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8)
―용암(鎔巖) 몬스터라도 한 방에 보내버렸겠군. 마그마 로드의 본질(本質)이 마그마가 아니라서 다행이잖아.
‘……시끄러워, 죽을 뻔한 거잖아!’
―그럴 리가.
뭔가 무방비하게 움직이던 부분에서 더 뭐라 잔소리하고 싶은 듯한 드라고니아의 낌새가 무럭무럭 투란에게 전해져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라크레온이 대체 무슨 방식으로 이런 불길을 뿜어냈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듯, 드라고니아는 분석에 더 집중하는 듯했다.
투란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쳇! 근데 대체 이거 뭔 불이야?’
―아라크레온이 체내에서 합성한 연료(燃料)를 점화해 뿜어낸 불이다. 연료가 도포(塗布)된 영역만을 불태우는 거지. 이 정도 위력은 내가 아는 기록에는 전혀 없었다만.
‘어우읏! 크읏―! 이게 유령이 된 기분인가!’
―작작 좀 해라!
‘흥.’
아라크레온의 기묘한 특성에 빠져 자신의 상태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드라고니아를 향해 코웃음을 한 방 뿌려 주기는 했지만, 투란은 지금 상황이 거의 죽지만 않은 위험한 수준이란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대강 20미터 가까이 간격이 좁혀들었다 싶은 순간, 아라크레온이 뿜어낸 새파란 불길이 투란의 몸을 스쳐 가면서 정신이 잠깐 날아갔다 싶을 정도의 충격적인 꼴을 겪었다. 몸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남은 것은 그저 열심히 찍어두고 왔던 잉크의 자국…… 그마저도 금세 증발해 버린 다음에 남겨진 것은 그 속에 감춰뒀던 마그마 로드와 몰튼노트의 파편 같은 형상이 고작이었다.
그 결과 몰튼노트의 불꽃은 새파란 불길의 뜨거움을 이용해서 주변에 깊이 그 형상을 새기며 스며들었고, 마그마 로드는 허공에 섬세하게 흩어진 블랙 애쉬를 통해 다시 재구성되는 중이었다.
주변에서 녹아 흘러오는 땅의 잔해는 금세 마그마 로드의 지배력이 닿았고, 그 속으로 정수가 번졌다. 더불어 몰튼노트는 폐허가 된 땅 아래로 깊이, 짙고 굳건하게 번지며 다시 잘 감춰진 채로 몸의 기반을 생성시키고도 있었다.
그 덕분에 투란은 당황했던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따지고 보면 살짝이라도 미리 준비한 바가 있어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위기였던 셈이지만, 전혀 예상 못한 의외의 한 방이 주는 놀라움은 가볍지가 않았다.
그래서 투란도 보다 신중하고 진지하게 다시 아라크레온을 살피는데…….
쿠앗! 쿠아앗!
사자머리가 입을 열고 격한 소리와 함께 다시 새파란 불덩이를 토해 날리고 있었다.
‘응? 아까랑 다르네?’
길고 넓게 펼쳐지던 불길과 다르게 이번에는 큰 덩어리이기는 하지만, 딱딱 끊어진 듯한 불덩이였다. 맹렬히 유동하는 뭔가가 파랗게 불타는 껍질 안에 숨겨진 듯했고, 용암으로 이뤄지는 사람의 모습에 닿는 순간 터져 나오려 했다.
그대로 터진다면 다시 용암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증발시켜 버릴 기척이 또렷했다.
‘모양 바뀌었다고 또 당할까!’
이번에 투란은 사람의 크기, 모양은 갖췄지만 마그마 로드의 정수가 맴도는 용암이었다. 닿은 부분을 바로 증발시키는 무시무시한 초열은 마그마 로드의 정수 속으로 그대로 흘러들었다.
