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4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476)
Chapter 96. 마스터 수전노
“……그러니까, 진심이었고 진담이었다는 말씀이군요.”
어스름한 모닥불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에 투란은 잠에서 깨어났다.
투란이 ‘이게 무슨 소리야?’ 해서 돌돌 말고 있던 거미 가죽의 담요를 젖히면서 맹하고 꿈벅이는 눈을 부비면서 일어나 보니, 모닥불이 얕게 타오르며 숯을 달아오르게 하는 너머로 케이라가 눈썹사이를 손가락마디로 누르면서 골 아프다는 시늉을 하며 홀시딘을 살짝 노려보는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홀시딘이 뚱한 말투로 대꾸하는 소리가 투란의 옆에서 울려나온다.
“그게 무슨 거짓말을 해야 할 일은 아니잖니? 확인도 아주 쉽구만…… 내가 무슨 없는 일을 갖고 헛소리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아닌가?”
투란은 꽤나 언짢게 투덜대는 낌새를 느꼈다.
‘어, 이게 무슨 일이지?’
정신을 깊이 가라앉히고 잠들었기 때문에 오가는 이야기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투란이었다. 물론 그렇게 잠든 사이에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가 바로 투란의 문장 속에 머물고 있으니, 묻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하는 일 없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누군가가 된 드라고니아는 애매한 대꾸를 한다.
―잘 모르겠다. 인간의 일이라서…….
‘……그러냐.’
시침 떼는 낌새를 느끼면서 투란은 가벼운 하품과 함께 눈을 깜박이면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으로 다시 귀를 기울였다. 굳이 바싹 긴장해서 들을 필요는 없었다. 케이라가 스승인 홀시딘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으니까.
“스승님! 알드바인의 마스터 메이지가 느닷없이 그런 메시지를 날렸는데 헛소리고 뭐고 하기 전에 다들 황당해 할 거라는 점은 생각 안 하셨어요?”
“아니, 대체 뭐가 황당하냐고!”
“돈 내놔, 돈 없으면 현물(現物)로 가져간다! 그게 대체 뭐냐고요!”
“케이라, 분명히 상황 설명도 붙여놨다만!”
“불타는 평야를 해결했다, 라고 달랑 한 문장을 덧붙여놓으시고 설명이라고 하실 참인가요?”
“충분하잖아! 무슨 열 살도 안 된 애들도 아니고, 그 정도면 나머지는 알아서 조사하고 적립된 보상금만 보내주면 되는 일이잖아!”
“백 년 넘게 해결 못하고 있던 걸 갑자기 해결했으니까 돈 내놓으라고 하는데, 제 정신인가 의심부터 하는 게 당연하지요!”
“그래, 그렇게 의심하고 당연히 나와서 조사를 해봐야지! 그리고 조사 마친 다음에 바로 돈을 내놓으면 되잖아!”
한마디도 밀릴 수 없다는 듯, 상아탑의 두 마도사가 기묘한 태도로 설전(舌戰)을 펼쳐놓는 광경이었다.
투란은 잠깐 동안 오가는 말을 통해 어렴풋이 무슨 일인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샤오콴 마을에서 자란 투란이 아침, 저녁으로 한 두 번은 듣는 이야기랑 같은 종류였다.
몬스터 헌터에게 몬스터의 사냥, 격멸(擊滅)을 의뢰해놓고서 막상 몬스터가 격파되었다고 하면 진짜냐고 되물으면서 보상금 지급을 미적거리며 미루려고 하는 짓. 온갖 핑계를 대고 보상금을 덜 주려고 생떼 쓰는 이들…….
‘어라? 상아탑의 마법사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텐데?’
기억을 더듬다가 투란은 갸웃했다.
샤오콴 마을에서 헌터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부러워하는 이들이 바로 상아탑의 마법사들이었다. 헌터 길드에서조차 뭔가를 사냥한 다음에 보상금 받아가는 일이 더 힘들어서 아예 선금(先金)을 걸어놓는 관습이 생겼다고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몬스터를 끝장냈다고 하면 아무도 딴소리 못한다고 했었다. 만약의 경우가 어쩌구 하면서 따지지도 못한다고 했다.
