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2)
콰릉, 콰르르!
뒤늦게 오우거 뒤편에서 땅가죽이 뒤틀리며 요동쳤다.
바닥에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던 무거운 돌무더기가 바람맞은 티끌처럼 휘날리며 흩어지고 있었다. 넓고 깊은 접시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그렇게 날린 것 중 몇은 오우거의 뒤통수로 날아들기도 했다.
하지만 투란은 사람 머리통을 으깨고 지나갈 듯한 돌덩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무쇠뿔 오우거의 머리통에 닿아봐야 그저 손끝으로 툭툭 치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니까. 게다가 그보다 더 관심을 둬야 할 것도 있었다. 왕의 앞발, 겨드랑이 사이로 내밀고 있는 원래 제일렬의 두 다리…….
‘저게 가만히 있지를 않았어?’
―실 한 가닥을 붙들고 공중에서 버틴다든가, 다른 쪽 실기둥에 걸고 움직인다든가 하는 모든 동작은 저걸로 한 모양이다. 팔다리 형태가 자유롭게 말이야. 스커트를 펼친 다리 한 쌍도 계속해서 펼쳐진 거미줄에 집중하는 모양이고.
‘으아, 저놈 대체 한꺼번에 몇 가지 일을 하는 거야!’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처리하고 있겠지. 이성(理性)으로 분별하고, 지성(知性)으로 가늠하는 게 아니야. 그저…… 본능에 따르지만, 그 본능이 필요한 계산을 저절로 해내는 경우일 거야. 벡터 칼크로 가르친 애들이 계산하지 않고 정확하게 필요한 동작의 방향과 힘의 분배를 알게 되는 것처럼…….
‘……그러냐?’
쓴웃음을 짓고 싶은 기분으로, 투란은 느릿하니 입을 다물면서 자신을 더듬어 보는 왕의 ‘시선’을 감상했다. 그사이에 오우거의 가슴은 다시 붉고 걸쭉한 마그마로 채워지면서 복원되고 있었다.
아라크녹스의 왕 또한 가만히, 그저 도도하게 투란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주변으로 쉴새없이 거미줄이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 보통의 감각에 포착되지 않는, 거미의 감각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뭘 하려는 모양이군.
드라고니아의 말이 나올 때, 투란도 이미 긴장하며 대비했다.
치마 한쪽이 접히고, 다른 한쪽이 활짝 펼쳐지면서 왕의 아래편 땅이 부르르 떨리는 듯했다. 자욱하게 깔려 있는 폐허, 거기서 돌들이 그 떨림에 영향을 받듯이 치솟고 있었다. 커다란 회오리에 빨려 올라가는 낙엽, 꽃잎처럼!
왕이 더 높이 올라갔다.
회오리에 휘말린 돌들도 나선의 궤적을 그리며 더 높이 올라갔다.
‘저걸로 아레나의 위를 뚫겠다고?’
―널 놔두고 다른 곳에 갈 것 같지는 않…….
의아해하며 두어마디 주고받던 투란과 드라고니아의 말은 자연스럽게 멈춰졌다. 휘말려 올라가 왕의 머리 위에서 한 바퀴 돌던 돌들이 곧바로 오우거의 몸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으므로!
콰콱! 퍼억! 빠각!
오우거의 주변으로 내리꽂힌 돌들은 돌을 뚫고, 뭉개면서 땅에 깊은 구멍을 파고들었다. 크고 작은 크기의 구멍과 함께 오우거의 몸통에 맞으며 튕겨 가는 것은 뒤이어 날아든 돌과 부딪혀 산산조각 나기도 했다.
‘젠장, 돌거미가 귀여웠던 것 같잖아!’
하나하나를 정성껏 당긴 발리스타라든가 투석기에 재어 쏘아 낸 것처럼 돌덩이들은 오우거의 주변을 파고들며, 오우거를 강타(强打)하고 있었다. 돌의 군단장이라며 돌을 다루던 거미처럼 미리 깎아 놓은 반듯한 바위가 없으면 우악스럽게 그물질을 한 돌무더기를 휘두른다든가 하는 대신, 차분하게 한 가닥 한 가닥의 나노미터의 거미줄로 낚아 올린 돌을 하나씩 던져대고 있는 셈이었다.
