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6)
Chapter 94. 여왕과 왕 Ⅱ
―투란, 만약 여기서 아라크녹스의 왕(王)을 만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너를 만나 보고 싶다는 아라크누아 여신(女神)의 계시(啓示)라고 생각해라. 금괴를 들고 아라크누아 신전에 가서 헌납(獻納)하고 혹시 살면서 여신에게 무슨 죄를 지은 적이 있는가 아주 진지하게 물어야 할 일이거든.
‘대체 뭔 헛소리야?’
―지금까지 아라크녹스의 왕은 단지 두 번 나타났다. 드래곤로드라고 불리던 그림투아란이 수많은 신전을 깨부수고 다닐 때, 대마도사 카엘이 고대 악마종 중에서도 왕이라 일컬어지던…… 마왕이라고까지 꼽히던 거물을 상대로 싸울 무렵, 신전의 사제들이 아라크녹스의 군단을 소환해 돕다가 전멸했을 때! 그 두 번 모두 신벌(神罰)로서 아라크녹스의 왕이 현신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몬스터가 된 아라크레온을 때려잡는다고 나올 리는 없다고? 뭘 그렇게 길고 복잡하게 말하냐고! 그냥 안 나온다고 하면 될걸!’
―나오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으니까.
‘에? 왜!’
―아라크노스가 바로 여왕이 아닌 왕을 기원으로 삼는 몬스터거든. 그중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성장해서 거의 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해졌던 경우가…… 대강 일곱 번? 여덟 번 정도 확인되었지. 애매하게 종적을 놓쳐서 끝내 다시 찾지 못한 채로 산맥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기록도 몇 번 있고 말이야. 즉, 재수 없으면 그게 여기서 툭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계속 맞는 경우에 해당될 테지만 말이야.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음? 눈치챘냐?
‘……이 삐딱한 놈!’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을 다루던 거미 군단장의 형체가 투명하게 흩어져 가는 광경을 확인하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끈적하게 고인 채로 휘드라곤의 일부가 된 듯한 물은 투란의 발아래 깔린 채로 아주 느릿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 물결이 무쇠뿔 오우거의 형상을 덮은 채로 부드럽게 흘렀고, 자연스럽게 흘러오는 정령의 힘을 받아들여 아주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말라 버렸던 왼팔에서 늑대의 형상이 사라지고 다시 두꺼운 살갗과 무쇠 껍질이 엮인 오우거의 형상이 되살아났다. 파이고 베여 다쳤던 온몸의 상처 또한 물결에 휩쓸리면서 그대로 지워지는 듯했다.
투란은 이런 반응이 역시나 정령의 궁전에 들어가 보겠다고 설칠 때, 사대속성(四大屬性)의 스피릿 아티팩트를 동원했을 때랑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정령수 휘드라곤과 스피릿 아티팩트와의 차이점 또한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오우거의 몸이 계약된 정령의 힘과 한껏 공명(共鳴)하고 동조(同調)하며 자연의 힘을 잔뜩 받아들이는데, 투란의 마력을 기반으로 생성된 스피릿 아티팩트보다 그 효과가 훨씬 뛰어났다.
얼마나 뛰어난지, 오우거의 형상이 상처를 다 복구하기가 무섭게 몬스터 엠블럼에 대한 압박이 느껴졌고 어느 틈엔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지경이었다! 오우거의 형상이 더 이상 정령의 힘을 소모하지 않는다 싶으니, 곧바로 느껴지기 시작한 압박이었다.
‘이 녀석, 정말 몬스터의 힘을 끌어낼 때 제대로 불러낼 수는 없는 건가.’
―오우거랑은 잘 어울리잖아. 몬스터마다 특성이 있으니까…… 그래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 불러내자마자 제멋대로 몬스터의 능력에 끼어들어 훼방 놓는 짓도 하지 않게 되었고…… 스피릿 아티팩트의 영향력 덕분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키린도 이래서 불꽃 정령을 부릴 때 몬스터 로드의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건가? 정령의 힘이 몬스터 엠블럼을 압박해서?’
