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8)
잔나비 혹은 원숭이라는 놈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몇 배로 키우고 끔찍한 쪽으로 바꾼 듯한 날카로운 괴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투란에게 들리는 소리는 웅웅거리고 반쯤 지워진 것처럼 흐릿할 뿐이었다.
보글거리는 발아래 녹색의 진흙, 그 속에 잘 맞물린 뱀의 가죽은 놈들의 손톱도 뚫지 못하고 소리도 반쯤 막아 주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상황과 다르게 투란은 조금 더 여유를 품은 채로, 날개 달린 비비나비를 구경할 수 있었다.
비비나비 여러 마리가 그런 투란을 끄집어내기 위해 날뛰었다.
이빨과 손톱이 뱀 가죽을 찢지 못하는 것을 한 번씩 다 해 보고 나서야 그만뒀다. 그다음에는 가죽을 잡아당겨 찢으려 했다. 한 마리, 두 마리…… 힘을 줘서 꽥꽥대며 당겼지만 역시나 뱀 가죽은 찢어지지 않았다.
이 광경은 투란에게 매우 흥미로웠고, 간질거리는 갈망을 품게 했다.
저 단단하고 거친 절벽 쪽의 돌 더미에는 대번에 찢어지고 터져 나갔지만, 비비나비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가죽이라니!
투란은 잠시 몸을 뒤척였고, 자신의 머리맡에 아직도 뱀의 살덩이가 채워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그렇지! 이놈 아주 길었지.’
투란이 먹어 치운 부분은 굉장한 양이기는 했어도, 이 길고 굵은 놈의 작은 토막에 불과했다.
‘아니, 그런데 놈들은 왜 뱀을 먹지 않고…… 어, 질겨서?’
갸웃하며 투란은 비비나비를 바라봤다.
마침 비비나비의 괴상한 눈동자가 투란을 보던 중이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비비나비는 울화를 못 참겠다는 듯이 입을 열고 아예 가죽과 함께 투란을 깨물겠다는 듯이 머리를 들이댔다. 건너편이 보인다고 해도 희미한 색채가 맴도는 가죽에 대고 머리를 꽉 눌러 오는 그 꼴이 투란의 손을 저절로 움직이게 했다.
재빠르게, 세게 치고 빠지기!
주먹질의 기본기라는 동작!
비비나비의 좍 벌린 입, 그 아래위로 투란의 주먹이 지르고 빠졌다.
뱀의 가죽 탓에 깨물고 할퀼 수는 없지만, 그 두꺼움 탓에 주먹질의 위력도 거의 절반은 없어진 듯했지만, 그래도 벌린 입의 이빨을 두들겨 패는 제법 매운 손짓이었다.
비비나비의 위쪽 송곳니 하나가 잇몸에서 피를 뿜으며 삐져나왔고, 아래쪽 송곳니는 부러졌다. 송곳니가 아래위로 부러지고 빠지면서 잇몸이 찢어지고 피는 더욱 세차게 뿌려졌다.
‘오! 내 주먹이 돌주먹?’
맨손으로 닿게 쳤으면 저 송곳니에 주먹이 오히려 찢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뱀 가죽을 경계로 친 탓에 투란은 다치지 않았고, 충격만 전한 셈이었다.
그렇게 신난 투란이 비비나비를 쳐다봤고, 녀석도 투란을 쳐다보며 핏방울을 뚝뚝 떨궜다.
꽤애애애애!
괴성이 주변에 세차게 울렸다.
동료가, 동족이 흘린 피에 흥분해서 환장하는 꼬락서니들이었다.
투란은 발끝을 모으며, 뱀 가죽의 찢긴 부분이 젖혀지지 않도록 더 누르고 살상 당겼다. 날개 달린 것이 괴상하기는 하지만 비비나비였다. 끌려 나가서 맞닥뜨리게 된다면 일단 씹힐 쪽은 자신이니 주의해야 했다.
신나게 주먹질을 두어 번 하고 목숨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한 대도 못 때리고 죽는 것보다는 덜 억울하잖아?’
자신에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면서 투란은 상황을 살폈다.
눈앞의 가죽을 뚫고 찢지 못해서 투란이 잠든 새에 아무것도 못한 놈들이었다.
머리 굴릴 줄 모르는 놈들이니, 그 틈을 노려야 했다.
‘어? 또 나뭇잎이……!’
투란은 녹색의 액체가 자욱하게 허공을 덮는 꼴을 봤다.
거대한 뱀이 몸부림칠 때의 광경처럼, 보이는 곳이 모두 녹색으로 물들어 버리는 듯했다.
그리고 괴성, 비명…… 이윽고 소란이 잠잠해졌다.
뱀 가죽마저 녹색으로 잔뜩 덧칠해진 탓에 투란은 제대로 모든 것을 볼 수 없었다.
‘설마?’
