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7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5)
“아라크레온?”
바로 간파한 듯한 말이었다.
“응?”
“음?”
홀시딘과 투란은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흠? 아는군?
드라고니아는 흥미로워했다.
케이라의 눈길이 다시 스승과 동반자를 스쳐 갔고, 한숨 쉬고 싶은 것을 참는다는 표정과 함께 말이 나온다.
“도감에 나오잖아요, 여왕 아라크레온. 쟈카라 산림에 있는 줄은 몰랐지만.”
“도감?”
멍하니 홀시딘이 한마디를 되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투란은 설마설마하는 기분과 함께, 고개만 끄덕이려 했던 태도를 살짝 뒤틀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몬스터 도감에 나오는 녀석이었나요?”
“아니, 없어. 거미 계열 몬스터 중에 이런 녀석은…….”
홀시딘은 퀭해진 눈길, 짙은 그늘이 내려앉은 눈가를 실룩이면서 고개를 저었다. 무겁고 진지한 태도였고, 절대로 자신이 사전 조사를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었다. 꽤 중요한 문제라고 홀시딘 스스로가 먼저 느끼는 듯했다. 그런데…….
“신수(神獸) 도감에 나오죠. 몬스터 도감에는 태그 링커가 붙어 있을 텐데요? 스승님, 도감 잠깐 보여 주실래요? 태그나 링커를 확인 좀 해 보면 알겠지요.”
케이라가 손을 내밀면서 손끝을 까닥거리며 녹색 눈빛을 번뜩이잖는가.
이는 곧바로 홀시딘의 낯짝을 창백하게 했고, 꾸며내고 있던 지친 낯빛을 진짜로 만들어 버린 듯했다.
“어? 어…… 그, 그렇지. 태, 태그랑 리, 리, 링커가…….”
투란은 이 더듬는 말투를 통해 알아차렸다.
홀시딘의 몬스터 도감에는 없는 것이다, 태그니 링커니 하는 것이!
―과연…… 순수하게 혼돈을 품은 몬스터가 아니면 아예 다른 도감에 수록하는 건가. 인간의 방식은 흥미롭군. 어쩐지 실제 전투 기록을 바탕으로 한 정보만 풀어놓는다 싶더니…….
드라고니아는 어딘가 키득거리는 웃음과 함께 홀시딘보다 투란을 놀리려는 듯한 말투로 떠들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울컥해서 의지의 대화가 꼬이다가 홀시딘에게 드라고니아를 노출시켜서 이모저모로 곤란할 듯하다! 이를 깨닫는 순간, 투란의 마음에 작은 분리가 일어났다. 이 분리는 마치 마음을 나누는 방을 만들어 낸 듯했고, 동시에 나눠진 두 방을 열린 문 너머로 지켜보는 넓은 방―집의 한구석도 생겨났다.
‘장난 좀 그만 치라고!’
드라고니아와 한 방에 있는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마스터 홀시딘? 도감에 태그 링커가 없어요?’
상아탑의 마도사, 시크릿 키퍼 홀시딘과 함께 있는 투란이 케이라의 눈치를 보면서 소리 없이 묻고 있었다.
벽을 사이에 둔 채 나눠진 두 방, 한쪽으로 열린 두 방의 문턱 너머에서 투란은 이를 지켜보고 느끼면서 안도했다.
드라고니아가 이런 투란의 갈라진 마음, 분할된 채이면서도 통합된 관점까지 끌어내는 상태를 바로 평가한다.
―좋군. 마인드 트릭의 훌륭한 사례가 되겠어. 단순히 간섭하지 않는 둘로만 나눴다면 따로 노는 마음이 제멋대로 독립해서 미친놈이 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이렇게 셋으로 나눠 둘을 관리하는 하나가 있다면, 미치는 것을 막는 좋은 대책이 맞아. 그러나 투란, 이 문턱을 가로막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잊지 마라.
‘알아. 미크론 군체의 재주라고, 이거.’
드라고니아와 한 방에서 대답을 하는 자신을 보며, 홀시딘과 징표를 통해 대화하는 또 하나의 자신을 투란은 흥미롭게 지켜봤다.
