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
콰앙!
거대한 기둥이 사방을 후려치는 느낌이 고스란히 투란을 휘감았다.
그 상황에서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뒤로 물러나서, 방금까지 투덜대며 내려온 산자락의 바위에 등을 대고 들러붙은 채, 저 뱀이 얼른 어떻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죽을 거면, 빨리 죽고 살 거면 얼른 가라!’
괴상한 소원이지만, 딱히 빌 것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거대한 뱀의 몸부림이 잠시 계속되었다.
투란은 냉정하게 이를 지켜보면서 슬금슬금 조금 더 안전하게 몸을 은폐할 곳을 찾아 더듬어 움직였다. 등을 댄 산자락 비탈, 어딘가 조금 파여 들어간 구덩이라도 있다면 그 속에 숨을 작정이었다.
키이이이이쉬이잇!
괴상한 숨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뱀이 토하는 살점과 핏덩이가 튀어 올랐다. 그러면서 발버둥 치는 뱀의 몸부림에 휩쓸린 나무둥치가 여기저기로 거칠게 튕겨 나가는데, 손질을 전혀 하지 않은 통나무가 가시를 드러내고 여기저기 두드리며 찌르고 구르는 광경이 보기에도 섬뜩했다.
‘저거 30미터가 아니라 한…… 40미터는 되는 놈 아냐?’
거의 꼼지락대는 수준으로 등짝만 대고 움직이다 보니 투란에게는 달리 생각할 것이 없었다. 왠지 뒤돌아 움직이다가 저 발버둥 치는 동작을 조금이라도 놓치게 되면…….
쉬이잉!
거센 바람결부터 밀려오며 뱀이 멋대로 휘두른 꼬리가 투란을 향해 날아들었다. 딴 데 보지 않고 똑바로 보고 있던 탓에 투란은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옆으로 굴렀다. 거칠고 단단한 돌이 살갗을 긁고 후볐지만, 상관할 때가 아니었다.
퍼어억!
뭔가 손으로 엉덩이를 찰싹대는 소리를 몇백 배로 더 크게 한 듯한 소리가 울렸다.
투란은 뒹굴던 몸을 다시 납작하게 기댄 것처럼 멈췄고…… 피와 살점을 뒤집어썼다.
‘뭐!’
뱀의 꼬리가 투란이 있던 자리에서 튀어 올라갔다.
거의 절반 정도의 꼬리가 너덜거리면서 가죽과 살점을 뜯긴 꼴이 보였다.
그 꼬리에서 흩뿌려진 피와 살점이 그에게 튄 모양이었다.
‘뭐야, 왜!’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투란이 옆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면서 눈알을 굴렸다.
단단한 돌바닥에 진하게 터진 피와 살의 흔적이 보였다.
결과가 말해 주는 광경이었다.
저 뱀의 꼬리가 이 단단하고 거친 산자락의 돌바닥에 뭉개진 것이다.
자신의 몸부림으로 자기 꼬리를 상처 입힌 뱀의 몸부림은 더욱 거세졌지만, 이제는 이 산자락을 피하려는 듯이 저편으로 더 구르는 모습이었다. 정말 그런지 어떤지 좀 헷갈렸지만, 투란에게는 딱 그렇게만 보이는 상황이었다.
스륵, 스슥!
뒤집어쓴 피와 살점이 노골적으로 꿈틀대는 듯한 느낌이 투란을 흠칫하게 했다.
설마 피와 살점만으로도 못된 짓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어? 아니구나.’
신경이 곤두섰던 투란은 곧 생각을 잘못한 것을 깨달았다.
피와 살점에 노골적인 탐욕을 드러낸 것은 투란 자신이었다.
악마의 심장이 모처럼 살갗에 닿은 피와 살점을 포식하려 하고 있었다.
피를 마시고, 살점을 넝쿨로 뜯어내면서!
투란은 천천히 몸에 묻은 큰 살점을 손으로 쓸어 올려 입에 넣었다.
피는 넝쿨이 잘 들이마시지만, 아무래도 살점까지 덩굴줄기가 다 몰아 삼키기는 어려웠다. 이럴 때 악마의 심장에 필요한 것은 덩어리를 씹고 삼킬 수 있는 존재, 제대로 된 내장을 지닌 누군가이잖은가.
살점이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으면서, 투란이 상황을 보는 관점이 변했다.
‘음, 좀 더 크게 찢어진 살점이 없으려나.’
뱀의 꼬리가 터져 나가도록 한 옆을 보니, 제법 큰 살점 덩어리가 있었다.
돌바닥을 줄줄 흐르는, 전혀 익히지 않았고 익을 리가 없는 살덩이였다.
투란의 혀가 움직이고 입속에 살그머니 침이 고였다.
키이이이이이쉬이잇!
뱀의 고통스러운 괴성이 더욱 세차게 울려 퍼졌다.
‘먹자!’
투란은 식욕을 참을 수 없었고, 참을 필요도 없었다.
