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3)
―소심이라니! 마법을 쓰냐 못 쓰냐의 문제가 아니잖아! 지금 상황이 그렇게 가볍게 여길 일이냐? 안에서 이긴다니, 대체 어떻게?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온통 실에 감긴 꼴로 갈려 나가면서? 여유 부릴 때가 아니라고! 잠깐, 덫?
울컥해서 벼락을 내리꽂는 폭풍처럼 투란의 뇌리에 말을 쏟아 내다가 드라고니아가 겨우 투란의 말 끝마디를 들었다는 듯이 말을 멈췄다. 곧바로 피식 새는 듯한 웃음이 섞인 투란의 대꾸가 튀어나온다.
‘지켜보라고…….’
어딘가 희미하게, 집중된 정신의 한구석에서 살짝 새듯이 튕겨 나온 대답이었기에 드라고니아는 침묵하며 지켜봤다.
하지만 투란에게서 뭔가 일어나기 전에 왕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하얀 선이 노골적으로 왕의 뒤편에서 허공을 가르듯이 잔뜩 그어졌고, 그어진 선은 양끝이 고치벽에 닿는 순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냥꾼이 포획용으로 애용하는 볼라가 끈만 남은 채로 빙빙 돌며 날아오는 격이었다. 그 선의 굵기와 출처가 되는 왕을 염두에 둔다면, 뭐든 닿는 순간에 베일 것처럼 보였다.
과연 왕은 저것에 닿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히 피어나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주기 싫다는 듯, 빙빙 도는 선의 궤적은 왕을 교묘하게 비켜가며 오그라든 투란만을 절단의 목표로 삼는 것처럼 날아들고 있다!
이 광경을 향해 완전히 관찰자가 된 듯한 드라고니아가 감탄을 바로 토해 낸다.
―대단하군. 수백 가닥을 저렇게 동시에 날리면서 겹치거나 꼬이지 않게 다루다니…… 단번에 뭐든 베는 수백 자루의 칼을 한 점을 향해 휘두르면서 엉키지 않게 하는 격이잖아.
‘……얀마! 닥치고 좀 있으라고!’
여전히 집중하고 있기는 했지만, 느긋하니 마음에 꽂아 넣는 말에 살짝 울컥한 듯이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선이 와 닿았다.
키이― 키이―.
단단하고 날카로운 쇠줄이 맞물려 서로를 할퀴고 뜯어내려는 듯한 소리가 투란의 마음을 두들겨왔다. 연이어 도달한 선이 가로막힌 투란을 휘감았고, 더욱 날카롭게 베려 했다. 그럼에도 선은 이미 투란을 묶고 있던 그물과는 전혀 맞닥뜨리지 않고 있기도 했다. 그물이 꿈틀거리며 선이 베어오는 궤도를 열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베지 못한 채로 한 바퀴 감긴 선은 투란을 묶는 그물과 엮이며 섞여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지 못해도 그물을 강화하는구먼!
이번에는 감탄이라기보다는 명확하게 상황을 알려 주기 위한 말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수많은 목소리로 이에 대꾸하니…….
‘아, 그러네?’
‘으으, 그냥 좀 닥치고 있으라니까!’
‘저렇게 얽히지 않게 하다니, 신기해!’
‘여왕보다 거미줄을 더 잘 다루네?’
‘줄 굵기가 여왕보다 가늘지는 않아!’
‘거미줄 속에는 몬스터 에센스가 없군!’
‘좋아, 닿았다―!’
그다음에는 뭔지 알아듣기조차 힘든 와글와글!
드라고니아는 한순간, 저쪽에서 도도하고 포악하게 절단(切斷)의 위력을 지닌 나노미터의 거미줄을 날리는 왕보다 투란에게 더 황당하고 어이없어하며 말문이 막힌 듯했다.
왕 또한 갑작스럽게 그물 보자기 안에서 일어난 변화에 놀란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구멍 속의 빛을 더 세게 번뜩였다. 그리고 뭔가가 왕의 사자머리를 움켜쥐고 뒤틀었다.
