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69)
땅속 깊은 곳까지 하얀 그물막이 퍼지고 있었다.
몰튼노트가 펼쳐지며 깊이 새겨든 범위는 물론이고, 마그마가 스며있는 범위를 모두 포함한 채로!
‘어떻게 하는 거지?’
투란은 의아해서 다시 ‘지각(知覺)’을 최대한 확대해서 더듬어 봤다.
희미하게 느껴졌던 것이 다시 구체적인 형태로 마음에 비쳤는데…….
허공을 덮으며 자아냈던 하얀 막이 붕괴된 지반으로 스며들어 원래 있던 그물…… 파묻혀 쓸모없을 거라 여겼던 아라크레온의 거미줄과 엮이고 있었다. 엉켜서 엉망진창이 되어 흩어져 지반의 잔해와 섞인 그물에 닿아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는 셈이었다.
그 형태는 드라고니아가 이미 짚어준 그대로, 마그마의 범위 전체를 휘감는 부드러운 보자기로 된 항아리…… 그릇처럼 이뤄지고 있었다.
세심하게, 정교하게 확대되는 그 그릇의 크기는 투란을 새삼 놀라게 했으니, 아무래도 아라크레온이 투란이 펼쳐 놓은 마그마 로드의 규모, 범위를 모조리 파악해 낸 듯하잖은가.
그리고 본보기로 위로 살짝 튀어나오게 허용한 용암 인간, 투란을 놓고 아라크레온은 새로운 체내에서 합성한 냉각제를 차가운 안개처럼 뿜어내면서 실험해 보고 있는 듯한데…….
서리가 거미줄에 맺혀 얽히면서 빗방울이 허공에 멈춘 채로 굳어진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제대로 보이지 않던 거미줄이 얼마나 많이, 자욱하게 깔려 있는가를 거기 서리방울을 걸어 보여 주는 듯했다.
‘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대하지 못한 느닷없는 광경에 투란이 입술을 살짝 열면서 숨을 길게 토해 내봤다. 추운 날의 아침처럼 입에서 흐릿한 안개가 흘러나는 듯했다. 더불어 혀끝을 타고 몰튼노트의 불씨 또한 몇 점 토해졌는데…….
안개에 직접 닿지 않아도 이미 가득 번진 차가움에 바로 불씨가 꺼져 사라졌다.
불씨를 꺼뜨리는 것은 몰튼노트에게 아주 치명적인 공격!
마그마를 가로막는 장막, 차갑게 식혀버리는 것 또한 압도적으로 이 상황을 장악해가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툭, 얼어붙어 끊어진 용암의 팔이 그물 위로 떨어지면서 살짝 금이 갔다.
그 금간 틈새로 붉은 거품이 부풀었고, 속이 시뻘겋게 채워졌다.
투란의 어깨, 얼어 버린 절단면(切斷面)에서도 속이 붉고 끈적끈적한 마그마로 채워진 거품이 솟아났다.
팡.
가볍게 거품이 터지는 순간, 뜨거운 용암이 분출(噴出)되었다.
그물 위에서 팔은 녹아 붉게 달아올라 맺힌 용암 덩어리가 되었고, 어깨에서는 새로운 마그마의 팔이 돋아나면서 아라크레온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동시에 하얀 막에 억눌린 아래쪽에서도 마그마가 폭발하듯이 부풀며 온갖 방향으로 난동(亂動)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런 투란의 움직임을 아라크레온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날아든 마그마 주먹질에 대해 입을 열고 하얀 덩어리를 토해 냈다. 덩어리는 붉게 번들거리는 주먹과 닿자마자 펼쳐졌고, 회오리치는 보자기가 되어 곧바로 투란의 어깨까지 돌돌 말아 버렸다.
그 광경이 선명한 결과를 보이기도 전에 네 쌍의 다리 중, 맨 앞 일렬(一列)의 한 쌍을 바쁘게 움직였고 바닥에 떨궈진 팔이었던 용암 덩어리가 늪에 빠진 돌처럼 하얀 막 아래로 잠겨들었다.
