에잇, 알 게 뭐야! 쳐들어가자!’
괴물 거미의 생태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다시 뭔가 말하려 할 때, 투란이 재빠르게 그 말을 끊듯이 내디디며 말했다. 드라고니아는 뭔가 포기한 듯한 말투로, 화제를 바꾸듯이 말한다.
―홀시딘의 말대로라면, 아직 만나지 않은 군단장 거미는 그 개성이 아주 강하다. 서로 협력이 불가능할 거야. 하지만 네 말대로, 독립된 영역에서 각자 움직이지 않고 이놈들이 힘을 합한다면 꽤 위험할 수 있어. 그런데 왜 스테노아의 모피를 꺼내지 않는 거냐?
‘아직 맛에 대해 욕심이 있거든. 보이드로 격리는 되지만, 막상 그 힘을 쓸 때는 몬스터의 본능이랑 내 정신이 엮이고 섞일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 고르고니아의 힘을 쓰게 되면…… 거미 머리 뽀개서 계속 골을 파먹고 싶어질 거야. 맛있기는 하지만…… 아, 이런 생각부터 드니까 안 되는 거야!’
혀를 날름하면서, 어느 틈엔가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면서 투란은 두꺼워진 발을 내디뎠다. 잿빛 바위 그랑츄의 발이 깔린 돌을 으깨면서 부드러운 흙 위로 자국을 남겼다. 지하의 모든 곳이 돌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손으로 벽을 더듬어 여전히 암벽이 이어지는 것도 확인했다. 거뭇한 눈가에 어둠을 꿰뚫는 눈알과 조금이라도 밝혀지면 아주 자세히 멀리 볼 수 있는 눈알을 굴리면서 투란은 계속 나아갔고, 몇 굽이를 돈 다음에 희미한 빛을 봤다.
―얼룩무늬 털투성이…… 독안개 군단장인 모양이다.
희미한 빛, 그 아래에 줄무늬 얼룩을 띠처럼 두르고 길고 무성한 털을 살랑거리면서 몇 미터의 덩치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거미의 형체를 갖춘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투란은 디퍼 다크 리저드의 눈을 감아 버리고, 드레이크의 눈과 뿔수리의 눈을 눈가에 흰 점처럼 띄우고 털투성이 거미 괴물을 바라봤다. 누가 오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이 희미한 빛 속에 웅크리고 꾸물거리는 것이 마치 잠이라도 자는 듯했다. 그러나 그 몸통 주변에 흐릿하니 퍼지며 뭉클거리는 안개, 바닥에 아무렇게나 늘어진 듯이 넓게 펼쳐진 그물은 이미 심한 독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덜그럭, 투툭.
투란이 한 걸음 더 내딛자, 몸을 부르르 떨면서 줄무늬 얼룩이 꿈틀거리며 부풀 듯이 다리를 뻗어 내면서 거미가 일어섰다.
‘그러니까 저 녀석은…….’
찌익!
머리 부분에서 둥글둥글한 구슬 같은 눈알이 희미한 빛에 살짝 반짝이는가 싶은 순간, 두툼한 털에 휩싸여 아래로 뻗은 뿔로 보이는 긴 이빨 틈새로 침이 뱉어졌다. 바로 투란이 발 앞으로 떨어진 침은 바닥에서 보글거리며 거품을 일으켰고, 흙 사이에 섞인 돌을 흐느적거리며 흙과 섞이게 했다.
‘……온갖 짓거리로 주변에 독을 채워 놓는 버릇이 있다고 했지?’
―털 한 가닥 속에도 몇 가지 독을 품은 놈이라고 했다. 움직인다.
무성한 거미의 털이 살랑거리며 흔들리고, 먼지를 털어 내듯이 주변에 안개 같은 티끌을 휘날렸다. 커다란 몸이 마치 안개를 두른 듯한 모습이 되었다.
곧 독안개 군단장이라는 괴물 거미가 투란을 향해 다가오려는 듯, 느릿하게 다리를 뻗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