너무 거칠고 단단한 돌바닥을 피해서, 거대한 뱀은 부딪치면 팍팍 쓰러지는 나무를 향해 몸을 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쪽이 더 푹신해서 좋다는 듯이.
그리고 나무는 초록색 잎을 잔뜩 부풀려 터뜨림으로써 뱀의 거대한 발버둥에 대항하며 부러져 나가고 사방으로 튀었다.
녹색의 액체가 거의 안개처럼 가득 풍경을 채웠고, 투란은 옆에 흐르는 뱀 꼬리의 살덩이를 집어삼키면서 구경했다.
‘맛있다!’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를 씹어 삼킬 때와는 전혀 다른 포만감이었다.
흡사 생명력이 몸을 꽉 채우는 듯한, 그저 빈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여벌의 목숨이 생겨난 듯한 활기가 심장에서 뻗어 나왔다.
그의 식욕을 더욱 자극하려는 듯했고, 투란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뱀의 몸부림이 끝나고 작은 경련과 함께 잠잠해지는 것을 보며 바로 움직였다. 더 많은 뱀의 살덩이를 얻기 위해서!
다른 생각은 배부른 다음에 해도 괜찮지 않은가?
그렇게 식욕을 앞세운 채로 투란은 가장 가까이 놓인 뱀의 몸통, 가죽이 나무에 긁혀서 많이 파이고 피와 속살이 삐죽한 부분을 향해 달렸다.
첨벙거리는 늪 바닥을 밟는 순간, 뒤늦게 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밑이 아주 깊어서 푹 빠지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
‘설마 죽기야 하겠냐!’
악마의 심장만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안에서 허우적거렸고, 작은 돌이 물 덩이 속에 푹 잠겨 있기도 했다. 늪이라고 해도 투란에게는 위협의 대상이 아니다!
성급하고 근거 없는 억측에 가까웠지만, 늪이 얕았기에 당장 투란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억누르는 식욕이 입부터 벌리게 하고 있었다.
덥석!
‘아, 짐승 같다!’
손으로 살덩이를 쥐어뜯기 전에 입으로 물기부터 한 자신의 꼴을 투란은 뒤늦게 반성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물어 버린 것을 도로 뱉지는 않았다. 이왕 물었으니 크게 한입 떼어 내고 사람다운 것을 찾아도 되잖은가?
하지만 투란은 그렇게 못했다.
‘지, 질겨!’
뱀의 살점은 길게 당겨지기는 했지만 투란의 이빨에 끊어지지 않았다.
그저 쪽쪽, 그 살 속에 맺힌 핏물만 목을 적시며 넘어올 뿐이다!
완전히 박살 난 살점을 집어 먹을 때는 씹지도 않고 삼켜서 몰랐다.
시리릭!
바로 투란의 오른손에서 샤벨투스의 이빨이 확대되었다.
썩둑.
입술 앞을 샤벨투스의 이빨로 쓸어 내자, 뱀의 살점이 바로 잘렸다.
후르륵!
‘아까도 그냥 삼켰구나.’
뒤늦게 투란은 자신이 아까부터 이 살점을 씹지 않고 삼켜 넘긴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삼켜진 살덩이는 위장 속에서 악마의 심장이 바로 소화시켰다! 본래 사람의 위장이었다면 몇 시간에 걸쳐 녹이고 소화시킬 것을 악마의 심장이 맴도는 투란의 내장은 거의 순식간에 빌 정도로 빠르게 없애 버렸다.
그래서 투란이 더 많이 먹을 수 있기는 했지만…….
써억, 싹둑, 찹찹! 꺼어어어어!
괴상한 소리를 한참 내고서, 뱀의 늘어진 몸통이 늪에 반쯤 잠기다가 멈추는 것을 보면서 투란은 겨우 탐식을 멈췄다.
‘너무 심했나?’
자신이 처먹고 남은 뼈와 가죽을 보면서 투란은 사람으로서 반성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십 미터가 되는 뱀의 몸통 중 거의 2미터 가까이의 피와 살을 박박 긁어 먹어 치웠으니!
뒤늦게 든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이만큼 먹을 수 있었나 하는 의문!
그리고 쏟아져 오는 졸음…….
‘어? 자면 안 되는데, 그냥 자면 안 돼…… 어…….’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살을 파내 먹느라 텅 빈 뱀 가죽을 당겨 몸에 두른 채로 얕은 늪을 향해 몸을 던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잠의 유혹은 식욕과 마찬가지였고, 자제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한 몸을 지킬 가죽이라도 한 겹 더 두르자는 몸짓이었다.
그렇게 잠들어 가는 와중에 투란은 가슴에서 포근하게 올라오는, 분리되어 선명해지는 또 다른 ‘투란’이 속삭이는 바를 마음속에 담을 수 있었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도대체 뭐가 괜찮은지 알 수 없었지만, 투란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거대한 뱀의 살점이 아직 핏물을 질질 흘리는 가죽 속으로 숨어 들어가 자려는 것이었다.