난동을 일으키면서 단단해진 하얀 그물 장막을 깨려 하는 힘에 대해서는 장막이 부드럽게 출렁이며 팽창(膨脹)하고, 흐느적거리는 듯이 유동(流動)하며 그대로 완충(緩衝)시키고 있었다.
마그마는 장막을 뚫지 못했지만, 붉은 빛을 머금은 장막 또한 달아오른 마그마의 뜨거움을 완전히 억누르지 못한 채로 불꽃이 스며 나와 너울거리게 했다.
‘쳇.’
투란은 묶여 조여드는 어깨를 거칠게 흔들었고, 새로운 용암의 팔을 길게 뿜어내어 아라크레온에게 뻗어 냈다. 하지만 이미 감긴 팔에서 서리빛이 맴도는 금이 그어지며 그 팔조차 금세 휘감겨 반도 못 나가 멈추고 말았다.
우웅, 출렁!
그물에 갇힌 마그마가 투란의 팔에서, 장막 아래에서 한꺼번에 거세게 요동을 쳤다. 그러나 열에 의한 불꽃만 잠시 장막을 넘어섰을 뿐이고, 마그마는 한 방울도 튀어 올라오지 못했다.
―가라앉고 있다! 이미 갇힌 것 말고, 다른 곳에서 마그마를 형성해도 되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끙끙거리며 힘 싸움에 몰입하려는 듯한 모습이 답답하다는 듯이 충고하고 있었다. 그 말대로 어느 틈에 투란의 몸은 허리까지 출렁이는 장막에 잠겨 든 채였다.
‘억울하다고! 저놈은 저렇게 붙박이처럼 떡 버티고 툭툭 발끝만 움직이는데 난 온몸을 휘둘러 대는 꼴이잖아! 억울해서 이대로 한 방 치고 싶어! 저게 저렇게 가볍게 까닥대는 꼴부터 어떻게 하고 싶다고! 나, 한 방 세게 먹었잖아!’
―가볍게? 투란, 저 여왕 아라크레온은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다. 대체 뭘 보고 가볍게 까닥인다는 거냐?
‘어? 전력?’
―그래. 마그마의 초열을 단숨에 식히는 냉각제를 버티는 중이고, 주변에 뿌려 둔 자기 실…… 거미줄을 닥치는 대로 끌어당겨 쓰고 있다. 마그마에 버틸 수 있는 거미줄은 모조리 동원하고 있다고.
‘잠깐, 냉각제를 버텨? 저 차가운 안개가 자기 몸에도 안 좋은 거야?’
다시 봐도, 그냥 몸 주변으로 안개가 흘려 내면서 꼿꼿한 것이 전혀 좋지 않은 뭔가에 닿은 낌새가 없었다. 그러나…….
―당연하지! 몸 안에서 합성한 것을 밖으로 뿜어내서 그 효과를 발휘한다만, 마그마만 골라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고! 그렇다고 너한테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드라고니아는 확신해서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다시 용암 가닥을 나눠 주먹질을 하면서 상황을 둘러봤다.
‘흐흠, 전력이었다는 말이지…… 아, 근데 이 그물 뭐야! 무슨 늪처럼 가라앉잖아.’
―늪이다. 나노미터의 거미줄로 마그마를 가라앉히고, 치솟지 못하게 걸러내는 그물을 만들어 냈잖아. 아래쪽 한 방향이 아니라, 사방으로 작용하는 특별한 늪이라 할 수밖에 없지! 서리가 녹아 물결까지 찰랑이잖아! 속에서는 마그마가 찰랑이고! 젠장, 거미줄도 다 같이 흐느적대면서 찰랑이는구먼!
‘……꽤 섞인 늪이라, 이거지.’
―그래! 이대로 마그마를 조이고 압축시켜서 식힌 다음에 알갱이로 걸러낼 참이라고! 몽땅 블랙애쉬로 돌변할 위기란 말이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어비셜 볼텍스 말고, 뭐든 해 보란 말이다!
투덜거리는 듯했지만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하지 말라는 것이 있어서 투란에게는 조금 삐딱한 기분을 품게도 했고!
