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5)
퍽!
‘으앗, 빨라! 털 뻣뻣해!’
큰 덩치가 희미한 빛 사이로 느릿하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단숨에 투란 앞에 도달해서 앞발을 사납게 내지른 상황이었다. 투란도 가만히 맞고 있지 않고 반사적으로 그 앞발에 주먹질을 해 댔는데, 돋아난 털이 잿빛 바위 살갗에 낭창거리면서 휘어지는 꼴이 무슨 쇠바늘 같았다. 덤으로 털 사이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은…….
―투란, 거미줄에 감긴다!
드라고니아의 경고대로였다.
독안개, 이 군단장 거미는 무성한 털 사이로 그물을 쳐 놓고 이런 공격과 함께 뿌려 놓는다. 독이 통하지 않더라도 그물을 통해 상대를 포획해서 독액으로 적셔, 독에 죽든가 그냥 질식해 죽든가 상관하지 않는 몬스터이므로!
그러나―.
빠각, 퍼석.
―독안개 군단장은 이빨이 쪼개지고, 머리통까지 갈라진 채로 주저앉았다.
‘응, 예상대로 쉽군!’
온몸의 핏줄을 ‘악마의 심장’ 줄기로 대체해서 침투해 오는 독을 심장 안으로 끌어들여 들이마시면서 샤벨투쓰의 이빨로 단숨에 베어 버리고, 갈라진 머리 사이로 재빨리 핏빛 고리를 품은 한 손을 쑤셔 박는 투란의 소리 없는 감상이었다.
―그렇군.
드라고니아가 조금 어처구니없어하는 기분을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독안개 군단장, 이놈은 거미 군단이 전쟁을 시작하면 가장 골 아픈 놈이라고 했다. 독과 그물, 둘이 혼합된 거대한 진영을 짜 놓고 밀어붙이는데, 그때 자욱하게 뿌려진 독안개는 심지어 갑옷도 녹이고, 마법까지 훼방 놓을 정도!
게다가 이놈의 독이 마수 거미에게는 뭔가 강화(强化) 약물처럼 작용하고 인간에게는 마취(痲醉), 사망(死亡)의 효과를 발휘하는 탓에 접근도 어렵지만 숨는 것도 아주 잘해 원거리에서는 겨냥할 방법조차 없는 놈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거미 군단의 진격이 시작될 때부터 퇴각할 때까지, 어떻게든 이 독안개 군단장을 한곳에 묶어 두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했는데…….
투란은 그냥 얼굴 마주해 주먹질한 다음에 썰고, 삼켜 버린다!
‘좋아, 가자!’
무성한 털이 투명해진 채로 으스러져 사라져 갔고, 거의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껍질 속에서 흘러내린 내장만 남겨진 듯했다. 그런 거미의 잔해를 밟으면서 투란은 희미한 빛 사이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해서 다시 두어 굽이의 미로 같은 지하를 지나치니…….
파팟, 파파파파―!
“우어? 화, 화살?”
―워터 볼트?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이 두 팔로 얼굴을 가리면서, 팔뚝을 감은 검은 가죽에 눈동자를 맺어 가면서 다시 봤다. 멀리서 날아오는 짧은 화살, 확실하게 동굴 암벽에 꽂히고 따갑게 투란의 몸을 두드리며 잿빛 바위 살갗을 아프게 하는 것이 흐르고 있었다. 적중한 자리에서, 잠시 파르르 하다가 추륵 늘어지며 구멍 난 곳에서는 새는 것처럼…… 뚫지 못한 자리에서는 맺힌 이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거, 물에서 논다는 놈? 아니, 여기 물이 없는데!’
투란은 살짝 어이없어했다.
군단장 거미 중에 물가에서만 보이고, 물속에서만 논다는 한 마리가 있었다.
물을 이용해 바위도 가르고, 물 덩이를 날려 투석기도 부수고, 물방울을 화살 비처럼 날려 대고…… 물 위에 가득 그물을 펼쳐 놓고 거미 떼를 싣고 다닌다는 한 마리였다. 여차하면 물 깊이 숨어서 나오질 않기 때문에 독안개 군단장과는 닮았으면서도 다른 의미로 상대하기 난처한 놈이라고 했다.
쟈카라 산림을 흐르는 시냇물의 얕은 곳에서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 지하 깊은 곳에서 물기가 전혀 없는 곳에서 나타나 물방울을 날리며 투란을 맞이해 주다니!