로그 메이지랑 상아탑의 마법사가 차이점이 바로 그 부분이라고도 했다.
로그 메이지는 나중에 뒤탈이 생기거나 다른 일이 또 터지거나 하면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라고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매우 평범한 태도지만, 상아탑의 마법사는 두말없이 자신들이 정리한 곳에서 생겨난 뒷일을 마저 처리하니까 생기는 차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보상금이 있든 없든 상아탑 소속 마법사는 일단 대처(對處)하고 움직이지만 로그 메이지는 일단 피해가는 쪽이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생겨났다고도 했다.
그러므로 상아탑의 마법사가 여기 일이 끝났다라고 한다면, 와서 구경하는 경우는 있어도 보상금 놓고 주니 못 주니 하는 일은 없다!
홀시딘이 당당하게 외치는 말은 분명히 투란이 아는 상아탑의 마법사다운 태도에서 나오는 맞는 소리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실제로 몰튼노트의 재앙을 정리했잖은가!
그런데 케이라는 뭐가 문제라고 하는 것인가?
“경과가 없잖아요, 경과가! 뭘 어떻게 했는가, 최소한의 말도 없이 처리 완료라고 하시다니! 무슨 지나가던 전설의 몬스터 헌터 놀이라도 하시냐고요! 전설의 헌터가 나타나 도운 일이라면 도움 받았다라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잖아요!”
“케이라, 그런 경과에 대해서는 때때로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거! 상아탑의 마법사 중에 그런 거 모르는 놈이 어딨냐! 그런 일을 가지고 따지겠다면 마법사 때려치우라고 해!”
“아, 진짜―! 계속 시침 떼실 거예요!”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해서는 안 되는 것! 몰튼노트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만 하면 된다는 거였다. 해결되고 나서 뭘 어떻게 했나 물어보겠다고 하는 시점(時點)에서 해서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홀시딘은 모닥불의 붉은 광채를 턱 아래로 받아들이면서 근엄한 태도로 말했다.
케이라는 갑자기 턱을 치켜 올리면서 으스대는 자세를 잡는 스승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투란은 고개를 좌우로 눕혀보면서 팔다리를 펴고 잠에서 깨어나 찌뿌둥한 몸을 깨우는 시늉을 하며 지켜봤다. 케이라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모닥불 너머에서 단정하게 객관성을 움켜쥔 것처럼 울려나온다.
“그리고 마스터 홀시딘은 황당해 하는 이들을 한층 더 당황스럽게 하는 메시지를 며칠 되지도 않다 다시 보내셨죠. 그레이우드의 몬스터 오우거를 정리했으니까, 이제 어느 정도 숲의 출입은 안전해졌다고 말이죠. 광대한 숲의 자원을 숲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용할 수 있으니까, 겁 없는 놈들 가서 이용해 보라고 친절하게 덧붙이는 말까지 있는…… 몬스터였던 무쇠뿔 오우거에 걸린 상금 내놓으라는 메시지였죠. 그런데 대체 왜 거기에 마스터 홀시딘께서는 숲을 수호하는 오우거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으니 주의하란 말까지 덧붙이셨나요?”
꽤나 단조롭게, 자신을 달래듯이 이어져 나오는 말이었고 이는 듣는 사람에게도 ‘아, 별일 아닌가 보네. 듣고 있으니 나른해져!’라는 느낌을 덧씌우는 듯했다. 그래서 투란이 ‘음, 좀 더 잘까.’라는 기분을 느낄 때, 홀시딘은 파르르 떠는 듯한 목소리로 웅크리고 방어하는 말투로 대답을 한다!