‘알았다고! 어쨌든…… 지금 꼴로는 마그마가 저놈이랑 상성이 아주 나쁘다는 거잖아. 에이, 그냥 황금매의 마그마였다면…….’
문득 수십 킬로미터의 용암 호수를 떠올리면서, 투란은 과연 거기서 아라크레온 여왕은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다. 그 위를 한 걸음씩 식히면서 걸었을까? 그것도 몽땅 덮겠다고 날뛰었을까?
―한가한 생각은 나중에 하라고!
‘응? 아, 그래…… 이 거미 여왕의 늪을 해결해야지.’
이미 가슴 언저리까지 잠긴 채로, 옆으로 슬쩍 빼서 떨궈 힘없는 척하던 빈 손 주변으로도 알뜰하게 밀려오는 그물의 찰랑임을 느끼면서 투란은 ‘천칭’에 집중했다. 호기심을 가득 품은 투란에게 호응해서, ‘작은 돌’이 비어 있는 손바닥에 볼록하게 자리 잡았다.
첨벙.
가까운 곳에 조그맣게 물이 고인 자리로 ‘작은 돌’이 박힌 손이 찍혔다.
―투란, 너 뭘……?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투란은 마음의 한구석으로 집중해 들어가며 ‘작은 돌’의 감각에 집중했다. 서리가 맺히고 녹은 물, 차가움, 마구 꼬인 듯하지만 정제(整除)된 그물가닥이 물방울의 입자보다 더 가늘고 얇은 채로 가라앉히는 ‘아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아래’를 채우며 뭉친 것은 아주 뜨거웠고!
‘아하, 전부 다 섞자고?’
‘작은 돌’의 갈망이 투란의 마음에 세게 울렸다.
투란은 이에 호응했고, 손과 마주하는 장막 너머의 마그마 로드의 형상 속에 새로운 ‘작은 돌’의 조각을 만들어 냈다. 하얀 그물의 안팎에서 두 조각 ‘작은 돌’이 공명하며 서로를 향해 부딪쳤고…… 그물 한 조각이 베어지듯이 사라졌다. ‘작은 돌’ 두 조각이 하나로 엮였다.
그 순간, 투란은 ‘작은 돌’이 ‘이해(理解)’한 것을 ‘자각(自覺)’했다.
‘헤에, 이렇게 되는 거구나. 나중에 뜨거운…… 아, 그건 나중에 하고!’
호기심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용암의 늪을 만들 궁리를 한구석으로 밀어내면서 투란은 지금 맛본 뜨겁고, 차갑고, 물보다 미세한 실 가닥이 잔뜩 섞인 채로 뭔가를 빠져들게 하는 ‘아래’를 지닌 늪…… 거미늪에 집중했다.
오로지 아라크레온의 지휘, 직접적인 저 여덟 개의 발끝과 그 몸짓에 복종하는 거미줄과 차가운 안개, 배 속에 뜨거운 용암을 지닌 괴이한 늪!
‘잡아먹자!’
어쩐지 아주 오래되어 빛바랜 듯한 기억을 더듬으며 투란은 규칙을 정했고, ‘작은 돌’이 바로 새로운 ‘용암서리거미줄늪’을 낳았다. 아라크녹스의 여왕 아라크레온에게 결코 복종하지 않으며, 거기 복종하는 수동적인 늪을 잡아먹고 투란에게 무한정 회귀(回歸)하는 본능을 지닌 살아 있는 늪…….
촤르르르―!
손아귀에서 형성된 늪의 덩어리가 곧바로 투란의 주변을 한 바퀴 맴돌았고, 투란을 묶고 있던 하얀 장막의 그물을 모조리 삼켰다! 베어물 듯이 삼켜 순식간에 사라져간 장막 아래에서 마그마가 불끈 치솟았고, 이 또한 바로 늪이 먹어치웠다.
‘에? 아―.’
약간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곧 투란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알아차렸다.
전부 먹어치우라 정했으니, 용암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불어나고 굵어진 늪이 가슴으로 기어올라 더듬는 꼴, 그러면서도 주변에 새로 몰아닥친 거미줄을 끊임없이 베어 물고 삼키는 광경을 느끼고 보면서 투란은 ‘천칭’의 핏빛 고리를 열었다.