꽈득!
굵고 거대한 손가락 자국이 왕의 머리 한구석을 장식하며 나타났다.
왕의 머리, 몸통 곳곳에서 바글바글하는 티끌 알갱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투란을 휘감은 그물 보자기에서도 거뭇한 빛깔이 나타났고, 곧바로 바글거리며 흘러넘치는 티끌 알갱이가 텅 빈 채로 새하얀 풍경을 향해 방출되기 시작했다.
두 곳에서 나타난 거뭇한 티끌 알갱이는 금세 텅 빈 곳이 사실은 왕의 특별한 거미줄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드러내겠다는 듯이 마구 번지며 물들이고 있었다.
왕과 투란 사이로 번져 가는 거뭇한 색채가 곧 만났고, 엉켰다.
왕의 몸을 뒤틀렸다.
크으릇!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뒤틀린 것을 선언하는 듯한 낮은 포효가 왕의 이빨 사이로 새어 나왔다.
―이 고유영역은…… 오직 녀석에게만 복종하는 왕국일 텐데…….
겨우 관찰자로서의 입장을 되찾은 듯, 그러나 여전히 어이없어 할 말이 모자란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와글거리고 바글거리는 수많은 투란의 목소리 중에서 몇몇이 이에 대꾸한다.
‘원래 병들면 몸이 말을 안 듣지.’
‘몸이 아프면 정신도 오락가락하잖아.’
‘어이쿠, 왕국에 역병을 퍼뜨렸네?’
와글와글, 바글바글!
어쩔 수 없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한마디 더한다.
―부디…… 이 고치 밖으로 번지지 않게 해라.
‘흥! 당연하지!’
‘물론이지!’
‘이 거미줄은 몬스터 에센스가 없다니까!’
‘자, 간다!’
‘눈 떠라, 하늘빛눈깔!’
와글와글…….
왕에게서 흘러나온 거뭇한 빛깔은, 고치의 천장까지 번져 가면서 거인의 윤곽을 그려 냈다. 왕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는, 거꾸로 매달린 거인의 형상이었다. 그 윤곽 중에 머리를 그려 내고 얼굴 표정을 그려 내는 부분에서 돌연 맑고 푸르스름한 하늘빛이 두 가닥으로 나타났다. 펼쳐진 그 하늘빛의 모양은 마치 눈꺼풀을 연 채로 드러난 눈알의 표면처럼 보였다.
투란을 감쌌던 그물 보자기는 이제 완전히 풀어헤쳐진 듯, 거뭇한 빛깔 속에 완전히 먹혀서 사라진 듯했다. 대신 거뭇한 빛깔에 물든 거미줄이 텅 빈 자리를 채우며 종횡으로, 사선으로 그어지듯이 나타나며 왕의 주변을 감쌌다.
크릇, 크워어어엉!
왕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왕의 ‘시선’이 펼쳐지며 고치 안을 휘저었다.
‘아, 봤네?’
와글거리던 투란의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외쳤다.
‘대단한데? 이렇게 작아도 제대로 더듬는 거야?’
‘흐흠, 이건 여왕보다 정교한 감각인가?’
와글와글, 다시 수많은 생각과 말이 쏟아졌다.
왕은 그런 투란을 제대로 봤다는 듯, 그래서 놀랐다는 듯이 눈구멍이 커진 채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다시 한번 보겠다는 듯…….
미크론의 영역, 나노미터의 세상 속으로 그 ‘시선’이 꽂혔다.
도끼날을 펼친 듯한 삐죽한 꼬리를 흔들어 대는, 아라크레온의 군집(群集) 사이로 그 ‘시선’이 번져 갔다. 나노미터의 거미줄을 무슨 밧줄처럼 움켜쥐고 있는 나노미터 사이즈의 아라크레온 군단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면서 그 시선을 마주 보는 듯했다.