홀시딘은 더 다가오면서 손끝으로 찌르는 것처럼 ‘도감 내놔요, 스승님!’이란 험악한 눈빛을 녹색 보석처럼 번뜩이는 제자 케이라를 향해 엉거주춤하고 힘들어 하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결국 항복한다는 듯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없어. 케이라, 이 스승이 아직 몬스터 도감에 태그나 링커를 달지 않았구나.”
이는 투란에게, 케이라에게 동시에 하는 대답이었다.
이에 투란은 ‘아, 그렇군요?’라고 조금 짙게 심술궂은 기분을 드러내는 정도였지만, 제자인 케이라에게서는 아주 구체적인 물음이 바로 쏘아져 나온다.
“팔 년 전에 태그 링커를 붙이기 위해 금전 열 닢을 챙기셨죠. 그거 어디다 쓰셨지요? 저한테 십삼 년 전, 열두 살이 될 무렵에 마법사에게는 폭 넓은 지식과 정보가 중요하다면서 태그 링커가 완전히 포함된 도감을 주셨던 스승님! 대체 팔 년 전에 붙여놨어야 할 태그 링커가 왜 아직 없으시죠?”
“그, 그러니까 금전 열 닢이나 되니까, 좀 더 급한 일에 쓰지 않았겠니? 알드바인의 예산은 늘 부족하게 잡히잖니? 어쩌다 보니 급한 데 쓰고…… 어, 그다음에는…… 다, 당장 필요한 정보는 모두 갖췄으니까 나중으로 미룬…….”
“팔 년이에요, 팔 년! 그사이에 금전 열 닢 짜내서 붙여놔도 될 일이었잖아요! 그사이에 가져다 쓰신 연구비만 생각해도 도감 몇 권을 더 사서 전부 업데이트까지 마치고 태그 링커 다 붙이셨을 텐데요! 아직도 그 낡은 도감만 업데이트해서 쓰시다니! 스승님, 제자한테 맨주먹으로 한번 맞아보실래요?”
“제, 제자야! 케이라, 여기 우리끼리만 있는 거 아니란다!”
결국 홀시딘은 투란을 방패로 내세우면서, 은근히 애처로운 목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투란은 멍하니 상아탑의 마스터인 스승과 제자를 구경하다가 느닷없이 방패가 된 상황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한숨을 쉬며 케이라가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한 표정과 함께 그 눈길을 마주 보려다가…… 슬쩍 눈길을 돌리면서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처음 만난 마법사님, 나 지금 너무 어색해요!’라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동시에 또 한구석의 투란은 드라고니아와 함께 케이라를 열심히 관찰하고 평가하는 중이었으니…….
‘와, 어쩐지 분위기가 시알라 같아!’
―마법을 쓰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겠다고 으름장 놓는 여자라서?
‘응? 여자?’
―성별 구분 정도는 체형만으로 바로 할 수 있잖아! 움직임이나 목소리도 더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일 텐데!
‘아,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지. 그리고 착각하기 쉬운 거라고, 그런 겉모습의 정보는…… 세상에는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여자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판단하면 굉장히 무례한 일이기도 하다니까!’
―무례는 무슨! 분별 좀 하라고! 그냥 인간이라고 묶어 보는 거는 인간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비정상일 테니까!
‘에,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역시 홀시딘처럼 저 망토도 젖히면 벽장이 되려나?’
―되겠지. 하지만 손발에 차고 있는 토시도 망토만큼의 여백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군.
‘토시? 발? 그냥 장화잖아?’
―장화는 마력으로 기본적인 강화처리만 해 놓은 거고, 정화 안쪽에 손과 팔에 두른 토시랑 같은 타입의 물품을 한 쌍 더 끼고 있다. 이 마도사…… 입고 있는 의장(儀狀)이 모두 블랙펄을 소재로 한 건데?
‘블랙펄?’
―화이트 레이크에 가끔…… 꽤 드물게 나타나는 대형 몬스터야. 새카만 진주처럼 보인다고 그렇게 이름 붙여놨지. 덕분에 그게 가죽 붙은 젤리형 몬스터라는 걸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말이야!
‘……저 꿰맨 실은 금인가? 아까부터 반짝거리네?’