그래도 불덩이가 지닌 중량 탓인지 둔탁한 충격이 용암에 파문을 일으켰고, 사람의 윗몸을 좌우로 갈라놓는 듯한 결과가 남기는 했다. 그 결과는 공중에서 둥글게 뭉치며 시뻘건 용암의 눈알 둘을 만들어 냈고, 주변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가는 가닥을 받쳐 주려는 듯이 바닥에서 검은 기둥이 솟구쳐 올라 눈알을 품는 광경이 바로 펼쳐지기도 했다.
갈라졌던 용암 인간이 다시 뭉치면서, 좌우로 용암 눈알이 박힌 검은 기둥을 둔 꼴을 보면서 아라크레온도 뭔가 알아차린 듯했다. 한껏 벌리면서 다시 새파랗게 빛나는 뭔가를 머금고 토해 내려던 입을 그냥 다물고 있었으니.
그 광경에 투란은 용암으로 된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면서 노려보는 표정을 띄우려 하는데…….
―불 붙여 놓고 다시 삼켜? 저거, 대체 배 속이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드라고니아는 아라크레온의 간단한 판단과 행동에 놀라고 있었다.
‘응? 왜? 입 안에서 시퍼렇게 빛나도 입이 녹거나 타지 않았잖아?’
―입 안이더라도 계속해서 숨결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숨결을 바람막이로 이용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저걸 다시 저대로 삼켜 끈다는 것은…….
‘이거 어디 갔어!’
드라고니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투란이 흠칫하며 소리 없이 외쳤다.
시야에서 갑자기 아라크레온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주 잠깐 사이였고, 투란은 자신이 감을 필요가 없는 눈알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뭔가 무겁게 한곳에 몸을 찰싹 붙이고 다가오는 것을 거센 불길로 태우려던 놈이 그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지다니!
―달리고 있다!
‘응? 어디―, 우엇!’
사라지는 광경에도 놀랐지만, 땅을 딛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밟으며 달리는 꼴에 투란은 더 놀라고 말았다.
아라크레온은 날개를 퍼덕이거나 하는 짓과 전혀 다른, 정말로 뭔가를 짓쳐 밟으면서 달리고 있었다. 어지간한 시각(視覺)은 심하게 혼란시킬 정도로 아주 빠르게, 투란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면서 질주하며 맴돌고 있었다.
‘거미줄? 거미줄이지!’
소리를 내지 않는 급한 외침으로 마음을 울리면서 투란은 다양한 감각을 활성화해 아라크레온이 대체 뭘 저 네 쌍의 다리로 딛는 발판으로 삼는가를 알아내려 했다. 그러는 사이―.
흐르면서 검은 수정의 조각을 살며시 띄우는 용암 위로 가늘고 긴 금이 그어졌다. 수없이, 온갖 방향으로! 아라크레온의 질주가 그려 내는 원 안을 완전히 금 긋기로 채우겠다는 듯, 사정없이 그어졌다.
그러나 콸콸대는 용암도, 휘날리는 재도 기묘한 금 긋기를 당하고는 있지만 다시 꿀렁거리고 휭휭 불어 날릴 뿐이었다.
이런 상황을 바꾸겠다는 듯, 아라크레온이 다시 행동을 바꾸었고―.
―나노미터의 실이라니! 어떻게 생겨 먹은 괴물이냐고! 대체 저런 게 어떻게!
‘……나노미터? 미크론 단위야?’
―젠장, 원래 거미줄 굵기라는 게 미크론의 영역에 속하지! 마수인 놈들이 그 덩치에도 보통 거미랑 같은 굵기를 뽑아내고 엮어 굵게 키우는 것도 황당했지만! 저 여왕님은 미크론의 영역에서 최소단위로도 측정이 까다로운 가는 실을 거미줄로 이용하고 있어! 게다가 저 속도라면, 이미 주변에 새로운 그물을 다 지었다고 봐야겠지!
‘……라는 말은, 결국 거미집 하나 뭉개 놓은 짓은 쓸모가 없었다는 소리지? 그렇다면 아레나의 경계로 저걸 언제까지 잡아둘 수 있는가도 알 수 없…… 엑?’
좌악, 쩌억!
검은 기둥이 갈라졌다.
