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0)
크르릇!
아라크레온이 남은 힘을 모아 저항하듯 고개를 젖히려 하니, 투란은 곧바로 두 손으로 사자머리를 잡아 붙들었다. ‘늪’에서도 사람의 손과 다른 넓은 판자 같은 손이 새로 쑥쑥 치솟아서 아라크레온의 버둥거리는 다리, 몸통을 더 깊이 덮고 눌렀다.
그럼에도 아라크레온의 조각 같은 갈기 한쪽이 쑥 빠져 저편으로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 버렸다!
‘엥?’
순간, 투란은 모든 저항이 사라지면서 아라크레온의 가죽이 단단함을 잃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짧은 동안에 몬스터 에센스가 모조리 삼켜진 것이다. 남은 것은 뼈도, 살도 없는 텅 빈 껍질인 가죽뿐. 아라크레온 여왕은 그렇게 삼켜지면서 그저 갈기 한쪽을 저 멀리 날리는 데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부은 듯했다.
―소환(召喚)?
침묵하면서, 살짝 이를 빠득거리며 가는 기척만 별빛 무리 속에서 웅장하게 울리던 드라고니아가 너무 당황해서 다시 말문을 열고 한마디 했다.
‘소환? 뭐야, 그게?’
의아해하면서도 투란은 일단 ‘늪’의 형상을 거둬들이면서 태세를 정비했다.
아라크레온의 가죽은 발아래 넓게 펼친 잉크 속에 던져 가라앉혔고, 잉크의 한끝은 저쪽 멀리 흘러가게 하면서 발아래로 가늘게 이어지는 한 가닥을 남겨 질질 끄는 걸음으로 갈기 한쪽이 날아가 떨어진 곳을 향해 다가갔다.
가는 도중에 슬쩍 뒤돌아보고 홀시딘에게 나름대로 ‘걱정하지 말아요, 나 괜찮아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닥쳐! 전혀 걱정 않고 있거든!’이라는 굉장히 삐뚤어진 답이 돌아와 투란을 어이없게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나중에 따질 일로 제쳐두고, 투란은 아라크레온이 남긴 갈기 한쪽을 향해 다가갔는데…….
거기에는 이미 갈기가 없고 검은 구체(球體)가 나타나 있었다.
구체는 위로부터 서서히 풀어헤쳐지며 흘러내려 바닥에 검게 채워진 원, 구멍을 그려 내고 있는 중이었다.
투란은 문장의 풍경을 더듬어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저거, 아라크레온 아니지? 뭐가 그 안에 숨어 있다가 달아난 건가?’
잠깐 침묵하다가…… 뭔가 굉장히 당황하고 어이없어서 할 말을 잃은 듯하다가 드라고니아가 깊이 가라앉은 한숨처럼 대답을 한다.
―투란, 나는 왜 이렇게 불운한 거냐?
‘……엥? 불운?’
참으로 괴상한 말이었다.
투란에게는 전혀 납득할 부분이 없는!
―넌 대체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거냐!
‘……야, 뭐라는 거야!’
한층 더 괴팍해진 소리였다.
투란이 전혀 알아듣지 못할!
어느 쪽이든 투란에게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괴이한 얘기였다.
도대체 저게 뭐라고 드라고니아가 느닷없이 불운이 어쩌고 재수가 어쩌고 하고 있는가? 조금 더 들으면 괜히 울컥 화만 날 것 같잖은가!
―왕이라고! 왕!
투란보다 빠르게 울컥한 드라고니아의 외침이었다.
‘왕? 뭔 왕?’
여전히 무슨 말인가 전혀 느끼는 바가 없기에 투란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뭔 왕은 무슨! 말했잖아! 아라크녹스의 왕이 있다고! 저게 바로 그 왕을 부르는 소환의 제단(祭壇)이란 말이다!
‘……뭔 소리야, 그게! 왜 아라크레온의 머리에서 쑥 빠져나간 갈기 한 묶음이 제단이라는 거야?’
―알 게 뭐야! 저건 제단이고, 저기서…… 젠장, 벌써 나오잖아!
‘못 막나?’
드라고니아의 심각한 기분에 살짝 동조하면서, 투란은 무슨 일이 터지기 전에 막는 방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다시 강조하듯, 드라고니아가 단호하게 말한다.
―못 막아. 신벌(神罰)이 이미 결정된 이상, 저 심판(審判)의 마물(魔物)은 반드시 출현한다.
‘……신벌? 야, 잠깐만! 내가 뭘 어쨌다고? 이거 이상하잖아! 난 그 여신은 신전 구경은커녕 제대로 이름도 못 들어 봤거든? 그러고 보니 네 말도 이상해! 뭔 드래곤로드니 대마도사니 그랬잖아! 네가 드래곤이냐? 내가 대마도사야? 저런 게 왜 나오냐고! 이상하잖아!’
―그래, 정말 이상하지! 그러니까 결론은 너 대체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경우냐고! 왜 저런 걸 불러내는 일에 꼬여 드냔 말이다!
‘아, 다 나왔네?’