―그놈은 그냥 게으른 왕자님이라서 다른 몬스터를 삼키고 단련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을 뿐이야! 허구한 날 뒹굴면서 불장난만 했을 뿐이라고!
‘……그렇다 치자고.’
한숨을 고르면서 투란은 기지개를 켜듯이 손발을 이리저리 뻗어 봤다.
물결은 살갗을 감싸며 흐르고 더듬는 듯했고, 휘드라곤이 몹시 즐거운 듯했다.
투란에게는 마치 오랫동안 나와 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답답해하던 녀석이 간만에 나와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지간하면 투란도 함께 어울려 주고 싶은 기분이 되게 해 주는 살랑이는 물결의 흔들림이었다. 그러나…….
‘이 녀석 진정 좀 해라. 저기 이상한 거 안 보이냐? 내가 지금 너랑 놀아 줄 때가 아니라고.’
어쩐지 자신을 향해 떠드는 듯한 투덜거림과 함께 투란은 어스름한 물결 너머로 보이는 벽을 향해 걸으며 휘드라곤을 거둬야 했다.
아직 거미 군단장이 한 마리…… 여왕이 더 낳았다면 몇 마리가 될 수도 있는, 확인된 녀석 중에 나타나지 않은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반듯하게 올라간 네모진 돌벽은 꽤 인상적이었다.
물살이 땅속 깊이 스며들며 사라져 가고, 점차 어둠 속으로 산란하는 빛의 가닥이 한결 더 분명해질 무렵이었다. 한쪽 갈래 동굴을 꽉 틀어막듯이 세워진 데다가 사람이 만들어 낸 듯한 네모난 모양이 꽤 신기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었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두운 와중에 얼핏 보였을 때는 설마 이런 곳에 알드바인의 성벽 같은 것이 있을까 했더니, 있었다. 다만 그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사람이 벽을 쌓거나 할 때처럼 엇갈려 쌓지를 않았다. 또박또박하게 생긴 네모진 돌덩이가 격자처럼, 줄을 맞춰 쌓여 있었다. 아래에서 돌덩이 하나를 빼내면 위에서 그냥 무너지는 것이 아주 당연해 보였다.
투란은 문득 ‘함정?’이라는 생각을 했고, 거미가 쌓은 돌벽의 위를, 좌우를 다시 둘러봤다. 왠지 무너지게 좋게 만든 까닭이 누가 억지로 뚫으려 하면 한꺼번에 덮쳐 누르려는 속셈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그러나 꽤 튼튼한…… 엇갈려 쌓지 않은 것 빼고는 아주 무게감 있게 잘 쌓은 꼴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내세웠다는 느낌이 강했다.
‘흐흠, 이걸 어떻게 할까.’
투란이 조금 더 생각하려는데…….
―일단 하나 저쪽으로 밀어 보든가, 당겨서 뽑아 보면 되잖아? 뭘 이제 와서 벽 앞에 서서 명상이라도 하는 시늉이야? 하던 대로 해.
드라고니아가 핀잔 주잖는가!
‘……벽 두께라든가, 건너편 상황에 대해서 말할 생각은 없냐!’
―돌 하나의 두께는 일 미터, 높이도 일 미터, 폭은 일 미터 이십 센티. 건너편에는 약 오 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이거랑 비슷한 벽이…… 쌓이고 있다. 움직임의 결과는 파악되지만, 뭐가 움직이는가는 명확하지 않아. 아마 은닉 그물을 뒤집어쓴 놈이라 그럴까 싶군. 생각할 필요 없이 일단 뚫고 넘어가면 알 일이라고.
빠르게, 묻는 순간에 투란의 뇌리에 콱 처박듯이 전해 온 말이었다.