배 아래에는 핏빛의 고리를 커다랗게 새긴 채로, 거미의 형상에는 없는 전갈의 도끼날 꼬리를 달고 있는 아라크레온 군체(群體)는 곧 하나의 의지를 뿜어내면서 질주했다.
이 고치 안을 자신의 영토로 삼겠다는 그 의지를 왕은 그대로 느낀 모양이었다.
왕이 다시 입을 열었고, 온몸을 진동(震動)시키는 맹렬한 포효를 터뜨렸다.
고치가, 거미줄 가닥이 모조리 그 포효에 호응하듯 격동(激動)했다.
티끌 알갱이가 흐려졌고, 순식간에 반쯤 지워지는 듯했다.
특히나 왕의 몸에서 번져 가던 부분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포효가 잦아들면서 왕의 몸 곳곳에서는 다시 거뭇한 티끌 알갱이, 나노미터 사이즈의 아라크레온 집단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 왕의 몸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 튀어나온 것처럼!
왕은 다시 포효를 했고, 또 한번 몸에 닿은 부분의 거뭇한 빛깔을 지우는 듯했지만 역시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났다. 포효로 인한 나노미터 단위의 격동은 한순간은 아라크레온 집단을 없애는 듯하지만, 왕의 몸을 숙주(宿主)로 해서 다시 번져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풀려난 투란이, 아라크레온의 군체가 이룬 투명한 성채가 왕을 향해 움직였다. 거꾸로 매달린 거인의 한 손이 성채를 밀고, 한 손은 여전히 왕을 움켜쥐고 어디 도망 못 가게 하겠다는 듯이 힘을 주며 붙든 채였다.
곧 거뭇한 빛깔 사이로 핏빛이 가늘고 긴 선을 그리며 흐르기 시작했다.
크아― 카아앙!
왕은 포효 속에서, 자기 몸 안으로 스며드는 핏빛이 자신을 조각내며 삼키는 짓에 저항했다. 하지만 그 포효조차도 이제는 핏빛을 품고 파고든 나노미터 사이즈의 아라크레온을 잠깐 움찔하게 했을 뿐이었다. 더 이상은 파괴되지 않는 아라크레온의 형상이 미크론의 영역 속에 나타난 것이니…….
왕의 몸이 미크론의 파편 단위로 바뀌기 시작했다.
검은 돌 같던 가죽이 보다 더 시커멓고 윤기가 나는 광택을 품어갔고, 그 범위가 넓어질수록 왕의 포효가 잦아들며 몸부림치던 움직임이 사그러들었다. 허공에 그려졌던 거인의 윤곽뿐이던 형상도 덩달아 사라져 갔다.
이윽고 왕의 눈구멍 속에서 빛이 사라지며, 피와 살로 채워진 눈알이 나타났다.
눈알은 눈동자가 없는 단색(單色)이었다가, 눈동자를 띄웠다가 하며 변화했다. 마치 이 눈구멍에 맞는 눈알이 뭔가 하나씩 끼워보는 듯한 변화였다.
고치의 곳곳이 허물어지고 헐며 시커먼 바람처럼 잉크가 흘러든 것도 이 변화에 호응하는 듯했다. 그리고 휘날리는 잉크와 뒤바뀌는 눈알 사이에서 두 가지 의지가 교차하며 하나로 엮였다.
드라고니아는 그 두 가지 의지가 소리 없는 말을 한마디씩 뱉는 것을 알아차렸다.
‘계획대로?’
‘응, 성공!’
곧이어 수많은 투란의 재잘거림, 와글거림이 사라져 갔다.
드라고니아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오롯하니 하나의 투란만이 느껴질 때 불쑥 물었다.
―설명 좀 해 봐.
‘어? 설명? 아니, 뭘? 함께 겪어 놓고는!’
―헛소리 닥치고 설명해! 언제 역병 씨앗을 왕에게 심어 놨지? 저 밖에서 흘러온 잉크는 또 뭐야? 언제부터 자신을 군체로 분할해서 움직일 수 있게 된 거야! 왜 내가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지? 앙! 닥치고 설명해!
