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1)
Chapter 95. 시련의 끝, 거짓의 시작
‘그래, 이건 다 너 때문이었어!’
―뭐?
‘체킹부터 한다며? 꼭 너 닮은 놈이 나왔잖아! 이건 네가 날 놀리겠다고 신전에 헌금을 하네 어쩌네 하면서 왕 얘기를 꺼낸 탓이야! 그러니까 너 때문이야!’
―헐?
투덜대는 시늉을 하는 투란의 놀리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잠깐 기막혀 하다 세게 반발할 듯했다.
하지만 둘은 계속 툭탁거리지 못했다.
사아― 피이이― 잉!
가늘고 긴 바람이 저쪽에서 불어가는 듯한 소리가 났고, 곧바로 돌무더기가 오우거의 온몸을 겨냥하고 쏘아져 왔다. 그런데 그 돌무더기를 날린 왕은 가볍게 치마를 한 벌 펄럭이는 동작으로 위로 치솟고 있잖은가.
‘저 녀석…… 어떻게 한 거지?’
날아든 돌무더기가 무쇠뿔 오우거의 몸에 닿아봐야 두툼한 살갗, 무쇠 껍질에 튕겨 나갈 정도에 불과한 것을 바로 파악하면서 투란은 왕의 기묘한 비상(飛上)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다.
땅을 박차고 오른 것도 아니었고, 홀시딘처럼 둥실거리며 부유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뭔가가 받쳐 주듯, 당겨 올려 주듯 가볍게 밀려 올라가는 듯도 하고 산뜻하게 끌어 올려진 듯도 한 괴상한 느낌만 남겨 주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몸을 두들기고 떨어지는 돌무더기의 자잘함 속에는 또 한 가지 의문이 저절로 피어났으니…….
―풍압(風壓)이 아니야. 겉보기에는 저 그물치마 바람으로 날린 것 같지만, 바람의 힘을 쓴 것이라면 풍압에 변화가 있었을 거야.
드라고니아 역시 의아해하고 있었다.
이에 투란은 곧바로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그럼, 역시 돌거미 군단장 녀석처럼?’
―아라크레온의 나노미터 거미줄이라면…… 그 실이라면 지금처럼 되었겠지.
투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치마로 바람을 일으켜 날리는 시늉을 했지만, 사실은 거미줄로 돌을 낚아 날린 것이다. 즉, 저 괴상한 치마는 하얗게 펼쳐진 눈에 보이는 영역을 넘어서 거미줄을 잔뜩 뿌려뒀고 실 한 가닥에 돌 하나씩 낚아 던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날린 돌멩이가 쉽게 셀 수 없을 정도의 돌무더기로 보인다!
‘아, 저거 자꾸 머리 써서 생각하게 하네…… 위에도 거미줄을 쳐놨을까?’
아라크레온 여왕이 허공을 달리며 그물 치던 광경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가늠하고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저 왕은 거미줄을, 그 실을 얼마나 기묘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저 신경 쓰이는 ‘시선’은 대체 뭘까?
―저놈 눈빛이 희한하기는 하다만,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기묘해진 기분에 대해 의아해했다.
‘아르고누스가 반응하지 않는다고. 저거 진짜 눈빛이라고 해야 하나?’
투란은 바로 드라고니아가 흘려넘긴 한 가지를 짚어 줬다.
―응? 어라, 그러고 보니…….
‘에잇, 거미에게는 거미를!’
―야! 아직 제대로 길들이지도 않았잖아! 너, 또!
‘목숨 걸고 싸우는 중인데 위험부담은 어쩔 수 없지!’
오른손을 꽉 주먹 쥐면서, 투란은 문장의 풍경 속에서 아라크레온과 여러 거미 군단장의 형상을 더듬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 눈동자와 사물을 느끼는 그 감각에 집중했고 이를 오우거의 등에 맺힌 소용돌이 무늬 속에 담기를 원했다. 완전한 형상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거미의 지각 능력에만 집중한 셈이었다.
곧바로 새로운 감각이 열렸고…….
‘응, 되네!’