돌이 날아오며 빙빙 도는 꼴이 관통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회전시키고 있다는 것도 티 나게 보인다!
―이거 그대로 맞으면―!
‘……알아, 그냥은 안맞아.’
퍼억, 콰득!
오우거의 몸에 닿은 돌들이 요란하게 가죽을 두드리고 튕기며 부서졌다.
투란은 집중해서 왕을 바라보기만 하는 자세였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이미 오우거의 살갗 안팎으로 미세하게 번져간 시커먼 잉크로부터 투명한 수정빛이 미묘하게 흘렀고, 곧바로 검은 수정처럼 맺히면서 단단한 결정질의 그물을 자아내서 살갗 속에서 몸을 덮은 채였다.
―거미그물질에 껴입는 그물로 맞서냐…… 투란, 이쯤에서 아무래도 같은 말을 한번 더 해야 할 것 같군. 역병의 수해에서 남매를 놓고 했던 말이고, 지금은 홀시딘을 놓고 말해야겠어. 싸움의 규모를 키우지 마라! 너, 홀시딘을 엮어 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놨잖아?
‘알았어.’
투란은 짧게 대답했다.
역병의 수해에서 밤의 경계를 혼자 맡으면서 밤사냥에 나섰을 때, 잠든 남매를 깨우지 않도록 꽤 먼 거리로 나갔었다. 하지만 거리가 있더라도 싸우는 범위가 넓어지게 되면 결국은 시알라 남매를 깨우거나, 휩쓸리게 할 수 있었다. 거리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아레나의 마법에 의해 일단 홀시딘이 나름대로 장외(場外)인 상태에서 안전하다 해도 왕의 능력이 어떤 범위를 넘어선 채로 발휘될 때, 홀시딘이 여전히 안전하다는 예측은 할 수가 없었다. 만약 홀시딘에게 무슨 일이 생기다면, 투란이 품고 있던 계획…… 키린에게서 물려받아 새겨 넣은 계획들도 이리저리 꼬일 상황이다!
퍼억!
새삼 이마빡에서 으깨져 나가는 두툼한 바위를 느끼면서, 투란은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20미터 가까운 높이를 유지하는 왕의 발아래로!
의아해하듯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는 독특한 왕의 ‘시선’을 느끼면서 달리는 사이에 오우거의 몸은 형체(形體)를 유지한 채로 형질(形質)을 바꾸고 있었다. 용암이 붉게 달아오르는 곁을 차가운 서리가 스쳐 가고, 둘 사이를 뒤엉킨 나노미터의 거미줄이 꾸물거리며 오가는…… ‘늪’이 오우거의 몸에 섞이고 있었다.
‘빨리 끝내자!’
자신을 향해 외치면서, 거미의 감각까지 확장시키며 투란은 몸에 와 닿는 거미줄을 ‘늪’으로 엮어 당겼다. 실체 없는 환영인 왕의 ‘시선’은 어쩌지 못해도, 바닥을 헤집으며 돌덩이를 낚던 실만큼은 제대로 훼방을 놓는 셈이었다.
그리고 오우거가 왕의 발아래에 서서 세찬 발 구르기와 함께 치솟는 순간, 왕도 이에 대응하듯 움직였다.
‘응?’
―무슨……?
투란에게도 드라고니아에게도 조금 이상한 광경이었다.
치마처럼 펼쳐 놓았던 하얀 막을 높이 치켜올리며 몸을 감싸는 왕의 자태는 마치 고치 안으로 숨어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발아래를 마지막으로 삼는 듯, 머리 위는 이미 둥글게 감싸 안는다!
그와 함께 이미 날아오른 오우거의 몸의 주변으로 새롭게 거미줄이 모여들며 붙들려고도 했다. 마치 지금 상태의 오우거를, 투란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는 듯한 방어적인 태도가 아닌가!