―말 돌리냐! 금 맞아. 상아탑의 마법사가 직접 블랙펄의 가죽을 정제할 때 마력이 깃든 금실을 사용할 거야. 아마 케이라 본인이 직접 만든 걸 거다. 자신의 마력과 더 깊이 동조해서 사용하기 쉽게. 흥미로운 점은 케이라의 장비 전체가 완전히 상아탑의 표준 형태란 거겠지. 무척 세련돼서 표준이 아닌 뭔가로 착각할 정도이기는 하지만, 저건 분명히 상아탑의 표준기술과 기본마법으로 제조해 낸 거야. 덕분에 그 안에 진짜 뭐가 담겼는가는 전혀 모르겠군. 대단한 마도사다.
‘흠, 두건망토에다가 로브, 헤비 벨트도 그렇고…… 단순한 것만 입고 차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특별해 보이지?’
―특별하니까. 금실도 가죽 깊이 박혀서 가끔 반짝이는 걸로 분위기를 바꾼다.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이음매를 정교하게 분포해서 급할 때는 다양한 패턴을 바로 발현시킬 수 있어. 진짜 세심한 성격이고, 세련된 모습이야.
‘그래? 스승에게 주먹질 하겠다고 협박하는 세심하고 세련된 모습?’
―손톱에 덧씌운 장식을 고려하면, 그 주먹질은 아주 셀 거다.
‘손톱?’
―장식손톱이라고 하던가? 손톱 위에 붙여 놓은 거, 보통은 반지에 깃들게 하는 마법인데 인간 여성이란 점을 이용해서 저리 한 모양이군. 빈손이라고 방심하다가 강철의 강도를 덧씌운 주먹에 처맞는 수가 있다. 손톱 자체를 변형하면 칼날처럼 벨 수도 있어 보이는군. 어라? 그런데 인간 여자가 배틀메이지 스타일? 정말 시알라랑 비슷한 분위기인데? 마법 능력은 격이 다를 듯하지만…….
‘……으아, 진짜 마도사로군!’
투란은 드라고니아 함께, 상아탑의 마도사 케이라에게 감탄했다.
그사이 케이라가 한 걸음 더 다가섰고, 홀시딘이 막 입을 열어 투란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쪽은 투란이다.”
“본명입니다.”
투란의 입이 재빠르게 한마디 덧붙였다.
케이라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지만, ‘진짜 본명?’이라고 따져 묻는 소리는 없었다.
대신 투란을 단숨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보는 예리한 관찰은 있었다!
그 때문에 투란은 재빠르게 홀시딘이 자신을 어떤 꼴로 만들어 놨는가를 다시 점검해 봐야 했다.
윗몸에는 급한 대로 긴 소매가 손목까지 덮는 재킷 하나, 원래 가죽 반바지를 두른 위로 얇고 가늘며 배를 거의 덮는 검은색 긴 바지를 덧입히고 교차된 벨트 둘을 허리춤에 대강 둘러놨다. 더불어 무릎까지 닿는 긴 장화도 맨발을 감듯이 신겨놨고!
장화와 벨트에는 빈 고리가 붙어 있어서 원래는 단검 따위가 꽂혀 있을 듯한 분위기도 띄워 놨다. 재킷의 위쪽 단추를 그대로 풀어놔서 슬그머니 가슴에 ‘헌터스 배너’가 엿보이도록 해 놨으니, 어떻게 보든 지금 투란은 오러 마크를 지닌 헌터로 보일 터였다.
“알드바인에서 못 보던 분이군요?”
케이라는 알드바인의 특제 오러 마크를 지닌 이에 대해 모조리 안다는 듯, 홀시딘을 향해 묻고 있었다. 이에 홀시딘은 바로 근엄하고 무거운 말투로, 지금이 아니면 다시 이 자세 잡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듯한 진지한 태도로 대답한다.
“어, 으흠! 흠! 이번에 알드바인에 처음 왔어. 헌터스 배너를 새겨 주는 대신에 이번 일에 이런저런 도움을 주기로 하고 참가했지.”
“……도움이라면?”
케이라의 녹색 눈빛이 다시 투란을 스쳐 갔다.
더불어 다시 한번 아라크레온의 가죽에도 케이라의 눈길이 스쳤다!