―이런 망할!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반쯤 정신 줄 놓은 것처럼 떠드는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듣는 자세로 유심히 지켜봤고,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뭔가가…… 방금 전에 싸웠던 아라크레온과 아주 닮은 것이 검은 원 안에서 솟아나는 것을 감상했다.
사자의 머리, 검은 돌의 질감이 물씬 풍기는 가죽,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거미의 형상…… 그러나 미묘하게, 여왕 아라크레온과 차이점 또한 분명히 보였다. 여왕은 꽁무니 부분이 높이 치켜 올라간 듯한 모습으로 후반신(後半身)이 높이 보였다. 하지만 이 왕이란 것은 어깨가 더 굵고 몸의 뒷부분은 굵직한 다리가 높이 솟아 굽어진 가지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여왕 아라크레온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발톱, 네 쌍의 다리마다 한 가닥씩 길고 하얗게 솟은 발톱이 있었다.
새로 등장한 왕, 아라크레온의 모습과 꼭 닮아 형제자매가 아니더라도 동종(同種)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듯이 머리를 움직이니, 또 다른 차이점 하나가 고스란히 엿보였다.
‘음, 눈도…… 그냥 빛이 새어 나오는 건가?’
실뭉치가 하얗게 채워졌다가 빠지면 훤히 뚫린 구멍만 같았던 곳에서 짙은 회색 빛이 뿜어 나오며 ‘시선(視線)’을 느끼게 했다. 그 시선과 투란이 눈을 마주치자마자 드라고니아가 으르렁대는 소리로 경고한다.
―왕은 전투와 파괴에 있어서 여왕을 압도한다! 저건 사도의 염원에 호응한 여신의 뜻을 거역한 자를 쫓아가 파멸을 안겨 주기 위한 존재! 목적 자체가 신성한 파괴의지(破壞意志)의 구현인 탓에 섭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몬스터다!
‘에…… 어…… 그러니까 여신은 신벌이라면서 그냥 세상을 골탕 먹일 괴물을 풀어놓는다, 이거냐?’
갑자기 험악한 데다가 어려운 말투가 나와서 배 속이 꼬인다는 듯이 투란이 뚱하니 되새김질 하듯 생각을 더듬고 되물었다.
―그렇지.
조금 주춤하며 드라고니아가 대꾸했다.
이 짧은 동안의 긴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아라크녹스의 왕―아라크레온의 형상을 기반으로 한 왕이 일어섰다.
“응?”
―어?
투란도 드라고니아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 왕의 변신(變身)이었다.
그 변신의 첫 번째는 왕의 네 쌍의 다리 중 맨 앞이었다가 맨 위가 된 제일렬(第一列)의 한 쌍은 뒤편으로 꺾여 어깨처럼 볼록한 마디를 남기면서 제이열(第二列)의 다리가 팔처럼 양쪽으로 뻗는 것과 호응해 겨드랑이 아래로 파고들 듯이 끼어 앞쪽으로 뾰족한 발톱을 내밀었다.
‘저런 얘기는…… 들은 것 없어?’
―없다. 저 제단의 모습이 보이면 냅다 도망가란 기록만 남아 있었거든.
‘……드래곤로드라든가, 대마도사라든가 저거랑 뭘 어떻게 했다며. 저게 어떻게 싸운다든지, 전혀 없어?’
―없어.
‘아, 너 정말―!’
투란은 소리 없는 투덜거림 속에서도 변신의 두 번째 단계를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제삼렬(第三列)의 한 쌍 다리는 뒤로 길게 펼쳐지는데, 그 바르르 떠는 듯한 움직임에 따라 다리 사이로 하얀 막이 드리워지면서 허리 아래로 두른 망토, 혹은 앞이 훤히 트인 치마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사이에 제사열(第四列)의 한 쌍 다리는 두툼하니 바위 같은 허벅지를 불끈거리며, 뾰족해지는 다리 끝을 검은 줄로 휘감아 짐승의 발가락 모양의 장화를 만들어 신고 있었으니…….
―뭐냐, 저게!
‘야! 내가 묻고 싶다고!’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는 말에 투란이 발끈한 대꾸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곧이어 사자의 머리를 좌우로 한 번씩 꺾는 태도와 함께 보이는 세 번째 변신은 투란도, 드라고니아도 아무 말 못 하게 했다. 소소하다면 소소해서 그리 대단해 보이는 것은 아니었는데―.
휘이잉!
팔처럼 양쪽으로 벌렸던 제이열의 한 쌍 다리, 거기에 거뭇한 회오리처럼 줄이 감기고 있었다. 가슴 쪽으로 겨드랑이 틈새로 발톱을 내밀 듯이 뻗어낸 제일렬의 다리, 두 발끝 같은 부분이 맹렬히 움직였고 그에 호응해서 길게 뻗어낸 제이열의 두 다리도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결과, 제이열의 두 다리는 검은 줄로 매끈하게 감겼는데 그 줄이 그냥 다리의 모양에 맞춘 모양이 아니라 두껍고 굵은 손가락 다섯이 갖춰진 큰 손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저 모양만 잡은 것이냐고 의심하지 말라는 듯, 곧이어 팔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가볍게 주먹질도 하고 손가락으로 긁는 시늉도 이어졌다! 더불어 장화처럼 신은 발쪽에서도 발가락이 꾸물거리고 움직이며 땅을 긁고 가볍게 차는 동작을 보였다.