‘젠장, 저 녀석 이제까지 나랑 거미랑 싸움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잖아!’
투란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훨씬 강화돼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기는 하지만, 왕은 거미 군단장의 능력을 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그 모습 또한 아라크레온을 기본으로 삼아 변형한 채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왕은 이제껏 여왕과 군단장과 싸우며 도달한 투란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적당히 투란을 가늠할 때랑 다르게, 여왕을 제압했던 ‘용암서리거미줄늪’이 스며있는 오우거에게는 방벽과 함께 거리를 두려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저 고치 모양의 거미줄 방벽은 이 ‘늪’에 대응하는 성질일 수도 있어 보이고!
생각이 스쳐 간 순간은 짧았고, 빨리 끝내기로 마음먹은 투란은 더욱 자신을 재촉했다. 곧바로 발아래에서 폭발을 연속으로 터뜨리며 투란은 조여드는 방벽의 구멍을 향한 가속했다.
―잠깐, 서둘지 마―!
드라고니아의 말은 조금 늦었다.
구멍을 돌파해 들어갈 속도로 여겨졌던 가속은 단숨에 조여든 구멍에 의해 오우거의 팔뚝이 잡히는 정도로 끝났다. 구멍이 조여드는 속도가 한순간에 달라진 때문이었다. 마치 투란의 가속에 맞춰진 듯했다.
―역시 함정―!
다시 드라고니아가 외칠 때, 왕의 머리 위에서 한 꺼풀 하얀 막이 풀리는 듯한 광경과 함께 투란은 자신이 커다란 보자기에 담겨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커다랗고 하얀 보자기는 그대로 조여들었고, 투란은 오우거의 팔을 붙잡은 채로 뒤집어지고 펄럭대는 방벽이 고스란히 그물이 된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왕의 머리 위로…… 사방으로 거대한 외벽처럼 새로운 고치가 하나 더 나타나 있기도 했으니…….
콰아― 투웅.
하강(下降)과 함께 울려 퍼지는 웅장한 음향을 투란은 온몸으로 느꼈다.
허공에 매달린 벌레가 자신을 묶은 거미줄을 통해 뭔가를 느끼는 것처럼!
‘……야?’
손안에서 맴돌던 윌 라이트가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잠깐 뒤에, 문장의 풍경 깊은 곳에서 대답해 온다.
―깨졌다. 왕의 마력 차단은 윌 라이트까지 저며 내고, 분쇄했어! 젠장, 이래서 그냥 도망치라고 한 건가.
‘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럽게 내놓는 넋두리에 더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온몸이 갈려나가고 있었으므로!
용암과 서리가 걸러지며 스러졌고, ‘늪’의 그릇이었던 오우거의 몸은 저항이고 뭐고 없이 함께 갈려나간다! 뭉클거리며 버티려 하는 ‘늪’의 거미줄은…… 왕이 덧씌운 보자기의 실과 만나면서 정렬(整列)되며 끌려 나가 투란을 감싼 그물을 강화하고 있었다. 마치 충성의 대상을 바꾼 배신자처럼!
‘하, 하, 이게 뭐야?’
오우거의 체격이 삽시간에 사라졌고, 사람을 기준으로 봐도 반 토막 난 상체만 남은 수준에 이르렀을 때 투란은 어이없어 한 소리 했다.
―정신 차려! 이대로 계속 뺏기고 갈릴 참이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마음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을 토해 냈다.
‘어, 그렇게까지는 안 될 거야. 아라크레온도…… 여왕도 제법 그물을 잘 짜거든. 그보다 저 녀석 보여? 또 조금 변했다고.’
투란이 갈려 나가고 조여진 상황에 대해서도 꽤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 말대로 걸러지고 갈려 나가는 ‘늪’의 안쪽으로 조금 작지만 사람의 형체를 그려 내면서 새로운 그물이 맺히고 있었다. 여왕이 ‘늪’을 먹어치우는 듯한 왕의 보자기 그물에 대항하는 그물을 자아낸 셈이었다. 여왕의 그물이 분명히 왕의 그물에 맞서며, 계속 당겨지고 할퀴는 꼴이면서도 버티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말한 왕의 자태(姿態)를 함께 보는 듯했는데…….