“다, 당연히 정령의 나무가 정상이 되었으니까 그랬지! 말썽 부리는 트롤과 오우거를 정리했고…… 결국 트롤과 오우거의 분란을 끝냈다. 기록에 있잖니? 몬스터가 된 오우거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숲에 아직 정령의 나무가 건재하다면, 숲의 수호자가 회생한다고 말이야. 만약의 경우잖아, 만약의 경우! 당연히 붙일 말을 붙인 거야!”
“……회생하는 오우거의 흔적을 보신 건 아니고요?”
“어허! 그런 귀한 것을 봤다면 메시지에 당연히 함께 적어놨겠지! 그런데 그 메시지에 그런 얘기가 있었던? 없잖아! 왜냐! 짐작뿐이니까. 근거라고는 옛날 기록뿐이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덧붙인 말이라고.”
더듬으면서 목에 힘을 주는 홀시딘의 태도는 투란이 곁에서 보기에도 많이 수상해 보였다! 홀시딘을 더 잘 아는 케이라라면 몇 배로 더 의심할 수밖에 없는 듯해 보이는 꼴이다!
‘아니, 왜……? 오우거 새로 자라는 게 비밀인가?’
―그 오우거가 정령의 궁전에서 자라고 있고, 정령의 궁전은 로열 가든을 통해서 구현된 것인 데다가 로열 클래스인 누군가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시크릿 키퍼로서 그 광경을 파악한 것이라면…… 당연히 말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거지!
‘어? 아, 나 때문인가! 음, 그럼 뭐…….’
뒷덜미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태도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마르고 배고픈 시늉을 해보였다. 홀시딘과 케이라가 모닥불 너머로 마주 보며 대화를 하는 사이에 혹시 꺼내놓은 뭔가 없는가 찾는 듯한 태도로.
조금 노골적인 투란의 태도에 모닥불을 빙 돌아 밀려오는 것이 있었다. 가죽을 쟁반삼아 올려놓은 음식이었다.
“어? 에……?”
“빵과 주스예요. 배고픔을 조금 덜게 해줄 겁니다.”
케이라의 말에 투란은 빵과 주스를 바라봤다.
낯선 것을 보는 그 눈길에 케이라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투란과 케이라의 태도를 알아차린 홀시딘이 불쑥 말한다.
“제대로 된 빵과 주스를 오랜만에 보는 거지? 꽤 오랫동안 밀포라든가, 걸러낸 물만 마셨잖아?”
“……그렇죠.”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적당히 대꾸했다.
샤오콴 마을에서 빵을 굽겠다고 날뛴 사람이 몇 있었지만, 결국 샤오콴 마을에서 제대로 된 빵은 어림도 없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그 결론을 내릴 때까지 낭비한 곡식 때문에 욕만 잔뜩 먹고 손가락질 당하기도 했었다. 주스란 것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왜 술 담가 먹을 것을 미리 쥐어짜내서 즙만 빨아 먹냐고, 먹을 거면 과일을 통으로 먹어야지 뭐 하는 짓이냐고 툭탁거리면서 싸우는 일이 가끔 있었을 뿐이었다.
먹을 것은 한입 뜯어내서 오래 꽉꽉 씹어 먹을 수 있는 밀포, 운이 좋으면 육포(肉脯)도 섞은 밀포가 보통이었고 마실 것은 독이 섞이지 않는 맑은 물뿐.
샤오콴 마을의 음식을 놓고 ‘여긴 대체 무슨 지옥이냐!’라고 으르렁거리던 이들이 결국은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뿐이었다. 샤오콴 마을에서 한 달 지내다보면 라비엔에서 루비가 내놓은 온갖 발 요리는 꽤 먹음직하다고 여길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 제대로 된 빵은 처음 먹어보나?’
기억을 더듬어도 빵의 맛이란 것이 없었기에 투란은 갸웃하면서 케이라가 마력까지 써가며 모닥불 너머로 보내준 빵을 들어 한 입 깨물었다.
“음? 우앙!”
빵 속에 담긴 야채의 식감, 달콤한 맛에 투란이 활짝 웃으면서 바로 두 입, 세 입을 깨물며 으적거렸다. 병을 들어 한 모금 주스를 마시고는 더욱 신나는 투란의 모습에 케이라가 조금 어이없어 하는 듯했지만, 홀시딘은 냉큼 한마디 할 뿐이었다.
