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4)
상아탑의 마도사로서 느끼는 무력(無力)함은 마음을 초조하게 했다.
그래도 홀시딘은 입을 꽉 다물고 이를 악문 채로 기다렸다.
초열의 불꽃에도 투란이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복구해서 싸움을 이어갔던 것을 기억하면서, 로열 가든의 징표를 통해 투란의 생존을 확인하면서 홀시딘은 기다렸다.
하지만 홀시딘이 알 수 있는 일은 단지 그뿐이었다.
거미의 마지막 보스, 아레나를 통해 가둔 것이 두 개의 몸을 가졌다는 황당한 꼴이랑 두 번째 몸이 엄청나게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무쇠뿔 오우거를 베어내는 광경은 어떻게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 미터의 하얀 알처럼 보이는 고치 같은 것이 나타나고 그 고치를 시커먼 유동체(流動體)가 덮은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 유동체가 금이 가면서, 금간 틈새로 마그마의 꿀렁거림과 불티를 휘날리는 광경을 통해 투란이 한 짓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홀시딘은 그 경과(經過)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고,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대체 어째서 이 거미 군단이 몰튼노트라든가 무쇠뿔 오우거보다 더 힘겨운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가?
‘……직접 지켜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가?’
자괴감을 만끽하는 기분 속에서도 홀시딘은 버텼다.
아레나를 유지하고, 스피릿 아티팩트의 힘을 제어하면서 투란의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버틴 상아탑의 마도사 앞에서 겨우 뭔가 제대로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시커멓게 물든 고치가 우그러져, 곳곳이 푹푹 꺼지면서 오그라들 때부터였다.
징표로부터 보다 분명하게 투란의 존재가 느껴졌다.
아레나가 격렬하고 이질적인 움직임으로 포착하던 몬스터 거미의 흔적이 사라졌다.
뭔가 움직이고 있는데, 그 움직임은 분명히 투란이었다.
홀시딘은 이 상황에서 한번 투란을 불러봐야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완벽하게 제압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가장 위험한 때라고, 몬스터와 싸우는 이들에게는 입버릇처럼 전해 오는 말을 되새기면서 홀시딘은 입술을 꽉 다문 채로 망설임을 떨쳐내고 다시 기다렸다.
괜히 말을 걸었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망칠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 응축(凝縮)되던 형상이 완연한 사람의 형체를 갖춘 채로 손을 흔들면서 길게 이어진 검은 자취를 따라 걷는 광경은 홀시딘에게 큰 안도감을 줬고, 그대로 주저앉아 깊은 한숨부터 토해 내게 했다.
더불어 낮고 조그마한 욕설도 상아탑 마도사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다.
“망할, 구경하다가 배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라고.”
그리고 투란은…….
―이차변이(二次變異)가 일어났는가 제대로 확인은 했냐? 일차변이까지는 너의 몬스터겠지만, 이차변이가 일어난 역병은 제어할 수 없는 독립된 개체를 생성시키잖아. 왕을 일차변이 상태에서 잡은 거 맞아?
설명을 열심히 해서 잠깐 잦아드는가 싶었던 드라고니아의 잔소리는 몇 걸음 걷지 않아 투란의 뇌리에 바로 꽂혀들고 있었다.
‘야, 문장 속에서 잘 보고 느끼고 있잖아! 그 일차변이까지는 내가 제대로 다룬다는 거, 잘 알면서! 왕도 조각내서 삼키고 바로 조각조각 덧붙여서 빈자리 채워서 삼키는 거 잘 봤잖아. 하늘빛눈깔의 힘도…….’
―페놈 기간테스! 아니면 역병거인이라고 부르든가! 왜 자꾸 하늘빛눈깔이냐고! 제대로 된 호칭법을 쓰라고 했잖아!
‘우어어! 눈깔이 하늘빛이니까…….’
―눈깔이 아니잖아! 눈깔 없이 눈알자리를 하늘빛으로 채웠을 뿐이잖아!
‘……갑자기 이름까지 걸고 넘어지냐! 어차피 페놈 어쩌구도 진짜 이름은 아니라며! 덜 자란 애송이 거인종 몬스터를 한꺼번에 부를 때 쓰는 말이라고 했잖아!’
―역병과 융합해서 완전히 성장했다. 그런 경우니까 당연히 호칭법에 따라서 플래그 기간트, 아니면 역병거인이라고 부르라고!
‘삐졌다고 트집 잡고 있다니…… 드라코눔의 아칸이 왜 이리 쩨쩨하고 쪼잔하냐!’
―내가 삐졌든, 트집을 잡든! 올바른 지식을 형성하려면 미리 마음가짐을 바로잡으란 말이다! 되는대로 마구 이름 붙여 놓으면 나중에 괜한 고생을 하면서 헷갈리고 판단에 착오를 일으킨단 말이다! 외모(外貌)나 외형(外形)에 현혹되지 말란 현자의 말도 못 들어 봤냐!