발을 꽉 디디면서 투란은 바라보던 풍경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작은 성공에 환호했다. 하지만 이는 곧 드라고니아의 새로운 핀잔을 불렀으니…….
―그래, 되는군. 저게 실 한 가닥을 이용해 떠오른 게 확실해졌군! 손가락, 발가락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실그물로 한 겹 더 씌워진 꼴이군! 우와, 뭔 테두리만 만들어 놓은 손가락 발가락이 훨씬 더 크냐! 대단한데? 저 치마 아래로 움직이는 실을 봐! 아래 깔린 돌들을 아주 많이 낚을 모양인데? 그래도 다행이잖아, 아라크레온 여왕보다 거미줄의 범위는 좀 좁아 보이는데, 적어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근데, 여왕도 한 가닥 실을 저렇게 꼿꼿하게 세우지는 않았잖나?
‘……젠장.’
대놓고 고속(高速)으로 새로운 감각에 의해 알게 된 광경을 읊조리는 드라고니아보다도, 투란에게는 거미의 감각 속에 느껴지는 ‘시선’의 형태에 더 놀라고 있었다.
거미의 지각 능력에 의해 보이는 왕의 눈, 그 눈구멍을 채우는 빛이 무수한 실타래가 되어서 길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무쇠뿔 오우거는 물론, 왕이 한 가닥 실로 세운 주변의 여러 기둥 안쪽을 가득 더듬듯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 빛의 흐느적대는 미세한 가닥들은 투란의 몸을 그대로 관통하듯이 스쳐 지나간다!
―투란, 그거 진짜 거미줄이 아냐! 그 실은 실재(實在)하지 않는다! 그저, 거미만이 볼 수 있는 빛의 환영―.
‘가짜가 아냐. 저거, 진짜로 더듬고 있다고! 아라크레온이나 거미의 감각으로만 알아볼 수 있는 빛이지만, 진짜로 더듬는 촉각이라고! 이건 완전히 저놈 그물 안에서 날뛰는 꼴이라고!’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이 내린 판단에 드라고니아가 말을 멈췄다.
빛의 환영, 오직 아라크레온 여왕에게서 태어난 거미 종(種)만이 느낄 수 있는 환영이지만 그 환영이 왕의 지각(知覺) 능력이란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듯했다. 아르고누스의 본능을 자극하는 시각과는 전혀 무관한, 그렇다고 정상적인 촉각이라든가 후각, 청각도 아닌 기괴하다 할 수밖에 없는!
‘좋아, 그렇다면 나도 덫을 놔주지!’
투란은 왕이 떠 있는 높이를, 그 발끝이 머무는 높이를 가늠했다.
대략 지상에서 15미터 높이…… 마치 투란에게 오우거의 힘으로 뛰어올라올 수 있느냐고 놀리며 묻는 것처럼 왕이 발가락 끝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크앙!”
콰앙!
노골적인 오우거의 목소리를 흘리면서, 투란은 무쇠 껍질이 단단히 감싼 오우거의 발을 세차게 굴렀다. 발이 찍힌 자리에 구덩이가 바로 패여 들어가고, 오우거의 무릎이 우직거리면서 근육이 뒤틀리며 압축되는 소리까지 울려 내는 듯했다. 그리고 발바닥 아래를 채운 소용돌이 무늬로부터 폭발이 일어나기까지 했으니―.
오오거의 몸이 투석기로 쏘아진 바위처럼 날아올랐다.
단숨에 10여 미터를 대각선으로 튀어 오르면서 왕을 향해 겨냥한 채로!
―망할! 벡터 칼크! 미리 쓰라고, 미리! 돌거미랑 싸울 때 해 준 잔소리가 모자라냐!
‘그건 맡긴다니까!’
마음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별빛 무리를 향해 히죽 웃음을 날리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허공에서 걷듯이 한 발을 더 디뎠다.
콰앙!
새로운 폭발이 일어났고, 오우거는 그 폭발을 짓밟으면서 왕을 향해 한번 더 튕겨졌다. 폭발의 힘은 세심하게 조정되는 채였고, 오우거의 발이 밟고 뛰어나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보조해 주고 있었다.