새로 태어난 ‘용암서리거미줄늪’은 최우선으로 설정된 본능에 따라 곧바로 핏빛 고리 안으로 스며왔고…… 투란은 문장의 풍경 속에 형성된 몬스터 ‘늪’의 정수에 곧장 정신을 집중했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 순식간에 새로운 ‘늪’의 형상으로 변했다.
잠깐 사이에 아라크레온의 하얀 장막이 투란 주변에서 깨끗이 없어졌다.
‘늪’인 투란이 새롭게 자신의 영역을 꾸며낸 탓이었다.
그 변화에 아라크레온이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네 쌍의 다리는 이미 늪에 걸려 푹 빠진 꼴이 되어 있었고 그 몸통마저도 뒤는 완전히 기울어져 늪에 휘말려 가라앉은 채였다. 이를 보는 투란은 두 팔을 늘어뜨리고, 허리 아래를 푹 담근 모습을 한 채 히죽 웃었다.
아라크레온이 새로 널찍하니 굽어진 판자처럼 솟아난 늪의 손아귀에 붙들려 당겨졌다. 그 온몸을 뒤틀며, 몸에 닿는 모든 거미줄을 당기고 휘둘러 벗어나려 했지만 새로운 늪은 그 거미줄을 모두 베어물고 삼켜 버리며 아라크레온을 ‘늪’인 채로 사람의 상반신을 꾸미고 있는 투란에게 당겨왔다.
느릿하니 들어올린 투란의 손끝에 투명하고 맑은 돌의 손톱이 반짝였고, 곧바로 가라앉아 머리만 내민 꼴이 된 아라크레온의 사자머리 이마에 수직과 수평으로 깊이 할퀸 자국을 냈다.
“넌…… 늪은 아니구나.”
속이 빈 아라크레온의 눈구멍 깊은 곳에서 미세하게 휘날리는 실 가닥을 보면서 중얼거리고, 투란은 그 머리를 가만히 끌어안아 가슴에 댔다. 핏빛 고리가 길게 빛의 가닥을 뿜어내 투란이 낸 사자머리의 교차된 흠집 속으로 파고들었다.
크르― 크륵!
아라크레온의 기묘한 절규는 낮은 소리였지만, 투란에게 뭔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 녀석,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이상한 일이었지만, 투란은 지금 이 낮은 절규가 비명이라기보다는 확실하게 ‘얌전히 날 풀어 주지 않으면 아주 심하게 혼날 줄 알아라!’라는 협박으로 느껴졌다. 마치 이 상황에서도 ‘내가 여왕이야! 넌 날 무서워 해야해!’라고 위엄을 갖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의 힘에도 뭔가 저항하면서 아라크레온의 정수를 지키려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하― 아핫! 메롱이야아―! 널 잡으려고 이렇게 고생했는데, 놔줄 수 없어! 넌, 나랑 간다!”
촤악, 처척!
‘늪’의 널직한 손길이 겹으로 일어서면서 아라크레온을 꽉 누르며 움켜쥐었다.
정수를 휘감아 채집하는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보다 짙어졌고…… 투란은 자신이 뭔가 착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진짜로 아라크레온, 이 여왕의 안에는 ‘천칭’의 힘에 저항하는 어떤 힘이 존재했다. 그 힘은 지금 한곳에 뭉쳐 들었고, 몬스터 엠블럼의 핏빛 고리를 흩뜨리면서 투란을 막아서려 했다.
‘까불지 마!’
투란은 저항해 오는 힘을 빙 돌아 핏빛 고리의 범위를 넓혀, 저항이 없는 부분부터 아라크레온의 정수를 흡수해갔다. 일단 다른 부분을 삼켜서 이 저항력을 더 약화하려는 것이었고,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삼켜진 부분은 거의 즉각적으로 문장의 풍경 속에 아라크레온의 몸 한곳을 그려 내듯 나타났다. 저항하지 않는 부분은 너무나도 순종적인 것이 한층 더 괴상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