아예 대놓고 불평불만을 쏟아 내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드라고니아의 으르렁거림은 결국 투란의 말문을 막았다. 올바른 길로 가게 하겠다면서 이게 뭔 짓인가 싶었고, 아무 말 없이 지켜봐준 홀시딘에게 왠지 고맙잖은가!
그래서 투란이 홀시딘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대니…… 조금 있다가 홀시딘도 불평불만이 가득한 채 작은 소리로 욕을 한다!
‘아니, 다들 왜 이래!’
머쓱해서 힘겨운 척하고 손을 내리면서 투덜거림을 속으로 삼키는 꼴이 되어 투란은 얌전히 힘든 척, 느리게 걸었다. 이런 투란을 더 괴롭히고 싶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잔소리하는 말투로 떠든다.
―세상에는 암벽거인(岩壁巨人), 용암거인(鎔巖巨人), 팔비거인(八臂巨人), 백두거인(百頭巨人)이니 하면서 수많은 거인종이 있다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페놈 기간테스 한 가지가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변이한 것뿐이다. 페놈 기간테스라는 호칭을 붙여 놓은 까닭이 페노미놈의 경이(驚異)를 품어서 거대화하는 품종이기 때문이고! 암벽, 용암, 다지증(多指症) 현상 따위를 자신의 형체에 투영시키고 그때부터 제대로 대강 이십여 미터 이상의 체격을 갖추니까! 역병거인이란 말은 페놈 기간테스가 역병을 투영해서 자신의 일부로 삼고, 자신의 일부가 된 역병을 완전히 통제하기 때문에 붙이는 정당한 호칭이다! 눈알이 빠져나가서 눈깔 없이 괴상하게 채색된 눈깔 자리가 보인다고 그렇게 부르지 말란 말이야! 생긴 대로 이름 짓는 것은 그 특성에 대해 착오를 일으키기 쉽다고!
‘……야, 너 그거 또 떠들어? 이제 그만 좀 해! 여기 일부터 정리 좀 하자고.’
골이 징징 울리는 소리에 낯을 찌푸리면서 투란은 ‘파라블랙․잉크’가 여왕 아라크레온의 잔여물, 가죽을 살며시 드러내는 자리에서 멈췄다. 여왕의 가죽 아래에는 돌거미의 우둘투둘하니 돌조각이 붙은 가죽, 물거미의 퍼런 가죽도 함께 있었다.
투란은 숨을 들이쉬면서 숨소리에 집중해 계속해서 떠드는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먼 곳의 옹알이처럼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놓고, 다시 홀시딘을 향해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세심한 태도로 손을 흔들면서 외친다.
“홀시딘, 이제 내려…… 에?”
쏜살같이 날아오는 홀시딘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투란의 말을 막았다.
뭐라 외치는 소리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아까의 욕설과 다른 듯해서 투란이 다시 귀를 열고 들어 보니…….
“……일 났다! 케이라가 온단다! 이십 초 이내에 정리해야 해!”
“케이라? 마스터 케이라……?”
투란이 쟈카라 산림을 헤매다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두어 번 들었던 홀시딘의 제자, 알드바인의 마도사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 이 순간에 왜 갑자기 알드바인에서 홀시딘을 대신해서 아주 바쁠 거라던 마도사가 나타난단 말인가?
투란에게는 어리둥절할 일이었지만, 홀시딘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듯한 일이 되는 모양인데…….
“완전히 열 뻗친 모양이야! 아예 내 자취를 수색하고 추적해서 오는 모양이다! 젠장, 아레나를 조금 빨리 풀었더니 바로 내 위치를 포착하고 메시지를 보내왔어! 삼십 초 이내에 날아온다니까, 십오 초 남았다! 투란, 지금부터 신분위장을 해야 한다고!”
고속으로 날아드는, 소리를 통한 말이라기보다는 거의 마력을 이용한 메시지가 또박또박 귀에 꽂혀드는 느낌 속에 투란은 맹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키웠다는 제자가 열이 뻗쳐서 스승을 수색하고 추적해 온단 말인가? 게다가 지금 이 스승님, 아주 심하게 당황해하는 몰골이 어째 투란의 신분을 위장하는 것보다 당장 자신의 상황에 대해 변명을 꾸미려 하는 낌새가 역력하잖은가!
홀시딘은 메시지로 말을 할 뿐 아니라, 이미 마력을 휘둘러서 투란에게 옷을 덮어씌우는 중이었고 바닥에 놓인 가죽 주변을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이 얼핏 멀리서 휘몰아쳐 오는 바람의 기척이 느껴진다 싶을 때…….
“입 다물고, 그냥 내가 신호하면 지친 척하고 고개만 끄덕여!”
홀시딘은 징표를 슬쩍 눌러서 어떤 신호인가를 알려 주면서, 투란의 맹한 태도를 간파했다는 듯이 그에 대한 대책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으면, 적절한 순간에 고개만 끄덕이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투란은 당장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곧 스피릿 아티팩트, 사대속성의 힘이 아레나에서 풀려나면서 투란의 주변을 맴돌다가 금방 사라졌고…….