곧이어 투란의 허리춤, 다리, 목 언저리를 두께가 아예 없는 듯한 그물을 수없이 겹친 막이 스쳐 지나갔다.
―나노미터 단위의 참격(斬擊)이다! 폭이 없는 실로 잘라봐야 어떻게 안 되니까, 아예 평면(平面) 형태로 끼워 넣고 튕긴 거야!
‘……똑똑하네?’
투란이 감탄과 함께 격노를 품으면서 잘려 나가 쓰러진 검은 기둥이 벌겋게 달아올라 부풀고 터졌다. 용암의 분류(噴流)가 치솟으며 거대한 주먹의 형상을 만들어 냈고, 사방으로 수십 가닥이 휘날리며 주먹질을 해 댔다. 맞지 않더라도 용암의 줄기가 퍼지면서 아라크레온의 질주를 확실히 방해할 참이었다.
그런데 돌연 하얀 막이 펼쳐지며 용암 주먹 하나를 가로막으며 덮었다.
계속해서 용암을 치솟게 하는 힘이 거칠게 하얀 막을 밀어붙였지만, 막은 녹지도 타지도 뚫리거나 찢어지지도 않았다. 그저 어느 정도 위로 올라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듯이 멈춘 아라크레온의 머리 앞쪽에서 멈췄다.
크르르르―!
음침한 느낌의 울림을 토해지면서 하얀 구슬 같던 아라크레온의 눈알이 툭툭 빠져나왔고, 하얀 막으로 떨어지면서 스며들었다.
‘우악? 저거 눈알 아니었어! 쏙쏙 빠져?’
―그게 실뭉치인 거는 문제가 아냐! 저 괴물, 지금 용암을 상대할 수 있는 거름막을 짜냈단 말이다! 나노미터 실이니까 안 될 건 없겠지!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마그마 로드가 뿜어내는 용암의 입자규격을 파악하고 막아낼 수 있는 그물 거름막을 만들었다고!
‘뭔 소리야?’
갸웃하면서 투란은 막혀 있던 용암의 주먹에 집중했다.
새빨간 불꽃이 곧바로 하얀 막 너머에서 치솟으며 아라크레온을 덮쳤다.
크르―!
검은 광택이 흐르는 아라크레온의 가죽이 불꽃을 곧바로 떨쳐냈다.
그래도 아라크레온의 조각 같은 사자 낯짝이 조금 일그러졌다는 것을 투란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마그마는 못 지나가네? 흐흠.’
―야! 이―! 괜한 정보를 주고 학습시키지 말라고! 저게 무슨 짓을 할지 이제 예측이 안 된단 말이닷!
‘언제는 예측대로 잘 풀렸어? 아, 저거 뭘 하려는 거지?’
아라크레온은 이제 거꾸로 매달린 모습으로 질풍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하얀 색채가 그 움직임에 따라 허공에 번져 갔다.
마치 크고 얇은 지붕이라도 만들어 투란에게 덧씌우려는 듯이 보였다.
―마그마 로드를…… 이 용암을 몽땅 덮고 찍어 누르려는 모양인데? 저걸로 덮여서 쌓여버리면 항아리에 담긴 뜨거운 물 꼴이 될 수 있어! 어디로든 피해야―.
‘아레나 안에서 저거랑 달리기해 봐야 뭔 소용이야? 그리고 지금 내가 피해서 될 일이냐고, 정신 좀 차려.’
후으으―.
투란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굵은 용암 줄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용암으로 이뤄진 거대한 주먹이, 손가락이 허공을 두들기고 쑤시듯이 뻗어 나갔다.
아라크레온은 이를 막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하얀 막의 범위를 더욱 넓혀갔다. 자신이 자아낸 하얀 막 아래 매달린 채로 요리조리 피하며 넓히는 꼴이었다.
투란은 그 넓이를 가늠했고, 대강 이십에서 삼십 미터 정도로 덮여져 올 것이라고 일단 예상을 했다. 그 정도라면 당장 펼쳐진 마그마 로드와 몰튼노트의 범위를 다 덮지 못할 듯한데―.