왠지 한숨을 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더 따지지 않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순간에 무쇠뿔 오우거의 억센 팔이 형성되었고, 어깨와 허리를 따라 변화가 이어졌다. 그 변화가 완성되기 전에 투란은 무쇠 껍질에 휩싸인 오우거의 주먹을 날려 돌 하나를 노려쳤다.
쿠우―웅!
‘엥?’
―헐?
큰 울림과 함께 주먹에 맞은 돌이 저편으로 쑤욱 밀려나는가 싶었는데, 돌벽 전체가 무슨 가죽 포대의 한곳을 눌린 것처럼 출렁하고 있었다. 돌과 돌 사이가 보이는 것과 다르게 끈끈하게 얽힌 관계라고 과시하듯!
인간의 성벽에서는 결코 볼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반응인 셈이었다.
‘이게―!’
약간 울컥한 기분으로 투란은 거세게 발을 디뎠고, 주먹을 더 세게 밀어붙였다. 오우거의 괴력으로 아예 벽 전체를 밀어붙이겠다는 듯!
푸칵!
―음, 하나 밀어냈군.
‘이런 썩―!’
힘이 더해지자, 벽은 주먹에 맞닿은 돌덩이 하나를 저편으로 뿜어냈다.
얼마큼 함께 버티기는 하겠지만, 함께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듯!
돌 하나의 크기만큼만 구멍 난 돌벽을 보는 투란에게는 어처구니없고, 기막힌 거미의 성벽이었다. 그런데…….
―저거 보이나?
‘……응? 어, 보여.’
뚫린 구멍 너머에서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듯한 돌덩이 사이로, 울퉁불퉁하고 거친 돌덩이 하나가 매끄럽고 빠르게 움직이는 광경이었다. 그 돌덩이 한 귀퉁이에는 반짝이는 구슬 같은 거미 눈알 넷이 열심히 데굴거리며 여기저기 둘러보는 중이고!
―음, 분명히 은닉 그물인데…… 껍질로 두른 돌 부스러기를 몸에 묶는 역할인가 보군. 덕분에 직접 눈으로 봐야 저 돌덩이가 그 돌거미인 줄 알겠는걸. 프로브의 기능까지 훼방을 놓는지, 그냥은 탐지가 안 된다. 이 거미 떼, 정말 귀찮구먼.
‘……근데, 저거 지금 나랑 눈이 마주쳤잖아?’
네모반듯하게 뚫린 구멍 너머에서 투란과 분명히 눈이 마주쳤는데도 불구하고 본체만체하면서 부지런히 건너편의 돌벽을…… 위에서 아래로, 좌우에서 중심으로 채워 넣듯이 만들어 가는 돌거미의 태도는 황당했다.
―홀시딘이 말해 준 대로라면, 저 녀석은 성을 쌓고 진영을 갖춘 다음에 틀어박혀서 군단을 지휘한다고 했잖아. 꼴 보니, 아무래도 이 땅 밑에는 미리 성을 쌓지 않아서 지금 바쁘게 쌓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불려 왔기는 하지만,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너보고 나중에 오라고 말이야.
‘웃기지 마!’
투란은 으르렁거리는 오우거의 포효와 함께 두 손을 사납게 내밀었다.
두 발과 호응한 두 손은 단숨에 돌덩이 둘을 성벽에서 튕겨 나가게 했다.
곧바로 무쇠뿔 오우거의 덩치가 생겨난 틈새로 격돌했고, 거친 손발의 움직임이 돌덩이를 밀어내면서 첫 번째 벽을 넘으려는 순간―
―뭔 짓이야! 거미줄로 엮어 놓은 돌벽이라고!
―드라고니아의 외침과 함께 투란은 오우거의 큰 덩치를 감아 오는 거미줄을 겨우 느낄 수 있었다. 쌓인 돌의 틈새를 채우고 있던 그물이 돌을 밀어내며 넘어서는 뭔가를 만나면 저절로 흘러나와 휘감아 버리는 셈이었다.
―저보다 힘센 놈도 그물로 감아 잡아먹는 게 거미라고!