이런 폭발의 제어는 모두 돌거미와의 우악스러운 싸움 속에서 얻어진 결실이었다. 그때 투란은 ‘블랙 애쉬’의 폭발을 오우거의 괴력과 섞어 바위를 날리고 돌무더기를 뿌리치려고 했다. 한데 발상은 꽤 괜찮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블랙 애쉬’가 일으키는 폭발의 반발력이 오우거의 동작까지 훼방을 놓는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돌거미 군단장은 자기랑 비슷하게 폭발에 밀려 뒤뚱거리는 투란을 향해, 뭔가 아주 황당하다는 듯이 잠시 맹하니 쳐다보는 분위기까지 띄웠다!
그런 황당한 꼴을 보고 드라고니아는 폭발의 방향성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벡터 칼크’라는 드라코눔의 연산(演算) 마법을 읊어 줬다. 폭발의 범위, 기본적인 방향을 지정함으로서 일어나는 반발력, 거기에 오우거의 괴력이 더해지는 효과가 나오기 위해 필요한 동작 방향까지 단숨에 계산해서 알려 주는…… 투란에게는 ‘아니, 뭔 셈하는데도 마법을 쓰냐? 게다가 손짓 발짓을 어떻게 하냐까지 계산을 하다니!’라고 새삼 드라코눔의 마법 문명에 대해 식겁(食怯)하게 해 주는 주문이었다.
그에 대해 드라고니아는 어린 일족에게 힘을 제어하는 방식을, 그 힘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정확하게 가늠하게 도와주는 교육용 마법이라고 했고…….
이제는 투란이 ‘블랙 애쉬’의 폭발력을 다루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 마법이 ‘벡터 칼크’였다. 오우거의 괴력과 엮여서 허공을 밟고 뛰게 해 주는!
덕분에 지금 붉은 광채을 번들대며 새로운 폭발을 머금은 듯한 오우거의 주먹이 왕의 낯짝에 제대로 일격을 찍어 버릴 듯했지만…….
왕은 처음 그 자리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이런, 이 자식도 계산을 하나!’
투란은 왕이 옆으로 옮겨가는 광경을 제대로 포착하면서 투덜거렸다.
‘벡터 칼크’ 연산에 의해서 바라보니, 왕은 딱 오우거의 주먹이 닿는 범위에서 조금 더 옮겨가 있었다. 마치 주먹에서 새로운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옮겨간 자리에서 조금 더 움직이면 된다는 듯했고, 그 폭발을 가까이에서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투란은 한껏 당긴 주먹을 바로 내지르는 대신, 다른 손을 휘둘렀다.
쿠릉, 콰앙.
작고 강한 폭발로 휘두른 손과 팔뚝, 겨드랑이와 허리 쪽에서 일어났고 오우거의 몸은 그 반발력을 입은 듯이 옆으로 튕겨갔다. 왕이 옮겨간 자리로, 이번에야말로 당긴 주먹을 내밀면 그대로 왕의 머리통을 후려칠 수 있는 거리로!
왕 또한 이에 호응하듯, 조금 더 멀어졌다.
거미의 감각을 통해 투란은 왕이 옮겨가는 자리마다 가늘고 꼿꼿한 실 한 가닥, 거미줄의 기둥이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움직이든, 이번에는 투란도 대비하고 있었으니―.
콰쾅!
당긴 주먹의 팔꿈치, 굽힌 발바닥을 통해 새로운 폭발이 일어났다.
불을 휘감은 주먹이 그대로 앞으로 내질러졌고, 추진력을 얻은 오우거의 몸도 왕을 향해 격돌할 듯이 날았다. 이에 대해 왕은 정확하게 간격을 잡고 있다는 듯한 직선의 움직임으로 옆으로 비켜서고 있었다.
하지만 내지른 주먹이 마그마를 분출하면서 불길과 불티를 가득 뿜어내는 것까지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제대로 맞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옆으로 비켜선 왕의 몸을 분출되는 마그마의 불길과 불티가 스쳐 갔을 뿐이었다.