촤앗! 시이잉!
예상을 깨 보이겠다는 듯, 갑작스럽게 하얀 막이 두 배 가까이 옆으로 퍼졌다.
마치 겹쳐진 있던 두 장의 나뭇잎 중 하나를 옆으로 밀어 두 장의 넓이를 확보하는 듯했다. 그 두 장은 곧 네 장이 되었고, 여덟 장이 되었으니!
―한꺼번에 몇 겹으로 짜고 있었나!
‘진짜 제대로 하는데!’
투란은 새삼 감탄했다.
마그마 로드의 용암과 몰튼노트의 불씨가 닿는 범위 전체를 완전히 덮을 수 있는 하얀 그물막을, 똑바로 바라보는 앞에서 겹쳐서 지어낸 것이다! 그것도 허공에 잔뜩 펼쳐 놓아서 언제라도 내려 누를 수 있도록! 이제는 애초에 어떻게 허공에 거미줄을 걸었는가를 따질 수가 없었다. 저런 짓을 할 정도라면, 뭘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니!
그래서 투란도 이에 바로 대응하니…… 주변의 마그마가 팽창하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단숨에 5미터 이상의 덩어리가 뭉쳐 들고, 중량이 증가했다.
아라크레온도 이런 투란의 변화를 알아차린 듯, 투란의 머리 위에 멈칫하더니 하얀 막에 구멍을 내고 엉덩이부터 담가 넘고 있었다.
부아아― 앙!
거대한 폭음이 두껍고 굵게 뭉쳐진 마그마의 아래편에서 터졌고, 수 미터가 더 부푼 용암 덩어리가 솟구쳤다. 곧장 아라크레온을 겨냥해 날려진 것인데…….
퍼어억!
아라크레온이 지나친 구멍 주변으로 용암이 철썩 달라붙으면서 번져 갔다. 이제는 하얀 막에 용암이 들러붙으면서, 아래로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용암의 천장 같은 꼴이 되는가 싶은 순간이었다.
사아아―.
바람이 짙게 억눌리는 소리가 터졌고, 넓게 멀리 펼쳐졌던 하얀 장막이 굽이치면서 폐허 위로 수십 미터를 덮듯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막 너머에서는…….
‘이상한데?’
투란은 의아했다.
아라크레온이 빠져나온 구멍을 통해 투란도 하얀 장막 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딱 사람 크기만큼 용암이 뿜어지는 순간, 구멍이 조여들었다.
이제는 발목 하나만 구멍에 걸친 채로, 아라크레온을 바라보는 용암 인간의 형태를 만들어 내며 투란은 주변을 둘러봤다.
저편에 네 쌍의 다리로 우뚝 선 듯한 아라크레온, 구멍에 걸친 다리 무릎으로 바닥의 막을 눌러보면서 다른 다리는 무릎을 세운 채로 앉아 손으로도 바닥을 더듬는 투란 자신…… 평평한 하얀 장막 위에는 둘뿐이었다.
그리고 주변 풍경이 상승하는 듯한 순간, 투란은 자신이 뛰어올랐던 높이로 되돌아온 것을 알아차렸다. 아라크레온의 그물 장막이 하강해서 지면을 덮은 것이다. 평평한 뚜껑처럼!
크르, 후으으.
묘하게 마주 보는 상황에서 아라크레온이 무슨 짓을 하려나 보니, 온몸의 굴곡진 마디 사이로 하얀 안개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잔잔하게 퍼지면서 흩어지는 꼴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실이…… 거미줄이 아냐? 저거 대체…….’
―냉각제(冷却劑)야! 초열의 연료뿐이 아니었어! 저거, 극저온을 일으킬 수 있는 냉각물질까지 합성할 수 있었다! 식는다, 투란!
‘……에? 식어?’
투란은 의아해하다가, 돌연 바닥을 짚고 더듬던 오른팔이 뚝 끊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용암이 얼어붙은 채로 동강난 꼴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새삼 투란은 속이 서늘해지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