오우거의 괴력에도 느슨한 그물은 끊어지지 않았고 서서히 몸을 조이겠다는 듯이 감겨 오고 있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아예 팽팽하게 조여서 힘을 못 쓰게 할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런 오우거의 형상, 무쇠뿔을 거칠게 흔드는 모습은 성벽을 쌓던 돌의 군단장, 돌거미라고 약칭되는 괴물 거미에게 호기심을 부른 모양이었다. 네 알의 검은 구슬 같은 눈알이 반짝거리는 듯이 몸부림치는 투란, 오우거의 형상을 주시하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벽을 쌓던 움직임이 느려졌고, 여차하면 와서 그물질해 완전히 묶을까를 고민하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몸을 엉겨 오는 그물을 두어 걸음 더 끌고, 그물에 엉긴 돌덩이를 당겨 바닥에 굴리면서 으르렁거리는 무쇠뿔 오우거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돌거미는 그냥 계속 벽을 쌓는다! 곧 두 번째 벽이 완성될 듯했고, 살짝 열린 틈새로 보이는 저편에는 세 번째 벽을 쌓을 준비도 이미 된 모양이었다.
그 의도가 산뜻하게 투란의 마음에 엿보이니…….
‘어쭈? 저게 아예 무시하네?’
―당연하지! 벽만 쌓고 있으면 와서 알아서 엉겨 쓰러질 텐데 굳이 가까이 와서 험한 주먹에 맞아 줄 필요가 없잖아! 넌 지금 거미에게 멍청이 취급 당하는 중이라고!
‘세상이 그렇게 쉬울 리가 있나! 내가 그렇게 쉬운 놈이 아니지!’
―이미 오우거의 손발에는 저놈 그물에서 새어 나온 거미줄이 잔뜩 엉겨 있거든? 조금만 더 감기면, 그대로 끌어 올려져 거꾸로 매달려고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꼴 된다만?
‘흥!’
크으흥!
사람으로서 코웃음 치려던 생각은 오우거의 거센 콧김을 뿜게 했다.
동시에 무쇠뿔 오우거의 몸 곳곳에 검은 얼룩이 번져 갔다.
잉크가 힘줄, 핏줄 깊은 곳에서 배어 나와 오우거의 살갗을 물들였고 무쇠 껍질 곳곳에 스며들면서 회오리 혹은 소용돌이의 무늬를 그리는 듯했다. 무늬는 고정되지 않은 채로 계속 맴돌았고, 그 흐름에 따라 검은 재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워어어―!
포효와 함께 꽉 움켜쥔 무쇠 껍질 주먹이 내질러졌다.
콰앙!
거칠고 험악한 오우거의 발 구르기가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뭉개고 구덩이를 만들어 냈다.
―우왓? 이 폭발은 뭐야!
드라고니아는 이 발 구르기의 과격함 속에 이전과 다른 성향의 폭음이 함께 엮인 것을 바로 파악하고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기 전에 내지른 주먹에서 다시 한번 폭음이 피어올랐다.
퍼―엉!
괴력과 함께 피어난 폭음, 거센 돌격은 감아 오는 돌거미의 그물을 밀어내는 듯했고 오우거의 형상이 곧바로 두 번째 돌벽에 충돌했다.
콰아앙!
우렁찬 폭발음이 다시 울려 퍼졌다.
―블랙 애쉬?
기막혀 하는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그래!’
오우거의 온몸에 퍼뜨린 마그마 로드의 검은 결정, 노골적으로 소용돌이의 형상을 바탕으로 피워 낸 블랙 애쉬가 어긋나면서 억센 불길과 함께 폭발하고 있었다.
주먹에 닿은 돌덩이가 박살 나며 흩어졌다.
괴력과 폭발, 두 가지를 휘둘러 대면서 투란은 엉거주춤하며 둘러서는 돌거미 군단장을 향해 진격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돌거미 군단장이 돌기둥을 들어 올리는 광경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