‘돌 써는 놈이 나올 줄 알았더니! 아, 혹시 근처에 지하수라도 있나? 땅속 우물이라도 있는 거야?’
―이십 킬로 안쪽으로는 물이 흐르는 낌새가 전혀 없다. 고인 물도 없…… 저거 등에 짊어지고 있는 거, 물주머니 아니냐?
프로브를 통해 감각을 확장하며 다시 주변을 수색하며 말하다가 드라고니아가 투란처럼 황당하고 어이없는 기분을 담아 말했다.
‘저런 썩을―!’
투란도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욕했다.
독안개 군단장만큼이나 큰 덩치를 한 괴물 거미가 자기 몸집의 두세 배는 될 듯한…… 결국 한 10미터에서 15미터의 길이에 두께가 4,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물주머니 아래에 깔린 채로, 물주머니를 쥐어짜 내 물방울을 날리고 있었다. 다리의 잔털 사이를 가득 채운 듯한 물방울은 일단 날려지면 강력한 쇠뇌에서 쏘아진 볼트보다 위력적이었니…… 진짜 물로 만들어진 강철의 화살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물주머니에 깔린 몸을 한 쌍의 다리로 버티고, 세 쌍의 다리로 쉬지 않고 쳐 날리는…… 소나기처럼 쏟아붓는 짓이 언제 끝날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작작 좀 하라고!”
콰앙!
무쇠 껍질을 두른 커다란 발이 바닥을 찍었다.
괴력의 파동이 바로 구덩이를 그리듯이 땅을 찍어 눌렀고, 기대고 있던 벽의 귀퉁이가 허물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투란의 몸은 높이 튀어 나가면서 변화했다. 무쇠 껍질을 두른 손발, 뿔이 돋아나며 한쪽 발부터 시작된 변화가 온몸으로 번지는 듯했다. 그리고 마법도 펼쳐지고 있었다.
―패링 볼트.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도약에 맞춰 외운 주문은 날아드는 워터 볼트를 옆으로 비껴가게 했다. 커다랗게 변한 덩치임에도 워터 볼트가 적중하지 않고, 휘어지며 옆으로 흐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곧 무쇠뿔 오우거의 주먹이 거미를 내리찍으니…….
푸욱.
물주머니가 불거져 나왔고, 거미는 그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잽싼 동작으로 그 아래로 웅크리며 숨었다. 오우거의 괴력이 담긴 주먹이 애꿎게도 출렁대는 물주머니 한 귀퉁이를 짓눌러 버린 꼴이었다. 그리고 금방 물주머니가 팽팽해지면서 내리찍는 주먹에 대항하고 밀어 올려는 듯까지 했다!
―제법인데? 물 담는 그물이면서 아주 튼튼…….
좌악! 콰아아―!
드라고니아의 감탄은 투란이 주먹을 펴고 위로 밀어 올리는 순간, 물주머니가 그대로 갈라지면서 터져 나오는 물줄기와 함께 멈췄다.
‘앙? 뭐? 이것도 말랑말랑하게 보이기만 하고 사실은 강철보다 강도가 높고 질긴 거미줄로 짠 거라고? 그래서?’
좌좍, 좌아― 쏴아아!
내질렀던 오른손 주먹을 활짝 펼쳐, 샤벨투쓰의 이빨을 내민 채로 마구 그으면서 오우거의 형상이 찢긴 물주머니를 짓밟으며 거세게 걸음을 디뎠다. 베어진 부분에서만 터져 나오는 탓인지, 오우거의 괴력에 밟히고 있는 탓인지 물줄기가 꽤 거세게 뿜어졌다.
이대로라면 계속 찢긴 물주머니 탓에 주변이 진흙탕이 되든 물웅덩이가 되든 하고 나서 거미의 형체가 드러날 듯싶었는데…… 그보다 먼저 베어지지 않은 물주머니가 갑작스럽게 흩어졌다.
‘……응?’
―허?
폭포(瀑布)가 터져 나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폭포의 하얀 거품 위에 위풍당당한 거미의 모습이 보였다.