손을 내밀어 뱀 가죽을 조몰락거리고 녹색의 액체를 조금 덜어내면서 투란은 흐릿한 가죽 너머를 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앞에서 움직이는 비비나비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위로 푸덕대며 날갯짓하는 놈이 한 마리 정도 보이는데, 엄청나게 힘겨운 꼴로 푸덕대다가 곧장 기울어지며 나무에 처박혀 찢겨 나갔다.
‘헐?’
이제는 고요함 속에서 움직이는 놈이 안 보인다.
아주 잠깐 망설인 후, 투란은 바닥에 고인 녹색 덩어리를 파내고 뱀 가죽을 열어젖혔다.
축축한 녹색의 안개가 자욱한 광경이 선명하게 보였다.
비비나비 몇 마리는 날개를 펼친 채로, 여기저기 찢긴 몸통을 누인 꼴로 쓰러져 있었다. 녹색의 안개가 그 피투성이 위에 자글거리며 달라붙는 듯한 광경은 기괴한 느낌을 줬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궁금함을 품은 채, 투란은 좀 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초록 거품이 간간이 피어오르는 늪을 밟으며 뱀의 늘어진 몸통을 따라 걸었다.
‘……꽤 많네.’
색다른 느낌은 좀 더 많이 쓰러진 비비나비를 본 다음에 찾아왔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몇 마리뿐이 아니었다.
날개를 연 채로, 뱀의 늘어진 몸을 따라 더 많은 비비나비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나같이 몸부림치다가 늪에 파묻혀 죽거나, 나무에 부딪친 다음에 찢겨 죽은 꼴이었다.
‘이 녀석들도 뱀을 먹으려 했나?’
쓰러진 놈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니, 뱀 가죽에 찢긴 틈이 있었다.
그 사이로 파내어진 핏덩이, 살점 조각…….
투란을 산 채로 씹으려 하던 놈들이 뱀도 뜯어 먹으려 했던 모양이다. 그 안에 살아 있는 먹이에 더 흥분하기는 했겠지만.
그런데 놈들은 왜 갑자기 몸부림치다가 죽었을까?
고작 나뭇잎이 부풀다 터진…….
“독?”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몸에 달라붙는 녹색의 안개, 이것이 차분하게 비비나비랑 뱀의 피투성이 몰골이 드러난 자리에 자글거리며 붙어 거품을 내고 있었다. 이것이 독이라면, 저런 괴물 떼를 쓰러뜨릴 정도로 독한 것이라면…….
‘난 멀쩡한데?’
투란은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녹색의 안개가 넝쿨 껍질로 된 살갗에 닿으면서 축축하게 적셔 오지만, 그 미묘한 축축함이 몸속에 스며들지만, 그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투란의 의문에 악마의 심장이 꽤나 도도하게 맥동했다.
‘그런가?’
다른 답은 없었다.
그래서 투란은 관심을 바로 돌렸다.
날개 달린 비비나비, 손톱을 모으면 가지런한 창날처럼 되어 철판도 뚫는 놈!
고개를 돌려 우선 가까운 곳에 엎어진 놈에게 다가가, 그 손목을 슬쩍 집어 올리면서 투란은 눈을 반짝거렸다.
날개와 함께 강한 손톱도 얻을 수 있는 기회 아닌가!
“뭐냐고, 이게!”
투란이 화난 소리를 크게 외친 것은 열대여섯 마리 비비나비의 시체를 헤집은 다음이었다.
소리친 즉시, 혹시 뭔가 이상한 놈이 오려나 해서 살짝 움츠렸지만, 아무것도 안 왔다.
그저 녹색의 잎이 몇 장 더 부풀다 터졌을 뿐!
안전한 것을 체감하면서 투란은 다시 울화통을, 이번에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조용히 터뜨렸다. 손에 비비나비의 손목을 쥔 채로!
이 손목은 완전히 녹색으로 속이 물들어 뚝뚝 떨어지는 것도 늪을 이루는 녹색의 진흙덩어리가 된 꼴이었다. 비비나비의 몸통도 고스란히 이 꼴을 하고 있었다. 이 녹색의 안개가 바로 늪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고 과시하듯이.
‘그러니까 이 안개가 뭐든 붙들고 녹여서 바닥에 깐다는 거잖아.’
뒤늦게 깨친 바였다.
안개를 뿌리는 것은 저 뻥뻥 터지는 나뭇잎이고, 나무는 초록 늪에서 양분을 얻고!
녹색 액체에 물들고 녹아 버린 비비나비는 이미 썩어 없어진 놈이랑 똑같았다.
몬스터 에센스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그냥 깔끔하게 썩은 살덩이였다.
‘아니, 뱀 살이랑 피는 아직 멀쩡하잖아! 근데 이게 뭐냐고!’
이 부분이 투란이 좀 더 골을 내는 이유였다.
뱀의 피와 살은 아직 마르지 않았고, 녹색의 안개가 아무리 들러붙어 보글대도 완전히 물들지 않은 채였다. 한데 비비나비는 떨궈져서 뻗기가 무섭게 썩고 해체된 꼴이라니…….
투란이 얻으려 했던 날개고 손톱이고 동시에 날아가 버린 셈이었다.