투툭, 툭.
‘어?’
뭔가가 머리를 건드리는 느낌이 감기던 투란의 눈을 뜨게 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것처럼 잠들려던 순간이…… 아니었다.
가슴이 세차게 맥동했고, 투란은 정신이 번쩍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잤다!’
무지하게 오래, 깊이 잠들었다가 깬 느낌이 온몸을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광경이 눈을 감기 전과 다른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 준다!
‘근데…… 쟤는 뭐야?’
뱀의 가죽, 그 너머로 보이는 놈이 있었다.
조금 길쭉한 입을 활짝 열어젖히고 삐죽한 이빨을 가득 담은 꼴을 보이면서 검은 살갗의 손톱을 가지런히 모아 마구 찌르고 있었다. 손가락과 손톱의 살갗과 다르게 그 몸을 채운 회색과 하얀색의 털은 꽤 길쭉하고 어깨 부분이 괴상하게 부푼 듯한 꼴을 한, 비비나비라는 놈이 아닌가!
투란은 저 비비나비의 죽은 꼴을 본 적이 있었다.
사냥꾼이 숲에서 잡아다가 샤오콴 마을에서 거래했던 놈이다.
원숭이라든가 잔나비라고 하는 계통의 짐승을 닮았지만 확실하게 몬스터라 했다. 그 모아 찌르는 손톱은 두꺼운 철판 방패도 한 방에 뚫어 버리고, 손톱 끝에 맺힌 독은 먹잇감을 단숨에 마비시키는 놈!
그런 놈이 지금 뱀 가죽 속에 누운 투란을 향해 손톱을 쑤셔 박으려는 참이었다.
‘쟤는 뭐야?’라고 의문을 품는 것조차 아주 한가한 짓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여전히 눈을 깜박거리며 구경할 수 있었다.
비비나비의 저 독한 손톱이 희뿌옇게 변해 있는 뱀 가죽을 뚫지 못했으므로!
다만 뱀 가죽을 밀며 투란을 건드릴 수는 있었다.
그렇게 머리를 쳐 준 덕분에 투란이 눈을 뜬 것이다.
‘아니, 저게 대체 어디서 왔지? 방금까지는 없었…… 방금?’
투란은 자신의 착각을 알아차렸다.
잠들려던 찰나에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청나게 깊이 순간적으로 잠들어, 오래 자고 깬 것이다!
그 증거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뱀 가죽에 남아 붙어 있던 미세한 살점, 핏기가 없어지고 그냥 녹색으로 물든 채 말라 있는 꼴이 보이잖은가!
‘이게 다 마를 동안 계속 잤다고?’
도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팔다리랑 몸을 슬그머니 둘러보니, 잠들기 직전에 몸을 열심히 가죽으로 두르고 그 안에 숨어 버린 바람에 뭔가 포대 속에 들어와 있는 꼴이었다.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뱀 가죽으로 싸고 잠들었다 깬 모양인데…….
그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다시 던져진 물음에, 투란의 가슴속에서 심장이 맥동하며 답이 뇌리로 스며들었다. 가슴속에서 악마의 심장이 고요하게 ‘투란’으로서 별일 없었다고, 잠든 동안에 벌어진 일에 대한 기억을 건넨 것이다.
뇌리에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그 기억에 따르면, 정말 별일 없었다.
그저 뱀 가죽의 남은 살점이 말라 가고, 미묘하게 스며드는 녹색의 습기가 누운 바닥 쪽을 채우며 뱀 가죽 안쪽을 살짝 물들인 것뿐이었다. 그리고 저 비비나비가 나타나서 들쑤실 때까지, 아무 일 없었다.
끼에에! 꽤애액!
비비나비의 울림이 투란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놈은 이제 본격적으로 삐쳤다는 듯이 성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소리에 호응하며 또 다른 소리도 울린다.
끼으으! 콰아, 꽉꽉!
몇 마리가 더 나타났다.
한데 새로 나타난 비비나비의 모습이 투란을 당혹시켰다.
수가 늘어난 것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날개가 달렸다?
‘비비나비잖아, 너 날개 없잖아!’
투란이 아는 바로, 비비나비는 분명히 날개가 없었다.
죽은 놈 봤으니 확신해서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뱀 가죽 너머로 보이는 놈들은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위에서 내려왔다. 새삼 처음 손톱으로 쑤시던 놈의 부푼 어깨를 보니, 그게 날개를 접어 등짝에 붙인 꼴이었다.
‘비비나비가…… 아닌가?’
머리통과 시커먼 가죽의 손, 손톱을 다시 보니…… 역시 비비나비 맞았다.
투란은 혼란 속에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날개 달린 비비나비도 있다고.
이를테면, 지금 뱀 가죽 속에 있는 투란을 뜯어 먹고 싶어 하는 놈들이 바로 그놈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