파란 광채가 짙게 맴도는 가죽이 물기를 머금고 매끈해 보이는 거미 괴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 위에 올라탄 채로, 세 쌍의 다리로 물을 끌어당겨 휘두르는 꼴이 꼭 채찍을 휘두르는 듯했는데…… 휘둘러지는 물줄기는 모두 제멋대로의 형체를 꾸미고 있었다.
어떤 것은 여전히 화살처럼, 어떤 것은 날카롭게 그어지는 단도처럼, 어떤 것은 칼날 같은 채찍처럼…… 무쇠 껍질을 파고들고, 오우거의 살갗에 깊은 흉터를 새기며 내리찍히는 한 가닥, 한 방울이 모두 살아 있는 병사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서 내지르는 일생을 담은 일격(一擊)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물주머니를 스스로 해체하면서 물이 아직 흩어지기 직전인 듯한 한순간을 이용하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투란은 이에 맞서 활짝 펼친 오른손을 내민 채로, 오른발을 빠르고 힘차게 내디디면서 그 손 뒤에 숨듯이 몸을 젖히고 왼손을 옆구리에 당겨 붙이는 자세로 버텼다.
―안 돼. 이대로 맞고 있으면 아무리 무쇠뿔 오우거가 튼튼하다고 해도 저 물이 흩어지기 전에 먼저 핏덩이로 짓이겨진다! 오우거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는 자가 만 명이 모여서 한 대씩 치고 가는 경우라고!
수십 배로 가속한 듯한 빠른 말이 투란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투란도 바로 사고(思考)를 가속해…… 날아드는 물줄기, 물방울 하나하나가 허공에 박힌 듯한 풍경을 지각(知覺)하며 대꾸한다.
‘알아. 이놈, 물 다루는 솜씨가 장난 아냐! 정령(精靈)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제 다리랑 거미줄만 이용하고 있잖아! 게다가 이 물, 쉽게 흩어지지 않을걸? 물속에 그물이 몇 겹 더 숨은 채라고! 거미줄도 잔뜩 뿌려져 있고! 그러니까 이렇게 할 거야!’
―뭘 어떻…… 휘드라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몸에 붙인 왼쪽 손아귀에서 흐르는 물이 고이듯이 뭉쳐 맴도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서, 계약의 증거로서 투란에게 부여된 정령수가 작은 물방울을 통해 현신(現身)하고 있었다. 휘드라곤은 조그마한 소용돌이처럼 시작해서, 아주 빠르게 커졌고 오우거의 살갗 위로 물결을 덮어 갔다. 강력한 공격 앞에 물결은 파이고 흩어지기도 했지만,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여 결국 오우거의 몸은 휘드라곤의 물결을 살갗에 덧씌웠다. 퍼부어지던 물줄기가 휘드라곤의 물결과 섞이는 순간, 오우거의 왼손으로 흘러가 둥글게 뭉쳐 갔다.
키앗!
거미가 괴성을 지른 것은 금방이었다.
어느 틈엔가 오우거 너머로 커다랗고 둥글게 뭉친 채로 맴도는 물 덩이가 나타났고, 거미의 머리부터 몸의 앞쪽 절반 정도가 물기를 읽은 채로 살랑거리는 파란 잔털이 드러난 때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거미는 한 방울의 물까지 빼앗기고 완전히 마른 몸을 드러낼 듯한데…… 물의 군단장이라 불리는 거미는 더욱 빠르고 과감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어?’
거미가 몸 뒤쪽의 물살을 가르고 튕겨 나가는 광경에 투란은 조금 당황했다.
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듯한 녀석이 물을 버리고 튀는 것인가?
앞발로 실을 말고 감아 드러난 이빨에 끼우는 꼴이 이제부터는 쟈카라 산림의 거미 괴물답게 거미줄과 강인한 몸으로 뭔가 해 보겠다는 것인가?
―파이프다! 저놈, 거미줄로 빨대를 만들었어!
‘에? 빨대? 파이프? 이 근처에 수원(水源)이 없다면서!’
휘드라곤을 통한 정령의 감각을 더 강하게 활성화하면서 투란은 되물었다.
드라고니아 역시 공유한 정령의 감각을 프로브에 덧씌웠고, 바로 대답한다.
―삼십 킬로미터 밖이야! 저 거미줄 파이프는 몽땅 지면 아래에 매설되어 있고, 은닉(隱匿)된 상태다! 휘드라곤처럼 제대로 된 정령이라야 물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젠장, 군단장이라더니 마수 거미를 수천 마리 동원해서 펌프질시키고 있었잖아! 저놈, 물가에서 떠나도 물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어!