“시체 줍는 거는 쉬운 줄 알아!”
빽빽 고함을 치던 몬스터 로드의 모습을 투란은 선명하게 기억해 냈다.
정말 그렇게 고함을 칠 정도로 어려운 일이 맞는 듯하잖나.
‘아니, 아직 남은 게 있지!’
투란은 고집을 피워 올리면서 뱀을 보고, 나무를 봤다.
우선 나무를 향해 다가가서 껍질을 손끝으로 슬쩍 긁어 봤다.
살갗이 훌렁 벗겨지고 손톱은 바로 갈려 버렸다.
좀 세게 문질렀으면 바로 피가 철철 흐를 판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괴물 나무 아닌가!
투란은 나무가 낮은 곳부터 가지를 뻗으며 나뭇잎도 꽤 낮은 곳에 잘 매달린 꼴에 감사하며 손을 뻗었다. 한 장의 나뭇잎, 불끈거리며 부풀까 말까 하는 것을 가슴에 대고 천천히 문장의 힘을 돋우었다.
……아무 일 없었다.
‘왜?’
나뭇잎은 결국 불끈거리다가 부풀어 빵 터졌다.
투란의 가슴과 얼굴 아래에 녹색 액체가 물감처럼 번졌다.
하지만 ‘천칭의 문장’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잠깐 혼란스러웠지만, 투란은 금방 답을 깨달았다.
‘몬스터가 아냐! 아니, 이렇게 생겨 처먹었으면 충분히 괴물이잖아! 그런데…… 그냥 나무냐!’
나무는 독을 뿜고 거대한 뱀과 비비나비라는 괴물 떼를 쓰러뜨릴 수 있어도, 괴물 같은 위용을 지녔어도, ‘정명(正命)한 존재’였다.
몬스터 엠블럼이 삼키지 않는, 삼킬 수 없는 것!
‘정명한 존재’!
“왜! 왜! 그냥 마수라니, 그런 게 어딨어! 잡느라고 그 고생을 했는데! 이게 괴물이 아니라니!”
어른이 땅바닥에 뒹굴면서 분 부리듯이 발버둥 치는 꼴을 투란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덩치가 아주 큰, 시커먼 곰을 놓고 그런 꼴을 보인 몬스터 로드였다.
그때 그 시커먼 곰은 보통보다 긴 이빨, 긴 발톱과 배는 더 굵어 보이는 앞뒤 다리를 드러내며 온몸에 뻘건 상처를 드러낸 채로 죽어 있었다. 굉장히 세고 요술 같은 힘도 보이는 놈이었지만, ‘정명한 존재’였기에 몬스터 엠블럼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했다.
“당연하잖아. 마법사가 괴물이냐? 오러 윌더가 몬스터야? 괴물처럼 강하고 몬스터처럼 흉악하게 굴어도, 아닌 거는 아니라고.”
성질부리는 어른, 그 몬스터 로드를 향해 처웃는 꼴로 놀리면서 다른 몬스터 헌터가 떠들었다.
사람에게 마력의 재능이 나타나는 것처럼 짐승에게도 마력의 재능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그 재능을 이성으로 갈고닦는다면 짐승은 그 본능으로 갈고닦아서, 사람이 마법사가 되는 것처럼 ‘마수화’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수가 괴물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보다 더 자주 그렇게 되기는 하지만, 마수로 살고 죽는 경우에는 몬스터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간혹 나무와 풀도 ‘마수화’한다고도 했다.
투란은 멍하니 초록 나뭇잎이 부풀다 터지면서 안개가 짙게 주변에 쏟아져 내리는 꼴을 바라봤다. 그 꼴이 마치 그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너는 왜 안 쓰러지냐? 어서 쓰러져 녹아 늪이 되어, 내 양분이 되어야지.
‘몬스터 비비나비를 쓰러뜨려 녹일 정도의 독 안개를 터뜨리는 나무인데…… 몬스터는 아니라고?’
다시 생각을 정리했지만, 울화통이 부글대며 끓는 기분만 더 심해질 뿐이었다. 그래도 아직 남은 희망은 있었다.
나무를 포기하고 투란의 걸음이 뱀의 굵고 긴 몸통을 향해 옮겨졌다.
살갗을 바로 긁어 대는 나무껍질에도 끄떡없이 나무를 분지르고 터뜨려 날리던 뱀의 가죽이었다. 비록 저 절벽의 돌은 못 이겨도, 투란의 살갗을 이루는 악마의 심장 껍질보다는 세다!
‘그래, 이거라도…….’
투란은 껍질의 갈라진 틈새를 찾고, 안을 긁으면서 가슴팍에 당겨 붙이며 조금 느긋하게 문장의 힘을 돋우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문장이 반응하지 않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너도! 너까지! 너마저!”
죽은 뱀의 가죽 속에서, 녹색으로 서서히 물들어 가는 살점을 쥐어뜯으며 투란은 비비나비가 꽥꽥대는 꼴을 흉내 내듯이 꽥꽥거렸다.
그런다고 터진 울화통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