“어, 나는?”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잖아요, 스승님!”
케이라가 낮지만 살짝 날이 선 목소리로 대꾸했다.
투란은 꿀꺽 입안을 비우면서 재빨리 말한다.
“고기 있잖아요, 고기. 열심히 요리해서 잔뜩 쌓아둔 고기 드시죠?”
슬그머니 심술궂게 보채는 소리였기에 홀시딘은 삐딱하니 투란을 한번 흘겨봤다.
케이라는 의아해서 ‘고기?’라고 되뇌었다.
홀시딘이 그런 케이라를 향해 넋두리하는 말투로 중얼거린다.
“모처럼 제자가 굽고 요리한 빵 좀 먹어보려 했더니…… 제자야, 스승이 새로 개발한 고기 요리 맛부터 보겠니?”
말과 함께 스윽 내밀어지는 말린 듯한 고기 조각을 케이라는 눈을 가늘게 하면서 노려봤다. 대체 스승이 갑자기 들이대는 이 고기의 정체가 뭐냐고, 의아해하는 표정이 케이라의 얼굴에 아주 또렷했다.
“스승님? 식량…… 충분히 챙겨 오셨겠지요? 그런데 이건 챙겨 오신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가 아닌 모양이네요?”
약간 불길한 기분이 서린 케이라의 물음이었다.
홀시딘은 다른 손으로 새로 꺼낸, 내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고깃조각을 입에 물면서 대답한다.
“미리 준비한 보존식량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먼저 보존 처리가 되지 않은 현지 조달 식재료를 활용하는 것이 기본이잖니. 우리가 마법사라고 해도 그런 기본은 확실히 존중하고 몸에 익혀야 한다 했잖느냐!”
어쩐지 스승의 위엄을 뽐내는 소리였다.
케이라의 눈이 가늘어졌고, 녹색 눈동자가 어쩐지 퍼릇하니 깊은 의혹을 품는 듯했지만 내밀어진 고깃조각은 모닥불 너머로 튕겨 올라가며 케이라의 손에 올려졌다. 케이라는 의심을 품은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고기를 입에 가져가 맛을 보고 살짝 씹어본다. 그다음에 이상을 느끼지 않았다는 듯이 묻는다.
“무슨 고기인가요?”
쟈카라 산림에서 사냥은 거미와 경쟁하는 일이었다.
쉽지 않을뿐더러 사냥에 성공한 다음에도 거미에게 뺏기지 않아야 했다.
한 달 가까이 머물면서 몬스터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해도 마수와의 경쟁은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이 산림의 마수 거미는 동족이 아무리 많이 죽어나간다 해도 겁먹고 그 본성을 억누르지도 않을 테니 더욱 그럴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거미와 싸우면서 따로 사냥감을 고를 여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
케이라의 낯에 살짝 꿈틀거림이 피어났다.
“스승님, 설마 이거……?”
“껄껄! 괜찮다, 다 검증이 끝난 거야. 마수 거미의 고기지만, 그렇게 조리하니 먹을 만하지 않니?”
“……어떻게 검증을 하셨지요?”
“껄껄껄!”
케이라가 입에 넣은 것을 씹어 삼키면서 스산한 분위기로 묻는 소리에 홀시딘은 호쾌하게 웃어젖힐 뿐이었다.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묘하게 얼버무리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래서 투란이 주스 한 모금을 삼키며 대신 대답한다.
“직접 먹어보고 몸으로 느끼면, 마법사는 금세 아신다면서요? 대단했어요! 독이라도 있으면 어쩌려나 걱정돼서 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죠! 아무리 비싼 시약 값을 아낄 수 있다고 해도 대단했어요!”
“껄껄……꺼윽! 야!”
웃다가 목에 웃음이 걸린 듯이 홀시딘이 투란에게 뒤늦게 눈치를 줬다.