이 말만큼 빠르게, 물의 군단장이 턱 아래를 부풀리고 몸의 뒷부분을 부풀리는 광경을 투란은 봤다. 거미가 잔뜩 물을 들이켜고, 꽁지 쪽에 새로운 물주머니를 자아내려는가 싶었는데…….
콰아아― 콰앗!
느닷없이 활짝 열어젖힌 입으로 폭포를 쏟아 내고 있었다.
―워터 브레스? 별짓을!
드라고니아가 놀랐고, 이게 뭔가 해서 쳐다보는 듯한 투란보다 먼저 휘드라곤이 반응했다.
콰앗!
둥글게 뭉쳐 가던 물 덩이의 크기가 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압축되었고, 격해진 파문 속에서 소용돌이의 흐름에 따라 길고 가는 줄기가 뱀처럼…… 수십 가닥이 튀어나왔다. 그 끝은 뭉툭했다가 입을 연 짐승의 형상이 되어 갔고―.
치잇, 콰르르.
―격한 반탄과 격류의 격돌 속에서 물의 군단장이 뿜어낸 폭포가 휘드라곤이 수십 가닥의 머리를 맞대며 만들어 낸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엮여 버렸다.
뒤늦게 투란은 왼손 주변으로 뭉친 물이 무슨 돌덩이나 쇳덩이처럼 단단해진 것을 느꼈고, 몸을 덮은 물결이 더욱 끈끈하게 두껍게 질겨진 채란 것을 알았다. 더불어 드라고니아가 워터 브레스라 말했던 것이 이제까지 거미가 튕겨 휘둘러 대던 물줄기, 물방울과는 격이 다른 파괴력을 지녔다는 점도!
질풍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굵은 물줄기, 짐승의 머리를 드러낸 채로 날뛰는 수십 가닥의 물줄기가 소용돌이로 짜이며 엮어 가는 광경…… 격렬한 그 난투를 보면서 투란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놈, 물가에서는…… 물속에서는 대체 뭘 할 수 있는 몬스터지? 아, 관둬! 지금은 절대로 알고 싶지 않아!’
콰앙!
결심하는 순간, 투란은 휘드라곤이 뭉쳐 놓은 커다란 물구슬을 앞으로 내밀면서 힘차게 한 발을 디뎠다. 오우거의 괴력이 발휘되는 순간, 다리는 카프리곤의 형상을 살짝 드러냈고 바닥에 깊은 구덩이를 발자국으로 남겼다. 괴력을 바탕으로 삼은 도약은 상식으로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투란을 움직이게 하니, 휘드라곤 또한 이런 움직임에 호응하며 지속되는 워터 브레스의 한 자락을 잘라 내서 길을 열었다.
단숨에 거미 곁으로 붙은 투란의 왼손에 붉은 털이 돋고, 손끝에서 발톱이 굵고 날카롭게 돋아나며 팔뚝 속에서는 심장의 맥동이 강렬하게 퍼졌다. 순간, 휘드라곤은 거미의 몸 아래에 물결을 깔았고 강한 압력과 농도로 받쳐 올렸다.
쩌억!
물의 군단장은 끔찍한 소리와 함께 몸의 절반, 머리가 포함된 반신(半身)이 납작해진 꼴로 바닥에 들러붙는 꼴이 되었다. 그와 함께 투란의 왼팔, 오우거의 형상과 붉은 늑대―그림울프의 형상이 섞였던 팔이 오그라들면서 말라비틀어졌고, 핏줄과 힘줄이 한꺼번에 찢겼다. 그리고…….
‘잘 가, 왕자님. 아니, 공주님이려나? 아, 잘 가는 게 아니고 어서 와였나?’
―뭔 소리야?
‘여왕이 낳은 군단장이라며? 여왕의 아이니까, 왕자님 아니면 공주님이잖아? 그리고 이제 삼킬 거니까. 아, 그런데 이 여왕님…… 설마 남편이 따로 있는 거는 아니겠지? 때려잡았더니 따로 임금님이 툭 튀어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지?’
―보통은 없다.
‘저기요? 보통은 뭡니까? 이보세요? 드라코눔의 아칸 씨!’
물의 군단장을 삼키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와 아옹다옹 말다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