홀시딘은 그 눈짓을 이해한다는 듯이 잔뜩 지쳐서 더 무겁다는 듯한 말투로 대꾸한다.
“투란이 처음 알드바인에 오자마자 낯익은 사람을 봤지. 그게 투엘이다. 본명은 묻지 마라. 투엘과 나 사이를 중재해 줬고, 덕분에 이런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우, 일단 좀 쉬고 나서 해야 할 것 같구나. 우린 거의 이틀 동안 잠을 못 잤거든. 이 가죽은…… 알아서 좀 챙겨 주겠니? 아, 그리고 저쪽에 그동안 사냥해 놓은 마수 거미가 있단다. 내가 조사해 놓은 샘플도 있고…… 그것도 좀 정리해 주지 않겠니?”
술술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슬그머니 길어진 채로 뒷정리를 제자에게 모두 떠넘기고 싶어 하는 지친 스승의 분위기가 물씬 번져 나오고 있었다.
곁에서 보고 듣던 투란은 ‘와, 이러면 한 대 맞는 거 아니신가요?’라고 의아할 정도였는데, 케이라는 눈꼬리가 잠깐 꿈틀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죠, 스, 승, 님. 또 스승님만의 개인적인 정렬법을 쓰셨죠? 그거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승님 본인 말고 저밖에 없으니, 쉬시는 동안 제가 둘러보고 정리하도록 하죠. 그러니까 일단 여기 그대로 자리 잡고 좀 쉬세요. 쉬고 나신 다음에는, 꼭 자세히 들려주세요. 대체 어떻게 알드바인의 마스터 홀시딘 다섯 명이 다섯 사람분의 마석까지 손에 쥐어야 겨우 가능하다는 아레나를 펼쳤는지, 떠나간 투엘이란 분이랑 불타는 평야에서 그레이우드에서 뭘 했는지…… 정말 자세히 알고 싶거든요!”
또박또박,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슨 송곳처럼 홀시딘을 뚫는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나서 케이라는 바로 돌아서서 기울어진 거대한 송곳처럼 보이는 홀시딘의 망루를 향해 움직였다. 그 속에 뭐가 가득 담겼는가를 자세히 둘러보겠다는 것처럼!
못 박힌 듯했던 홀시딘이 케이라의 뒷모습을 보면서 살짝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고, 투란은 망토가 펄럭이는 그 뒷모습이 나중에 얼마나 사납게 돌변해서 돌아올지 걱정부터 마음에 깃드는 것을 느꼈다.
‘저기요, 이대로 괜찮아요?’
‘응? 일단 넘겼잖아!’
염려하는 말에 대해 많이 뻔뻔한 대꾸가 나왔다.
제자에게 맞을 수 있다고 스승에게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 투란이었다.
‘제자분, 엄청 화났잖아요! 나중에 큰일 날 것 같은데!’
큰일의 의미를 고스란히 전해받은 홀시딘이 잠깐 움찔하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맞은 적 없다는 것을 떠올린 듯 다시 패기 넘치는 뻔뻔한 대꾸를 한다.
‘그래도 상냥한 아이라고. 뭐, 나중에 또 어떻게든 둘러댈 수 있어! 그보다, 너 헌터 수준은 어떻게 할 거야? 헌터 길드에 제대로 보고 안 했다는 핑계는 루케인이 이미 만들어 놨다만, 이대로 하급 헌터라고 하면 케이라가 의심할 텐데?’
‘벌이를 감추려고 수준 감추는 헌터 많잖아요? 대강 중급이라고 하고 하급처럼 지낸다고 둘러대세요! 잘 둘러대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죠. 나중에 신분 몇 가지 더 만들기로 했잖아요. 하급 헌터로 둘러댈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신분으로 투엘처럼 휭하니 사라지게 하면 되는 거죠!’
상아탑의 마도사 홀시딘과 몬스터 로드 투란은 가만히 앉으면서, 이제부터 꾸려나갈 정교한 거짓말에 대해서 소리 없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쟈카라 산림을 찾아온 깊어가는 낮의 햇살이 마치 노을처럼 붉게 번져 갔고, 진정한 바람이 사라진 거미를 추억하듯 쉼 없이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