누가 봐도 변신의 결과는 사람을 기본으로 삼은 형체(形體)였다.
거미의 형체에서, 사람의 형체로…… 변신이 끝났다.
그리고―.
―신앙심이 저절로 솟구치는군.
‘뭐?’
―아라크누아 여신은…… 창세신(創世神)으로 섬겨진다. 여신이 열한 가지 실로 수놓은 혼돈(混沌)의 알에서 깨어난 것이 바로 세상이란 거지. 그러니까 여신은 열한 가지 종류의 실로 세상 모든 것을 수놓아 만들어 낸다, 이거야. 거미줄 감아서 손발 만드는 꼴을 보니 그 신화가 진짜였구나 싶잖아. 저런 손발을 휘둘러 때리는데, 그냥 몇 대 맞아 줄 거냐?
‘얀마―!’
손가락도 발가락도 참 잘 움직이는구나 하며 구경하던 투란이었다.
한데 느닷없이 아라크녹스의 왕이 저쪽에서 사라져 바로 눈앞에 들이닥쳐 있잖은가! 게다가 손가락을 세워 후려치는 꼴이 할퀴겠다는 건지 때리겠다는 건지 애매하지만, 아무튼 공격이었다.
그래도 정신 놓고 구경하던 것과 달리 투란의 몸은 전혀 다른 생각을 따로 품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듯이 대응하고 있기는 했다. 다만 그 대응이 완전히 무시당한 듯한 결과가 나오고 있었으니―.
서걱!
무쇠뿔 오우거의 무쇠 껍질이 둘러진 팔뚝이 그대로 파이며 갈라졌다.
절단되지 않았던 까닭은 단지 베고 지나간 것의 길이가 짧았던 때문이었다.
세 가닥의 파인 흔적에서 드러나는 절단면이 매끄럽고 깔끔한 꼴이 이를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것이 눈에 보인 것 이상으로 길어서 놀라고 있었다.
비록 반사적으로 팔뚝을 들어올리기는 했지만 직접 닿아서 막아 내기보다는 동시에 움직인 발놀림으로 내리쳐진 손톱의 간격에서 벗어나려 했다. 덕분에 손톱은 적어도 20센티 너머에서 지나갔고, 닿지 않았다. 그러나 오우거의 팔뚝, 무쇠 껍질을 두른 부분과 아닌 부분이 굵직하고 날카롭게 파이며 아주 평평한 절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모꼴의 깊은 골을 파내면서 뭔가 세게 찍었다 바로 빠졌다는 듯이!
‘왜?’
투란이 의문을 품는 사이, 왕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는 오우거가 걸음을 옮기던 방향, 나름대로 물러서는 쪽에 나타났다.
콰― 삭!
옆구리부터 파고들며 뭔가 뼈까지 베고 지나갔다.
팔에 나타난 흔적처럼, 몸통에도 깊이 베어 파내 버린 듯한 세 가닥의 흔적이 남겨졌다. 허리를 감싼 무쇠 껍질에도 한 가닥 흔적이 선명했고, 겨드랑이 아래로 파고들며 나란히 그어진 두 가닥의 흔적과 깊이가 거의 똑같았다.
역시 베고 지나간 뭔가가 더 길었다면 오우거의 몸통이 토막 났을 참이었다.
그리고 두 번의 발길질이 오우거의 다리, 허벅지 안쪽을 후벼 파듯 찍혔다.
동그란 구멍이 양쪽 허벅지에 거의 동시에 네 개씩 뚫렸다.
하지만 관통(貫通)되지는 않았다.
그저 다리의 절반을 꿰는 구멍, 상처일 뿐이었다.
그다음, 잠깐 쉬기라도 하겠다는 듯 짙은 돌풍을 남긴 채로 왕이 저편으로 물러며 눈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조금 세게 번뜩였다.
그 ‘시선’이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다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왜―?’
―체킹……. 지금 가늠하는 중이다. 너를 어느 정도까지 부숴놔야 완전한 파괴가 이뤄지는가를 가늠하고 있는 거야. 체킹 짓을 하는 몬스터는 그리 많지 않아. 굉장히 계산적인 거니까. 하지만…… 하는군.
드라고니아가 몹시 씁쓸하니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이 상황이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피식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절로 한마디 하고 싶잖은가!
‘너랑 같은 짓을 하는 거야? 흐흠…….’
무쇠뿔 오우거의 상처는 뒤늦게 상처에서 핏줄기를 터뜨리는 듯했다.
하지만 터져 나온 붉고 걸쭉한 체액은 피가 아닌 마그마였다.
오우거의 몸에 검은 소용돌이의 무늬가 마그마의 분출과 함께 번져 가는 중이었다.
아라크녹스의 왕이 그 모습을 고요하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