투웅!
휘날리는 흙먼지는 날아온 바람결이 꽤 거칠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섬세하게 바람을 제어해서 사뿐히 착지하는 일 따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성난 마도사의 태도가 그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상황을 고스란히 설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스터 케이라가 불끈한 눈빛으로 스승인 홀시딘을 보았을 때, 스승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이는 케이라에게 조금 의아한 상황이었다. 알드바인에서 스승이 떠날 때, 분명히 누구도 데려간 적이 없다고 확인했으므로!
‘상아탑에도 헌터 길드에도 마스터 홀시딘에게 차출되거나 합류한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케이라는 두 사람 중 한 명, 바람에 휘감기면서 펄럭이는 망토와 두건을 쓴 뒷모습만 보이는 이에게 먼저 눈길을 줬다. 에어록의 마법에 감싸인 모습이었고, 지금 막 떠날 모양이었다.
홀시딘이 말하는 소리가 바람결을 넘어 어렴풋이 들려왔고, 케이라는 그 입술을 읽어서 확연히 무슨 말인가를 알 수 있었다.
“……투엘, 정말 그 이름으로 괜찮나? 뭐, 본인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럼, 잘 가게나. 아무튼 투엘, 고마웠어.”
휘앙!
마법의 바람이 등 돌린 사람을 휘감았고, 높은 하늘을 향해 날려보냈다.
케이라는 결국 그 얼굴을, 제대로 된 체격조차 자신이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스승 홀시딘이 자신의 메시지를 받고도 저러는 꼴을 보니, 이 투엘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 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투엘?’
게다가 그 이름은 명백하게 가명인 듯한데, 뭔가 뻔하잖은가!
투란과 카엘, 앞뒤 음절을 잘라서 투엘!
그런 이름을 누가 쓴다고 하면 진심이냐고 한번 묻는 게 정상이고, 예의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 스승은 마지막으로 한번 물은 셈이 되는 것인가?
케이라는 찌푸린 낯으로 스승 곁의 또 한 명을 바라보면서 둘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 케이라의 모습은…….
‘우와, 무지하게 화난 것 같은데요?’
‘시끄러워! 눈 깔고 표정 관리하라고!’
홀시딘과 투란 사이에서는 로열 가든의 징표를 통해서, 의지를 통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소리 없는 그 대화 속에서 둘은 아주 담담하고 후련한 표정을 짓느라고…… 반쯤 당연하면서도 반쯤 노력하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케이라의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으니까!
홀시딘에게는 익숙한 분위기였고, 투란에게는 낯선 분위기였지만 동일하게 느끼는 험악하고 사나운 기분은 똑같았다.
하지만 다가오는 케이라의 걸음걸이는 부드러웠고, 눌러쓴 두건 아래에서 보이는 표정이나 태도는 분명히 우아하다!
그 때문에 녹색의 눈동자가 자신을 가늠하며 날카롭게 스쳐 가는 눈길을 보내는 상황에서 투란은 뭔가 알 수 없는 괴리(乖離)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째서 저런 사람이 이런 분위기를 뿜어내는가?
―마스터 홀시딘, 평소에도 꽤나 말썽을 일으키고 사고 치나 본데?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면서도 분명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이에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 홀시딘과 투란 사이 역시 의지로 이어져 있었고, 그 유대를 느끼는 사이에 뭔 이야기를 하면 홀시딘도 들을 테니까! 투란에게도 지금 상황이 이모저모로 꽤 위험한 상태는 맞는 셈이었다.
어쩐지 투란의 기억 속에서 루케인이 홀시딘에 대해 짓던 표정이 저절로 떠오르는 듯했다. 첫 만남에 홀시딘이 하는 짓에 파나틱 플레임, 그 별명을 거론하면서 대뜸 잔소리부터 퍼붓지 않았던가? 살짝 눈물까지 머금은 채로!
녹색 눈동자 위의 검은 눈썹 위로 검은 머리카락을 짧게 흘리는 케이라 역시 그때의 루케인과 비슷해 보였다. 홀시딘이 하는 짓 때문에 몹시 화가 난…… 덕분에 투란도 덩달아 밉게 보는 듯한!
‘음, 뭐라고 해 봐요! 나까지 미움받는 것 같잖아요!’
‘뭐? 혼자 빠져나가겠다고! 같이 미움받아!’
투란을 향해 홀시딘이 울컥한 기분을 바로 쏘아 보냈다.
그러나 홀시딘이 다가온 케이라에게 입을 열고 하는 말은 그런 속내가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오랜 사냥과 전투(戰鬪)의 피로(疲勞)가 가득 담긴 몬스터 헌터의 음성처럼 울리고 있으니!
“기다리지 않고 왔느냐…… 일은 잘 마쳤고?”
높이 날아간 누군가에서 눈길을 떼며 슬쩍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낌새를 풀풀 휘날리면서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케이라는 홀시딘의 발치에 놓인 가죽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