‘이런! 팔 하나를 다 날렸는데!’
어깨 아래로, 내지른 오우거의 팔이 사라진 채로 투란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런 아쉬운 기분과 달리 아직 멀쩡한 또 한 팔이 다시 왕을 향해 터져 나갈 주먹을 겨냥하며 움직이고 있는데―.
―투란!
왕이 사라졌다.
오싹함이 등골에 치솟는 것을 느낀 순간, 투란은 단단함을 마음에 품었고 오우거의 등에 검은 무늬가 짙게 번져 갔다.
카칵!
조금 둔탁한 듯한 소리가 울렸고, 투란은 자신이 지상을 향해 처맞고 내팽겨쳐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뒤늦게 거미의 ‘지각’으로 알게된 왕의 움직임이었다.
‘절규하는 마물―!’
터뜨리려 했던 팔을 억누르고, 사라졌던 팔을 마그마를 기반으로 키워 다시 그 형상을 갖추면서 빙그르르 돌며 지상에 내리꽂히는 짧은 동안이었다. 그사이에 투란은 거미의 기묘한 감각이 왕이 움직인 궤적을, 그 속도를 뒤늦게 자취를 통해 파악하는 것을 검토하면서 확신했다.
―터무니없기는 하지만, 맞다. 지금 아라크녹스의 왕은 군단장, 절규하는 마물과 같은 원리의 방식으로 움직였어. 작아지지도 않았고, 기댈 암벽도 없는데…… 그럼에도 절규하는 마물처럼 이동했다.
콰악!
땅을 한팔로 짚고, 뒤이어 무릎으로 찍으면서 밀려가는 채로 투란은 오우거의 몸을 뒤틀어 올려다보면서 상황을 되짚었다. 결론은 한순간에 투란의 마음에서 도약하듯이 툭 튀어나왔다.
‘돌거미처럼 돌무더기를 날렸지, 치맛자락처럼 늘어뜨린 저 꼴은…… 바람 거미랑 닮았고! 저거 설…….’
―막지 마, 뚫려라!
생각을 정리할 틈이 없었다.
왕은 자신의 손톱으로 후려쳤음에도 흠집만 났을 뿐, 동강나지 않은 마그마 로드의 결정으로 등을 덮은 두른 오우거의 형상을 향해 입을 열고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짧은 포효가 아니란 듯, 혹은 입으로 뭔가를 길게 뿜어낸다는 듯한 자세가 아주 노골적이었다.
그 노골적인 모습에서 투란이 물거미의 워터 브레스를 떠올린 것은 당연했는데, 드라고니아가 뜬금없이 내지른 한마디는 아주 엉뚱했다. 그러나 가슴에 뭔가 파고드는 것을 느끼는 순간, 투란은 더 생각하지 않고 그 한마디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번에 마그마 로드의 결정, 집중된 탓에 평소보다 더 높은 밀도와 견고함을 자랑하며 소용돌이 무늬로 오우거의 몸을 덮었던 결정질이 모두 사라졌다
퍼억!
오우거의 가슴, 목 아래에서 두툼한 배의 위편으로 큰 구멍이 뚫렸다.
넓고 커서 뒤이어 몰아치는 바람결이 시원하게 흘러 넘어갈 구멍이었고, 가늘고 얄팍해진 어깨는 살갗이 찢어지면서 두 팔이 저절로 땅에 떨어질 지경이었다.
‘이거, 에어 브레스라고 해야 하냐?’
―숨결은 원래 바람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그렇게 불러도 그럴듯하겠군. 막았다면, 마그마 로드 껍질을 타고 바람결이 퍼지고 스며들면서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갈려나갔을 거야.
‘물만 있었으면 워터 브레스였겠지?’
―아, 그래. 연료가 함께 도포되었다면 초열의 파이어 브레스가 되었을 거고, 냉각제라면 아이스 브레스였을 거다. 맞아, 저놈 진짜로 아라크레온 여왕이 낳은 군단장의 힘을 강화하고 확대해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