―저건 또 뭐야? 아니, 그보다 대체 넌 저걸 어떻게 보는 거지?
투란과 똑같은 의문을 품으면서도 몇 가지 의혹을 더 품은 말을 고스란히 토해 내고 있었다.
완전히 새하얗게 휘감긴 그물 보자기 속에서, 투란은 그 너머 풍경과 그 풍경의 중심에 우뚝 선 왕의 자태를 그대로 바라보고 있으므로!
‘글쎄…… 여왕도 실로 뭘 볼 수 있었나 봐. 특히 저 왕의 이상한 시선은…… 저 환영인가 하는 실 가닥에 닿은 것을 왕이 보듯이 여왕도 보는 것 같아. 다른 녀석들은 그렇게까지는 안 되는데 말이지…… 그보다, 저 꼴은 또 어떻게 된 거지?’
주섬주섬 대답을 하면서도 투란은 왕이 드러낸 새로운 자세, 미묘하게 변해 있는 모습에 대해 다시 의문을 토해 냈다.
왕은 두 발을 모아 뭔가를 디딘 듯했고, 두 팔은 활짝 펼쳐서 허공의 뭔가를 움켜쥐는 자세였다. 치마처럼 둘렀던 하얀 장막을 지탱하던 제삼렬의 두 다리는 팔처럼 비스듬히 펼쳐져 있는데 희고 굵은 고리가 여러개 채워진 채로 바들거리며 쉴 새 없이 떠는 듯이 보였다. 제일렬의 두 다리는 여전히 어깨를 감아 겨드랑이 사이로 빼꼼히 내민 꼴이었지만, 꼿꼿하게 발톱을 내뻗은 채로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분명히 뭔가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한 왕이 거대한 고치의 안쪽인 듯한 하얀 풍경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왕을 중심으로 거대한 고치가 완성되고, 그 중심에 무엇에도 기대지 않은 채로 왕이 우뚝 허공에 선 듯한 광경이었다.
투란은 그런 왕의 앞에서 보자기에 담긴 채로 꿈틀대는 처량한 몰골이고!
드라고니아가 잠깐 투란과 공유된 감각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말한다.
―고유영역(固有領域)? 아무래도 이건 왕의 독자적인 영역인 모양이다. 윌 라이트의 마력을, 그 기반을 의지에 둔 마력까지 차단해서 맺힌 마법을 깨뜨릴 정도면 아마 거의 모든 마법이 쓸모없을 거야. 거기에 저 하얀 고리, 저기서부터 흘러나온 나노미터의 거미줄이 꽉 채워진 채야. 눈에 보이지 않고 허공처럼 보여도 이 안을 그 실이 완전히 채우고 있다. 투란, 지금 널 묶고 있는 그물은 고정된 게 아니라 계속 흐르고 있어. 늪보다 강력한 흐름이야. 그 흐름에 따라 거미줄이 계속해서 새로운 무늬를 이루며 흐른다…… 저기 흰 고리가 계속해서 거미줄을 감아 당기면서 물레질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야. 이제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다니? 싸워야지!’
―바깥쪽에서 공격하는 건 어떠냐? 밖에 흘려 둔 잉크 쪽에서 새로 몸을 형성시켜서 말이야. 이 안에서는 그냥 버티는 게 고작일 텐데…….
‘흠? 밖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그건 안 될 거야. 움직여봐야 완전히 따로 놀겠지. 어쩌면 이미 딴생각하고 따로 움직일 수도 있고.’
―그런가…… 역시 고유영역이라 몬스터 로드의 힘까지 새어 나가지 못하게 차단하는 걸까.
‘응? 아니, 안에서 싸워 이길 거라니까!’
―에, 뭘 어떻게 해서?
‘마법 못 쓰게 되었다고 굉장히 소심해졌다? 나도 이미 덫을 쳐놨다고!’
투란은 정신을 집중하면서 왕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