‘……야, 닥치고 어떻게 설명을 해?’
―닥쳐! 설명해!
자신의 말이 앞뒤가 어긋났다는 것 따위는 전혀 알 바 아니란 듯,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지금 여기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으면 투란의 뇌리에다가 몇날며칠을 쉬지 않고 잔소리를 꽂을 낌새가 역력했다.
‘에이, 진짜…… 바쁜데 나중에 하면…….’
―지금 해! 방금 전처럼 쪼개진 꼴이 되어서라도 설명해! 왕의 정수는 아주 잘 정리되고 있구먼! 정리하는 놈이랑 설명하는 놈이랑 쪼개진 채로 설명해도 되는 거, 이제 잘 알겠거든! 얼른 설명해!
새로운 몬스터 에센스, 아라크녹스의 왕을 문장의 풍경 속에서 다스리기 위해 바쁘다는 것을 내세워 봐도 드라고니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때문에 투란은 투덜거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을 통해 중얼거림으로 설명을 늘어놓는다.
‘에, 역병 씨앗을 왕에게 언제 심었냐 하면…… 덫 놓는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오우거 주먹으로 마그마를 터뜨리면서 몰튼노트의 불씨랑 불길로 때리는 척했을 때 말이야. 그때 불길은 다 빗나갔고 불씨만 살짝 닿았잖아. 이 거미왕이 잽싸게 털어 냈어. 뭐, 어차피 몰튼노트 불씨가 파고들려면 시간이 꽤 필요했기도 했지만…… 역병은 그동안이면 충분히 감염(感染)되지. 물론 거기서 미크론 몬스터를 키워 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고, 함부로 감염을 확장시킬 수도 없어서 꽤 조심해야 했지만…… 이렇게 알아서 고치로 울타리를 쳐줬으니까. 이제 알았어? 응? 뭐? 군체? 아, 그건…… 역병의 수해에서 익혔어. 저 뱀아지 놈을 한가할 때 노리고 덮쳤다가 내가 정신 줄 놓았던 일, 그거 사실은 정신 줄을 놓은 게 아니고 갑자기 내가 여럿이 되어서 당황했던 거야. 막 서로 떠들다 보니 너랑 통하는 나도 있고 아닌 나도 있더라고. 전부 나인데 내가 여럿이라니,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문장에 집중했더니 수해 입구…… 달루스 파티의 유해(遺骸)랑 만났을 때 삼킨 새우랑 닮은 전갈 녀석이 반응하더라고. 그 녀석이 군체였잖아. 뭐, 이전에 악마의 심장으로 두 가지 생각을 한 번에 하는 방법 정도는 좀 익숙하기도 했고…… 대강 설명 다 된 거지?’
―잉크! 지금 고치 안으로 스며오는 잉크!
‘어? 그거야 여왕이랑 함께 대기시켜놨던 거지. 틈나서 역병을 발동시키면 재빨리 헬임프의 불타는 핏줄을 지닌 가죽으로 울타리를 치게 말이야. 뭐, 조금 이상하게 되기는 했지만 바깥에서 고치를 덮어 놓은 채로 안에서 끝장낼 때까지 기다린 거야. 이제 다 알았지?’
왕의 형상, 그 눈구멍 속에 검게 찰랑이는 잉크가 채워졌다.
눈알처럼 채워진 잉크 주변으로 속눈썹이 자라듯이 빛의 실 가닥이 번져 나왔다.
잉크가 검은 가죽 빛을 띠고, 작은 점 같은 눈알이 가득 번졌다.
‘이 정도로 해야겠네.’
파편, 미크론 영역의 파편으로 왕을 삼키고 왕을 형성한 투란은 곧 고치를 거두면서 고치를 감쌌던 ‘파라블랙․잉크’로 왕의 형상을 덮어 형체를 바꾸고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때, 나 제법 세지?’
―닥쳐!
사람의 크기로 줄어든 가죽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툭 던진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발끈했다.
그리고 아레나를 지키며 바라보던 홀시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